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농촌…말로만 ‘청년’ 안 되려면?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⑤

입력 2024.04.22 (07:00) 수정 2024.04.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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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 2월 경북 의성에서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겁니다. 청년은 결국 3월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SNS에 남긴 유서에는 '청년 귀촌', 그 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담겼습니다.

KBS 대구방송총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농촌 생활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봅니다.


■ 농촌도, 농업도…역대 최고 '소멸 위기'

우리나라 농가 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1백만 가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농가의 과반수는 65살 이상으로 고령 인구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청의 2023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우리나라 농가는 99만 9,000가구로 집계됐습니다. 농가 수가 1백만 아래로 떨어진 건 농업 조사가 시작된 194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고령에 따른 농업 포기, 전업(轉業)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농촌과 농업의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필요 조건은 모두 '청년'입니다. 그러나 지역 농업의 미래를 밝히겠다며 스스로 농촌을 찾은 청년들은 지금 적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청년 농부의 죽음…“노예처럼 착취” 유서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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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닿지 않는 '청년 정책'

이들을 위한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전해드렸듯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발표한 '농촌 지역 청년정책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농촌 지역 청년 관련 사업은 183개, 투입된 예산은 1조 원이 넘습니다.

다만, 전체 청년 정책 1,918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합니다. 예산으로만 놓고 보면 전체(약 29조 원)의 4%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청년 정책이 도시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강하고, 농촌 정책은 기성세대 중심·농업인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어 청년 정책과 농촌 정책 모두에서 농촌 청년 정책은 불충분한 상황.
- ‘농촌과 청년: 청년세대를 통한 농촌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2023)

그나마 있는 농촌 지역 청년 정책은 어떨까요? 내용을 살펴봤더니 '영농정착지원금 지급' 등 영농 과정의 일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농촌 지역 청년정책 분석 (KREI, 2023)농촌 지역 청년정책 분석 (KREI, 2023)

지자체 정책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는데요. 낮은 만족도의 원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한 '귀농·귀촌 실태조사'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책 수혜율도 낮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나타난 정책별 수혜 정도를 살펴보면 수혜율이 모두 40%를 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받은 경우는 37%에 불과했고, 주택 자금을 지원받거나 생활·관계 형성 관련 지원을 받은 경우는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칩니다.

귀농·귀촌 정책 수혜 정도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실태조사」, 2023)귀농·귀촌 정책 수혜 정도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실태조사」, 2023)

"정책이 있다고 그게 현장에까지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정부에서는 '이것도 하고 있다, 저것도 하고 있다' 얘기할 수는 있죠. 근데 일부 지자체에서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군 단위 지역 같은 경우에는 읍내에서만 정책을 시행하고 그래요. 그러면 면에 사는 청년들한테는 의미가 없는 거죠." -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거창한 지원이나 혜택은 바라지 않습니다."

영농 초기에 한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뿐 아니라, 농촌 현장 전체에서 정주 여건과 삶의 질을 개선 하는 등 생애 전 과정에 대한 지원으로 확대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농촌 청년이 직면한 어려움은 일자리, 소득, 주거, 복지, 문화, 사회 참여 등 다차원적이다. 농촌의 열악한 생활 환경과 시장 실패 상황이 결합 된 농촌 구조적 문제로 경제 등 어느 한 분야를 지원한다고 농촌 청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 ‘농촌과 청년: 청년세대를 통한 농촌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 2023)

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농촌의 특수성, 그러니까 넓은 지역에 사람이 흩어져 살고 규모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는 지역에 맞는 정책 설계나 서비스 전달 체계가 부족한 거죠. 기존의 '영농후계자' 개념을 '농촌후계자'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농촌 3만 7천 개 마을에서 고령 인구가 맡는 일들을 승계할 후계자 개념으로 청년들을 바라보고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취재진이 만난 농촌 청년들은 하나같이 거창한 지원이나 혜택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승계농' 청년들은 "창업농 청년들이 더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창업농 청년들은 '사업에 도전하는 도시 청년들도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요구사항을 드러내기조차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전한 바람은 '현실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귀농 청년1
"힘든 점도 많지만, 열심히 일해서 조금조금 성과를 얻을 때마다 재미도,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보기 좋은 지원이나 혜택도 물론 좋겠지만, 규모가 작더라도 저희가 실제로 농업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현실감 있는 정책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귀농 청년2
"청년창업농 지원금을 받으려면 1년에 3개월만 4대 보험이 들어가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농사가 내내 잘 되면 좋은데, 시간을 쪼개서 일해도 안 되면 밖에서 부수입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요."

귀농 청년3
"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자란 사람들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책이 있다 해도 1명이 받으면 99명은 소외되는 셈이니까.. 유입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까지 정착을 잘 시킬 수 있는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청년 농부 절망보고서'에 담긴 이들의 목소리를 검토하고 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촬영기자 신상응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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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가는 농촌…말로만 ‘청년’ 안 되려면?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⑤
    • 입력 2024-04-22 07:00:47
    • 수정2024-04-22 07:01:23
    심층K
<strong>지난 2월 경북 의성에서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겁니다. 청년은 결국 3월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strong><strong>그가 SNS에 남긴 유서에는 '청년 귀촌', 그 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담겼습니다. </strong><br /><br /><strong>KBS 대구방송총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농촌 생활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봅니다.<br /></strong>

■ 농촌도, 농업도…역대 최고 '소멸 위기'

우리나라 농가 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1백만 가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농가의 과반수는 65살 이상으로 고령 인구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청의 2023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우리나라 농가는 99만 9,000가구로 집계됐습니다. 농가 수가 1백만 아래로 떨어진 건 농업 조사가 시작된 194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고령에 따른 농업 포기, 전업(轉業)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농촌과 농업의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필요 조건은 모두 '청년'입니다. 그러나 지역 농업의 미래를 밝히겠다며 스스로 농촌을 찾은 청년들은 지금 적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청년 농부의 죽음…“노예처럼 착취” 유서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9301
청년 농업인 단체라더니…청년들 ‘부글부글’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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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위한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전해드렸듯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발표한 '농촌 지역 청년정책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농촌 지역 청년 관련 사업은 183개, 투입된 예산은 1조 원이 넘습니다.

다만, 전체 청년 정책 1,918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합니다. 예산으로만 놓고 보면 전체(약 29조 원)의 4%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청년 정책이 도시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강하고, 농촌 정책은 기성세대 중심·농업인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어 청년 정책과 농촌 정책 모두에서 농촌 청년 정책은 불충분한 상황.
- ‘농촌과 청년: 청년세대를 통한 농촌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2023)

그나마 있는 농촌 지역 청년 정책은 어떨까요? 내용을 살펴봤더니 '영농정착지원금 지급' 등 영농 과정의 일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농촌 지역 청년정책 분석 (KREI, 2023)
지자체 정책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는데요. 낮은 만족도의 원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한 '귀농·귀촌 실태조사'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책 수혜율도 낮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나타난 정책별 수혜 정도를 살펴보면 수혜율이 모두 40%를 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받은 경우는 37%에 불과했고, 주택 자금을 지원받거나 생활·관계 형성 관련 지원을 받은 경우는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칩니다.

귀농·귀촌 정책 수혜 정도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실태조사」, 2023)
"정책이 있다고 그게 현장에까지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정부에서는 '이것도 하고 있다, 저것도 하고 있다' 얘기할 수는 있죠. 근데 일부 지자체에서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군 단위 지역 같은 경우에는 읍내에서만 정책을 시행하고 그래요. 그러면 면에 사는 청년들한테는 의미가 없는 거죠." -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거창한 지원이나 혜택은 바라지 않습니다."

영농 초기에 한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뿐 아니라, 농촌 현장 전체에서 정주 여건과 삶의 질을 개선 하는 등 생애 전 과정에 대한 지원으로 확대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농촌 청년이 직면한 어려움은 일자리, 소득, 주거, 복지, 문화, 사회 참여 등 다차원적이다. 농촌의 열악한 생활 환경과 시장 실패 상황이 결합 된 농촌 구조적 문제로 경제 등 어느 한 분야를 지원한다고 농촌 청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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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농촌의 특수성, 그러니까 넓은 지역에 사람이 흩어져 살고 규모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는 지역에 맞는 정책 설계나 서비스 전달 체계가 부족한 거죠. 기존의 '영농후계자' 개념을 '농촌후계자'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농촌 3만 7천 개 마을에서 고령 인구가 맡는 일들을 승계할 후계자 개념으로 청년들을 바라보고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취재진이 만난 농촌 청년들은 하나같이 거창한 지원이나 혜택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승계농' 청년들은 "창업농 청년들이 더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창업농 청년들은 '사업에 도전하는 도시 청년들도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요구사항을 드러내기조차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전한 바람은 '현실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귀농 청년1
"힘든 점도 많지만, 열심히 일해서 조금조금 성과를 얻을 때마다 재미도,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보기 좋은 지원이나 혜택도 물론 좋겠지만, 규모가 작더라도 저희가 실제로 농업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현실감 있는 정책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귀농 청년2
"청년창업농 지원금을 받으려면 1년에 3개월만 4대 보험이 들어가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농사가 내내 잘 되면 좋은데, 시간을 쪼개서 일해도 안 되면 밖에서 부수입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요."

귀농 청년3
"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자란 사람들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책이 있다 해도 1명이 받으면 99명은 소외되는 셈이니까.. 유입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까지 정착을 잘 시킬 수 있는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청년 농부 절망보고서'에 담긴 이들의 목소리를 검토하고 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촬영기자 신상응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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