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지게부대 사연…근현대사 ‘생생’
입력 2025.06.07 (08:28)
수정 2025.06.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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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 특별한 마을 한 곳을 소개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이곳은 정부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1호로 지정한, 의미 깊은 곳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나라 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호국 영웅을 기억하고 평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정미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38선을 지나,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 가운데 한 곳, 연천군 백학면으로 향합니다.
5대째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금가현 관장.
6.25전쟁은 이 마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합니다.
분단 직후 이북 지역이었던 연천은 6.25 전쟁을 거치며 일부만 수복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저 위에 군사분계선이 쭉 보이죠? (이렇게 쭉 내려와 있네요.) 철책 길이가 우리나라 DMZ 중에 가장 길다고 해요, 연천군이. 반은 북한이고 반은 남한이에요."]
백학면은 전쟁의 상흔 넘어, 항일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장이기도 한데요.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 모인 군중들의 독립 만세 시위는 연천의 항일 독립 의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며, 호국영웅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의병장 출신이 많이 계시고 만세운동도 여기서 일어나서 이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고 하죠. 그래서 항상 해마다 기리고 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이곳은 2015년 '호국영웅 계승마을'로 지정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로 백학마을이 보훈부에서 지정받았어요. 지게부대원이나 레클리스가 활약한 그런 마을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요."]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6.25 전쟁땐 치열하 전장이 됐으며 휴전 이후에는 마을 한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둘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던 곳.
이 마을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연들을 지금 함께 찾아 들어보시죠.
백학면은 이웃의 속 사정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정 많은 동네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 따뜻함에 반해 정착한 이들도 적잖은데요.
["남편 분이 군대 생활하시고 여기가 좋아서 눌러 앉아 계셔."]
무엇보다 군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가족의 희생을 존중하는 정신이 마을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최차남/경기도 연천군 : "(어떻게 해서 여기 와서 정착하게 되셨어요?) 시집을 여기로 왔죠. 이 동네로. 와서 (남편이) 35년 동안 군대 생활하고 제대를 했죠. 저희 남편도 호국영웅이에요. 그래서 이 동네에 정착하고, 가고 싶지가 않아요 다른 데로."]
6.25 전쟁 당시, 백학면에선 군인뿐만 아니라 특별한 말도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레클리스가 군마라는 건 잘 아시는데 그 말을 기리려고 만든 카페고."]
카페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주민들이 일손을 보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인 카페.
[권미숙/경기도 연천군 : "(여기서 일하시면 뭐가 좋아요?) 다 좋죠. 나이 먹고 할 일이 있어서 좋고, 건강해서 좋고."]
미 해병대 소속이었던 군마 레클리스는 51차례에 걸쳐 4톤에 달하는 포탄을 전선에 나르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이 레클리스 말이요. 커피를 엄청 좋아했대요. 그리고 맥주 좋아했고, 커피를 좋아해서 작년에 5월 13일에 추모제를 했거든요. 그때도 커피를 이런데다 (담아서 추모했어요)."]
나라를 지킨 것이 말 뿐일리는 없겠죠.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여기는 참전유공자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 고생하신 거 생각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살아야죠. 그 자긍심, 자존심 아주 듬뿍 갖고 있죠."]
호국 정신은 마을 박물관 건립이라는 결실도 맺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줬어요."]
주민과 인근 군부대의 도움으로 마련된 공간.
마을 곳곳에 남아있던 전쟁의 파편들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 지역에 워낙 포탄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이걸 다 전쟁 후에 주워서 다들 고철로도 팔고 했는데, 다 없어지기 전에 고마움을 기리려면 이런 게 있어야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거든요."]
전쟁 당시, 연천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지게로 탄약을 나른 '지게부대'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요.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거는 무슨 훈장이에요?)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서 받은 호국영웅 훈장이에요. (여기 적혀 있네요. 호국영웅.)"]
당시 17살이던 금 관장의 부친도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가다가 내가 살았나 죽었나 보려고 꼬집어 본대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매일 25kg 짐을 등에 지고 나르고 나르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우리가 감사해하면서 사는 게 맞아요."]
근현대사를 관통한 마을의 경험을 자산삼아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호국을 위해 앞장섰던 마을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마을 여기저기서 전후 복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6.25 전쟁 후에 최초로 연합군들이 지어준 집이에요."]
연합군이 지원한 주택 40여 채 덕분에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마치고 평온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쪽에 한 칸, 이쪽에 한 칸이에요. 부엌 한 칸, 방 한 칸, 이런 식으로 있었고 땔감 쓰고 초가로 엮고 흙을 근처에서 주워서 지은 건데..."]
올해에는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잘 보존해서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걸 알릴 필요가 있다."]
호국 영웅 정신을 잇는 데엔,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큰 힘이 됩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작대기 가지고서 저녁이면 근무들 하고 동네를 지키느라고 다 그렇게 했죠."]
전쟁 당시, 지게부대원이었던 최주연 어르신과 수송부대원이었다는 정재금 어르신.
[정재금/6.25 전쟁 참전유공자 : "(뭘 지키고 싶어서 싸웠어요?) 국가를 위해서 싸웠겠지.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 싸웠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당연한 가치를 지켜낸 이들이 남긴 교훈은 하나였습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나라 잃은 설움이야. 전쟁이란 건 있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꼭 하고 싶죠. 전쟁이 나면 애 어른 없이 다 죽으니까 전쟁은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꼭 강조하고 싶죠."]
영웅의 정신을 품고, 평화의 길을 꿈꾸는 사람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통일이 될 때까지 백학마을이 영웅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서 많이 알리고 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하나 된 마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어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 특별한 마을 한 곳을 소개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이곳은 정부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1호로 지정한, 의미 깊은 곳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나라 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호국 영웅을 기억하고 평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정미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38선을 지나,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 가운데 한 곳, 연천군 백학면으로 향합니다.
5대째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금가현 관장.
6.25전쟁은 이 마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합니다.
분단 직후 이북 지역이었던 연천은 6.25 전쟁을 거치며 일부만 수복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저 위에 군사분계선이 쭉 보이죠? (이렇게 쭉 내려와 있네요.) 철책 길이가 우리나라 DMZ 중에 가장 길다고 해요, 연천군이. 반은 북한이고 반은 남한이에요."]
백학면은 전쟁의 상흔 넘어, 항일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장이기도 한데요.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 모인 군중들의 독립 만세 시위는 연천의 항일 독립 의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며, 호국영웅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의병장 출신이 많이 계시고 만세운동도 여기서 일어나서 이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고 하죠. 그래서 항상 해마다 기리고 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이곳은 2015년 '호국영웅 계승마을'로 지정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로 백학마을이 보훈부에서 지정받았어요. 지게부대원이나 레클리스가 활약한 그런 마을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요."]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6.25 전쟁땐 치열하 전장이 됐으며 휴전 이후에는 마을 한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둘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던 곳.
이 마을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연들을 지금 함께 찾아 들어보시죠.
백학면은 이웃의 속 사정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정 많은 동네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 따뜻함에 반해 정착한 이들도 적잖은데요.
["남편 분이 군대 생활하시고 여기가 좋아서 눌러 앉아 계셔."]
무엇보다 군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가족의 희생을 존중하는 정신이 마을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최차남/경기도 연천군 : "(어떻게 해서 여기 와서 정착하게 되셨어요?) 시집을 여기로 왔죠. 이 동네로. 와서 (남편이) 35년 동안 군대 생활하고 제대를 했죠. 저희 남편도 호국영웅이에요. 그래서 이 동네에 정착하고, 가고 싶지가 않아요 다른 데로."]
6.25 전쟁 당시, 백학면에선 군인뿐만 아니라 특별한 말도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레클리스가 군마라는 건 잘 아시는데 그 말을 기리려고 만든 카페고."]
카페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주민들이 일손을 보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인 카페.
[권미숙/경기도 연천군 : "(여기서 일하시면 뭐가 좋아요?) 다 좋죠. 나이 먹고 할 일이 있어서 좋고, 건강해서 좋고."]
미 해병대 소속이었던 군마 레클리스는 51차례에 걸쳐 4톤에 달하는 포탄을 전선에 나르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이 레클리스 말이요. 커피를 엄청 좋아했대요. 그리고 맥주 좋아했고, 커피를 좋아해서 작년에 5월 13일에 추모제를 했거든요. 그때도 커피를 이런데다 (담아서 추모했어요)."]
나라를 지킨 것이 말 뿐일리는 없겠죠.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여기는 참전유공자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 고생하신 거 생각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살아야죠. 그 자긍심, 자존심 아주 듬뿍 갖고 있죠."]
호국 정신은 마을 박물관 건립이라는 결실도 맺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줬어요."]
주민과 인근 군부대의 도움으로 마련된 공간.
마을 곳곳에 남아있던 전쟁의 파편들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 지역에 워낙 포탄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이걸 다 전쟁 후에 주워서 다들 고철로도 팔고 했는데, 다 없어지기 전에 고마움을 기리려면 이런 게 있어야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거든요."]
전쟁 당시, 연천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지게로 탄약을 나른 '지게부대'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요.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거는 무슨 훈장이에요?)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서 받은 호국영웅 훈장이에요. (여기 적혀 있네요. 호국영웅.)"]
당시 17살이던 금 관장의 부친도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가다가 내가 살았나 죽었나 보려고 꼬집어 본대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매일 25kg 짐을 등에 지고 나르고 나르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우리가 감사해하면서 사는 게 맞아요."]
근현대사를 관통한 마을의 경험을 자산삼아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호국을 위해 앞장섰던 마을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마을 여기저기서 전후 복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6.25 전쟁 후에 최초로 연합군들이 지어준 집이에요."]
연합군이 지원한 주택 40여 채 덕분에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마치고 평온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쪽에 한 칸, 이쪽에 한 칸이에요. 부엌 한 칸, 방 한 칸, 이런 식으로 있었고 땔감 쓰고 초가로 엮고 흙을 근처에서 주워서 지은 건데..."]
올해에는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잘 보존해서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걸 알릴 필요가 있다."]
호국 영웅 정신을 잇는 데엔,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큰 힘이 됩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작대기 가지고서 저녁이면 근무들 하고 동네를 지키느라고 다 그렇게 했죠."]
전쟁 당시, 지게부대원이었던 최주연 어르신과 수송부대원이었다는 정재금 어르신.
[정재금/6.25 전쟁 참전유공자 : "(뭘 지키고 싶어서 싸웠어요?) 국가를 위해서 싸웠겠지.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 싸웠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당연한 가치를 지켜낸 이들이 남긴 교훈은 하나였습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나라 잃은 설움이야. 전쟁이란 건 있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꼭 하고 싶죠. 전쟁이 나면 애 어른 없이 다 죽으니까 전쟁은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꼭 강조하고 싶죠."]
영웅의 정신을 품고, 평화의 길을 꿈꾸는 사람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통일이 될 때까지 백학마을이 영웅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서 많이 알리고 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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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6-07 08:28:33
- 수정2025-06-07 08:40:09

[앵커]
어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 특별한 마을 한 곳을 소개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이곳은 정부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1호로 지정한, 의미 깊은 곳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나라 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호국 영웅을 기억하고 평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정미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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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을 지나,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 가운데 한 곳, 연천군 백학면으로 향합니다.
5대째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금가현 관장.
6.25전쟁은 이 마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합니다.
분단 직후 이북 지역이었던 연천은 6.25 전쟁을 거치며 일부만 수복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저 위에 군사분계선이 쭉 보이죠? (이렇게 쭉 내려와 있네요.) 철책 길이가 우리나라 DMZ 중에 가장 길다고 해요, 연천군이. 반은 북한이고 반은 남한이에요."]
백학면은 전쟁의 상흔 넘어, 항일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장이기도 한데요.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 모인 군중들의 독립 만세 시위는 연천의 항일 독립 의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며, 호국영웅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의병장 출신이 많이 계시고 만세운동도 여기서 일어나서 이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고 하죠. 그래서 항상 해마다 기리고 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이곳은 2015년 '호국영웅 계승마을'로 지정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로 백학마을이 보훈부에서 지정받았어요. 지게부대원이나 레클리스가 활약한 그런 마을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요."]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6.25 전쟁땐 치열하 전장이 됐으며 휴전 이후에는 마을 한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둘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던 곳.
이 마을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연들을 지금 함께 찾아 들어보시죠.
백학면은 이웃의 속 사정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정 많은 동네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 따뜻함에 반해 정착한 이들도 적잖은데요.
["남편 분이 군대 생활하시고 여기가 좋아서 눌러 앉아 계셔."]
무엇보다 군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가족의 희생을 존중하는 정신이 마을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최차남/경기도 연천군 : "(어떻게 해서 여기 와서 정착하게 되셨어요?) 시집을 여기로 왔죠. 이 동네로. 와서 (남편이) 35년 동안 군대 생활하고 제대를 했죠. 저희 남편도 호국영웅이에요. 그래서 이 동네에 정착하고, 가고 싶지가 않아요 다른 데로."]
6.25 전쟁 당시, 백학면에선 군인뿐만 아니라 특별한 말도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레클리스가 군마라는 건 잘 아시는데 그 말을 기리려고 만든 카페고."]
카페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주민들이 일손을 보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인 카페.
[권미숙/경기도 연천군 : "(여기서 일하시면 뭐가 좋아요?) 다 좋죠. 나이 먹고 할 일이 있어서 좋고, 건강해서 좋고."]
미 해병대 소속이었던 군마 레클리스는 51차례에 걸쳐 4톤에 달하는 포탄을 전선에 나르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이 레클리스 말이요. 커피를 엄청 좋아했대요. 그리고 맥주 좋아했고, 커피를 좋아해서 작년에 5월 13일에 추모제를 했거든요. 그때도 커피를 이런데다 (담아서 추모했어요)."]
나라를 지킨 것이 말 뿐일리는 없겠죠.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여기는 참전유공자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 고생하신 거 생각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살아야죠. 그 자긍심, 자존심 아주 듬뿍 갖고 있죠."]
호국 정신은 마을 박물관 건립이라는 결실도 맺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줬어요."]
주민과 인근 군부대의 도움으로 마련된 공간.
마을 곳곳에 남아있던 전쟁의 파편들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 지역에 워낙 포탄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이걸 다 전쟁 후에 주워서 다들 고철로도 팔고 했는데, 다 없어지기 전에 고마움을 기리려면 이런 게 있어야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거든요."]
전쟁 당시, 연천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지게로 탄약을 나른 '지게부대'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요.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거는 무슨 훈장이에요?)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서 받은 호국영웅 훈장이에요. (여기 적혀 있네요. 호국영웅.)"]
당시 17살이던 금 관장의 부친도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가다가 내가 살았나 죽었나 보려고 꼬집어 본대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매일 25kg 짐을 등에 지고 나르고 나르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우리가 감사해하면서 사는 게 맞아요."]
근현대사를 관통한 마을의 경험을 자산삼아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호국을 위해 앞장섰던 마을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마을 여기저기서 전후 복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6.25 전쟁 후에 최초로 연합군들이 지어준 집이에요."]
연합군이 지원한 주택 40여 채 덕분에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마치고 평온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쪽에 한 칸, 이쪽에 한 칸이에요. 부엌 한 칸, 방 한 칸, 이런 식으로 있었고 땔감 쓰고 초가로 엮고 흙을 근처에서 주워서 지은 건데..."]
올해에는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잘 보존해서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걸 알릴 필요가 있다."]
호국 영웅 정신을 잇는 데엔,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큰 힘이 됩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작대기 가지고서 저녁이면 근무들 하고 동네를 지키느라고 다 그렇게 했죠."]
전쟁 당시, 지게부대원이었던 최주연 어르신과 수송부대원이었다는 정재금 어르신.
[정재금/6.25 전쟁 참전유공자 : "(뭘 지키고 싶어서 싸웠어요?) 국가를 위해서 싸웠겠지.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 싸웠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당연한 가치를 지켜낸 이들이 남긴 교훈은 하나였습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나라 잃은 설움이야. 전쟁이란 건 있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꼭 하고 싶죠. 전쟁이 나면 애 어른 없이 다 죽으니까 전쟁은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꼭 강조하고 싶죠."]
영웅의 정신을 품고, 평화의 길을 꿈꾸는 사람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통일이 될 때까지 백학마을이 영웅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서 많이 알리고 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하나 된 마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어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 특별한 마을 한 곳을 소개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이곳은 정부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1호로 지정한, 의미 깊은 곳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나라 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호국 영웅을 기억하고 평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정미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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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38선을 지나,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 가운데 한 곳, 연천군 백학면으로 향합니다.
5대째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금가현 관장.
6.25전쟁은 이 마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합니다.
분단 직후 이북 지역이었던 연천은 6.25 전쟁을 거치며 일부만 수복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저 위에 군사분계선이 쭉 보이죠? (이렇게 쭉 내려와 있네요.) 철책 길이가 우리나라 DMZ 중에 가장 길다고 해요, 연천군이. 반은 북한이고 반은 남한이에요."]
백학면은 전쟁의 상흔 넘어, 항일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장이기도 한데요.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 모인 군중들의 독립 만세 시위는 연천의 항일 독립 의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며, 호국영웅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의병장 출신이 많이 계시고 만세운동도 여기서 일어나서 이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고 하죠. 그래서 항상 해마다 기리고 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이곳은 2015년 '호국영웅 계승마을'로 지정됐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로 백학마을이 보훈부에서 지정받았어요. 지게부대원이나 레클리스가 활약한 그런 마을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요."]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6.25 전쟁땐 치열하 전장이 됐으며 휴전 이후에는 마을 한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둘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던 곳.
이 마을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연들을 지금 함께 찾아 들어보시죠.
백학면은 이웃의 속 사정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정 많은 동네이기도 합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 따뜻함에 반해 정착한 이들도 적잖은데요.
["남편 분이 군대 생활하시고 여기가 좋아서 눌러 앉아 계셔."]
무엇보다 군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가족의 희생을 존중하는 정신이 마을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최차남/경기도 연천군 : "(어떻게 해서 여기 와서 정착하게 되셨어요?) 시집을 여기로 왔죠. 이 동네로. 와서 (남편이) 35년 동안 군대 생활하고 제대를 했죠. 저희 남편도 호국영웅이에요. 그래서 이 동네에 정착하고, 가고 싶지가 않아요 다른 데로."]
6.25 전쟁 당시, 백학면에선 군인뿐만 아니라 특별한 말도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레클리스가 군마라는 건 잘 아시는데 그 말을 기리려고 만든 카페고."]
카페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주민들이 일손을 보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인 카페.
[권미숙/경기도 연천군 : "(여기서 일하시면 뭐가 좋아요?) 다 좋죠. 나이 먹고 할 일이 있어서 좋고, 건강해서 좋고."]
미 해병대 소속이었던 군마 레클리스는 51차례에 걸쳐 4톤에 달하는 포탄을 전선에 나르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이 레클리스 말이요. 커피를 엄청 좋아했대요. 그리고 맥주 좋아했고, 커피를 좋아해서 작년에 5월 13일에 추모제를 했거든요. 그때도 커피를 이런데다 (담아서 추모했어요)."]
나라를 지킨 것이 말 뿐일리는 없겠죠.
[남궁금복/경기도 연천군 : "여기는 참전유공자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 고생하신 거 생각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살아야죠. 그 자긍심, 자존심 아주 듬뿍 갖고 있죠."]
호국 정신은 마을 박물관 건립이라는 결실도 맺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줬어요."]
주민과 인근 군부대의 도움으로 마련된 공간.
마을 곳곳에 남아있던 전쟁의 파편들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 지역에 워낙 포탄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이걸 다 전쟁 후에 주워서 다들 고철로도 팔고 했는데, 다 없어지기 전에 고마움을 기리려면 이런 게 있어야겠다 싶어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거든요."]
전쟁 당시, 연천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지게로 탄약을 나른 '지게부대'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요.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거는 무슨 훈장이에요?)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서 받은 호국영웅 훈장이에요. (여기 적혀 있네요. 호국영웅.)"]
당시 17살이던 금 관장의 부친도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가다가 내가 살았나 죽었나 보려고 꼬집어 본대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매일 25kg 짐을 등에 지고 나르고 나르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우리가 감사해하면서 사는 게 맞아요."]
근현대사를 관통한 마을의 경험을 자산삼아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호국을 위해 앞장섰던 마을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합니다.
마을 여기저기서 전후 복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6.25 전쟁 후에 최초로 연합군들이 지어준 집이에요."]
연합군이 지원한 주택 40여 채 덕분에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마치고 평온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이쪽에 한 칸, 이쪽에 한 칸이에요. 부엌 한 칸, 방 한 칸, 이런 식으로 있었고 땔감 쓰고 초가로 엮고 흙을 근처에서 주워서 지은 건데..."]
올해에는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잘 보존해서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걸 알릴 필요가 있다."]
호국 영웅 정신을 잇는 데엔,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큰 힘이 됩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작대기 가지고서 저녁이면 근무들 하고 동네를 지키느라고 다 그렇게 했죠."]
전쟁 당시, 지게부대원이었던 최주연 어르신과 수송부대원이었다는 정재금 어르신.
[정재금/6.25 전쟁 참전유공자 : "(뭘 지키고 싶어서 싸웠어요?) 국가를 위해서 싸웠겠지.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 싸웠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당연한 가치를 지켜낸 이들이 남긴 교훈은 하나였습니다.
[최주연/6.25 전쟁 참전유공자 : "나라 잃은 설움이야. 전쟁이란 건 있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꼭 하고 싶죠. 전쟁이 나면 애 어른 없이 다 죽으니까 전쟁은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꼭 강조하고 싶죠."]
영웅의 정신을 품고, 평화의 길을 꿈꾸는 사람들.
[금가현/백학역사박물관장 :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통일이 될 때까지 백학마을이 영웅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서 많이 알리고 하는데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하나 된 마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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