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초 학생들도 폭발사고로 희생”
입력 2025.02.12 (19:05)
수정 2025.02.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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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그동안 4·3 당시 폭발사고로 숨진 70여 명의 아이들의 사연을 잇따라 전해드렸는데요.
그 무렵 서귀포 사계초등학교 인근에서도 학생 네 명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방산.
1959년 봄, 이 부근에서 나물을 캐던 10살 소녀는 '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무슨 소리가 '팡'하게 나. 산방산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 밭 근처에 가보니까 이리로 흩어지고 저리로 흩어지고 셋이 다 흩어지고. 한 아이는 다리 다쳐서 아이고 아이고 죽어가고."]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중에는 이 할머니의 동생도 있었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숨진 아이들이) 우리 집에선 장남이고 이 집은 둘째고, 김 씨네는 첫째고. (동네가) 난리가 나고 뒤집어지고 말하고 할 것도 없었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형을 떠나보낸 동생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물고랑이 있어서 거기서 주운 모양이야 폭탄을. 저도 거기 따라가려고 하다가 우리 형이 여기 올라가다가 못 오게 가라고. 집에 가라고 해서 못 갔어요. 나도 갔으면 돌아가셨겠지 그때. 죽었겠지 나도."]
한꺼번에 1~2학년 학생 4명이 희생되면서 학교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연희/당시 사계초 2학년 : "고영희하고 이창진은 학교 동창이니까. 많이 놀랐죠. 학생들한테도 선생님들이 자꾸 부탁하는 것도 있고. 밖에 나가서 그런 거 보이면 조심하라고 하고."]
형제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산 이들은 이제라도 어린 넋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방송에 몇 번 나오고 하니까 그럼 우리도 신고하자고 해서 신고한 겁니다. 그 일을 우리가 잊어버리진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4년가량 지나 발생한 데다, 해당 지역이 군 주둔지가 아니었던 만큼 4·3 피해라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과 유족의 삶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지난 60여 년 세월이 되묻고 있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동네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잖아. 그거 폭탄이라는 게. 특정인이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군에서나 나라에서 만드는 거지. 안 그래요?"]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KBS는 그동안 4·3 당시 폭발사고로 숨진 70여 명의 아이들의 사연을 잇따라 전해드렸는데요.
그 무렵 서귀포 사계초등학교 인근에서도 학생 네 명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방산.
1959년 봄, 이 부근에서 나물을 캐던 10살 소녀는 '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무슨 소리가 '팡'하게 나. 산방산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 밭 근처에 가보니까 이리로 흩어지고 저리로 흩어지고 셋이 다 흩어지고. 한 아이는 다리 다쳐서 아이고 아이고 죽어가고."]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중에는 이 할머니의 동생도 있었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숨진 아이들이) 우리 집에선 장남이고 이 집은 둘째고, 김 씨네는 첫째고. (동네가) 난리가 나고 뒤집어지고 말하고 할 것도 없었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형을 떠나보낸 동생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물고랑이 있어서 거기서 주운 모양이야 폭탄을. 저도 거기 따라가려고 하다가 우리 형이 여기 올라가다가 못 오게 가라고. 집에 가라고 해서 못 갔어요. 나도 갔으면 돌아가셨겠지 그때. 죽었겠지 나도."]
한꺼번에 1~2학년 학생 4명이 희생되면서 학교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연희/당시 사계초 2학년 : "고영희하고 이창진은 학교 동창이니까. 많이 놀랐죠. 학생들한테도 선생님들이 자꾸 부탁하는 것도 있고. 밖에 나가서 그런 거 보이면 조심하라고 하고."]
형제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산 이들은 이제라도 어린 넋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방송에 몇 번 나오고 하니까 그럼 우리도 신고하자고 해서 신고한 겁니다. 그 일을 우리가 잊어버리진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4년가량 지나 발생한 데다, 해당 지역이 군 주둔지가 아니었던 만큼 4·3 피해라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과 유족의 삶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지난 60여 년 세월이 되묻고 있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동네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잖아. 그거 폭탄이라는 게. 특정인이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군에서나 나라에서 만드는 거지. 안 그래요?"]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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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서귀포 사계초등학교 인근에서도 학생 네 명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방산.
1959년 봄, 이 부근에서 나물을 캐던 10살 소녀는 '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무슨 소리가 '팡'하게 나. 산방산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 밭 근처에 가보니까 이리로 흩어지고 저리로 흩어지고 셋이 다 흩어지고. 한 아이는 다리 다쳐서 아이고 아이고 죽어가고."]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중에는 이 할머니의 동생도 있었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숨진 아이들이) 우리 집에선 장남이고 이 집은 둘째고, 김 씨네는 첫째고. (동네가) 난리가 나고 뒤집어지고 말하고 할 것도 없었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형을 떠나보낸 동생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물고랑이 있어서 거기서 주운 모양이야 폭탄을. 저도 거기 따라가려고 하다가 우리 형이 여기 올라가다가 못 오게 가라고. 집에 가라고 해서 못 갔어요. 나도 갔으면 돌아가셨겠지 그때. 죽었겠지 나도."]
한꺼번에 1~2학년 학생 4명이 희생되면서 학교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연희/당시 사계초 2학년 : "고영희하고 이창진은 학교 동창이니까. 많이 놀랐죠. 학생들한테도 선생님들이 자꾸 부탁하는 것도 있고. 밖에 나가서 그런 거 보이면 조심하라고 하고."]
형제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산 이들은 이제라도 어린 넋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방송에 몇 번 나오고 하니까 그럼 우리도 신고하자고 해서 신고한 겁니다. 그 일을 우리가 잊어버리진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4년가량 지나 발생한 데다, 해당 지역이 군 주둔지가 아니었던 만큼 4·3 피해라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과 유족의 삶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지난 60여 년 세월이 되묻고 있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동네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잖아. 그거 폭탄이라는 게. 특정인이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군에서나 나라에서 만드는 거지. 안 그래요?"]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KBS는 그동안 4·3 당시 폭발사고로 숨진 70여 명의 아이들의 사연을 잇따라 전해드렸는데요.
그 무렵 서귀포 사계초등학교 인근에서도 학생 네 명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방산.
1959년 봄, 이 부근에서 나물을 캐던 10살 소녀는 '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무슨 소리가 '팡'하게 나. 산방산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 밭 근처에 가보니까 이리로 흩어지고 저리로 흩어지고 셋이 다 흩어지고. 한 아이는 다리 다쳐서 아이고 아이고 죽어가고."]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중에는 이 할머니의 동생도 있었습니다.
[이옥녀/폭발사고 피해자 故 이창진 누나 : "(숨진 아이들이) 우리 집에선 장남이고 이 집은 둘째고, 김 씨네는 첫째고. (동네가) 난리가 나고 뒤집어지고 말하고 할 것도 없었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형을 떠나보낸 동생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물고랑이 있어서 거기서 주운 모양이야 폭탄을. 저도 거기 따라가려고 하다가 우리 형이 여기 올라가다가 못 오게 가라고. 집에 가라고 해서 못 갔어요. 나도 갔으면 돌아가셨겠지 그때. 죽었겠지 나도."]
한꺼번에 1~2학년 학생 4명이 희생되면서 학교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연희/당시 사계초 2학년 : "고영희하고 이창진은 학교 동창이니까. 많이 놀랐죠. 학생들한테도 선생님들이 자꾸 부탁하는 것도 있고. 밖에 나가서 그런 거 보이면 조심하라고 하고."]
형제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산 이들은 이제라도 어린 넋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방송에 몇 번 나오고 하니까 그럼 우리도 신고하자고 해서 신고한 겁니다. 그 일을 우리가 잊어버리진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4년가량 지나 발생한 데다, 해당 지역이 군 주둔지가 아니었던 만큼 4·3 피해라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과 유족의 삶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지난 60여 년 세월이 되묻고 있습니다.
[고영갑/폭발사고 피해자 故고영희 동생 : "동네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잖아. 그거 폭탄이라는 게. 특정인이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군에서나 나라에서 만드는 거지.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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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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