전통시장 화재 관리한다지만…“시장이 어디까진데요?”

입력 2024.03.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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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불이 났던 기장시장. 노점상과 상점이 즐비하다.지난해 불이 났던 기장시장. 노점상과 상점이 즐비하다.

■ " 여기는 시장 아니에요"…구획 제각각

지난해 12월, 부산 기장군의 한 시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콘센트에 먼지가 쌓이고, 누전돼 불이 난 겁니다. 임시 건물인 상가 천장에는 구멍이 뚫리고, 철근이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행히 길을 지나던 행인의 신고로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자칫 주변으로 번졌다면 큰 화재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당시 KBS는 콘센트에 먼지나 습기가 붙어 절연 상태를 나쁘게 해 불이 붙는 이른바 ' 트래킹 화재'에 집중한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연관 기사] 콘센트 먼지 방치했다간 ‘큰 불’…트래킹 화재 주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52949

그런데 현장에서 상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여기는 시장 아닙니다. 바로 앞까지 시장이에요."
"우리는 상인회 아니라서, 화재 점검 안 해요"

시장 어귀에서 내려 골목길로 꽤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시장이 아니라니, 대체 어떤 상황일까요?

확인해보니, 시장마다 구역이 제각각인 탓이었습니다.

어느 시장은 '상인회 가입 여부'에 따라 상점을 나눠 시장으로 구분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시장은 바로 옆 시장과 인접한 건물을 기준으로 경계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시장 어귀 골목이 노점상으로 빼곡하지만, 시장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시장 어귀 골목이 노점상으로 빼곡하지만, 시장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소방 점검에 중요한 '시장 구획'…마땅한 기준 없어

알고 보니 시장의 구획은 시장 상인회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었습니다. 시장 범위를 정해 자치단체에 신청하고, 인정받으면 시장 구획이 정해지는 겁니다.

물론 전통시장을 규정하는 법이 있긴 합니다.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상업지역이거나, 인구 50만 명 이상인 구 군은 점포 수가 7백 개에 달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시장은 범위 이렇게 구분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이 서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상권에 시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시장구역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노점상이 즐비하고, 시장과 연결된 길이라면 곧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시장마다 제각각인 구획이 소방 점검 의무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부터 전통시장은 소방시설법에 따라 특정 소방대상물로 지정돼 소방 점검 의무가 생겼습니다. 대형 시장은 중점관리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점검을 벌이고 소방당국에 보고해야 합니다. 골목 시장이나 소규모 시장들도 자치단체와 담당 소방서에서 매달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소화기기 비치 여부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점검은 시장 범위 안에 들어갔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장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마땅히 없다 보니, 상인회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에 불이 났을 때 좁은 골목과 노점상은 화재 위험을 키운다.전통시장에 불이 났을 때 좁은 골목과 노점상은 화재 위험을 키운다.

무허가 건물·노점상까지 포용할 수 있을까…대안 마련 시급

부산 구포시장의 경우, 아케이드가 설치된 곳까지 시장이라고 규정지어 관리합니다. 5일장이 서는 부산의 대표 시장이다 보니 주변에도 넓은 상권이 분포해 있습니다. 골목도 좁고, 노점이 많아 소방차조차 들어오기 힘든 지역이고, 불이 나면 삽시간에 번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하지만 소방 점검 대상이 아니다보니 현장에서는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으로 시장 화재를 점검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의 경우 무허가 건물과 노점상이 많다 보니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상인회가 나서 노점상을 관리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던 지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시장 구획에서 제외되는 부분"이라며, "기준에 맞춰 소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기장시장을 비롯해 시장 구역 주변에 불이 났을 때 진압 작전을 수립하고, 상인회와 함께 사각지대가 없도록 추가적인 대안 마련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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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시장 화재 관리한다지만…“시장이 어디까진데요?”
    • 입력 2024-03-05 1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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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불이 났던 기장시장. 노점상과 상점이 즐비하다.
■ " 여기는 시장 아니에요"…구획 제각각

지난해 12월, 부산 기장군의 한 시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콘센트에 먼지가 쌓이고, 누전돼 불이 난 겁니다. 임시 건물인 상가 천장에는 구멍이 뚫리고, 철근이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행히 길을 지나던 행인의 신고로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자칫 주변으로 번졌다면 큰 화재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당시 KBS는 콘센트에 먼지나 습기가 붙어 절연 상태를 나쁘게 해 불이 붙는 이른바 ' 트래킹 화재'에 집중한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연관 기사] 콘센트 먼지 방치했다간 ‘큰 불’…트래킹 화재 주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52949

그런데 현장에서 상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여기는 시장 아닙니다. 바로 앞까지 시장이에요."
"우리는 상인회 아니라서, 화재 점검 안 해요"

시장 어귀에서 내려 골목길로 꽤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시장이 아니라니, 대체 어떤 상황일까요?

확인해보니, 시장마다 구역이 제각각인 탓이었습니다.

어느 시장은 '상인회 가입 여부'에 따라 상점을 나눠 시장으로 구분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시장은 바로 옆 시장과 인접한 건물을 기준으로 경계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시장 어귀 골목이 노점상으로 빼곡하지만, 시장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소방 점검에 중요한 '시장 구획'…마땅한 기준 없어

알고 보니 시장의 구획은 시장 상인회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었습니다. 시장 범위를 정해 자치단체에 신청하고, 인정받으면 시장 구획이 정해지는 겁니다.

물론 전통시장을 규정하는 법이 있긴 합니다.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상업지역이거나, 인구 50만 명 이상인 구 군은 점포 수가 7백 개에 달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시장은 범위 이렇게 구분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이 서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상권에 시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시장구역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노점상이 즐비하고, 시장과 연결된 길이라면 곧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시장마다 제각각인 구획이 소방 점검 의무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부터 전통시장은 소방시설법에 따라 특정 소방대상물로 지정돼 소방 점검 의무가 생겼습니다. 대형 시장은 중점관리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점검을 벌이고 소방당국에 보고해야 합니다. 골목 시장이나 소규모 시장들도 자치단체와 담당 소방서에서 매달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소화기기 비치 여부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점검은 시장 범위 안에 들어갔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장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마땅히 없다 보니, 상인회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에 불이 났을 때 좁은 골목과 노점상은 화재 위험을 키운다.
무허가 건물·노점상까지 포용할 수 있을까…대안 마련 시급

부산 구포시장의 경우, 아케이드가 설치된 곳까지 시장이라고 규정지어 관리합니다. 5일장이 서는 부산의 대표 시장이다 보니 주변에도 넓은 상권이 분포해 있습니다. 골목도 좁고, 노점이 많아 소방차조차 들어오기 힘든 지역이고, 불이 나면 삽시간에 번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하지만 소방 점검 대상이 아니다보니 현장에서는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으로 시장 화재를 점검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의 경우 무허가 건물과 노점상이 많다 보니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상인회가 나서 노점상을 관리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던 지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류상일 동의대학교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시장 구획에서 제외되는 부분"이라며, "기준에 맞춰 소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기장시장을 비롯해 시장 구역 주변에 불이 났을 때 진압 작전을 수립하고, 상인회와 함께 사각지대가 없도록 추가적인 대안 마련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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