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초코파이부터 BTS까지…K콘텐츠에 빠진 북한

입력 2024.11.30 (08:45) 수정 2024.11.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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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화는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하죠.

최근엔 한국 문화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심지어 철저한 고립을 택한 북한 사회조차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을 비켜 갈 수는 없어 보입니다.

네,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영화가 북한 주민들의 마음 속에 스며든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최근 북한 당국의 적개심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과연 국가가 나선다고 주민들의 한국 문화 접촉을 막을 수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북한이 접경지역 등지에서 대북 전단과 함께 발견한 물품이라며 공개한 사진입니다.

초코파이, 건빵 같은 과자류와 연고, 진통제, 구충제, 해열제, 속옷과 여성용품 등이 한 꾸러미에 들어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 같은 물품들을 ‘오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신성한 영토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김여정 부부장 담화 대독/11월 18일 : "신성한 우리의 영토가 오염되고 있으며 수많은 노력이 이 오물들을 처치하는데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대북 전단을 보낸 단체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도 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 담화 대독/11월 18일 : "가장 혐오스러운 잡종 개○○들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분노는 하늘 끝에 닿았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없는 대외선전 매체에서는 상표를 그대로 노출시킨 반면,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겁니다.

외부 물건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과 동경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됩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실제로 이 물건을 노동신문 또는 북한의 조선중앙TV를 통해서 그대로 보여준다면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조금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거예요. 먹고 사는 문제가 쉽지 않은 다수의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남한의 고급 약품이라든지 초코파이와 같은 과자라든지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한 물건들이기 때문에 약간의 동요를 느낄 수도 있는 거예요."]

실제 사진에 등장한 초코파이의 경우 개성공단이 정상 운영될 당시 북한에서 가장 인기였던 과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 중엔 초코파이를 받기 위해 잔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홍태표/(주) 지에스 고문/2013년 : "더 일을 좀 시키고 보냈으면 좋겠는데 (잔업은) 안 하겠다 그런단 말이에요. 초코파이를 두 개 더 줄 테니까 이거 조금 해주고 나가라고 하니까 하더라고요."]

초코파이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자 북한 근로자들은 지급된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되팔기까지 했습니다.

2014년, 미국 CNN 방송은 초코파이 한 개가 북한 암시장에서 10달러에 팔린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개성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탈북민 역시 공단에서 나오는 초코파이가 개성 주민들의 큰 수입원이었다고 전합니다.

[김진아/개성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그 사람들(개성공단 근로자)이 가방에 그걸(초코파이) 몇 개씩 받아서 오는 거예요. 그러면 (통근)차별로 온 가족이 나가서 너는 저쪽 몇 번 차량, 몇 번 차량 해가지고 (버스) 개찰구마다 서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리면 '초코파이 받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럼 한 200kg 들어가는 마대가 있어요. 그걸 들고 서 있거든요. 그럼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거기다가 오는 족족 그걸(초코파이) 다 넘기고 돈 받고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렇게 모인 한국산 초코파이는 장사꾼들에 의해 북한 전역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김진아/개성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사리원, 원산, 함흥, 신의주 이런데 사람들이 거기까지 와요. 개풍까지 오고 개성까지 오고. 그러면 거기서 (초코파이를)넘겨줍니다. 주변 시장으로도 나가고 그게 어머어마하게 나왔어요."]

그런데 이 시기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진 한국 제품은 비단 초코파이뿐만 아닙니다.

드라마, 영화, 가요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며들었는데요.

1990년대 중국을 통해 조금씩 유입되던 한국 문화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보다 확대됐고, 2000년대 중, 후반부터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함께 더 빠른 속도로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언어로 전해지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저희 이모도 (한국) 드라마를 봤었는데 이모는 사상적으로 깨어 있는 여성이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드라마를 한번 보고 너무 놀라는 거예요. 남녀 주인공이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 부유하다. 그리고 스토리가 너무 재밌다. 단순하게 그것만 보시더라고요."]

나아가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국 사회를 알아가는 중요한 정보 수단의 역할까지 했다고 합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우리 무의식 속에 그런 영향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내가 느끼기에 단순히 스토리가 재밌지만 거기서 사용되는 ○○○톡이라든지 컵이라든지 단순한 네일아트에 이르기까지 다 눈에 들어오는 정보거든요. 처음 본 사람들한테는 그 정보가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영상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주민들의 외부 정보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북한은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법제화해 주민들을 단속했습니다.

[조선중앙TV/2020년 :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 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을 잇따라 제정했습니다.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외부 문화 콘텐츠를 유입.유포한 사람에게 최대 ‘사형’까지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얼마 전 KBS가 대북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북한 내부 영상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여학생이 공개석상에서 체포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괴뢰(한국) 텔레비전극(드라마)을 비롯한 불순 출판 선전물을 시청·유포시킨 여러 명의 학생들을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단속에도 북한 주민들, 특히 청년세대의 한국 문화 콘텐츠를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입니다.

지난해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20대 여성 역시 탈북 직전까지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고 합니다.

[최은지/가명/2023년 탈북 : "오기 직전까지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되게 재밌게 봤어요. 저뿐만 아니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다 좋아해요 한국 드라마를. 그래서 드라마 못 본 사람이 없어요. 누가 더 많이 봤냐가 중요한 건데."]

함께 탈북한 또 다른 청년 역시 방탄 소년단 등 세계적으로 인기인 한국 아이돌의 소식을 꿰고 있었습니다.

[권민철/가명/2023년 탈북 : "처음 접했을 때 방탄소년단이 일본에 가서 공연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을 접한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지금의 북한 청년세대가 유년 시절부터 한국 문화 콘텐츠를 접해온 만큼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체계를 정립했다고 평가하는데요.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오랜 기간 남한 영상물이나 남한 문화에 접근하고 이걸 향유해 온, 소비해 온 젊은 세대들은 남한 청년들의 사고체계와 비슷하게 수렴되는 경향도 있어요. 그러니까 리스크를 감수하고 모험 지향적인 그런 성향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면서 더 과감한 거죠."]

또 시대상에 맞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술을 습득한 학생들에겐 한국 문화 콘텐츠의 습득과 유포가 더 손쉬운 일이 돼버렸다는 분석입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또 하나는 뭔가 하면 북한 청년세대는 디지털 기기에 상당히 적응돼 있고 디지털 기기를 잘 활용할 줄 아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남한의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더 빠르게 확산되는데 상당히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해요."]

실제 북한 내부 영상에서도 학생들은 아주 작은 크기의 SD카드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담아 보관했는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을 두려워하면서도 기술적으로 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사람들이 마이크로 SD를 더 선호하죠. 바쁘면 삼킬 수가 있으니까. 정말로 삼킨 친구가 있어요. 이걸 갖고 오는데 109단속원이 앉아있다가 '학생 이리 좀 와봐' 하더래요. 그래서 너무 놀라서 그냥 바로 삼켰다고."]

이제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단순한 동경을 넘어 북한 청년들의 소비 욕구까지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최은지/가명/2023년 탈북 : "남한 물품이 좋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저는 남한 옷, 남한 화장품이 엄청 좋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 인식이 배어있어요. 중국 거라고 하면 안 믿어도 이거 남한 거야 하면 가격을 물어보고 비싸도 사는 거죠."]

한국 제품들을 오물이라 지칭하며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 당국.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게는 상표를 가려야 할 만큼, 한국 콘텐츠는 이미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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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11-30 09: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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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화는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하죠.

최근엔 한국 문화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심지어 철저한 고립을 택한 북한 사회조차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을 비켜 갈 수는 없어 보입니다.

네,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영화가 북한 주민들의 마음 속에 스며든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최근 북한 당국의 적개심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과연 국가가 나선다고 주민들의 한국 문화 접촉을 막을 수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북한이 접경지역 등지에서 대북 전단과 함께 발견한 물품이라며 공개한 사진입니다.

초코파이, 건빵 같은 과자류와 연고, 진통제, 구충제, 해열제, 속옷과 여성용품 등이 한 꾸러미에 들어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 같은 물품들을 ‘오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신성한 영토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김여정 부부장 담화 대독/11월 18일 : "신성한 우리의 영토가 오염되고 있으며 수많은 노력이 이 오물들을 처치하는데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대북 전단을 보낸 단체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도 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 담화 대독/11월 18일 : "가장 혐오스러운 잡종 개○○들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분노는 하늘 끝에 닿았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없는 대외선전 매체에서는 상표를 그대로 노출시킨 반면,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겁니다.

외부 물건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과 동경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됩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실제로 이 물건을 노동신문 또는 북한의 조선중앙TV를 통해서 그대로 보여준다면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조금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거예요. 먹고 사는 문제가 쉽지 않은 다수의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남한의 고급 약품이라든지 초코파이와 같은 과자라든지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한 물건들이기 때문에 약간의 동요를 느낄 수도 있는 거예요."]

실제 사진에 등장한 초코파이의 경우 개성공단이 정상 운영될 당시 북한에서 가장 인기였던 과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 중엔 초코파이를 받기 위해 잔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홍태표/(주) 지에스 고문/2013년 : "더 일을 좀 시키고 보냈으면 좋겠는데 (잔업은) 안 하겠다 그런단 말이에요. 초코파이를 두 개 더 줄 테니까 이거 조금 해주고 나가라고 하니까 하더라고요."]

초코파이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자 북한 근로자들은 지급된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되팔기까지 했습니다.

2014년, 미국 CNN 방송은 초코파이 한 개가 북한 암시장에서 10달러에 팔린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개성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탈북민 역시 공단에서 나오는 초코파이가 개성 주민들의 큰 수입원이었다고 전합니다.

[김진아/개성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그 사람들(개성공단 근로자)이 가방에 그걸(초코파이) 몇 개씩 받아서 오는 거예요. 그러면 (통근)차별로 온 가족이 나가서 너는 저쪽 몇 번 차량, 몇 번 차량 해가지고 (버스) 개찰구마다 서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리면 '초코파이 받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럼 한 200kg 들어가는 마대가 있어요. 그걸 들고 서 있거든요. 그럼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거기다가 오는 족족 그걸(초코파이) 다 넘기고 돈 받고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렇게 모인 한국산 초코파이는 장사꾼들에 의해 북한 전역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김진아/개성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사리원, 원산, 함흥, 신의주 이런데 사람들이 거기까지 와요. 개풍까지 오고 개성까지 오고. 그러면 거기서 (초코파이를)넘겨줍니다. 주변 시장으로도 나가고 그게 어머어마하게 나왔어요."]

그런데 이 시기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진 한국 제품은 비단 초코파이뿐만 아닙니다.

드라마, 영화, 가요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며들었는데요.

1990년대 중국을 통해 조금씩 유입되던 한국 문화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보다 확대됐고, 2000년대 중, 후반부터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함께 더 빠른 속도로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언어로 전해지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저희 이모도 (한국) 드라마를 봤었는데 이모는 사상적으로 깨어 있는 여성이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드라마를 한번 보고 너무 놀라는 거예요. 남녀 주인공이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 부유하다. 그리고 스토리가 너무 재밌다. 단순하게 그것만 보시더라고요."]

나아가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국 사회를 알아가는 중요한 정보 수단의 역할까지 했다고 합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우리 무의식 속에 그런 영향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내가 느끼기에 단순히 스토리가 재밌지만 거기서 사용되는 ○○○톡이라든지 컵이라든지 단순한 네일아트에 이르기까지 다 눈에 들어오는 정보거든요. 처음 본 사람들한테는 그 정보가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영상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주민들의 외부 정보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북한은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법제화해 주민들을 단속했습니다.

[조선중앙TV/2020년 :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 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을 잇따라 제정했습니다.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외부 문화 콘텐츠를 유입.유포한 사람에게 최대 ‘사형’까지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얼마 전 KBS가 대북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북한 내부 영상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여학생이 공개석상에서 체포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괴뢰(한국) 텔레비전극(드라마)을 비롯한 불순 출판 선전물을 시청·유포시킨 여러 명의 학생들을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단속에도 북한 주민들, 특히 청년세대의 한국 문화 콘텐츠를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입니다.

지난해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20대 여성 역시 탈북 직전까지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고 합니다.

[최은지/가명/2023년 탈북 : "오기 직전까지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되게 재밌게 봤어요. 저뿐만 아니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다 좋아해요 한국 드라마를. 그래서 드라마 못 본 사람이 없어요. 누가 더 많이 봤냐가 중요한 건데."]

함께 탈북한 또 다른 청년 역시 방탄 소년단 등 세계적으로 인기인 한국 아이돌의 소식을 꿰고 있었습니다.

[권민철/가명/2023년 탈북 : "처음 접했을 때 방탄소년단이 일본에 가서 공연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을 접한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지금의 북한 청년세대가 유년 시절부터 한국 문화 콘텐츠를 접해온 만큼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체계를 정립했다고 평가하는데요.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오랜 기간 남한 영상물이나 남한 문화에 접근하고 이걸 향유해 온, 소비해 온 젊은 세대들은 남한 청년들의 사고체계와 비슷하게 수렴되는 경향도 있어요. 그러니까 리스크를 감수하고 모험 지향적인 그런 성향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면서 더 과감한 거죠."]

또 시대상에 맞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술을 습득한 학생들에겐 한국 문화 콘텐츠의 습득과 유포가 더 손쉬운 일이 돼버렸다는 분석입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또 하나는 뭔가 하면 북한 청년세대는 디지털 기기에 상당히 적응돼 있고 디지털 기기를 잘 활용할 줄 아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남한의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더 빠르게 확산되는데 상당히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해요."]

실제 북한 내부 영상에서도 학생들은 아주 작은 크기의 SD카드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담아 보관했는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을 두려워하면서도 기술적으로 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사람들이 마이크로 SD를 더 선호하죠. 바쁘면 삼킬 수가 있으니까. 정말로 삼킨 친구가 있어요. 이걸 갖고 오는데 109단속원이 앉아있다가 '학생 이리 좀 와봐' 하더래요. 그래서 너무 놀라서 그냥 바로 삼켰다고."]

이제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단순한 동경을 넘어 북한 청년들의 소비 욕구까지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최은지/가명/2023년 탈북 : "남한 물품이 좋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저는 남한 옷, 남한 화장품이 엄청 좋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 인식이 배어있어요. 중국 거라고 하면 안 믿어도 이거 남한 거야 하면 가격을 물어보고 비싸도 사는 거죠."]

한국 제품들을 오물이라 지칭하며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 당국.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게는 상표를 가려야 할 만큼, 한국 콘텐츠는 이미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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