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조 원 기금 ‘셀프 감독’…2년째 공석인 기금 위원 [다시 연금 개혁]⑥
입력 2025.03.27 (15:00)
수정 2025.03.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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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보유한 기금이 지난해 말 기준 1,200조 원을 돌파했다. 연간 정부 예산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3대 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사실상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구로 치면 정부가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는 셈이다. 운용의 독립성이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가끔 큰 사고를 치는 국민연금, 그 원인은 기금위원회를 틀어쥔 정부의 잘못일 때가 대부분이다. 국민이 만든 연기금을 정부 돈처럼 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 장면 1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너무 유명한 사건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례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반을 묻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함으로써 스스로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언질을 받은 보건복지부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데 연기금의 최고 책임자가 나란히 구속돼 국민연금 최대 흑역사로 남았다.

# 장면 2 : 민영화된 회사에 내려앉는 정부 낙하산들
KT나 포스코 같은 회사는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산업체들이다. 지금은 민영화된 회사들이지만 정권만 바뀌면 사장과 임원들이 대거 교체되고 새로운 낙하산들이 전리품처럼 자리를 차지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이상한 일이 관행처럼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이다. 이 기업들의 최대 주주가 국민연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장면 3 : 2년째 기금위원회에 못 들어가는 민주노총과 보건사회연구원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68%는 사업장 가입자이다. 연기금을 모으는데 가장 큰돈을 내는 사람들이 월급쟁이 노동자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2023년 3월 보건복지부(조규홍 장관 겸 기금운용위원장)는 민주노총 추천 몫인 기금운용위원(윤택근 당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촉했다. 이 자리는 2년이 지나도록 공석으로 남아 있다.
연금 전문가 자격으로 기금운용위원회에는 관행적으로 KDI 원장과 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 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이태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금위원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 자리 역시 2년 가까이 공석인 상태이다. 2년째 공석인 두 자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몇 안 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앉았던 곳이다.

■ 1,200조 원 쥐락펴락하는 '정무직' 공무원들
위의 표와 같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은 모두 20명이다. 당연직 위원으로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4명의 차관, 그리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참여한다. 현재 1자리가 공석이긴 하지만 관계 전문가 2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과 KDI 원장이 들어간다. 20명 중 8명이 정부의 직접적인 인사권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 중에 5명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나머지 12명은 경영계 3명, 노동계가 3명, 지역가입자 대표가 6명 (농어업 2인, 자영업 2인, 소비자·시민단체 2인)이다. 잘 알다시피 경영계와 노동계는 대부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기금위 의사 결정은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정부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들의 추천권도 대부분 농협과 수협, 소상공인연합회 등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단체들이 가지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완벽하게 정부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보는 근거이다.
■ 허물어진 기금위 '대표성'과 '운용의 독립성'
국민연금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인 건 맞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표성을 가지려면 돈을 낸 소위 '물주'가 많이 참여해야 하는데 현재의 기금위에는 당연직이라는 이유로 연금 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정부 관료가 너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차관들은 중요한 결정이 없을 때는 잘 나오지 않아 출석률도 매우 저조하다. 잘 알다시피 관료들은 거의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도 아니다. 나머지 위원들의 구성도 기금의 대표성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기 힘든 구조이다.

연금법상 복지부장관이 연금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꼭 기금운용위원장을 맡아야 할까? 통상적으로 복지부 수장이 기금운용 전문가일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기금운용을 감독해야 할 사람이 기금운용을 직접 실행하는 구조인데,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위원회를 감독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셀프 감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해 일어난 큰 사고는 대부분 대통령이나 정·재계 실세가 기금위원회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기금위를 장악한 정부 관료들이 외풍에 취약한 셈인데, 기금운용위원회의 주도권을 '정무직' 공무원이 갖고 있다는 건 '운용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 OECD, 정부 관료의 기금운용 직접 개입 '개선 권고'
거의 전 국민이 낸 보험료를 근간으로 구성된 연기금은 정말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해외 주요 연기금들도 연기금 운용조직에 대해 정부의 강력한 감독, 위원에 대한 임명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부 관료가 직접적으로 기금운용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연기금의 독립적인 운용을 중요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 2022년 '국내외 주요 연기금 운용체계 연구'를 통해 해외 연기금의 조직 구성을 면밀하게 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일본과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연기금 운용조직은 정부와 의회, 중앙은행의 감독하에 운영되지만, 실제 운용조직의 수장이나 위원들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22년 우리 정부의 의뢰를 받아 국민연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OECD도 국내 연기금 운용체계가 국제적 기준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보건복지부가 계획수립(Design of plan)과 검증(Validation)에 모두 참여하고 있어, 역할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했다. OECD는 기금운용위원회에 '관료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과 '계획수립자가 계획의 결과를 감독하는 이해 상충'의 상황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현재 기금운용위원장이 노동자 대표 기금 위원을 해촉하고 전 정부 연구기관장을 장기간 배제한 채로 기금위 운영을 하고 있다는 실상을 알았다면 OECD가 기금위원회의 건강성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의문이다.

■ 처음부터 연기금을 탐했던 정부....연금제도 부실은 가입자 몫?
한국 정부는 OECD 국가 가운데 공적연금에 가장 적은 국고를 쓰는 나라로 유명하다. 장기간 연금 개혁에 실패해 현재 국민연금 제도에 많은 문제점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1,200만 명이 연금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국고를 활용해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험 원칙'을 내세우며 국민연금이 '가입자 책임'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시리즈 ③편: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한국 정부는 그러나 연금제도 시행 초기부터 국민연금이 가진 돈(기금)에는 유독 집착을 보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IMF는 '연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한국 정부는 연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서 관리하며 정부 공공사업에 연기금을 가져다 쓰고 정해진 이자를 보전해 주는 식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금운용위원장도 재정경제원장(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고 있었다. IMF 지적이 있은 후에야 당시 DJ 정부는 기금운용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기금운용은 정부 재정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의 간섭을 직접적으로 받아 왔다. 급기야 이번 정부에선 보건복지부 장관(현 조규홍 장관)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김태현 이사장)도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 임명되는 다소 의아한 상황이 펼쳐졌다. 보건복지부에 의료나 복지 분야가 아닌 재정 분야의 수장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복지 문제보다 1,200조 원이나 되는 연기금 관리를 더 중요하게 보는 정부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제 연기금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에 국고를 전혀 안 쓰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 기금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대표의 통제 권한을 더 높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국가가 강제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에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리고서 기금 운용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금개혁안에 '정부의 지급 보장'을 법적으로 명문화 하기로 한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끝>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청년이 더 유리하다! 사각지대 없애는 416 개혁안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대한민국의 '대왕고래'는 동해가 아닌 국민연금에 있다? ⑤ MBK식 '돈 넣고 돈 먹기'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인가 ⑥ 1,200조 원 쥐락펴락 '정무직' 공무원들...'국고 투입 안 돼'? ⑦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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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3-27 15: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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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보유한 기금이 지난해 말 기준 1,200조 원을 돌파했다. 연간 정부 예산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3대 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사실상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구로 치면 정부가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는 셈이다. 운용의 독립성이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가끔 큰 사고를 치는 국민연금, 그 원인은 기금위원회를 틀어쥔 정부의 잘못일 때가 대부분이다. 국민이 만든 연기금을 정부 돈처럼 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 장면 1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너무 유명한 사건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례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반을 묻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함으로써 스스로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언질을 받은 보건복지부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데 연기금의 최고 책임자가 나란히 구속돼 국민연금 최대 흑역사로 남았다.

# 장면 2 : 민영화된 회사에 내려앉는 정부 낙하산들
KT나 포스코 같은 회사는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산업체들이다. 지금은 민영화된 회사들이지만 정권만 바뀌면 사장과 임원들이 대거 교체되고 새로운 낙하산들이 전리품처럼 자리를 차지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이상한 일이 관행처럼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이다. 이 기업들의 최대 주주가 국민연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장면 3 : 2년째 기금위원회에 못 들어가는 민주노총과 보건사회연구원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68%는 사업장 가입자이다. 연기금을 모으는데 가장 큰돈을 내는 사람들이 월급쟁이 노동자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2023년 3월 보건복지부(조규홍 장관 겸 기금운용위원장)는 민주노총 추천 몫인 기금운용위원(윤택근 당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촉했다. 이 자리는 2년이 지나도록 공석으로 남아 있다.
연금 전문가 자격으로 기금운용위원회에는 관행적으로 KDI 원장과 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 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이태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금위원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 자리 역시 2년 가까이 공석인 상태이다. 2년째 공석인 두 자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몇 안 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앉았던 곳이다.

■ 1,200조 원 쥐락펴락하는 '정무직' 공무원들
위의 표와 같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은 모두 20명이다. 당연직 위원으로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4명의 차관, 그리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참여한다. 현재 1자리가 공석이긴 하지만 관계 전문가 2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과 KDI 원장이 들어간다. 20명 중 8명이 정부의 직접적인 인사권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 중에 5명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나머지 12명은 경영계 3명, 노동계가 3명, 지역가입자 대표가 6명 (농어업 2인, 자영업 2인, 소비자·시민단체 2인)이다. 잘 알다시피 경영계와 노동계는 대부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기금위 의사 결정은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정부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들의 추천권도 대부분 농협과 수협, 소상공인연합회 등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단체들이 가지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완벽하게 정부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보는 근거이다.
■ 허물어진 기금위 '대표성'과 '운용의 독립성'
국민연금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인 건 맞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표성을 가지려면 돈을 낸 소위 '물주'가 많이 참여해야 하는데 현재의 기금위에는 당연직이라는 이유로 연금 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정부 관료가 너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차관들은 중요한 결정이 없을 때는 잘 나오지 않아 출석률도 매우 저조하다. 잘 알다시피 관료들은 거의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도 아니다. 나머지 위원들의 구성도 기금의 대표성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기 힘든 구조이다.

연금법상 복지부장관이 연금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꼭 기금운용위원장을 맡아야 할까? 통상적으로 복지부 수장이 기금운용 전문가일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기금운용을 감독해야 할 사람이 기금운용을 직접 실행하는 구조인데,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위원회를 감독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셀프 감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해 일어난 큰 사고는 대부분 대통령이나 정·재계 실세가 기금위원회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기금위를 장악한 정부 관료들이 외풍에 취약한 셈인데, 기금운용위원회의 주도권을 '정무직' 공무원이 갖고 있다는 건 '운용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 OECD, 정부 관료의 기금운용 직접 개입 '개선 권고'
거의 전 국민이 낸 보험료를 근간으로 구성된 연기금은 정말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해외 주요 연기금들도 연기금 운용조직에 대해 정부의 강력한 감독, 위원에 대한 임명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부 관료가 직접적으로 기금운용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연기금의 독립적인 운용을 중요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 2022년 '국내외 주요 연기금 운용체계 연구'를 통해 해외 연기금의 조직 구성을 면밀하게 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일본과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연기금 운용조직은 정부와 의회, 중앙은행의 감독하에 운영되지만, 실제 운용조직의 수장이나 위원들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22년 우리 정부의 의뢰를 받아 국민연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OECD도 국내 연기금 운용체계가 국제적 기준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보건복지부가 계획수립(Design of plan)과 검증(Validation)에 모두 참여하고 있어, 역할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했다. OECD는 기금운용위원회에 '관료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과 '계획수립자가 계획의 결과를 감독하는 이해 상충'의 상황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현재 기금운용위원장이 노동자 대표 기금 위원을 해촉하고 전 정부 연구기관장을 장기간 배제한 채로 기금위 운영을 하고 있다는 실상을 알았다면 OECD가 기금위원회의 건강성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의문이다.

■ 처음부터 연기금을 탐했던 정부....연금제도 부실은 가입자 몫?
한국 정부는 OECD 국가 가운데 공적연금에 가장 적은 국고를 쓰는 나라로 유명하다. 장기간 연금 개혁에 실패해 현재 국민연금 제도에 많은 문제점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1,200만 명이 연금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국고를 활용해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험 원칙'을 내세우며 국민연금이 '가입자 책임'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시리즈 ③편: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한국 정부는 그러나 연금제도 시행 초기부터 국민연금이 가진 돈(기금)에는 유독 집착을 보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IMF는 '연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한국 정부는 연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서 관리하며 정부 공공사업에 연기금을 가져다 쓰고 정해진 이자를 보전해 주는 식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금운용위원장도 재정경제원장(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고 있었다. IMF 지적이 있은 후에야 당시 DJ 정부는 기금운용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기금운용은 정부 재정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의 간섭을 직접적으로 받아 왔다. 급기야 이번 정부에선 보건복지부 장관(현 조규홍 장관)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김태현 이사장)도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 임명되는 다소 의아한 상황이 펼쳐졌다. 보건복지부에 의료나 복지 분야가 아닌 재정 분야의 수장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복지 문제보다 1,200조 원이나 되는 연기금 관리를 더 중요하게 보는 정부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제 연기금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에 국고를 전혀 안 쓰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 기금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대표의 통제 권한을 더 높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국가가 강제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에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리고서 기금 운용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금개혁안에 '정부의 지급 보장'을 법적으로 명문화 하기로 한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끝>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청년이 더 유리하다! 사각지대 없애는 416 개혁안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대한민국의 '대왕고래'는 동해가 아닌 국민연금에 있다? ⑤ MBK식 '돈 넣고 돈 먹기'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인가 ⑥ 1,200조 원 쥐락펴락 '정무직' 공무원들...'국고 투입 안 돼'? ⑦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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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중 기자 i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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