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② “20% 휴경했더니” 수입과 비용 모두 감소

입력 2025.01.30 (07:00) 수정 2025.01.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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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해 전국적으로 벼 재배면적 8만ha를 감축할 계획입니다. 1ha는 10,000㎡ (약 3,000평)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위라 어느정도 규모인지 잘 와닿지 않죠.

서울 면적이 605㎢, 헥타르로 바꾸면 6만 500ha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의 1.3배인 면적의 논에서 더 이상 벼를 재배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입니다.

■ 철원군의 실험 "쌀농사를 지으면서 휴경을 해보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분휴경제'를 도입해 농가당 벼 재배면적을 20% 정도 줄여본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강원도 철원군입니다.

철원은 오대쌀로 유명한 조생종 벼를 재배하는 곳으로, 수확시기가 전국에서 가장 빨라 그 해 벼 수매가격의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와 밥맛에 대한 자부심으로, 철원군은 지난해 군 예산을 들여 자체적으로 부분휴경제를 실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철원군에서 벼를 재배하는 농가는 2,900여 가구, 총 재배면적은 9,200여 ha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농가 150 가구가 참여해 논 140여 ha에서 20% 정도 비워놓고 벼를 심었습니다.

벼를 심을 때 논두렁에서 3m씩 비우거나 열 고랑에 한 고랑을 안 심는 식으로 재배면적을 줄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앙기가 모내기한 뒤에 기계가 닿지 않아 빈 곳에는 손으로 모내기를 할 정도로 빽빽하게 심었지만, 일부러 비워두고 벼를 심은 것입니다.

지난해 논두렁 주변으로 3m씩 벼를 심지 않는 방식으로 벼 재배면적을 감축한 강원도 철원의 부분휴경지. 지난해 논두렁 주변으로 3m씩 벼를 심지 않는 방식으로 벼 재배면적을 감축한 강원도 철원의 부분휴경지.

철원군은 논 한 필지를 통째로 놀리는 휴경을 하면 잡초가 많이 나고 주변 논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다음 해 농사를 짓기도 힘든 만큼, 농사는 그대로 지으면서 면적만 줄이는 '부분휴경'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렇게 논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면 '기본 직불금'의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농가들의 거부감도 적다고 설명합니다.

부분휴경에 참여한 농민 이상윤 씨(65)는 논두렁을 따라 둘레를 비워두니 논두렁에 제초 작업을 하거나 팥 등 다른 작물을 심는 것도 편하고, 볍씨도 그만큼 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벼를 심어놓은 둘레에 물이 차 있는 공간이 생기니, 오리들이 웅덩이를 보고 날아 들어서 잡초를 뜯어 먹는 효과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재배면적 20% 줄였더니 수입과 비용 모두 감소 "순수익은 증가"

철원군 벼 재배감축 사업에 대한 연구 용역을 수행한 강원대학교 산학협력단은 부분휴경에 참여한 농가는 휴경 면적에 따라 수입과 비용이 모두 감소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벼 재배면적을 20% 정도 줄이면 수입과 비용이 모두 줄어 순수익이 28% 줄어든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철원군이 군 예산으로 휴경한 면적에 따라 ha 당 75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결과 최종적인 수익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생산이 줄어든 만큼 줄어든 소득의 일부를 보전해 주는 정책이 농민들의 적극적인 휴경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논 1ha에서 20%를 휴경을 하면 0.2ha에서 생산을 하지 않았으므로, 보조금은 휴경한 면적만큼 지급되어 평균 215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보조금이 없었다면 휴경으로 인한 생산 감소로 인해 순수익이 1ha에 434만 원으로 28%가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인 생산량 조정으로 쌀값이 올라간다면 그만큼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있겠습니다.

철원군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규모를 10배 늘려 300ha를 부분휴경 방식으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참여했던 농민들 가운데는 소득 보전 액수가 적다며 올해는 부분휴경을 하지 않고 다 심겠다는 농민도 있었지만, 정부가 재배면적 감축을 시행하면 일부 소득보전을 받을 수 있는 부분휴경에 참여하려는 농민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휴경에 대한 보조금 없으면 수익 28% 감소"

정부도 이런 모델을 이번 벼 재배면적 조정에 적용하려는 걸까요?

농식품부는 휴경이나 부분휴경이 재배면적 감축의 한 사례라고는 밝혔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차이를 뒀습니다. 철원군에서 실시한 것과 같은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휴경 보상인데,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휴경에 대해 보상하는 제도는 없고 철원군과 같은 모델에 국비를 지원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전국적인 벼 재배면적 감축 계획을 받아 든 철원군 담당자들의 얼굴도 밝지 않았습니다. 올해 부분휴경제를 통한 감축 면적을 300ha로 늘릴 계획이지만, 철원군에 배정된 감축 면적은 1,180ha로 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 "벼 재배 면적 줄이지 않으면 농업생산·농업소득 줄어들 것"

하지만 쌀 생산을 줄여 시장 원리에 따라 쌀값이 오르게 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농업·농촌에 대해 전망하는 <농업전망 2025>에서, 정부 계획대로 벼 재배면적을 8만ha 감축하면 올해 농업 생산액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벼 재배면적을 줄이지 않으면 농업 총생산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농경련은 올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통해 8만 ha를 감축할 경우 전체 농업 생산액은 60조 천억 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가운데 쌀 생산액 8조 원을 포함한 식량작물 생산액은 10조 9천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6.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벼 재배면적 8만 ha를 줄이면 쌀 40만 톤 생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쌀값이 오르면서 전체 생산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벼 재배면적을 이만큼 줄이지 않으면 식량작물 생산액은 지난해보다 0.8% 줄어들고, 농업 생산액은 1.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농가소득도 벼 재배면적을 줄이면 가구당 5,435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6% 늘고, 이 가운데 농업소득이 1,312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재배면적을 감축하지 않으면 농업소득이 지난해보다 1.9% 줄어, 농가소득이 지난해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6일 〈농업전망 2025〉를 통해 벼 재배면적을 전제로 한 농업과 농가경제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사진=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6일 〈농업전망 2025〉를 통해 벼 재배면적을 전제로 한 농업과 농가경제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사진=농촌경제연구원)

대한민국 농정 사상 처음으로 추진되는 대대적인 쌀 생산 감축. 이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어떤지 이어서 알아봅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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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① “올해 벼 재배 12% 줄인다” 어디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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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② “20% 휴경했더니” 수입과 비용 모두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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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해 전국적으로 벼 재배면적 8만ha를 감축할 계획입니다. 1ha는 10,000㎡ (약 3,000평)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위라 어느정도 규모인지 잘 와닿지 않죠.

서울 면적이 605㎢, 헥타르로 바꾸면 6만 500ha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의 1.3배인 면적의 논에서 더 이상 벼를 재배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입니다.

■ 철원군의 실험 "쌀농사를 지으면서 휴경을 해보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분휴경제'를 도입해 농가당 벼 재배면적을 20% 정도 줄여본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강원도 철원군입니다.

철원은 오대쌀로 유명한 조생종 벼를 재배하는 곳으로, 수확시기가 전국에서 가장 빨라 그 해 벼 수매가격의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와 밥맛에 대한 자부심으로, 철원군은 지난해 군 예산을 들여 자체적으로 부분휴경제를 실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철원군에서 벼를 재배하는 농가는 2,900여 가구, 총 재배면적은 9,200여 ha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농가 150 가구가 참여해 논 140여 ha에서 20% 정도 비워놓고 벼를 심었습니다.

벼를 심을 때 논두렁에서 3m씩 비우거나 열 고랑에 한 고랑을 안 심는 식으로 재배면적을 줄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앙기가 모내기한 뒤에 기계가 닿지 않아 빈 곳에는 손으로 모내기를 할 정도로 빽빽하게 심었지만, 일부러 비워두고 벼를 심은 것입니다.

지난해 논두렁 주변으로 3m씩 벼를 심지 않는 방식으로 벼 재배면적을 감축한 강원도 철원의 부분휴경지.
철원군은 논 한 필지를 통째로 놀리는 휴경을 하면 잡초가 많이 나고 주변 논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다음 해 농사를 짓기도 힘든 만큼, 농사는 그대로 지으면서 면적만 줄이는 '부분휴경'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렇게 논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면 '기본 직불금'의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농가들의 거부감도 적다고 설명합니다.

부분휴경에 참여한 농민 이상윤 씨(65)는 논두렁을 따라 둘레를 비워두니 논두렁에 제초 작업을 하거나 팥 등 다른 작물을 심는 것도 편하고, 볍씨도 그만큼 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벼를 심어놓은 둘레에 물이 차 있는 공간이 생기니, 오리들이 웅덩이를 보고 날아 들어서 잡초를 뜯어 먹는 효과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재배면적 20% 줄였더니 수입과 비용 모두 감소 "순수익은 증가"

철원군 벼 재배감축 사업에 대한 연구 용역을 수행한 강원대학교 산학협력단은 부분휴경에 참여한 농가는 휴경 면적에 따라 수입과 비용이 모두 감소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벼 재배면적을 20% 정도 줄이면 수입과 비용이 모두 줄어 순수익이 28% 줄어든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철원군이 군 예산으로 휴경한 면적에 따라 ha 당 75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결과 최종적인 수익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생산이 줄어든 만큼 줄어든 소득의 일부를 보전해 주는 정책이 농민들의 적극적인 휴경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논 1ha에서 20%를 휴경을 하면 0.2ha에서 생산을 하지 않았으므로, 보조금은 휴경한 면적만큼 지급되어 평균 215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보조금이 없었다면 휴경으로 인한 생산 감소로 인해 순수익이 1ha에 434만 원으로 28%가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인 생산량 조정으로 쌀값이 올라간다면 그만큼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있겠습니다.

철원군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규모를 10배 늘려 300ha를 부분휴경 방식으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참여했던 농민들 가운데는 소득 보전 액수가 적다며 올해는 부분휴경을 하지 않고 다 심겠다는 농민도 있었지만, 정부가 재배면적 감축을 시행하면 일부 소득보전을 받을 수 있는 부분휴경에 참여하려는 농민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휴경에 대한 보조금 없으면 수익 28% 감소"

정부도 이런 모델을 이번 벼 재배면적 조정에 적용하려는 걸까요?

농식품부는 휴경이나 부분휴경이 재배면적 감축의 한 사례라고는 밝혔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차이를 뒀습니다. 철원군에서 실시한 것과 같은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휴경 보상인데,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휴경에 대해 보상하는 제도는 없고 철원군과 같은 모델에 국비를 지원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전국적인 벼 재배면적 감축 계획을 받아 든 철원군 담당자들의 얼굴도 밝지 않았습니다. 올해 부분휴경제를 통한 감축 면적을 300ha로 늘릴 계획이지만, 철원군에 배정된 감축 면적은 1,180ha로 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 "벼 재배 면적 줄이지 않으면 농업생산·농업소득 줄어들 것"

하지만 쌀 생산을 줄여 시장 원리에 따라 쌀값이 오르게 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농업·농촌에 대해 전망하는 <농업전망 2025>에서, 정부 계획대로 벼 재배면적을 8만ha 감축하면 올해 농업 생산액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벼 재배면적을 줄이지 않으면 농업 총생산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농경련은 올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통해 8만 ha를 감축할 경우 전체 농업 생산액은 60조 천억 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가운데 쌀 생산액 8조 원을 포함한 식량작물 생산액은 10조 9천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6.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벼 재배면적 8만 ha를 줄이면 쌀 40만 톤 생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쌀값이 오르면서 전체 생산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벼 재배면적을 이만큼 줄이지 않으면 식량작물 생산액은 지난해보다 0.8% 줄어들고, 농업 생산액은 1.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농가소득도 벼 재배면적을 줄이면 가구당 5,435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6% 늘고, 이 가운데 농업소득이 1,312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재배면적을 감축하지 않으면 농업소득이 지난해보다 1.9% 줄어, 농가소득이 지난해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6일 〈농업전망 2025〉를 통해 벼 재배면적을 전제로 한 농업과 농가경제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사진=농촌경제연구원)
대한민국 농정 사상 처음으로 추진되는 대대적인 쌀 생산 감축. 이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어떤지 이어서 알아봅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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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① “올해 벼 재배 12% 줄인다” 어디를, 어떻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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