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남북 언어 차이…평양말 보호 속내는?

입력 2024.07.06 (08:52) 수정 2024.07.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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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북이 분단된 지 어느덧 79년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남북 간 차이도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데요.

언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의사소통에 결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용하는 어휘는 물론, 전문용어 차이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만들어 주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남한 말투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죠.

오늘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남북 간 언어 차이와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담긴 북한의 속내를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부모 잃은 남매들의 이야기를 그린 북한 영화.

[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 : "언니가 툭하면 신경질 부리니까 난 학교에서 집으로 오기 싫어."]

["말 다했니? 너 그래서 자연 관찰 뚜꺼먹고 이 언니 애먹이니? 애먹여! (그건 잘못했어. 하지만 언니도 좀 게잘싸해!)"]

'뚜꺼먹다', '게잘싸하다'와 같은 생소한 어휘가 등장하는데요.

'뚜꺼먹다'는 직장이나 학교에 이유 없이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고, '게잘싸하다'는 너절하고 지저분하다는 의미를 담은 북한말입니다.

[드라마 '21초'/2021 : "자재도 920켤레분의 자재를 출고했는데 삭갈리지 않았어? (오늘 계약이 튀면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데 삭갈리다니요?)"]

드라마에 사용된 '삭갈리다'는 우리의 '헷갈리다'에 해당 됩니다.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부드럽고 연하다는 말도 북한에선'만문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공정이 없으면 다 익은 다음에 고기가 꼿꼿하고 만문한 감이 나지 않습니다."]

분단의 세월이 깊어질수록 남북 언어 차이도 커지고 있는 건데요.

조사에 따르면 일반어에서는 38%, 전문어에서는 66%가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언어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북한 언어 같은 경우도 남북이 공유했던 언어 체계가 있고요. 그다음 생활 속에서 새로운 언어들이 생겨나면서 언어가 달라지고 특히 남북 사이에서 언어 문제는 언어문화의 영향이 더 큽니다. 아무래도 남북한 간엔 생활 문화 차이가 크게 달라지고 소통이 없이 지내면서 언어 차이가 커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북 간 언어체계와 규범의 차이는 1966년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문화어'를 제정하면서부터 본격화 됐는데요.

대표적인 차이는 맞춤법의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규정입니다.

우리가 '여자', '내일'처럼 두음법칙을 인정하는 반면 북한은 '녀자', '래일'로 표기하고, '깻잎', '햇빛'과 같은 단어도 북에서는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또 상추는 부루, 돌고래는 곱등어 등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휘로 사용하는 말이 있고, 어휘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도 있습니다.

[조선중앙TV : "네, 조금. 일없습니다. (건강에는 일없습니까?) 일없습니다."]

'일없다'는 표현은 이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한식 어휘인데요.

남한에서는 보통 '필요 없다'는 뜻이지만 북한에서는 '괜찮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하나원에서 가르쳐주더라고요.'일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한국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됐었죠. 북한에선 '괜찮습니다.'라는 좋은 거절의 의미로 쓰이는데 왜 기분 상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외래어 사용에선 더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국제화를 추진하며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외래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 : "최근 공장에서는 단묵과 단물, 과자를 비롯해서 10여 종의 수십 가지나 되는 들쭉 가공식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젤리와 주스도 단묵, 단물로 표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명처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외래어도 현지어 발음 표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우리에겐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6조에 속한 마로끄(모로코) 팀과 흐르바쯔까(크로아티아) 팀과의 경기입니다."]

그런데 '평양 문화어'에는 남북 언어를 가르는 기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입니다.

언어 정립을 통해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북한 중심의 민족 통합을 꾀했다는 것입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단순히 지역적인 평양이 아니라 평양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북한 지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교양과 도덕이 넘치는 말을 써야 하고 이것을 민족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 평양 문화어를 별도의 언어 체계로 선언하게 됐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양 문화어 선언을 하면서 가장 크게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서울말이 지금 너무나 많이 오염돼 있다. 특히 미 제국주의에 의해서 영어화됐고 일본어 잔재가 남아있고 여전히 한자들이 남아있는 잡탕말이 됐기 때문에 평양의 언어를 중심으로 민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하에서 평양 문화어를 선언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커지는 언어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인정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겨레말을 채집, 연구하기도 했는데요.

바로 2004년 체결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입니다.

2005년,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총 25차례 진행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세계적 석학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라인하트 하트만/영국 버밍엄대학 명예교수/2007년 인터뷰 : "한국어에 두 가지 형태가 있지만, 저는 서로 다른 독립된 표준어라고 보지 않습니다. 공통점이 많아서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은 있지만 그걸 잘 정리했더군요. 부디 이 프로젝트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2015년 중국 다롄 회의를 마지막으로 지금껏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분단의 세월 속에서도 남한의 언어는 끊임없이 북녘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2000년대 초부터 장마당을 통해 유입된 외부 문화, 그중에서도 한류라 불리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인데요.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남한식 어휘들이 청년 세대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됐다고 합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소개팅이란 말도 북한에선 안 쓰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 보면서 아 소개팅은 저렇게 소개해 주는 자리를 소개팅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다음부터 저희도 소개팅이란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전파되는 남한식 언어가 주민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건데요.

[나민희/2016년 탈북 : "(저는) 평양 사람이고 북한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한마디로 혁명 사상을 지닌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개인 보다 집단의 이익을 더 먼저 생각하는 북한에서 바라는 전형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국)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부터는 나만의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부터 자아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한 듯 지난해 북한당국은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제정해, 북한 주민들의 언어 사용을 통제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중앙TV/2023년 12월 : "평양 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문화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라고 하면서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했습니다."]

문화어 보호법 제정으로 사상과 제도,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는데요.

가장 큰 이유로는 북한 내 남한말 확산 방지가 꼽힙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남한말을 더이상 민족 언어가 아닌 외래어로 구분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평양 문화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지 말아야 할 언어 현상들을 쭉 몇 가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나열하고 있는 언어 오염물 자체를 남쪽 말, 대한민국 표준어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쪽과의 언어 교류라고 하는 것은 민족어를 넘어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어를 훼손하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나마 민족의 공통성으로 갖고 있었던 언어도 이제는 정말 섞일 수 없는 언어라고 하는 것을 2023년 평양 문화어 보호법으로 선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언어적 분리를 논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는 게 탈북민의 의견입니다.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접한 남한의 언어에서조차 뜨거운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너무 반가운 거예요. 아직도 우리가 같은 말을 쓰고 있구나. 드라마를 보면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하잖아요.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래도 저쪽은 저렇게 잘살고 있구나 하는 또 하나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기도 해요. 한국에 대한 동경심도 굉장히 있는 편이고 그래서 한민족이라는 그런 동포애를 떠나서 자부심도 꽤 있는 편이거든요."]

분단의 세월만큼 달라진 말과 글.

남과 북이 한민족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교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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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남북 언어 차이…평양말 보호 속내는?
    • 입력 2024-07-06 08:52:13
    • 수정2024-07-06 09:17:49
    남북의 창
[앵커]

남북이 분단된 지 어느덧 79년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남북 간 차이도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데요.

언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의사소통에 결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용하는 어휘는 물론, 전문용어 차이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만들어 주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남한 말투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죠.

오늘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남북 간 언어 차이와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담긴 북한의 속내를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부모 잃은 남매들의 이야기를 그린 북한 영화.

[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 : "언니가 툭하면 신경질 부리니까 난 학교에서 집으로 오기 싫어."]

["말 다했니? 너 그래서 자연 관찰 뚜꺼먹고 이 언니 애먹이니? 애먹여! (그건 잘못했어. 하지만 언니도 좀 게잘싸해!)"]

'뚜꺼먹다', '게잘싸하다'와 같은 생소한 어휘가 등장하는데요.

'뚜꺼먹다'는 직장이나 학교에 이유 없이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고, '게잘싸하다'는 너절하고 지저분하다는 의미를 담은 북한말입니다.

[드라마 '21초'/2021 : "자재도 920켤레분의 자재를 출고했는데 삭갈리지 않았어? (오늘 계약이 튀면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데 삭갈리다니요?)"]

드라마에 사용된 '삭갈리다'는 우리의 '헷갈리다'에 해당 됩니다.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부드럽고 연하다는 말도 북한에선'만문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공정이 없으면 다 익은 다음에 고기가 꼿꼿하고 만문한 감이 나지 않습니다."]

분단의 세월이 깊어질수록 남북 언어 차이도 커지고 있는 건데요.

조사에 따르면 일반어에서는 38%, 전문어에서는 66%가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언어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북한 언어 같은 경우도 남북이 공유했던 언어 체계가 있고요. 그다음 생활 속에서 새로운 언어들이 생겨나면서 언어가 달라지고 특히 남북 사이에서 언어 문제는 언어문화의 영향이 더 큽니다. 아무래도 남북한 간엔 생활 문화 차이가 크게 달라지고 소통이 없이 지내면서 언어 차이가 커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북 간 언어체계와 규범의 차이는 1966년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문화어'를 제정하면서부터 본격화 됐는데요.

대표적인 차이는 맞춤법의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규정입니다.

우리가 '여자', '내일'처럼 두음법칙을 인정하는 반면 북한은 '녀자', '래일'로 표기하고, '깻잎', '햇빛'과 같은 단어도 북에서는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또 상추는 부루, 돌고래는 곱등어 등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휘로 사용하는 말이 있고, 어휘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도 있습니다.

[조선중앙TV : "네, 조금. 일없습니다. (건강에는 일없습니까?) 일없습니다."]

'일없다'는 표현은 이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한식 어휘인데요.

남한에서는 보통 '필요 없다'는 뜻이지만 북한에서는 '괜찮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하나원에서 가르쳐주더라고요.'일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한국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됐었죠. 북한에선 '괜찮습니다.'라는 좋은 거절의 의미로 쓰이는데 왜 기분 상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외래어 사용에선 더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국제화를 추진하며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외래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 : "최근 공장에서는 단묵과 단물, 과자를 비롯해서 10여 종의 수십 가지나 되는 들쭉 가공식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젤리와 주스도 단묵, 단물로 표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명처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외래어도 현지어 발음 표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우리에겐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6조에 속한 마로끄(모로코) 팀과 흐르바쯔까(크로아티아) 팀과의 경기입니다."]

그런데 '평양 문화어'에는 남북 언어를 가르는 기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입니다.

언어 정립을 통해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북한 중심의 민족 통합을 꾀했다는 것입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단순히 지역적인 평양이 아니라 평양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북한 지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교양과 도덕이 넘치는 말을 써야 하고 이것을 민족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 평양 문화어를 별도의 언어 체계로 선언하게 됐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양 문화어 선언을 하면서 가장 크게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서울말이 지금 너무나 많이 오염돼 있다. 특히 미 제국주의에 의해서 영어화됐고 일본어 잔재가 남아있고 여전히 한자들이 남아있는 잡탕말이 됐기 때문에 평양의 언어를 중심으로 민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하에서 평양 문화어를 선언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커지는 언어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인정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겨레말을 채집, 연구하기도 했는데요.

바로 2004년 체결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입니다.

2005년,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총 25차례 진행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세계적 석학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라인하트 하트만/영국 버밍엄대학 명예교수/2007년 인터뷰 : "한국어에 두 가지 형태가 있지만, 저는 서로 다른 독립된 표준어라고 보지 않습니다. 공통점이 많아서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은 있지만 그걸 잘 정리했더군요. 부디 이 프로젝트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2015년 중국 다롄 회의를 마지막으로 지금껏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분단의 세월 속에서도 남한의 언어는 끊임없이 북녘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2000년대 초부터 장마당을 통해 유입된 외부 문화, 그중에서도 한류라 불리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인데요.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남한식 어휘들이 청년 세대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됐다고 합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소개팅이란 말도 북한에선 안 쓰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 보면서 아 소개팅은 저렇게 소개해 주는 자리를 소개팅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다음부터 저희도 소개팅이란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전파되는 남한식 언어가 주민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건데요.

[나민희/2016년 탈북 : "(저는) 평양 사람이고 북한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한마디로 혁명 사상을 지닌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개인 보다 집단의 이익을 더 먼저 생각하는 북한에서 바라는 전형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국)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부터는 나만의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부터 자아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한 듯 지난해 북한당국은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제정해, 북한 주민들의 언어 사용을 통제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중앙TV/2023년 12월 : "평양 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문화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라고 하면서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했습니다."]

문화어 보호법 제정으로 사상과 제도,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는데요.

가장 큰 이유로는 북한 내 남한말 확산 방지가 꼽힙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남한말을 더이상 민족 언어가 아닌 외래어로 구분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 교수 : "평양 문화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지 말아야 할 언어 현상들을 쭉 몇 가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나열하고 있는 언어 오염물 자체를 남쪽 말, 대한민국 표준어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쪽과의 언어 교류라고 하는 것은 민족어를 넘어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어를 훼손하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나마 민족의 공통성으로 갖고 있었던 언어도 이제는 정말 섞일 수 없는 언어라고 하는 것을 2023년 평양 문화어 보호법으로 선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언어적 분리를 논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는 게 탈북민의 의견입니다.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접한 남한의 언어에서조차 뜨거운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너무 반가운 거예요. 아직도 우리가 같은 말을 쓰고 있구나. 드라마를 보면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하잖아요.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래도 저쪽은 저렇게 잘살고 있구나 하는 또 하나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기도 해요. 한국에 대한 동경심도 굉장히 있는 편이고 그래서 한민족이라는 그런 동포애를 떠나서 자부심도 꽤 있는 편이거든요."]

분단의 세월만큼 달라진 말과 글.

남과 북이 한민족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교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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