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 이용 계좌 추적…은행에 ‘도박 방조상’ 수여할 것”

입력 2024.05.08 (17:21) 수정 2024.05.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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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언론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도박 사이트, 총책 그리고 중학생.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의 '이용자'이자 '피해자'로 알고 있었던 청소년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그들 가운데 일부는 '가해자'이자 '범죄자'의 길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단순한 '이용자' 수준을 넘어서 범죄 조직에 가담하거나 스스로 범죄 조직을 만드는 경우에 이르고 있는 겁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정부가 아이들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이 기사를 보고 얘기한 첫 마디였습니다. 조 교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게 많은 지식이나 인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도박 사이트 제작부터 운영까지 모든 부분을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은 조 교장의 도움을 받아 업체에 문의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에 150만 원이면 사이트 제작과 운영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작은 하루면 충분하고, 비용은 따로 받지 않겠다는 친절한(?) 답변까지 덧붙어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마음만 먹으면 중학생이 제작 ‘뚝딱’…불법 개설 업체도 활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6847

이미 온라인 도박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 코드와 사용법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상황. 서로 SNS를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도박에 빠졌다가 직접 운영자가 되기도 했던 한 고등학생은 "간단하게 컴퓨터를 조금이라도 만질 줄 안다면, 누구나 간단한 코딩만으로도 할 수 있다"면서 "딱히 (단속에) 걸릴 문제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조 교장은 "청소년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른바 '본사' 밑에서 영업을 하는 '총판'으로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수익을 가질 수 있는 본사를 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게 된다"면서 "본사가 되는 방법조차도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청소년을 상대로 '도박 예방·근절 챌린지' 정도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정부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해법은 '계좌부터 동결'…대학생과 직접 문제 해결 나선다"

조 교장은 도박에 이용된 '계좌'를 동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은 일단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너무나 많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움직이는 조직들을 모두 잡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범죄 수익이 입·출금되는 계좌, 그러니까 '돈줄'을 끊어야 범죄 조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범죄 조직이 활동을 못 하면 청소년도 도박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근절 범부처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화 금융사기에만 가능한 계좌 지급 정지를 불법 도박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민단체가 먼저 행동에 나섰습니다. 도박에 사용된 계좌를 발급해 준 '은행'에 모니터링을 강화해달라고 촉구하기로 한 겁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

우선 '도박없는학교'는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등 대학생들과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가 사용하는 계좌를 모두 수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좌를 모아 직접 해당 은행에 전달하고 불법 거래인지 확인을 요청하는 방식인데요. 특히 가장 많은 계좌가 발급된 은행에 '특별상'을 수여할 예정입니다. 이른바 '도박 방조상'입니다. '도박없는학교'는 불법 도박에 중독돼 학교를 자퇴한 학생의 가방을 상패로 제작해 함께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조호연 교장은 "금융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가상계좌를 아직도 도박 사이트가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불법 계좌를 솎아내고, 은행들의 자성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도박 혐의로 입건된 소년범은 171명입니다. 1년 전보다 2배 넘게 늘었습니다. 평균 연령도 2019년 17.3세에서 해마다 낮아져 지난해 16.1세였습니다. 4년 새 1.2세나 낮아진 겁니다.

굳이 범죄 통계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사이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온라인 도박에 노출돼 피해자가 혹은 가해자가 됐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정부 대책이 늦어지는 사이, 실효성 없는 대책에 머물러 있는 지금, 불법 온라인 도박의 '청소년 희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①‘총판’이 모으고 ‘불법OTT’가 뿌리고…‘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2360
②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6668
③[단독] 불법 도박 통로된 ‘가상계좌’…금감원 조사 착수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82469
④“간편한 무통장 송금”…청소년 불법 도박에 ‘악용’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98367
⑤가상계좌 악용한 청소년 도박 확인…금감원 관리 강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1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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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 도박’ 이용 계좌 추적…은행에 ‘도박 방조상’ 수여할 것”
    • 입력 2024-05-08 17:21:52
    • 수정2024-05-08 17: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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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언론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도박 사이트, 총책 그리고 중학생.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의 '이용자'이자 '피해자'로 알고 있었던 청소년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그들 가운데 일부는 '가해자'이자 '범죄자'의 길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단순한 '이용자' 수준을 넘어서 범죄 조직에 가담하거나 스스로 범죄 조직을 만드는 경우에 이르고 있는 겁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정부가 아이들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이 기사를 보고 얘기한 첫 마디였습니다. 조 교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게 많은 지식이나 인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도박 사이트 제작부터 운영까지 모든 부분을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은 조 교장의 도움을 받아 업체에 문의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에 150만 원이면 사이트 제작과 운영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작은 하루면 충분하고, 비용은 따로 받지 않겠다는 친절한(?) 답변까지 덧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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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6847

이미 온라인 도박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 코드와 사용법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상황. 서로 SNS를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도박에 빠졌다가 직접 운영자가 되기도 했던 한 고등학생은 "간단하게 컴퓨터를 조금이라도 만질 줄 안다면, 누구나 간단한 코딩만으로도 할 수 있다"면서 "딱히 (단속에) 걸릴 문제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조 교장은 "청소년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른바 '본사' 밑에서 영업을 하는 '총판'으로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수익을 가질 수 있는 본사를 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게 된다"면서 "본사가 되는 방법조차도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청소년을 상대로 '도박 예방·근절 챌린지' 정도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정부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해법은 '계좌부터 동결'…대학생과 직접 문제 해결 나선다"

조 교장은 도박에 이용된 '계좌'를 동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은 일단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너무나 많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움직이는 조직들을 모두 잡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범죄 수익이 입·출금되는 계좌, 그러니까 '돈줄'을 끊어야 범죄 조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범죄 조직이 활동을 못 하면 청소년도 도박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근절 범부처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화 금융사기에만 가능한 계좌 지급 정지를 불법 도박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민단체가 먼저 행동에 나섰습니다. 도박에 사용된 계좌를 발급해 준 '은행'에 모니터링을 강화해달라고 촉구하기로 한 겁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
우선 '도박없는학교'는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등 대학생들과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가 사용하는 계좌를 모두 수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좌를 모아 직접 해당 은행에 전달하고 불법 거래인지 확인을 요청하는 방식인데요. 특히 가장 많은 계좌가 발급된 은행에 '특별상'을 수여할 예정입니다. 이른바 '도박 방조상'입니다. '도박없는학교'는 불법 도박에 중독돼 학교를 자퇴한 학생의 가방을 상패로 제작해 함께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조호연 교장은 "금융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가상계좌를 아직도 도박 사이트가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불법 계좌를 솎아내고, 은행들의 자성을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도박 혐의로 입건된 소년범은 171명입니다. 1년 전보다 2배 넘게 늘었습니다. 평균 연령도 2019년 17.3세에서 해마다 낮아져 지난해 16.1세였습니다. 4년 새 1.2세나 낮아진 겁니다.

굳이 범죄 통계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사이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온라인 도박에 노출돼 피해자가 혹은 가해자가 됐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정부 대책이 늦어지는 사이, 실효성 없는 대책에 머물러 있는 지금, 불법 온라인 도박의 '청소년 희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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