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구의역 김 군’·‘김용균’…중처법 3년, 여전히 아들을 잃는다
입력 2025.01.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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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서울메트로 하청 노동자 19살 김 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2018년에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 24살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두 사고 모두 2인 1조 작업 원칙은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제2의 김 군과 김용균을 만들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습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업 대표들은 책임을 피하고,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노동자는 여전히 작업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30일 HD현대미포 조선소에서 숨진 22살 김기범 씨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인 1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원청은 책임을 피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지만, 세상은 그대로"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원청 "책임 없다" 반복…"버티면 그만" 분위기 팽배
지난달 30일 숨진 김기범 씨의 생전 잠수 작업 전 모습과 원청 HD현대미포, 하청 대한마린산업
"(수사가 길어지면) 다들 기억이 없어지는 거죠. 어차피 오래 가는 거, '자기 잘못 없다'고 떠들면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이것만 믿고 가는 것 같아요. 지금 분위기가 다 그렇습니다." 김의택/잠수부 고 김기범 씨 측 변호사 |
구의역 사고 당시 원청 기업인 서울메트로는 "김 군이 사고 지점 고장 신고가 없었던 곳에서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시민단체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2년이 지나서야 열린 재판에서 원청인 서부발전은 "대표 등은 현장과 떨어진 본사에서 일하고, 김용균 씨는 소속 직원도 아니므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유가족들은 "원청 대표까지 꼭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구의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 대표는 벌금 1,000만 원에 그쳤고, 화력발전소 사고 당시 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HD현대미포 울산조선소에서 숨진 김기범 씨 사고 이후 상황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원청 HD현대미포는 사고 당시 울산을 찾은 유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직접 숙소를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원청은 사고 초반 "잠적한 하청 업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며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기범 씨 유가족 측 김의택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긴 이후로도 원청의 태도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 "첫 재판까지 가는 데만 길게는 2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사이 여론은 잠잠해진다"며,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해 합의하는 것보다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버티기'로 일관하면 처벌이 약해진다는 믿음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고는 더 낮은 곳에서…"국가와 원청이 나서야"
구의역 김 군, 김용균, 지난달 숨진 김기범 씨 사고 모두 '하청 노동자'로 입사한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청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산업 재해 사고는 더 잦습니다. 지난해 조선소에서 숨진 28명의 노동자 중 하청 노동자만 24명이었습니다.
지난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확대됐지만, 기업들의 안전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가 울산의 22개 50인 미만 기업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서 "사고 발생 시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 방치 대책을 마련하는가?"라는 질문에 14곳이, 위험성 평가를 하느냐는 질문에 18곳이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긴 뒤로 현장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는 14곳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할 정도로 작은 사업장은 안전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안전보건 관리자 선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한다면 조금이라도 현장이 개선될 것이라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규모가 큰 원청 기업이 하청 기업에 작업을 맡길 경우, 원청이 안전 관리 지원 등을 통해 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27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딱 3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3년간 1,200여 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숨지는 동안, 실형 선고는 '5건'에 불과했습니다. 안전 관리 체계는 여전히 부실하고, 사고는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처벌은 솜방망이입니다. 구의역 김 군, 김용균 씨 사망 사고를 겪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들을 잃습니다.
[연관 기사] “엄마, 생일 선물 사줄게”…스물둘 기범 씨, 조선소 바다에서 숨졌다(01.08)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6896 7달 전 사고와 ‘판박이’…반복되는 사고 왜?(01.0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8524 “기범이 잘못으로 몰고 가야 산다”…죽은 노동자를 탓하는 기업(01.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1511 하청 맡기고 “나 몰라라”…여전한 ‘위험의 외주화’(01.1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3919 반복되는 ‘구의역 김 군’·‘김용균’…언제까지?(01.2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6702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시행 1년…지금은?(01.2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8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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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서울메트로 하청 노동자 19살 김 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2018년에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 24살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두 사고 모두 2인 1조 작업 원칙은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제2의 김 군과 김용균을 만들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습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업 대표들은 책임을 피하고,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노동자는 여전히 작업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30일 HD현대미포 조선소에서 숨진 22살 김기범 씨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인 1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원청은 책임을 피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지만, 세상은 그대로"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원청 "책임 없다" 반복…"버티면 그만" 분위기 팽배
"(수사가 길어지면) 다들 기억이 없어지는 거죠. 어차피 오래 가는 거, '자기 잘못 없다'고 떠들면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이것만 믿고 가는 것 같아요. 지금 분위기가 다 그렇습니다." 김의택/잠수부 고 김기범 씨 측 변호사 |
구의역 사고 당시 원청 기업인 서울메트로는 "김 군이 사고 지점 고장 신고가 없었던 곳에서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시민단체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2년이 지나서야 열린 재판에서 원청인 서부발전은 "대표 등은 현장과 떨어진 본사에서 일하고, 김용균 씨는 소속 직원도 아니므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유가족들은 "원청 대표까지 꼭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구의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 대표는 벌금 1,000만 원에 그쳤고, 화력발전소 사고 당시 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HD현대미포 울산조선소에서 숨진 김기범 씨 사고 이후 상황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원청 HD현대미포는 사고 당시 울산을 찾은 유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직접 숙소를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원청은 사고 초반 "잠적한 하청 업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며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기범 씨 유가족 측 김의택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긴 이후로도 원청의 태도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 "첫 재판까지 가는 데만 길게는 2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사이 여론은 잠잠해진다"며,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해 합의하는 것보다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버티기'로 일관하면 처벌이 약해진다는 믿음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고는 더 낮은 곳에서…"국가와 원청이 나서야"
구의역 김 군, 김용균, 지난달 숨진 김기범 씨 사고 모두 '하청 노동자'로 입사한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청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산업 재해 사고는 더 잦습니다. 지난해 조선소에서 숨진 28명의 노동자 중 하청 노동자만 24명이었습니다.
지난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확대됐지만, 기업들의 안전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가 울산의 22개 50인 미만 기업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서 "사고 발생 시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 방치 대책을 마련하는가?"라는 질문에 14곳이, 위험성 평가를 하느냐는 질문에 18곳이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긴 뒤로 현장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는 14곳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할 정도로 작은 사업장은 안전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안전보건 관리자 선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한다면 조금이라도 현장이 개선될 것이라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규모가 큰 원청 기업이 하청 기업에 작업을 맡길 경우, 원청이 안전 관리 지원 등을 통해 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27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딱 3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3년간 1,200여 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숨지는 동안, 실형 선고는 '5건'에 불과했습니다. 안전 관리 체계는 여전히 부실하고, 사고는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처벌은 솜방망이입니다. 구의역 김 군, 김용균 씨 사망 사고를 겪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들을 잃습니다.
[연관 기사] “엄마, 생일 선물 사줄게”…스물둘 기범 씨, 조선소 바다에서 숨졌다(01.08)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6896 7달 전 사고와 ‘판박이’…반복되는 사고 왜?(01.0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8524 “기범이 잘못으로 몰고 가야 산다”…죽은 노동자를 탓하는 기업(01.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1511 하청 맡기고 “나 몰라라”…여전한 ‘위험의 외주화’(01.1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3919 반복되는 ‘구의역 김 군’·‘김용균’…언제까지?(01.2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6702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시행 1년…지금은?(01.2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58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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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천 기자 hu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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