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폭발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장난감의 비극’ 그 후

입력 2025.02.12 (19:12) 수정 2025.02.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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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KBS는 4·3 폭발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장난감의 비극, 그 후'와 기획보도를 이어왔는데요.

취재를 이어가고 있는 안서연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 기자, 지난해 4월 미니 다큐 '장난감의 비극'을 보도했는데, 지난달 설날에 방송된 다큐는 그 후속작이었던 거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장난감의 비극, 그 후'라는 제목에서 아실 수 있듯, 이번 다큐는 4·3 당시 군과 경찰이 두고 간 폭발물 사고로 희생됐던 어린이들을 발굴해 보도했던 '장난감의 비극' 이후 이야기인데요.

폭발 사고에 대한 충격을 갖고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진행형인 피해를 담고자 했습니다.

지난해 4월 첫 보도 이후 폭발사고 희생자와 목격자들의 제보가 KBS뿐 아니라 4·3평화재단에도 계속해서 들어왔는데요.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었기에, 그동안에는 4·3 피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학교의 생활기록부와 제적부 전수조사를 통해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는데요.

역사에 묻혀 있던 사건들을 발굴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진실을 전함으로써 참혹했던 피해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고로 죽거나 장애를 갖고 살아온 아이들이 이 기록물을 근거로 추후 희생자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다큐를 보면서 저도 많이 놀랐는데요.

폭발사고로 희생된 어린이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어린이 폭발사고 피해는 이미 10년 전인 2015년에도 공론화된 적 있는데요.

4·3진상조사보고서에 유일하게 기록된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입니다.

1950년에 발생한 이 폭발사고는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희생자 18명이 위령탑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당초 30여 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희생자들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알려지지 않았던 희생자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보도를 계기로 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팀과 함께 제주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학교 제적부를 뒤져봤는데요.

사고 사망자 중 위령탑에 기재되지 않은 두 학생을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75년이나 흘렀지만 당시 숨진 학생을 기억하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분들을 통해 손가락을 잃고 이른 나이에 숨진 1학년 학생의 피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가슴 아팠던 게 그날 사고를 목격한 1학년 학생이 커서 선생님이 되어서까지 계속 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건데요.

10년 전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었지만, 당시 아이들의 피해를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네요.

비슷한 사고가 났던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건은 지난해 처음 확인한 거였죠?

이 사고 역시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됐나요?

[기자]

네, 표선초에 폭발사고가 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서귀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폭발사고가 있었는데요.

증언에 따르면 30여 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초 저희가 확인한 피해자는 2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보도 이후 사고 당시 5학년이었던 제보자로부터 또 다른 희생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취재진은 당시 최초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과 폭발물을 갖고 놀다 창밖으로 던진 학생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파편에 맞아 상처를 입고 급기야는 퇴학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이들 역시 피해자였지만 고통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사고 목격자 중에는 그날 이후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학생도 있었는데요.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또다시 폭발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희생자는 또 있었습니다.

당시 파편에 맞아 숨진 1학년 학생의 자매들은 아버지 역시 4·3으로 목숨을 잃었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취재진은 추가진상조사팀과 함께 서귀포초등학교에서도 제적부를 살펴봤는데요.

조사 결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힌 희생자를 추가로 확인하고, 치료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간 학생들도 찾았습니다.

[앵커]

이게 다 당시 군과 경찰이 버리고 간 폭발물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런데 생존 희생자들은 왜 여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을까요?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생존 희생자 대부분은 긴 세월 침묵하고 있었는데요.

폭발물을 갖고 놀았다는 죄의식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952년 북촌초등학교 인근에서 수류탄을 갖고 놀다 친구들을 잃은 윤상범 할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요.

두 명이 숨지고 또 다른 두 명은 장애를 갖게 됐지만, 윤 할아버지는 크게 다치지 않으면서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당시 폭발사고 현장에 있다 왼쪽 눈이 실명되고 다리를 크게 다친 7살 소년의 행적도 쫓아봤는데요.

40여 년 전 일본으로 떠나 가정을 꾸리고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30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사고는 경찰로부터 훈련받던 청년단이 실수로 두고 간 수류탄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곧바로 확인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상처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겁니다.

[앵커]

누구 탓도 못하고 가슴앓이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기억하기론 보육원에서도 폭발사고 피해가 있었죠?

[기자]

네, 이 사고 역시 북촌초등학교에서 주운 폭발물 때문에 발생했던 건데요.

북촌 집단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제주보육원에 간 원홍택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주워간 수류탄을 갖고 놀다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함께 놀던 친구는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기까지 했지만,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그날 일을 묻는 사람은 없었는데요.

원 할아버지는 70여 년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그날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취재진은 함께 보육원에 살던 동생과 이를 기억하는 친척 누나를 만나 당시 상황을 더욱 명확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앵커]

안 기자가 처음 폭발사고 피해 어린이들을 보도한 게 지난해 초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약 1년간 취재를 이어오면서 확인한 희생자들이 꽤 되겠네요.

이번 다큐 방송 이후에도 피해 사례가 계속 확인되고 있다면서요?

[기자]

네, 현재까지 저희가 파악한 4·3 폭발사고 피해 어린이는 70명이 넘습니다.

취재는 1956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서 폭발사고로 숨진 어린이 2명에서부터 시작했는데요.

4·3특별법에 명시된 4·3기간을 2년 가까이 지나 발생한 사고이지만,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 어렵사리 4·3 피해로 인정됐습니다.

이번 다큐 방송 이후 이들과 비슷한 사고가 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1957년 효돈초 4학년이던 현태규 할아버지는 당시 옆 동네인 서귀포 상효동에서 엿장수들을 따라다니다 폭발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또래 남자아이 1명이 숨지고 이름 모를 누나는 중상을, 현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1959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서도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앵커]

역사가 미처 보듬지 못한 폭발사고 피해가 너무도 많네요.

그럼 이들 역시 앞으로 4·3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요?

[기자]

4·3 희생자 신청이 상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보니, 향후 추가 신청 기간이 되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텐데요.

4·3기간이 지나도 인정된 사례가 이미 나온 만큼 긍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해당 지역에 왜 폭발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4·3과의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4·3평화재단은 새롭게 확인된 폭발사고 피해자들이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취재진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 사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매듭짓는지 계속해서 지켜볼 예정입니다.

[앵커]

네 안 기자,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앞으로도 관련해서 취재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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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절한K] 폭발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장난감의 비극’ 그 후
    • 입력 2025-02-12 19:12:13
    • 수정2025-02-12 20:22:04
    뉴스7(제주)
[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KBS는 4·3 폭발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장난감의 비극, 그 후'와 기획보도를 이어왔는데요.

취재를 이어가고 있는 안서연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 기자, 지난해 4월 미니 다큐 '장난감의 비극'을 보도했는데, 지난달 설날에 방송된 다큐는 그 후속작이었던 거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장난감의 비극, 그 후'라는 제목에서 아실 수 있듯, 이번 다큐는 4·3 당시 군과 경찰이 두고 간 폭발물 사고로 희생됐던 어린이들을 발굴해 보도했던 '장난감의 비극' 이후 이야기인데요.

폭발 사고에 대한 충격을 갖고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진행형인 피해를 담고자 했습니다.

지난해 4월 첫 보도 이후 폭발사고 희생자와 목격자들의 제보가 KBS뿐 아니라 4·3평화재단에도 계속해서 들어왔는데요.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었기에, 그동안에는 4·3 피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학교의 생활기록부와 제적부 전수조사를 통해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는데요.

역사에 묻혀 있던 사건들을 발굴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진실을 전함으로써 참혹했던 피해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고로 죽거나 장애를 갖고 살아온 아이들이 이 기록물을 근거로 추후 희생자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다큐를 보면서 저도 많이 놀랐는데요.

폭발사고로 희생된 어린이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어린이 폭발사고 피해는 이미 10년 전인 2015년에도 공론화된 적 있는데요.

4·3진상조사보고서에 유일하게 기록된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입니다.

1950년에 발생한 이 폭발사고는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희생자 18명이 위령탑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당초 30여 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희생자들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알려지지 않았던 희생자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보도를 계기로 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팀과 함께 제주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학교 제적부를 뒤져봤는데요.

사고 사망자 중 위령탑에 기재되지 않은 두 학생을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75년이나 흘렀지만 당시 숨진 학생을 기억하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분들을 통해 손가락을 잃고 이른 나이에 숨진 1학년 학생의 피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가슴 아팠던 게 그날 사고를 목격한 1학년 학생이 커서 선생님이 되어서까지 계속 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건데요.

10년 전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었지만, 당시 아이들의 피해를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네요.

비슷한 사고가 났던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건은 지난해 처음 확인한 거였죠?

이 사고 역시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됐나요?

[기자]

네, 표선초에 폭발사고가 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서귀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폭발사고가 있었는데요.

증언에 따르면 30여 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초 저희가 확인한 피해자는 2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보도 이후 사고 당시 5학년이었던 제보자로부터 또 다른 희생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취재진은 당시 최초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과 폭발물을 갖고 놀다 창밖으로 던진 학생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파편에 맞아 상처를 입고 급기야는 퇴학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이들 역시 피해자였지만 고통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사고 목격자 중에는 그날 이후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학생도 있었는데요.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또다시 폭발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희생자는 또 있었습니다.

당시 파편에 맞아 숨진 1학년 학생의 자매들은 아버지 역시 4·3으로 목숨을 잃었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취재진은 추가진상조사팀과 함께 서귀포초등학교에서도 제적부를 살펴봤는데요.

조사 결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힌 희생자를 추가로 확인하고, 치료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간 학생들도 찾았습니다.

[앵커]

이게 다 당시 군과 경찰이 버리고 간 폭발물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런데 생존 희생자들은 왜 여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을까요?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생존 희생자 대부분은 긴 세월 침묵하고 있었는데요.

폭발물을 갖고 놀았다는 죄의식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952년 북촌초등학교 인근에서 수류탄을 갖고 놀다 친구들을 잃은 윤상범 할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요.

두 명이 숨지고 또 다른 두 명은 장애를 갖게 됐지만, 윤 할아버지는 크게 다치지 않으면서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당시 폭발사고 현장에 있다 왼쪽 눈이 실명되고 다리를 크게 다친 7살 소년의 행적도 쫓아봤는데요.

40여 년 전 일본으로 떠나 가정을 꾸리고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30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사고는 경찰로부터 훈련받던 청년단이 실수로 두고 간 수류탄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곧바로 확인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상처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겁니다.

[앵커]

누구 탓도 못하고 가슴앓이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기억하기론 보육원에서도 폭발사고 피해가 있었죠?

[기자]

네, 이 사고 역시 북촌초등학교에서 주운 폭발물 때문에 발생했던 건데요.

북촌 집단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제주보육원에 간 원홍택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주워간 수류탄을 갖고 놀다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함께 놀던 친구는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기까지 했지만,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그날 일을 묻는 사람은 없었는데요.

원 할아버지는 70여 년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그날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취재진은 함께 보육원에 살던 동생과 이를 기억하는 친척 누나를 만나 당시 상황을 더욱 명확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앵커]

안 기자가 처음 폭발사고 피해 어린이들을 보도한 게 지난해 초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약 1년간 취재를 이어오면서 확인한 희생자들이 꽤 되겠네요.

이번 다큐 방송 이후에도 피해 사례가 계속 확인되고 있다면서요?

[기자]

네, 현재까지 저희가 파악한 4·3 폭발사고 피해 어린이는 70명이 넘습니다.

취재는 1956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서 폭발사고로 숨진 어린이 2명에서부터 시작했는데요.

4·3특별법에 명시된 4·3기간을 2년 가까이 지나 발생한 사고이지만,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 어렵사리 4·3 피해로 인정됐습니다.

이번 다큐 방송 이후 이들과 비슷한 사고가 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1957년 효돈초 4학년이던 현태규 할아버지는 당시 옆 동네인 서귀포 상효동에서 엿장수들을 따라다니다 폭발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또래 남자아이 1명이 숨지고 이름 모를 누나는 중상을, 현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1959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서도 수류탄을 갖고 놀던 사계초등학교 학생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앵커]

역사가 미처 보듬지 못한 폭발사고 피해가 너무도 많네요.

그럼 이들 역시 앞으로 4·3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요?

[기자]

4·3 희생자 신청이 상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보니, 향후 추가 신청 기간이 되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텐데요.

4·3기간이 지나도 인정된 사례가 이미 나온 만큼 긍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해당 지역에 왜 폭발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4·3과의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4·3평화재단은 새롭게 확인된 폭발사고 피해자들이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취재진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 사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매듭짓는지 계속해서 지켜볼 예정입니다.

[앵커]

네 안 기자,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앞으로도 관련해서 취재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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