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 100년/남북 관계와 적십자
입력 2005.10.27 (22:16)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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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많은 활동을 펼쳐온 대한 적십자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다양한 활동가운데 남북관계 발전에 끼친 공헌을 조일수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백년전 오늘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창립된 대한적십자사.
임시정부하의 간호원 양성. 전쟁시기 구호활동과 포로 교환 등을 통해 이 땅에 인도주의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최우선 인도주의 사업이 된 때는 1970년대.
<녹취>최두선 (당시 한적 총재/71년 8월): "남북간 가족 찾기운동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사 대표가 한자리에 마주 앉아 회담 할 것을 제의한다."
이렇게 남북 적십자회담(72)이 시작됐고 84년에는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을 수용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성사됐습니다.
2000년부터는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대표적인 활동으로 자리매김해, 지금까지 11차례동안 만 천여명이 이산의 한을 풀었고 2만 5천여명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95년 북한의 대홍수를 계기로 시작된 인도적 지원은 식량은 물론 비료와 구호품 지원으로 이어져,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마다 돌파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인터뷰>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냉전적인 대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푼다,준다,나눈다 이런 정신이니까 인도주의 정신이 남북관계가 섰을 때 가게 하는 힘을 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백주년 기념식을 연 대한적십자는 다음달에는 북한도 참여하는 국제적십자사 연맹총회를 서울에서 열어 인도주의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선포합니다.
KBS 뉴스 조일수 입니다.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많은 활동을 펼쳐온 대한 적십자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다양한 활동가운데 남북관계 발전에 끼친 공헌을 조일수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백년전 오늘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창립된 대한적십자사.
임시정부하의 간호원 양성. 전쟁시기 구호활동과 포로 교환 등을 통해 이 땅에 인도주의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최우선 인도주의 사업이 된 때는 1970년대.
<녹취>최두선 (당시 한적 총재/71년 8월): "남북간 가족 찾기운동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사 대표가 한자리에 마주 앉아 회담 할 것을 제의한다."
이렇게 남북 적십자회담(72)이 시작됐고 84년에는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을 수용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성사됐습니다.
2000년부터는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대표적인 활동으로 자리매김해, 지금까지 11차례동안 만 천여명이 이산의 한을 풀었고 2만 5천여명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95년 북한의 대홍수를 계기로 시작된 인도적 지원은 식량은 물론 비료와 구호품 지원으로 이어져,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마다 돌파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인터뷰>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냉전적인 대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푼다,준다,나눈다 이런 정신이니까 인도주의 정신이 남북관계가 섰을 때 가게 하는 힘을 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백주년 기념식을 연 대한적십자는 다음달에는 북한도 참여하는 국제적십자사 연맹총회를 서울에서 열어 인도주의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선포합니다.
KBS 뉴스 조일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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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5-10-27 21:38:49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멘트>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많은 활동을 펼쳐온 대한 적십자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다양한 활동가운데 남북관계 발전에 끼친 공헌을 조일수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백년전 오늘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창립된 대한적십자사.
임시정부하의 간호원 양성. 전쟁시기 구호활동과 포로 교환 등을 통해 이 땅에 인도주의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최우선 인도주의 사업이 된 때는 1970년대.
<녹취>최두선 (당시 한적 총재/71년 8월): "남북간 가족 찾기운동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사 대표가 한자리에 마주 앉아 회담 할 것을 제의한다."
이렇게 남북 적십자회담(72)이 시작됐고 84년에는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을 수용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성사됐습니다.
2000년부터는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대표적인 활동으로 자리매김해, 지금까지 11차례동안 만 천여명이 이산의 한을 풀었고 2만 5천여명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95년 북한의 대홍수를 계기로 시작된 인도적 지원은 식량은 물론 비료와 구호품 지원으로 이어져,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마다 돌파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인터뷰>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냉전적인 대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푼다,준다,나눈다 이런 정신이니까 인도주의 정신이 남북관계가 섰을 때 가게 하는 힘을 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백주년 기념식을 연 대한적십자는 다음달에는 북한도 참여하는 국제적십자사 연맹총회를 서울에서 열어 인도주의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선포합니다.
KBS 뉴스 조일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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