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은 왜 국방부 앞에 모였을까?
입력 2025.02.24 (16:33)
수정 2025.02.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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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사직 전공의 100여 명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모였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을 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번에는 교육부나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국방부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참석자들이 외친 구호는 특이하게도 "군대 간다는 전공의, 정부는 막지 마라!"였습니다. 군대를 가겠다는데 막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 전공의 입영 시 군의관·공보의로 복무...33살까지 연기 가능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전공의 수련 과정을 시작하면 의무사관후보생에 편입됩니다. 이 후보생들은 입영을 하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공보의)로 복무합니다. 일반 병사로는 입대할 수 없지만, 입영을 33살까지 미룰 수 있습니다.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긴 수련 기간 동안 입영하지 않도록 연기해 줄테니, 대신 수련 과정을 통해 습득한 의학 지식과 경험을 군을 위해 사용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직 등의 이유로 도중에 수련이 중단되면, 33살까지 수련을 마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즉시 입영해야 합니다. 의무사관후보생 입영은 통상 매년 3월이니, 현재 규정에 따르면 사직 중인 전공의들은 다음달 한꺼번에 입영을 해야 합니다.
다음달 입영이 예정된 전공의들은 현재 3천3백여 명입니다. 아직 병원에 복귀 하지 않은 만2천여 명의 전공의 가운데 25% 정도가 입영 대상입니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할 경우 입영을 연기해주는 특례를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도 했지만, 이에 응한 전공의는 108명에 불과했습니다.
■입영 대기 '3천3백여 명' VS 선발 인원 '960여 명'
문제는 3천3백여 명이란 숫자입니다. 군 당국은 매년 의무사관후보생 가운데 6~700명을 군의관으로 선발하고, 2~300명을 공보의로 근무하게 했습니다. 올 해 선발하기로 한 군의관은 710여 명, 공보의는 250여 명입니다. 합치면 960여 명입니다. 선발 예정보다 3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한꺼번에 입영을 하게 된 겁니다. 전공의들이 1년 넘게 사직 상태를 유지하면서 벌어진 초유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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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방부는 지난달 훈령을 개정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현행 '의무·수의 장교의 선발 및 입영 등에 관한 훈령' 에 따르면 의무장교를 선발하고 '남은 인원'은 보충역으로 자동 편입해 공보의로 근무하게 해야 하는데, 이 '남은 인원'을 보충역에 편입시키지 않고 후보생으로 '지속 관리'하도록 바꾸겠다는 겁니다. 국방부는 '지속 관리'되는 후보생들을 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입영시키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병역을 미필한 3천3백여 명의 전공의들은 원래 사직과 동시에 올해 3월 입영 예정이었지만 훈령 개정으로 향후 4년 동안 나눠서 입영하게 됐습니다. 국방부는 훈령 개정을 행정예고하고 현재 최종 심사 중입니다.
■ "4년 동안 미래 계획 세울 수 없어...당장 입영해야"
국방부 앞에 모인 전공의들은 훈령 개정의 부당함에 대해 입을 모아 성토했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사직 전공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입영 계획도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하게 되면 사직 전공의들이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조건에 해당이 돼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습니다. 4년 동안 언제 입영할지 모르게 된 상황이 부당하다는 지적입니다. 이 전공의는 집회에서 "기존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서를 기준으로 보충역 입영을 허용해야 하고, 개정된 훈령을 적용하려면 새로운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후보생에 편입되면 '전공의 수련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 문서에는 수련이 중단될 경우 가까운 날짜에 입영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또 다른 전공의는 지난해 6월 전공의 사직 직후 서울지방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의무사관후보생 수련 중단 처리결과 알림'이란 문서를 현장에서 공개했습니다. 2025년 입영이란 문구가 명시돼 있는 문서였습니다. 이 전공의는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이를 신뢰했고 그에 맞춰 인생 계획을 세웠다”며 “입영이 불과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날치기로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전공의에게만 특혜 줄 수 없어...대기해야"
하지만 국방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모든 군 장병 입영 시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대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의무사관후보생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고 중장기 군 의료 인력 수급과 의료체계 운영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마다 일정한 수의 군의관을 지속적으로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후보생은 일단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군의관 수요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3년마다 의무 복무하는 것"이라며 '수요'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군의관은 기존 선발 인원대로 뽑고 나머지는 전부 공보의로 근무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공보의 또한 금년에 복무시키게 되면 내년, 내후년, 그 이후에 의료 공백이 더 심할 것으로 예상돼서 복지부와 1년여 동안 협의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인원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입영 순서는 '무작위'...전공의들은 '법적 대응'
3천3백여 명을 어떤 순서로 입영시킬지를 묻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무작위'라고 답했습니다. "올해 전공의들에게 병무 알림톡을 통해 언제 입영하고 싶은지 사전 의향을 여러 차례 물었다"면서 "의사를 표시한 사람은 의사를 반영하고, 나머지는 33살에 도달하는 경우 우선 입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방부는 훈령 개정을 번복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 전공의들은 법적 대응도 예고한 상태입니다. 행정소송뿐 아니라 입영 시기를 선택할 기본권이 훼손됐다며 헌법 소원까지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의 또다른 여파...모두가 피해자
지난해 2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년 일정한 수의 군의관과 공보의가 입영한다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법과 정책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집단행동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지난해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입영 문제를 방치한 채 입대 시기 직전에 훈령을 개정한 국방부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일부 전공의들은 의사협회가 군 미필 전공의 보호에 소극적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 국면에서 의사협회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장기화한 의정 갈등이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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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사직 전공의 100여 명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모였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을 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번에는 교육부나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국방부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참석자들이 외친 구호는 특이하게도 "군대 간다는 전공의, 정부는 막지 마라!"였습니다. 군대를 가겠다는데 막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 전공의 입영 시 군의관·공보의로 복무...33살까지 연기 가능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전공의 수련 과정을 시작하면 의무사관후보생에 편입됩니다. 이 후보생들은 입영을 하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공보의)로 복무합니다. 일반 병사로는 입대할 수 없지만, 입영을 33살까지 미룰 수 있습니다.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긴 수련 기간 동안 입영하지 않도록 연기해 줄테니, 대신 수련 과정을 통해 습득한 의학 지식과 경험을 군을 위해 사용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직 등의 이유로 도중에 수련이 중단되면, 33살까지 수련을 마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즉시 입영해야 합니다. 의무사관후보생 입영은 통상 매년 3월이니, 현재 규정에 따르면 사직 중인 전공의들은 다음달 한꺼번에 입영을 해야 합니다.
다음달 입영이 예정된 전공의들은 현재 3천3백여 명입니다. 아직 병원에 복귀 하지 않은 만2천여 명의 전공의 가운데 25% 정도가 입영 대상입니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할 경우 입영을 연기해주는 특례를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도 했지만, 이에 응한 전공의는 108명에 불과했습니다.
■입영 대기 '3천3백여 명' VS 선발 인원 '960여 명'
문제는 3천3백여 명이란 숫자입니다. 군 당국은 매년 의무사관후보생 가운데 6~700명을 군의관으로 선발하고, 2~300명을 공보의로 근무하게 했습니다. 올 해 선발하기로 한 군의관은 710여 명, 공보의는 250여 명입니다. 합치면 960여 명입니다. 선발 예정보다 3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한꺼번에 입영을 하게 된 겁니다. 전공의들이 1년 넘게 사직 상태를 유지하면서 벌어진 초유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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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동안 미래 계획 세울 수 없어...당장 입영해야"
국방부 앞에 모인 전공의들은 훈령 개정의 부당함에 대해 입을 모아 성토했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사직 전공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입영 계획도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하게 되면 사직 전공의들이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조건에 해당이 돼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습니다. 4년 동안 언제 입영할지 모르게 된 상황이 부당하다는 지적입니다. 이 전공의는 집회에서 "기존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서를 기준으로 보충역 입영을 허용해야 하고, 개정된 훈령을 적용하려면 새로운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후보생에 편입되면 '전공의 수련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 문서에는 수련이 중단될 경우 가까운 날짜에 입영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또 다른 전공의는 지난해 6월 전공의 사직 직후 서울지방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의무사관후보생 수련 중단 처리결과 알림'이란 문서를 현장에서 공개했습니다. 2025년 입영이란 문구가 명시돼 있는 문서였습니다. 이 전공의는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이를 신뢰했고 그에 맞춰 인생 계획을 세웠다”며 “입영이 불과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날치기로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전공의에게만 특혜 줄 수 없어...대기해야"
하지만 국방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모든 군 장병 입영 시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대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의무사관후보생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고 중장기 군 의료 인력 수급과 의료체계 운영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마다 일정한 수의 군의관을 지속적으로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후보생은 일단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군의관 수요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3년마다 의무 복무하는 것"이라며 '수요'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군의관은 기존 선발 인원대로 뽑고 나머지는 전부 공보의로 근무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공보의 또한 금년에 복무시키게 되면 내년, 내후년, 그 이후에 의료 공백이 더 심할 것으로 예상돼서 복지부와 1년여 동안 협의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인원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입영 순서는 '무작위'...전공의들은 '법적 대응'
3천3백여 명을 어떤 순서로 입영시킬지를 묻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무작위'라고 답했습니다. "올해 전공의들에게 병무 알림톡을 통해 언제 입영하고 싶은지 사전 의향을 여러 차례 물었다"면서 "의사를 표시한 사람은 의사를 반영하고, 나머지는 33살에 도달하는 경우 우선 입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방부는 훈령 개정을 번복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 전공의들은 법적 대응도 예고한 상태입니다. 행정소송뿐 아니라 입영 시기를 선택할 기본권이 훼손됐다며 헌법 소원까지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의 또다른 여파...모두가 피해자
지난해 2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년 일정한 수의 군의관과 공보의가 입영한다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법과 정책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집단행동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지난해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입영 문제를 방치한 채 입대 시기 직전에 훈령을 개정한 국방부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일부 전공의들은 의사협회가 군 미필 전공의 보호에 소극적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 국면에서 의사협회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장기화한 의정 갈등이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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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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