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 화해·협력 분위기 고조

입력 2006.01.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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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구촌을 뒤흔든 대재앙이 분쟁과 갈등의 땅에서 평화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 반세기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수차례 전쟁까지 벌어졌던 분쟁지역 카슈미르에 화해. 협력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양국 정부가 구호활동을 위한 교류에 적극 나선 게 결정적인 촉매가 됐는데요. 남아시아의 화약고, 카슈미르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박장범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47년 ,, 영국이 식민지였던 인도 대륙을 떠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됩니다. 이때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은 대부분 파키스탄에 편입됐지만, 유독 카슈미르만이 인도에 남겨지면서 분쟁의 씨앗이 잉태됐습니다. 세번의 전면전과 수백차례의 국지전,,, 끊이지 않는 테러...


그러나 반세기만에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지난 58년동안 굳게 닫혔던 카슈미르 통제선이 활짝 열립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된 인도 파키스탄의 평화협상이 결실을 본 것입니다. 인도령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오가는 버스가 개통됐고, 이산가족들은 부둥켜 안았습니다.

<인터뷰>"가족 친지들이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인터뷰>" 우리는 같은 종교와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초 새로운 평화 실험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카슈미르,, 지난해 10월, 또 한번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합니다.

8만 8천 여명이 숨지고 3백만 명의 이재민을 낳은 대 지진이 분쟁의 땅을 강타했습니다. 바깥 세상에 굳게 닫혀있던 이곳 카슈미르에 세계 각국에서 구호단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대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카슈미르 지역은 외국인의 출입이 사실상 금지된 통제구역 이었습니다. 설사 출입을 허락받았다 하더라도 외국인은 24시간 보안요원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50여 개 나라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 재앙은 분쟁지역의 대립도 누그러 뜨렸습니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인도와 파키스탄 군도 손을 맞잡았습니다. 카슈미르 통제선 5곳을 개방해 서로 구호물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지진 이전에는 상상조차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최전방,,,, 카슈미르 통제선의 풍경도 바꿔놨습니다.
분쟁의 도화선이었던 카슈미르 통제선이 가까워지자 곳곳에 자리잡은 군 부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산지역에 위치한 군사기지에 탄약 등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노새들의 행렬도 이어집니다.
민간인 출입 한계선을 지나면 우리의 비무장지대와 흡사한 군사지역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도로 양 옆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지뢰가 묻혔습니다.

<녹취> "도로 옆엔 모두 지뢰를 매설했습니다. "

국경 수비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최전방 카슈미르 통제선... 계곡을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 군 진지와 인도 군 진지가 코를 맞대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취재진이 나타나자 인도군 장교가 긴장한 듯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예전과는 달리 군인들은 총 대신 복구장비를 들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다리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리를 복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고 두 나라는 다리 아래에서 구호 물품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이미 지난해 두차례의 평화협상을 통해 미사일 시험 발사 때 사전 통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올해는 새해 첫 날부터 성명을 내고 서로의 핵 시설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고 밝히면서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은 한층 밝아졌습니다.

<인터뷰> 체하르 중령: "상황이 옳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카슈미르 분쟁 해결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노력 못지않게 카슈미르 주민들의 교류 확대를 향한 열기 또한 뜨겁습니다. 인도령 카슈미르로 가는 버스에 타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2만 여명을 넘었습니다.. 버스가 지금처럼 한달에 한 두 차례만 오간다고 했을 때 무려 3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터뷰>화자 아르미르: " 친척들 사는 곳에 지진 피해가 났는데 잘 사는지 보러가려고 합니다."

<인터뷰>아쉬파크: "버스가 좀 더 많이 다녀서 사람들이 자주 왕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모두 9차례의 서류 심사를 통해 카슈미르 분리 독립이나 무장 투쟁에 관여한 사람들을 골라내 탑승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카슈미르 주민들은 버스 운행 횟수도 늘리고 탑승 자격도 대폭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자흐 부트: " 인도에서 넘어온 난민들은 버스 탑승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카슈미르 사람인데 왜 버스를 못타게 합니까? "

<인터뷰> 무스타크: " 왕래를 지속하면 평화가 오기때문에 교류와 협력을 더욱 진전돼야 합니다."

카슈미르 자치정부 역시 현재의 통제선을 이른바 부드러운 국경선,,, 즉,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함으로써 굳이 국경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파루 헤드르(카슈미르 장관): " 평화정착을 위한 작은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두 나라로 나뉜 카슈미르 사람들을 만족시키면서 항구적인 평화 정착 방안을 도출해야 합니다."

반 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로 남아시아의 화약고라 불리던 카슈미르.. 자연이 낳은 대 재앙을 계기로 이 지역의 해빙무드는 고조되고 있습니다. 냉전 이후 세계 평화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한 종교 갈등을 극복하고,, 분쟁의 영구 종식을 위한 해법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비극의 땅, 카슈미르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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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슈미르, 화해·협력 분위기 고조
    • 입력 2006-01-13 11:29:3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구촌을 뒤흔든 대재앙이 분쟁과 갈등의 땅에서 평화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 반세기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수차례 전쟁까지 벌어졌던 분쟁지역 카슈미르에 화해. 협력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양국 정부가 구호활동을 위한 교류에 적극 나선 게 결정적인 촉매가 됐는데요. 남아시아의 화약고, 카슈미르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박장범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47년 ,, 영국이 식민지였던 인도 대륙을 떠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됩니다. 이때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은 대부분 파키스탄에 편입됐지만, 유독 카슈미르만이 인도에 남겨지면서 분쟁의 씨앗이 잉태됐습니다. 세번의 전면전과 수백차례의 국지전,,, 끊이지 않는 테러... 그러나 반세기만에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지난 58년동안 굳게 닫혔던 카슈미르 통제선이 활짝 열립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된 인도 파키스탄의 평화협상이 결실을 본 것입니다. 인도령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오가는 버스가 개통됐고, 이산가족들은 부둥켜 안았습니다. <인터뷰>"가족 친지들이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인터뷰>" 우리는 같은 종교와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초 새로운 평화 실험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카슈미르,, 지난해 10월, 또 한번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합니다. 8만 8천 여명이 숨지고 3백만 명의 이재민을 낳은 대 지진이 분쟁의 땅을 강타했습니다. 바깥 세상에 굳게 닫혀있던 이곳 카슈미르에 세계 각국에서 구호단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대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카슈미르 지역은 외국인의 출입이 사실상 금지된 통제구역 이었습니다. 설사 출입을 허락받았다 하더라도 외국인은 24시간 보안요원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50여 개 나라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 재앙은 분쟁지역의 대립도 누그러 뜨렸습니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인도와 파키스탄 군도 손을 맞잡았습니다. 카슈미르 통제선 5곳을 개방해 서로 구호물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지진 이전에는 상상조차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최전방,,,, 카슈미르 통제선의 풍경도 바꿔놨습니다. 분쟁의 도화선이었던 카슈미르 통제선이 가까워지자 곳곳에 자리잡은 군 부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산지역에 위치한 군사기지에 탄약 등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노새들의 행렬도 이어집니다. 민간인 출입 한계선을 지나면 우리의 비무장지대와 흡사한 군사지역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도로 양 옆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지뢰가 묻혔습니다. <녹취> "도로 옆엔 모두 지뢰를 매설했습니다. " 국경 수비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최전방 카슈미르 통제선... 계곡을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 군 진지와 인도 군 진지가 코를 맞대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취재진이 나타나자 인도군 장교가 긴장한 듯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예전과는 달리 군인들은 총 대신 복구장비를 들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다리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리를 복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고 두 나라는 다리 아래에서 구호 물품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이미 지난해 두차례의 평화협상을 통해 미사일 시험 발사 때 사전 통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올해는 새해 첫 날부터 성명을 내고 서로의 핵 시설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고 밝히면서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은 한층 밝아졌습니다. <인터뷰> 체하르 중령: "상황이 옳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카슈미르 분쟁 해결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노력 못지않게 카슈미르 주민들의 교류 확대를 향한 열기 또한 뜨겁습니다. 인도령 카슈미르로 가는 버스에 타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2만 여명을 넘었습니다.. 버스가 지금처럼 한달에 한 두 차례만 오간다고 했을 때 무려 3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터뷰>화자 아르미르: " 친척들 사는 곳에 지진 피해가 났는데 잘 사는지 보러가려고 합니다." <인터뷰>아쉬파크: "버스가 좀 더 많이 다녀서 사람들이 자주 왕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모두 9차례의 서류 심사를 통해 카슈미르 분리 독립이나 무장 투쟁에 관여한 사람들을 골라내 탑승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카슈미르 주민들은 버스 운행 횟수도 늘리고 탑승 자격도 대폭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자흐 부트: " 인도에서 넘어온 난민들은 버스 탑승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카슈미르 사람인데 왜 버스를 못타게 합니까? " <인터뷰> 무스타크: " 왕래를 지속하면 평화가 오기때문에 교류와 협력을 더욱 진전돼야 합니다." 카슈미르 자치정부 역시 현재의 통제선을 이른바 부드러운 국경선,,, 즉,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함으로써 굳이 국경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파루 헤드르(카슈미르 장관): " 평화정착을 위한 작은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두 나라로 나뉜 카슈미르 사람들을 만족시키면서 항구적인 평화 정착 방안을 도출해야 합니다." 반 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로 남아시아의 화약고라 불리던 카슈미르.. 자연이 낳은 대 재앙을 계기로 이 지역의 해빙무드는 고조되고 있습니다. 냉전 이후 세계 평화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한 종교 갈등을 극복하고,, 분쟁의 영구 종식을 위한 해법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비극의 땅, 카슈미르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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