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난민 수용 안 한다더니…백인에겐 하늘길 열어 준 트럼프

입력 2025.05.20 (15:29) 수정 2025.05.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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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경을 강화하고 사실상 난민 수용도 중단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신속하게 난민으로 인정해 데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너'인데요.

월드 이슈에서 이랑 기자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 짚어보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난민을 받았다니 이례적인데요.

어떤 상황인 건가요?

[기자]

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 59명이 미국에 '난민 지위'를 받고 현지 시각 12일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무려 미국 정부 지원으로 특별기까지 띄워서 데려왔는데요.

[크리스토퍼 랜도우/미국 국무부 부장관 : "여러분을 이 나라에 맞이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삶이 활짝 꽃피우기를, 또 여러분의 자녀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마중까지 나가서 환영사를 전했는데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스물세 가족 보시면 모두 백인입니다.

대부분이 '아프리카너'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와 프랑스 정착민의 후손인데요.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인종 분리 정책을 40년 넘게 이끌어온 집단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남아공에서도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거 아닌가요?

대체 이들이 왜 미국에 '난민'으로 신청해서 이주를 한 거죠?

[기자]

미국에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폭력의 표적이 되는 등 박해를 받고 있다는 건데요.

이런 주장이 가능했던 배경이 있습니다.

올해 1월 남아공이 마련한 '토지 수용법'이 발단이 됐는데요.

과거에는 흑인들의 거주 범위를 7%로 제한해서 흑인들이 수십 년 동안 차별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후 인종 분리 정책을 끝내고 토지를 재분배하려 했지만, 성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 '토지 수용법'을 만들어서 공공 목적 등을 위해서 심사를 거쳐 보상 없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법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오랜 기간 방치된 토지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는데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건 '토지 몰수'라면서, 남아공에 대한 미국 정부 원조를 끊어버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너가 원한다면 미국에서 재정착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는데요.

불과 이 말이 나온 지 석 달 만에 실제 아프리카너들이 미국에 도착한 겁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벌써 8천 명이 넘는 아프리카너가 미국에 난민 지위 인정을 신청했습니다.

[카티아 비든/남아공 시민 : "미국 같은 나라가 우리에게 난민 지위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었을 때 정말 엄청난 일이었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안도감도 컸습니다. 마치 생명줄 같았어요."]

[앵커]

그런데 미국에선 최근 굶주림이나 내전 등으로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 심사를 사실상 전면 중단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남아공 백인들은 전격 수용했다니, 논란이 거셀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이중잣대라는 비난이 거셉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곧바로 반이민 정책을 내세웠잖아요.

비백인들을 상대로는 문을 걸어 잠그더니 백인들에게는 하늘길을 열어줬다는 건데요.

또 '난민 시스템' 자체가 전쟁이나 굶주림처럼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는데요.

정작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의 신청자는 외면하고 아프리카너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한 건 난민 시스템에도 배치된다는 겁니다.

실제 남아공 사유지의 4분의 3 정도는 아직도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고요.

흑인 다수보다 약 20배 달하는 부를 갖고 있어서 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특히나 통상적으로 몇 년씩 걸리는 난민 지위 인정 절차가 3개월여 만에 이뤄진 점도 논란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어쩌다 보니 이들이 백인일 뿐이라며 별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지난 16일 : "그들이 백인이었을 뿐이에요. 만약 그들이 흑인이었더라도, 저는 똑같은 일을 했을 겁니다."]

[앵커]

어찌 됐든 아프리카너들에게 난민 지위를 줬다는 건 이들이 진짜 위협과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 준 셈이잖아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안 그래도 남아공은 백인들이 남아공에서 박해받거나 차별받지 않는다고 계속 강조해 왔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토지 몰수니, 차별이니 언급을 하니까 양국 관계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로널드 라몰라/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 장관/지난 12일 : "국제적 정의상 이들은 난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남아공으로서는 미국이 자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근거 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자 내정 간섭이라며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남아공 백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편집:구자람 김주은/자료조사:이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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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0 15:29:49
    • 수정2025-05-20 15: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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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경을 강화하고 사실상 난민 수용도 중단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신속하게 난민으로 인정해 데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너'인데요.

월드 이슈에서 이랑 기자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 짚어보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난민을 받았다니 이례적인데요.

어떤 상황인 건가요?

[기자]

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 59명이 미국에 '난민 지위'를 받고 현지 시각 12일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무려 미국 정부 지원으로 특별기까지 띄워서 데려왔는데요.

[크리스토퍼 랜도우/미국 국무부 부장관 : "여러분을 이 나라에 맞이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삶이 활짝 꽃피우기를, 또 여러분의 자녀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마중까지 나가서 환영사를 전했는데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스물세 가족 보시면 모두 백인입니다.

대부분이 '아프리카너'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와 프랑스 정착민의 후손인데요.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인종 분리 정책을 40년 넘게 이끌어온 집단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남아공에서도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거 아닌가요?

대체 이들이 왜 미국에 '난민'으로 신청해서 이주를 한 거죠?

[기자]

미국에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폭력의 표적이 되는 등 박해를 받고 있다는 건데요.

이런 주장이 가능했던 배경이 있습니다.

올해 1월 남아공이 마련한 '토지 수용법'이 발단이 됐는데요.

과거에는 흑인들의 거주 범위를 7%로 제한해서 흑인들이 수십 년 동안 차별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후 인종 분리 정책을 끝내고 토지를 재분배하려 했지만, 성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 '토지 수용법'을 만들어서 공공 목적 등을 위해서 심사를 거쳐 보상 없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법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오랜 기간 방치된 토지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는데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건 '토지 몰수'라면서, 남아공에 대한 미국 정부 원조를 끊어버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너가 원한다면 미국에서 재정착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는데요.

불과 이 말이 나온 지 석 달 만에 실제 아프리카너들이 미국에 도착한 겁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벌써 8천 명이 넘는 아프리카너가 미국에 난민 지위 인정을 신청했습니다.

[카티아 비든/남아공 시민 : "미국 같은 나라가 우리에게 난민 지위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었을 때 정말 엄청난 일이었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안도감도 컸습니다. 마치 생명줄 같았어요."]

[앵커]

그런데 미국에선 최근 굶주림이나 내전 등으로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 심사를 사실상 전면 중단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남아공 백인들은 전격 수용했다니, 논란이 거셀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이중잣대라는 비난이 거셉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곧바로 반이민 정책을 내세웠잖아요.

비백인들을 상대로는 문을 걸어 잠그더니 백인들에게는 하늘길을 열어줬다는 건데요.

또 '난민 시스템' 자체가 전쟁이나 굶주림처럼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는데요.

정작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의 신청자는 외면하고 아프리카너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한 건 난민 시스템에도 배치된다는 겁니다.

실제 남아공 사유지의 4분의 3 정도는 아직도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고요.

흑인 다수보다 약 20배 달하는 부를 갖고 있어서 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특히나 통상적으로 몇 년씩 걸리는 난민 지위 인정 절차가 3개월여 만에 이뤄진 점도 논란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어쩌다 보니 이들이 백인일 뿐이라며 별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지난 16일 : "그들이 백인이었을 뿐이에요. 만약 그들이 흑인이었더라도, 저는 똑같은 일을 했을 겁니다."]

[앵커]

어찌 됐든 아프리카너들에게 난민 지위를 줬다는 건 이들이 진짜 위협과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 준 셈이잖아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안 그래도 남아공은 백인들이 남아공에서 박해받거나 차별받지 않는다고 계속 강조해 왔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토지 몰수니, 차별이니 언급을 하니까 양국 관계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로널드 라몰라/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 장관/지난 12일 : "국제적 정의상 이들은 난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남아공으로서는 미국이 자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근거 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자 내정 간섭이라며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남아공 백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편집:구자람 김주은/자료조사:이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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