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마약’ 적발된 그 클럽, 다시 가봤다 [취재후]

입력 2024.07.17 (18:00) 수정 2024.07.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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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이태원 클럽에서 마약 투약 적발"..검거 19명, 구속 2명

경찰 수사가 마무리됐단 소식을 들은 건 지난 5월 말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KBS 보도로 알려진 이태원의 한 클럽 '집단 마약' 투약 정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모두 19명이 검거됐지만, 수사가 끝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그 클럽에서 또 마약을 할 거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취재진은 그 클럽에 한 번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 새벽 2시, 입장료 3만 원

취재진이 방문한 이태원 클럽취재진이 방문한 이태원 클럽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 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 그곳에 취재진이 합류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들어간 클럽은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춤추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지난해 보도 이후 바뀐 건 있었습니다. 화장실 문 앞에 '2명씩 들어가지 말라', '마약을 하지 말라(Say no drugs)' 등의 경고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 장면 ① : 코에 '무언가'를 넣는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 시가 넘었습니다.

군중 속에 섞여 상황을 주시하던 그때, 누군가 립스틱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습니다. 그러더니 상대방의 코에 넣어주는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보통 클럽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클럽에서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는 A 씨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마약이 맞다면, 감각을 극대화 시켜서 클럽 음악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약물, 케타민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코로 무언가 쏘는 듯한 행위에 대해서는 "마약이 아닌 것처럼 속이려고 용기에 담아서 남들 눈치 안 보고 필요할 때 바로바로 투약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는 "10년 전만 해도 대놓고 마약을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요즘엔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물건을 자신의 코에도 직접 넣는 듯한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 장면 ② : 화장실 칸에 함께 들어가는 사람들

새벽 내내 목격된 수상한 광경은 또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 앞이었습니다.

두 명이 한 칸에 함께 들어가는 모습은 너무 쉽게 포착됐고, 대부분 1~2분을 머물다 나왔습니다. 간혹 세 명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취재진도 그 뒤에 줄을 서 기다렸는데, 물을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두 명이 나오자마자 따라 들어가 봤지만, 사용 흔적은 없었습니다.

대신 휴지통에는 '의문의 지퍼백'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새벽 내내 계속됐습니다. 화장실 앞은 항상 붐볐고, 함께 들어간 이들은 금방 나왔습니다.

영상을 본 A 씨는 "약 기운이 떨어졌을 때 케타민, 엑스터시 등을 좀 더 투약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화장실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안에서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화장실에 2명씩 함께 들어갔다 곧 나오는 모습화장실에 2명씩 함께 들어갔다 곧 나오는 모습

이 모든 정황은 지난해 KBS 취재진이 포착한 장면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집단 마약'이 의심되는 범위는 지난해보다 더 넓어졌습니다. 클럽 페스티벌 기간을 맞아 여러 개의 클럽을 옮겨 다니면서 투약하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보인 겁니다.

자정쯤 시작한 취재는 동이 트고 대부분 클럽 이용객들이 자리를 뜬 뒤에야 끝났습니다.


■ '의문의 지퍼백' 성분 분석했더니…

휴지통 속에서 발견된 '의문의 지퍼백'에는 파란색·노란색을 띤 가루가 남아있었습니다.

이 지퍼백을 들고 국제특성분석연구소를 찾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리자, 지퍼백 속 두 물질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화학적 성질이 일치한다는 거였습니다.

취재진은 분석을 마친 지퍼백을 경찰에 넘겼습니다.

취재진이 클럽 휴지통에서 발견한 지퍼백취재진이 클럽 휴지통에서 발견한 지퍼백


■ 경찰 수사 마무리까지 9개월, 지자체는 단속 권한 '0'

지난해 이 클럽과 관련된 경찰 수사는 마무리까지 약 9개월이 걸렸습니다.

KBS는 이번 취재 사실을 경찰에 알렸습니다. 마약 범죄 특성상 취재진이 범행 정황을 발견하더라도 현장에 경찰이 없으면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경찰이 함께 잠복했는데 검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마약 투약은 현장 포착이 중요한데, 어둡고 붐비는 클럽에선 이를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투약 정황을 발견해 체포하더라도 마약이 아닐 경우 인권침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은 마약 단속 권한이 없어 직접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단 입장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의 촬영 영상과 자체적으로 확보한 영상 등을 토대로 마약 투약 정황이 있는 이용자들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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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도 단속도 어렵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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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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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 마약’ 적발된 그 클럽, 다시 가봤다 [취재후]
    • 입력 2024-07-17 18:00:21
    • 수정2024-07-17 18:13:49
    취재후·사건후

■ "지난해 이태원 클럽에서 마약 투약 적발"..검거 19명, 구속 2명

경찰 수사가 마무리됐단 소식을 들은 건 지난 5월 말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KBS 보도로 알려진 이태원의 한 클럽 '집단 마약' 투약 정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모두 19명이 검거됐지만, 수사가 끝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그 클럽에서 또 마약을 할 거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취재진은 그 클럽에 한 번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 새벽 2시, 입장료 3만 원

취재진이 방문한 이태원 클럽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 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 그곳에 취재진이 합류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들어간 클럽은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춤추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지난해 보도 이후 바뀐 건 있었습니다. 화장실 문 앞에 '2명씩 들어가지 말라', '마약을 하지 말라(Say no drugs)' 등의 경고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 장면 ① : 코에 '무언가'를 넣는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 시가 넘었습니다.

군중 속에 섞여 상황을 주시하던 그때, 누군가 립스틱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습니다. 그러더니 상대방의 코에 넣어주는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보통 클럽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클럽에서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는 A 씨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마약이 맞다면, 감각을 극대화 시켜서 클럽 음악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약물, 케타민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코로 무언가 쏘는 듯한 행위에 대해서는 "마약이 아닌 것처럼 속이려고 용기에 담아서 남들 눈치 안 보고 필요할 때 바로바로 투약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는 "10년 전만 해도 대놓고 마약을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요즘엔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물건을 자신의 코에도 직접 넣는 듯한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 장면 ② : 화장실 칸에 함께 들어가는 사람들

새벽 내내 목격된 수상한 광경은 또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 앞이었습니다.

두 명이 한 칸에 함께 들어가는 모습은 너무 쉽게 포착됐고, 대부분 1~2분을 머물다 나왔습니다. 간혹 세 명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취재진도 그 뒤에 줄을 서 기다렸는데, 물을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두 명이 나오자마자 따라 들어가 봤지만, 사용 흔적은 없었습니다.

대신 휴지통에는 '의문의 지퍼백'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새벽 내내 계속됐습니다. 화장실 앞은 항상 붐볐고, 함께 들어간 이들은 금방 나왔습니다.

영상을 본 A 씨는 "약 기운이 떨어졌을 때 케타민, 엑스터시 등을 좀 더 투약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화장실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안에서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화장실에 2명씩 함께 들어갔다 곧 나오는 모습
이 모든 정황은 지난해 KBS 취재진이 포착한 장면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집단 마약'이 의심되는 범위는 지난해보다 더 넓어졌습니다. 클럽 페스티벌 기간을 맞아 여러 개의 클럽을 옮겨 다니면서 투약하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보인 겁니다.

자정쯤 시작한 취재는 동이 트고 대부분 클럽 이용객들이 자리를 뜬 뒤에야 끝났습니다.


■ '의문의 지퍼백' 성분 분석했더니…

휴지통 속에서 발견된 '의문의 지퍼백'에는 파란색·노란색을 띤 가루가 남아있었습니다.

이 지퍼백을 들고 국제특성분석연구소를 찾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리자, 지퍼백 속 두 물질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화학적 성질이 일치한다는 거였습니다.

취재진은 분석을 마친 지퍼백을 경찰에 넘겼습니다.

취재진이 클럽 휴지통에서 발견한 지퍼백

■ 경찰 수사 마무리까지 9개월, 지자체는 단속 권한 '0'

지난해 이 클럽과 관련된 경찰 수사는 마무리까지 약 9개월이 걸렸습니다.

KBS는 이번 취재 사실을 경찰에 알렸습니다. 마약 범죄 특성상 취재진이 범행 정황을 발견하더라도 현장에 경찰이 없으면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경찰이 함께 잠복했는데 검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마약 투약은 현장 포착이 중요한데, 어둡고 붐비는 클럽에선 이를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투약 정황을 발견해 체포하더라도 마약이 아닐 경우 인권침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은 마약 단속 권한이 없어 직접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단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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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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