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4개 잘린 그날” 보초 서던 소년의 악몽
입력 2025.02.20 (19:52)
수정 2025.02.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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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군경이 두고 간 폭발물로 인한 사고가 또 확인됐습니다.
대낮에 보초를 서던 12살 소년의 피해인데요.
이로써 현재까지 KBS가 파악한 폭발사고 피해는 10건에 이릅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4·3 당시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둔 겁니다.
군경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며 보초를 서게 했고, 그중에는 다니던 학교가 불에 타 안덕초등학교로 전학 간 12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1951년 봄, 북문을 감시하던 소년은 손가락만 한 폭발물을 갖고 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화포 심지라고 해서 뇌관, 그것만 달랑 나온걸 그걸 주워서 장난했습니다. 돌로 톡톡하니까 '팡'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 손도 떼어지고 해서."]
이 사고로 손가락 4개가 절단됐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피가 콸콸 나면서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뭐로 싸매봐도 피가 막 나서. 넙게오름 뒤에 하사관학교 있는데 거기 치료해 보려고 가니까 싸 간 것이 둑둑둑둑 피가 막 떨어져요."]
당시 군인들이 훈련하던 마을에서 종종 폭발물을 줍던 아이들은 사고 이후 공포에 떨었습니다.
[조승진/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 "당연하죠. 겁나고. 그거(폭발물) 주웠던 거 던져두고 오고. 혼겁이 난 거지 그 당시에. 그렇게 늘 지내왔지 뭐."]
네 살 위 누나는 장애를 갖게 된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그땐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상한 거 보이면 딱딱 두드렸던 모양이야. 얼굴이고 뭐고 다 피투성이 되니까 정신도 못 차리고.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밭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동생은 가족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옛날에 기계도 아무것도 없을 때는 낫으로 이렇게 베는 걸 이 손가락 없으니까 못해. 그런 거 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았어."]
현재까지 KBS가 확인한 4·3 폭발사고 피해는 모두 10건,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4·3추가진상조사팀은 이들을 미신고 희생자로 기록해 추후 희생자로 인정받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고준용
4·3 당시 군경이 두고 간 폭발물로 인한 사고가 또 확인됐습니다.
대낮에 보초를 서던 12살 소년의 피해인데요.
이로써 현재까지 KBS가 파악한 폭발사고 피해는 10건에 이릅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4·3 당시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둔 겁니다.
군경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며 보초를 서게 했고, 그중에는 다니던 학교가 불에 타 안덕초등학교로 전학 간 12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1951년 봄, 북문을 감시하던 소년은 손가락만 한 폭발물을 갖고 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화포 심지라고 해서 뇌관, 그것만 달랑 나온걸 그걸 주워서 장난했습니다. 돌로 톡톡하니까 '팡'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 손도 떼어지고 해서."]
이 사고로 손가락 4개가 절단됐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피가 콸콸 나면서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뭐로 싸매봐도 피가 막 나서. 넙게오름 뒤에 하사관학교 있는데 거기 치료해 보려고 가니까 싸 간 것이 둑둑둑둑 피가 막 떨어져요."]
당시 군인들이 훈련하던 마을에서 종종 폭발물을 줍던 아이들은 사고 이후 공포에 떨었습니다.
[조승진/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 "당연하죠. 겁나고. 그거(폭발물) 주웠던 거 던져두고 오고. 혼겁이 난 거지 그 당시에. 그렇게 늘 지내왔지 뭐."]
네 살 위 누나는 장애를 갖게 된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그땐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상한 거 보이면 딱딱 두드렸던 모양이야. 얼굴이고 뭐고 다 피투성이 되니까 정신도 못 차리고.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밭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동생은 가족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옛날에 기계도 아무것도 없을 때는 낫으로 이렇게 베는 걸 이 손가락 없으니까 못해. 그런 거 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았어."]
현재까지 KBS가 확인한 4·3 폭발사고 피해는 모두 10건,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4·3추가진상조사팀은 이들을 미신고 희생자로 기록해 추후 희생자로 인정받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고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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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2-20 19:52:04
- 수정2025-02-20 21: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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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군경이 두고 간 폭발물로 인한 사고가 또 확인됐습니다.
대낮에 보초를 서던 12살 소년의 피해인데요.
이로써 현재까지 KBS가 파악한 폭발사고 피해는 10건에 이릅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4·3 당시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둔 겁니다.
군경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며 보초를 서게 했고, 그중에는 다니던 학교가 불에 타 안덕초등학교로 전학 간 12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1951년 봄, 북문을 감시하던 소년은 손가락만 한 폭발물을 갖고 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화포 심지라고 해서 뇌관, 그것만 달랑 나온걸 그걸 주워서 장난했습니다. 돌로 톡톡하니까 '팡'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 손도 떼어지고 해서."]
이 사고로 손가락 4개가 절단됐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피가 콸콸 나면서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뭐로 싸매봐도 피가 막 나서. 넙게오름 뒤에 하사관학교 있는데 거기 치료해 보려고 가니까 싸 간 것이 둑둑둑둑 피가 막 떨어져요."]
당시 군인들이 훈련하던 마을에서 종종 폭발물을 줍던 아이들은 사고 이후 공포에 떨었습니다.
[조승진/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 "당연하죠. 겁나고. 그거(폭발물) 주웠던 거 던져두고 오고. 혼겁이 난 거지 그 당시에. 그렇게 늘 지내왔지 뭐."]
네 살 위 누나는 장애를 갖게 된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그땐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상한 거 보이면 딱딱 두드렸던 모양이야. 얼굴이고 뭐고 다 피투성이 되니까 정신도 못 차리고.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밭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동생은 가족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옛날에 기계도 아무것도 없을 때는 낫으로 이렇게 베는 걸 이 손가락 없으니까 못해. 그런 거 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았어."]
현재까지 KBS가 확인한 4·3 폭발사고 피해는 모두 10건,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4·3추가진상조사팀은 이들을 미신고 희생자로 기록해 추후 희생자로 인정받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고준용
4·3 당시 군경이 두고 간 폭발물로 인한 사고가 또 확인됐습니다.
대낮에 보초를 서던 12살 소년의 피해인데요.
이로써 현재까지 KBS가 파악한 폭발사고 피해는 10건에 이릅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4·3 당시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둔 겁니다.
군경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돌아가며 보초를 서게 했고, 그중에는 다니던 학교가 불에 타 안덕초등학교로 전학 간 12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1951년 봄, 북문을 감시하던 소년은 손가락만 한 폭발물을 갖고 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화포 심지라고 해서 뇌관, 그것만 달랑 나온걸 그걸 주워서 장난했습니다. 돌로 톡톡하니까 '팡'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 손도 떼어지고 해서."]
이 사고로 손가락 4개가 절단됐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정구/폭발사고 피해자 : "피가 콸콸 나면서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뭐로 싸매봐도 피가 막 나서. 넙게오름 뒤에 하사관학교 있는데 거기 치료해 보려고 가니까 싸 간 것이 둑둑둑둑 피가 막 떨어져요."]
당시 군인들이 훈련하던 마을에서 종종 폭발물을 줍던 아이들은 사고 이후 공포에 떨었습니다.
[조승진/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 "당연하죠. 겁나고. 그거(폭발물) 주웠던 거 던져두고 오고. 혼겁이 난 거지 그 당시에. 그렇게 늘 지내왔지 뭐."]
네 살 위 누나는 장애를 갖게 된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그땐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상한 거 보이면 딱딱 두드렸던 모양이야. 얼굴이고 뭐고 다 피투성이 되니까 정신도 못 차리고.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밭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동생은 가족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이태숙/이정구의 누나 : "옛날에 기계도 아무것도 없을 때는 낫으로 이렇게 베는 걸 이 손가락 없으니까 못해. 그런 거 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았어."]
현재까지 KBS가 확인한 4·3 폭발사고 피해는 모두 10건,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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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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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호 기자 rumpiu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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