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인천상륙작전 아시나요?”…해군·해병대 역사적인 승리

입력 2025.02.10 (19:35) 수정 2025.02.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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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작전으로 유명한데요.

그러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5개월 뒤에 한 번 더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74년 전 바로 오늘(2/10)이었죠, 우리 해군과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2차 인천상륙작전'을 박재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인천 월미도로 가는 해안가에 세워진 전승비, 1951년 2월 10일과 11일에 있었던 '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백두산함 등 대한해군 함정 6척에서 자원한 장병 70명이 특공대로, 먼저 만석부두 방면으로 상륙했습니다.

당시 수병이던 19살 황상영옹도 목숨을 걸고 상륙작전에 자원했습니다.

[황상영/93세/당시 해군 특공대원 : "(북한군이) 응사를 해서 우리 배에서 세 사람이나 다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륙할 때는 상당히 긴장을 했습니다."]

뒤이어, 덕적도에 있던 해병대원 100명이 상륙해 이틀 만에 인천 시내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 단독 작전으로, 인천항과 시내를 방어하던 북한군 7백 명을 물리친 쾌거였습니다.

[황상영/93세/당시 해군 특공대원 : "(인천)시청에 아군 본부가 설치됐고, 그때는 적지가 돼서 우리가 행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중공군 참전으로 '1·4 후퇴'를 하면서 경기도 평택과 강원도 원주까지 밀렸던 연합군은 재반격이 절실했던 상황, 전쟁물자 수송의 요충지였던 인천항을 되찾으면서 서울 재탈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백종훈/인천시 문화관광해설사 : "서울 쪽으로 갈 수 있는 병력·물자수송이 원활해지고, 휴전선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그런 계기가 아니었나."]

8개국, 7만 5천 명이 참가한 1차에 비해 국군 단독으로 규모도 작았던 '2차 인천상륙작전', 하지만, 6·25전쟁의 전세를 다시 뒤집고, 서해5도 NLL과 휴전선까지 재반격할 수 있게 만든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KBS 뉴스 박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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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인천상륙작전 아시나요?”…해군·해병대 역사적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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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5-02-10 19: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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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작전으로 유명한데요.

그러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5개월 뒤에 한 번 더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74년 전 바로 오늘(2/10)이었죠, 우리 해군과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2차 인천상륙작전'을 박재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인천 월미도로 가는 해안가에 세워진 전승비, 1951년 2월 10일과 11일에 있었던 '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백두산함 등 대한해군 함정 6척에서 자원한 장병 70명이 특공대로, 먼저 만석부두 방면으로 상륙했습니다.

당시 수병이던 19살 황상영옹도 목숨을 걸고 상륙작전에 자원했습니다.

[황상영/93세/당시 해군 특공대원 : "(북한군이) 응사를 해서 우리 배에서 세 사람이나 다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륙할 때는 상당히 긴장을 했습니다."]

뒤이어, 덕적도에 있던 해병대원 100명이 상륙해 이틀 만에 인천 시내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 단독 작전으로, 인천항과 시내를 방어하던 북한군 7백 명을 물리친 쾌거였습니다.

[황상영/93세/당시 해군 특공대원 : "(인천)시청에 아군 본부가 설치됐고, 그때는 적지가 돼서 우리가 행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중공군 참전으로 '1·4 후퇴'를 하면서 경기도 평택과 강원도 원주까지 밀렸던 연합군은 재반격이 절실했던 상황, 전쟁물자 수송의 요충지였던 인천항을 되찾으면서 서울 재탈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백종훈/인천시 문화관광해설사 : "서울 쪽으로 갈 수 있는 병력·물자수송이 원활해지고, 휴전선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그런 계기가 아니었나."]

8개국, 7만 5천 명이 참가한 1차에 비해 국군 단독으로 규모도 작았던 '2차 인천상륙작전', 하지만, 6·25전쟁의 전세를 다시 뒤집고, 서해5도 NLL과 휴전선까지 재반격할 수 있게 만든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KBS 뉴스 박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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