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실향민 애환 가득…속초 명물 갯배
입력 2024.12.21 (08:27)
수정 2024.12.2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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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속초의 지역 명물 가운데 사람이 직접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갯배’라는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이 갯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데요.
6.25 전쟁 이후 남쪽으로 넘어와 속초에 터를 잡은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속초 갯배가 실어 나르고 있는 실향민의 애환과 아픔을 장예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푸른 빛을 머금은 바다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가, 마음을 다독입니다.
6.25 전쟁 당시,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아바이 마을’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그때는 며칠만 있으면 고향으로 간다고 해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모인 사람들이 여기거든."]
마을 선착장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행되는 무동력 나룻배, 갯배에 올라탑니다.
천천히 출발한 갯배가 5분여 만에 맞은편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이 바닷길에는 실향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전재상/인천광역시 :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데가 갯배라고 그래서 오늘 처음 타봤는데 실향민들이 탔다고 하니까 감회도 깊은 것 같고요."]
["전쟁 직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갯배는 실향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이동수단이었는데요. 실향민들의 삶과 추억을 담은 갯배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실향민들의 터전이 된 아바이 마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함경도 주민 일부가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이 마을입니다.
마을의 노인회장인 김상호 씨.
그 또한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실향민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속초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여기 아바이마을에 74년을 살았어. 이북에서 인민학교 3학년 때 피난 나왔어. 고단했지만 성실하게 생계를 이어온 그에게 속초는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방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데요.
["(표창이 진짜 많거든요. 이게 다 뭐에요?) 여기 피난 와서 열심히 살았어. 저런 것도 받고.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때그때 보람이 있더라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넉넉한 인심을 전하는 김상호 회장.
74년 전, 춥고 시렸던 속초의 겨울을 떠올립니다.
["눈길, 얼음길 헤쳐가면서 겨우겨우 이렇게 넘어왔거든."]
오갈 곳 없던 실향민들은 허허벌판 같은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며칠만 있으면 또 (고향에) 갈 거니까 굳이 (집을) 좋게 할 수도 없고 재료도 없고 파는 데도 없고 그래서 대충 그렇게 만들어서 거기서 살았어."]
고향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바다와 땅에서 억척같이 보금자리를 일궈온 실향민들.
청초호 수로 동쪽의 마을과 서쪽의 시장을 이어주던 갯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실향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준 버팀목이야, 갯배란 게. 아침에 갓 잡아 온 고기를 리어카에 담아서 (갯배로 이동해) 시장에 가서 파는 거야. 팔고 나서 거기서 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갯배에서 다 이뤄지는 거야."]
김상호 회장은 속초에서 학업을 마친 후,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며 어부로 살아왔다고 하는데요.
특히 8년 동안 갯배 선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갯배란 게 속초시 얼굴인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갯배 운행을 도왔던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데요.
["(갯배 탈 때 200원이라고 하셨잖아요. 200원 어떻게 설명하셨어요? 영어로.) 영어로, ‘원 웨이 투 헌드레드 원’. ‘디스 이즈 아바이 빌리지 오브 히어’. 여기는 아바이마을이다."]
속초 바다에서 흘린 땀방울로 3자녀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김 회장, 그와 함께 갯배 나들이에 나섭니다.
이방인으로 도착했지만, 이제는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모습인데요.
[김정홍/아바이마을 주민 : "동네 사람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분이에요?) 최고 어른이죠, 동네."]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세월 동안 갯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용객이 줄어 경영난으로 마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하자, 속초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맡게 됐는데요.
올해는 이용객이 직접 요금을 결제하는 키오스크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여전히 변치 않은 점은, 수로에 쇠줄을 설치하고 갈고리로 끌어당겨 배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옛날부터 수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 줄로 하는 건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
직접 배의 줄을 당겨보았는데요.
["(회장님, 이거 어디까지 가요?) 중앙시장 입구까지 가."]
실향민들에게 이 갯배에서의 추억은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으로 남아있는데요.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시장에서 사 온 반찬거리 같은 걸 갯배에 얹어 놓고 (나누면서) 서로 알고 소통하며 지냈어. 그러니까 이 갯배가 복덕방이나 마찬가지야."]
["이제 갯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 유산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10년 넘게 갯배의 문화를 돌아보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갯배 예술제가 열린 현장입니다.
‘갯배’에 얽힌 문학작품과 기록물들을 통해, 갯배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갯배는 전쟁 중 전소됐고, 이후 미군이 기증한 나무로 실향민들이 복원했다고 합니다.
["110년도 더 된 조선시대부터 있던 그런 갯배고요.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5년에 한 척을 만들었고, 1960년에 다시 한 척을 만들어서 지금의 두 척 배를 갖고 있거든요."]
아슬아슬하게 갯배 위에 선 사람들과 해안가를 따라 움막처럼 지어진 아바이 마을의 집들.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깡통이나 그런 것들을 주워서 이렇게 벽을 만들어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요."]
분주한 어촌 풍경이 전쟁 이후, 생업을 위해 애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꿈꾸던 실향민들의 바람은 ‘평화’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실향민) 1세대나 1.5세대 분들이 내려왔을 때는 평화를 위해서 내려왔거든요. 평화로 가는 문턱에 갯배도 운영되고, 이 문화를 발전해서 계승해야 될 이유도 있잖아요."]
망향의 그리움을 넘어, 이제는 평화와 희망을 싣고...
갯배는 오늘도 실향민들과 함께 바닷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속초의 지역 명물 가운데 사람이 직접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갯배’라는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이 갯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데요.
6.25 전쟁 이후 남쪽으로 넘어와 속초에 터를 잡은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속초 갯배가 실어 나르고 있는 실향민의 애환과 아픔을 장예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푸른 빛을 머금은 바다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가, 마음을 다독입니다.
6.25 전쟁 당시,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아바이 마을’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그때는 며칠만 있으면 고향으로 간다고 해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모인 사람들이 여기거든."]
마을 선착장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행되는 무동력 나룻배, 갯배에 올라탑니다.
천천히 출발한 갯배가 5분여 만에 맞은편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이 바닷길에는 실향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전재상/인천광역시 :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데가 갯배라고 그래서 오늘 처음 타봤는데 실향민들이 탔다고 하니까 감회도 깊은 것 같고요."]
["전쟁 직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갯배는 실향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이동수단이었는데요. 실향민들의 삶과 추억을 담은 갯배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실향민들의 터전이 된 아바이 마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함경도 주민 일부가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이 마을입니다.
마을의 노인회장인 김상호 씨.
그 또한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실향민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속초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여기 아바이마을에 74년을 살았어. 이북에서 인민학교 3학년 때 피난 나왔어. 고단했지만 성실하게 생계를 이어온 그에게 속초는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방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데요.
["(표창이 진짜 많거든요. 이게 다 뭐에요?) 여기 피난 와서 열심히 살았어. 저런 것도 받고.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때그때 보람이 있더라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넉넉한 인심을 전하는 김상호 회장.
74년 전, 춥고 시렸던 속초의 겨울을 떠올립니다.
["눈길, 얼음길 헤쳐가면서 겨우겨우 이렇게 넘어왔거든."]
오갈 곳 없던 실향민들은 허허벌판 같은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며칠만 있으면 또 (고향에) 갈 거니까 굳이 (집을) 좋게 할 수도 없고 재료도 없고 파는 데도 없고 그래서 대충 그렇게 만들어서 거기서 살았어."]
고향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바다와 땅에서 억척같이 보금자리를 일궈온 실향민들.
청초호 수로 동쪽의 마을과 서쪽의 시장을 이어주던 갯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실향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준 버팀목이야, 갯배란 게. 아침에 갓 잡아 온 고기를 리어카에 담아서 (갯배로 이동해) 시장에 가서 파는 거야. 팔고 나서 거기서 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갯배에서 다 이뤄지는 거야."]
김상호 회장은 속초에서 학업을 마친 후,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며 어부로 살아왔다고 하는데요.
특히 8년 동안 갯배 선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갯배란 게 속초시 얼굴인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갯배 운행을 도왔던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데요.
["(갯배 탈 때 200원이라고 하셨잖아요. 200원 어떻게 설명하셨어요? 영어로.) 영어로, ‘원 웨이 투 헌드레드 원’. ‘디스 이즈 아바이 빌리지 오브 히어’. 여기는 아바이마을이다."]
속초 바다에서 흘린 땀방울로 3자녀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김 회장, 그와 함께 갯배 나들이에 나섭니다.
이방인으로 도착했지만, 이제는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모습인데요.
[김정홍/아바이마을 주민 : "동네 사람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분이에요?) 최고 어른이죠, 동네."]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세월 동안 갯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용객이 줄어 경영난으로 마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하자, 속초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맡게 됐는데요.
올해는 이용객이 직접 요금을 결제하는 키오스크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여전히 변치 않은 점은, 수로에 쇠줄을 설치하고 갈고리로 끌어당겨 배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옛날부터 수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 줄로 하는 건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
직접 배의 줄을 당겨보았는데요.
["(회장님, 이거 어디까지 가요?) 중앙시장 입구까지 가."]
실향민들에게 이 갯배에서의 추억은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으로 남아있는데요.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시장에서 사 온 반찬거리 같은 걸 갯배에 얹어 놓고 (나누면서) 서로 알고 소통하며 지냈어. 그러니까 이 갯배가 복덕방이나 마찬가지야."]
["이제 갯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 유산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10년 넘게 갯배의 문화를 돌아보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갯배 예술제가 열린 현장입니다.
‘갯배’에 얽힌 문학작품과 기록물들을 통해, 갯배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갯배는 전쟁 중 전소됐고, 이후 미군이 기증한 나무로 실향민들이 복원했다고 합니다.
["110년도 더 된 조선시대부터 있던 그런 갯배고요.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5년에 한 척을 만들었고, 1960년에 다시 한 척을 만들어서 지금의 두 척 배를 갖고 있거든요."]
아슬아슬하게 갯배 위에 선 사람들과 해안가를 따라 움막처럼 지어진 아바이 마을의 집들.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깡통이나 그런 것들을 주워서 이렇게 벽을 만들어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요."]
분주한 어촌 풍경이 전쟁 이후, 생업을 위해 애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꿈꾸던 실향민들의 바람은 ‘평화’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실향민) 1세대나 1.5세대 분들이 내려왔을 때는 평화를 위해서 내려왔거든요. 평화로 가는 문턱에 갯배도 운영되고, 이 문화를 발전해서 계승해야 될 이유도 있잖아요."]
망향의 그리움을 넘어, 이제는 평화와 희망을 싣고...
갯배는 오늘도 실향민들과 함께 바닷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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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속초의 지역 명물 가운데 사람이 직접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갯배’라는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이 갯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데요.
6.25 전쟁 이후 남쪽으로 넘어와 속초에 터를 잡은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속초 갯배가 실어 나르고 있는 실향민의 애환과 아픔을 장예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푸른 빛을 머금은 바다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가, 마음을 다독입니다.
6.25 전쟁 당시,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아바이 마을’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그때는 며칠만 있으면 고향으로 간다고 해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모인 사람들이 여기거든."]
마을 선착장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행되는 무동력 나룻배, 갯배에 올라탑니다.
천천히 출발한 갯배가 5분여 만에 맞은편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이 바닷길에는 실향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전재상/인천광역시 :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데가 갯배라고 그래서 오늘 처음 타봤는데 실향민들이 탔다고 하니까 감회도 깊은 것 같고요."]
["전쟁 직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갯배는 실향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이동수단이었는데요. 실향민들의 삶과 추억을 담은 갯배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실향민들의 터전이 된 아바이 마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함경도 주민 일부가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이 마을입니다.
마을의 노인회장인 김상호 씨.
그 또한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실향민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속초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여기 아바이마을에 74년을 살았어. 이북에서 인민학교 3학년 때 피난 나왔어. 고단했지만 성실하게 생계를 이어온 그에게 속초는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방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데요.
["(표창이 진짜 많거든요. 이게 다 뭐에요?) 여기 피난 와서 열심히 살았어. 저런 것도 받고.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때그때 보람이 있더라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넉넉한 인심을 전하는 김상호 회장.
74년 전, 춥고 시렸던 속초의 겨울을 떠올립니다.
["눈길, 얼음길 헤쳐가면서 겨우겨우 이렇게 넘어왔거든."]
오갈 곳 없던 실향민들은 허허벌판 같은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며칠만 있으면 또 (고향에) 갈 거니까 굳이 (집을) 좋게 할 수도 없고 재료도 없고 파는 데도 없고 그래서 대충 그렇게 만들어서 거기서 살았어."]
고향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바다와 땅에서 억척같이 보금자리를 일궈온 실향민들.
청초호 수로 동쪽의 마을과 서쪽의 시장을 이어주던 갯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실향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준 버팀목이야, 갯배란 게. 아침에 갓 잡아 온 고기를 리어카에 담아서 (갯배로 이동해) 시장에 가서 파는 거야. 팔고 나서 거기서 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갯배에서 다 이뤄지는 거야."]
김상호 회장은 속초에서 학업을 마친 후,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며 어부로 살아왔다고 하는데요.
특히 8년 동안 갯배 선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갯배란 게 속초시 얼굴인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갯배 운행을 도왔던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데요.
["(갯배 탈 때 200원이라고 하셨잖아요. 200원 어떻게 설명하셨어요? 영어로.) 영어로, ‘원 웨이 투 헌드레드 원’. ‘디스 이즈 아바이 빌리지 오브 히어’. 여기는 아바이마을이다."]
속초 바다에서 흘린 땀방울로 3자녀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김 회장, 그와 함께 갯배 나들이에 나섭니다.
이방인으로 도착했지만, 이제는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모습인데요.
[김정홍/아바이마을 주민 : "동네 사람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분이에요?) 최고 어른이죠, 동네."]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세월 동안 갯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용객이 줄어 경영난으로 마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하자, 속초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맡게 됐는데요.
올해는 이용객이 직접 요금을 결제하는 키오스크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여전히 변치 않은 점은, 수로에 쇠줄을 설치하고 갈고리로 끌어당겨 배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옛날부터 수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 줄로 하는 건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
직접 배의 줄을 당겨보았는데요.
["(회장님, 이거 어디까지 가요?) 중앙시장 입구까지 가."]
실향민들에게 이 갯배에서의 추억은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으로 남아있는데요.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시장에서 사 온 반찬거리 같은 걸 갯배에 얹어 놓고 (나누면서) 서로 알고 소통하며 지냈어. 그러니까 이 갯배가 복덕방이나 마찬가지야."]
["이제 갯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 유산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10년 넘게 갯배의 문화를 돌아보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갯배 예술제가 열린 현장입니다.
‘갯배’에 얽힌 문학작품과 기록물들을 통해, 갯배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갯배는 전쟁 중 전소됐고, 이후 미군이 기증한 나무로 실향민들이 복원했다고 합니다.
["110년도 더 된 조선시대부터 있던 그런 갯배고요.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5년에 한 척을 만들었고, 1960년에 다시 한 척을 만들어서 지금의 두 척 배를 갖고 있거든요."]
아슬아슬하게 갯배 위에 선 사람들과 해안가를 따라 움막처럼 지어진 아바이 마을의 집들.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깡통이나 그런 것들을 주워서 이렇게 벽을 만들어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요."]
분주한 어촌 풍경이 전쟁 이후, 생업을 위해 애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꿈꾸던 실향민들의 바람은 ‘평화’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실향민) 1세대나 1.5세대 분들이 내려왔을 때는 평화를 위해서 내려왔거든요. 평화로 가는 문턱에 갯배도 운영되고, 이 문화를 발전해서 계승해야 될 이유도 있잖아요."]
망향의 그리움을 넘어, 이제는 평화와 희망을 싣고...
갯배는 오늘도 실향민들과 함께 바닷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속초의 지역 명물 가운데 사람이 직접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갯배’라는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이 갯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데요.
6.25 전쟁 이후 남쪽으로 넘어와 속초에 터를 잡은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속초 갯배가 실어 나르고 있는 실향민의 애환과 아픔을 장예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푸른 빛을 머금은 바다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가, 마음을 다독입니다.
6.25 전쟁 당시,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아바이 마을’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그때는 며칠만 있으면 고향으로 간다고 해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모인 사람들이 여기거든."]
마을 선착장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행되는 무동력 나룻배, 갯배에 올라탑니다.
천천히 출발한 갯배가 5분여 만에 맞은편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이 바닷길에는 실향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전재상/인천광역시 :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데가 갯배라고 그래서 오늘 처음 타봤는데 실향민들이 탔다고 하니까 감회도 깊은 것 같고요."]
["전쟁 직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갯배는 실향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이동수단이었는데요. 실향민들의 삶과 추억을 담은 갯배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실향민들의 터전이 된 아바이 마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함경도 주민 일부가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이 마을입니다.
마을의 노인회장인 김상호 씨.
그 또한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실향민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속초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여기 아바이마을에 74년을 살았어. 이북에서 인민학교 3학년 때 피난 나왔어. 고단했지만 성실하게 생계를 이어온 그에게 속초는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방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데요.
["(표창이 진짜 많거든요. 이게 다 뭐에요?) 여기 피난 와서 열심히 살았어. 저런 것도 받고.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때그때 보람이 있더라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넉넉한 인심을 전하는 김상호 회장.
74년 전, 춥고 시렸던 속초의 겨울을 떠올립니다.
["눈길, 얼음길 헤쳐가면서 겨우겨우 이렇게 넘어왔거든."]
오갈 곳 없던 실향민들은 허허벌판 같은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며칠만 있으면 또 (고향에) 갈 거니까 굳이 (집을) 좋게 할 수도 없고 재료도 없고 파는 데도 없고 그래서 대충 그렇게 만들어서 거기서 살았어."]
고향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바다와 땅에서 억척같이 보금자리를 일궈온 실향민들.
청초호 수로 동쪽의 마을과 서쪽의 시장을 이어주던 갯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실향민들에게 갯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건 실향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준 버팀목이야, 갯배란 게. 아침에 갓 잡아 온 고기를 리어카에 담아서 (갯배로 이동해) 시장에 가서 파는 거야. 팔고 나서 거기서 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갯배에서 다 이뤄지는 거야."]
김상호 회장은 속초에서 학업을 마친 후,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며 어부로 살아왔다고 하는데요.
특히 8년 동안 갯배 선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갯배란 게 속초시 얼굴인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갯배 운행을 도왔던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데요.
["(갯배 탈 때 200원이라고 하셨잖아요. 200원 어떻게 설명하셨어요? 영어로.) 영어로, ‘원 웨이 투 헌드레드 원’. ‘디스 이즈 아바이 빌리지 오브 히어’. 여기는 아바이마을이다."]
속초 바다에서 흘린 땀방울로 3자녀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김 회장, 그와 함께 갯배 나들이에 나섭니다.
이방인으로 도착했지만, 이제는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모습인데요.
[김정홍/아바이마을 주민 : "동네 사람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분이에요?) 최고 어른이죠, 동네."]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세월 동안 갯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용객이 줄어 경영난으로 마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하자, 속초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을 맡게 됐는데요.
올해는 이용객이 직접 요금을 결제하는 키오스크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여전히 변치 않은 점은, 수로에 쇠줄을 설치하고 갈고리로 끌어당겨 배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옛날부터 수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 줄로 하는 건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
직접 배의 줄을 당겨보았는데요.
["(회장님, 이거 어디까지 가요?) 중앙시장 입구까지 가."]
실향민들에게 이 갯배에서의 추억은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으로 남아있는데요.
[김상호/속초시 아바이마을 노인회장/실향민 : "시장에서 사 온 반찬거리 같은 걸 갯배에 얹어 놓고 (나누면서) 서로 알고 소통하며 지냈어. 그러니까 이 갯배가 복덕방이나 마찬가지야."]
["이제 갯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 유산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10년 넘게 갯배의 문화를 돌아보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갯배 예술제가 열린 현장입니다.
‘갯배’에 얽힌 문학작품과 기록물들을 통해, 갯배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갯배는 전쟁 중 전소됐고, 이후 미군이 기증한 나무로 실향민들이 복원했다고 합니다.
["110년도 더 된 조선시대부터 있던 그런 갯배고요.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5년에 한 척을 만들었고, 1960년에 다시 한 척을 만들어서 지금의 두 척 배를 갖고 있거든요."]
아슬아슬하게 갯배 위에 선 사람들과 해안가를 따라 움막처럼 지어진 아바이 마을의 집들.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깡통이나 그런 것들을 주워서 이렇게 벽을 만들어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요."]
분주한 어촌 풍경이 전쟁 이후, 생업을 위해 애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꿈꾸던 실향민들의 바람은 ‘평화’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심삼옥/'아트플랫폼 갯배' : "(실향민) 1세대나 1.5세대 분들이 내려왔을 때는 평화를 위해서 내려왔거든요. 평화로 가는 문턱에 갯배도 운영되고, 이 문화를 발전해서 계승해야 될 이유도 있잖아요."]
망향의 그리움을 넘어, 이제는 평화와 희망을 싣고...
갯배는 오늘도 실향민들과 함께 바닷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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