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밀 장려 5년째…효과와 한계

[앵커]

남현종 아나운서는 밀가루 음식, 좋아하시나요?

맛있게 먹긴 합니다만 혈당이 갑자기 높아진다고 해서 최근에는 안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즘은 건강을 염려해 밀가루를 멀리하는 분들이 많아졌는데요.

반면 북한은 최근 밀가루 소비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주민들의 식생활 문화를 바꾸겠다는 건데, 2021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밀 파종 면적을 2배 이상 늘리라는 지시까지 내렸었죠.

그 지시가 내려진 지도 어느덧 5년 차.

북한은 지금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초여름 볕 아래 누렇게 고개 숙인 밀과 보리.

수확을 앞둔 북한 농민들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분주한데요.

[박철만/오류남새농장 부경리 : "지난해보다 작황이 좋습니다. 농장적으로 평균 본다면 작당 알 수가 33알 내지 36알인데, 우리가 이제 이걸 비배 관리를 잘해서 만수확 한다면 지난해보다 정보당 0.5 내지 0.7톤을 더 증수하게 됩니다."]

산이 많은 자강도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탈곡기와 건조기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권광철/강계농기계공장 지배인 : "우리 공장에서는 밀 탈곡을 제때 보장하기 위해 200여 대의 탈곡기와 낟알 건조기를 우리 도의 실정에 맞게 만들어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북한 매체는 벼 모내기 소식과 함께 밀 농사 관련 보도를 빠뜨리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 : "올해 밀 생산에서도 또다시 통장을 부릴 열의 높이 당면한 밀 비배관리와 가을걷이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밀 농사 확대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아나운서 대독 : "논벼와 밭벼 재배면적을 늘리며 밀, 보리 파종 면적을 2배 이상으로 보장하고..."]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벼와 밀을 주요 농작물로 삼으라고 당부한 김정은 위원장.

같은 해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주민들 주식도 기존의 쌀과 옥수수에서 쌀과 밀가루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아나운서 대독 : "우리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 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는 데로 나라의 농업 생산을 지향시키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을 밝히셨습니다."]

지시가 내려진 지 5년.

일정 부분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4년 북한의 전체 식량작물 생산량은 478만 톤으로 전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밀과 보리 생산은 28만 톤으로 전년 대비 6톤이나 증가했습니다.

이는 밀 보리 재배 면적이 19.3%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권태진/GSJ인스티튜트 시니어이코노미스트 : "두 배 내지 세 배로 늘리라고 했는데 세 배까진 안 되고 두 배 가까이 밀 재배 면적이 늘어났고 생산량도 거의 비슷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단순히 밀 재배가 늘었다는 사실보다,‘왜’ 밀을 늘렸는지에 주목하라고 조언합니다.

가장 큰 배경으로는‘옥수수의 한계’가 꼽히는데요.

옥수수는 반복 재배 시 지력을 크게 소모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비료가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결국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조충희/굿파머스 연구소장 : "밀을 심어야 할 곳은 밀을 심고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쌀도 심어야 하는데 김일성이 밭곡식의 왕은 옥수수다 하니까 다 옥수수만 심었어요. 그 시간에 옥수수 품종도 퇴화했고 땅도 안 좋아지다 보니 옥수수 생산으로는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늘어나는 식량 수요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는 출구 전략으로 밀보리 재배로 전환한 게 잘했다고 평가를 하는 거죠."]

반면 밀은 옥수수에 비해 비료 사용량이 적고,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점도 재배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한편으론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달라진 식품 소비 문화를 의식해 농업 정책을 조정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조충희/굿파머스 연구소장 : "시장이 전국 각지에 다 있고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연결된 상황이기 때문에 지방에서도 밀가루 제품이 많이 퍼져 있고요. 북한 주민들이 소화도 잘 안되고 먹기도 힘들고 가공하기도 힘든 옥수수만 먹는 것보다는 빵도 좀 먹고 맛있는 국수도 먹고 이렇게 식생활 문화를 개선해서 사람다운 인간다운 식생활을 한다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하고요."]

실제로 밀 농사 확대 이후 북한 매체에서는 밀가루 음식에 대한 선전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밀가루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습니다. 특히 뭐 칼제비, 짜장, 우동, 튀김이라든가 지짐, 찐빵, 남새빵 여러 가지로 해 먹습니다."]

["(어떻습니까? 식구들이 좋아합니까?) 예, 아이부터 우리 세대주까지 다 좋아합니다."]

전문가가 등장해 밀가루 음식의 건강성을 강조하며 섭취를 장려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박선복/장철구평양사업대학 교원 : "재배 역사가 오랜 이런 밀에는 당질, 단백질, 기름질, 비타민, 또 광물질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영양소가 아주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밀가루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산량도 많고 또 가공성도 좋은 밀가루로는 우동이라든가 만두, 빵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아주 다양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밀 재배 확대 정책은, 북한의 지방 경제 발전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권태진/GSJ인스티튜트 시니어이코노미스트 : "식품 가공 산업이야말로 지방공업 육성에 가장 핵심적인 산업이고 또 식품 가공산업을 어느 정도 발전시키려면 원료가 확보돼야 하는데 북한이 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밀 재배를 장려하고 특히 주민 입장에서도 밀가루 소비를 늘렸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습니다."]

지방발전 20승 10 정책을 앞세워 전국 곳곳에 공업 공장을 세우고 있는 북한.

그중에서도 특히 식품 가공 공장의 비중이 두드러지는데요.

얼마 전 열린 제품 품평회에서도 밀가루로 만든 가공식품들이 대거 선보였고.

[조선중앙TV : "각 지방 공업공장에서 밀을 주원료로 하는 기초식품과 당과류..."]

전통 발효식품인 된장 역시 최근엔 밀을 활용해 만들고 있습니다.

[김혜옥/평양 기초식품공장 실장 : "밀은 콩보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기 때문에 밀로 만든 된장은 콩된장보다 단맛이 열 배나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에 우리가 만든 밀된장입니다."]

[조충희/굿파머스 연구소장 : "지금 전국 시군마다 하나씩 밀로 된장을 만드는 시설을 다 설치했어요. 전에는 옥수수된장이었거든요. 옥수수된장 드셔보신 분이 아마 대한민국엔 없을 겁니다. 콩된장만 드시니까. 정말 맛이 없어요. 옥수수로 만든 된장이. 그런데 옥수수된장에서 밀된장으로 전환하면서 장맛이 완전히 좋아졌거든요. 이런 실례로 보면 실질적으로 자그마한 변화들은 있고..."]

북한에서 방영 중인 새 드라마에는 밀 농사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이 밭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강냉이 밭이었는데 오늘에 와서 밀밭으로 다시 태어나는구먼."]

["(할머니 이제 앞으로는요 백미 밥에 만문한(말랑한) 빵만 드시게 됩니다. 강낭밥이란 말조차 없어지게 된다니까요.) 와 좋아라. 우리 옥림이 빵 제일 좋아하는데."]

하지만 기대만큼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밀 품종을 보다 우수한 품목으로 전환해야 하고 재배에 필요한 비료와 농자재도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합니다.

[권태진/GSJ인스티튜트 시니어이코노미스트 : "북한에서 재배하고 있는 밀은 자체 육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이나 외부에서 도입된 밀 품종이 많습니다. 그래서 밀 재배 면적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시작했을 때 초기에는 밀 종자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그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이 같은 한계를 의식한 듯 밀 품종 개량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는데요.

[리광혁/황해북도농업과학연구소실장 : "토양 구조학적으로나 기상학적으로 우리 도에서는 밀 재배가 제일 불리한 지역입니다. 우리는 이 밀 지역에서 높고 안전한 소출을 낼 수 있는 밀 품종을 육종하자 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육종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독자적 기술력만으로는 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남북 협력을 통한 품종 개발과 농업 기술 교류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조충희/굿파머스 연구소장 : "러시아도 있고 중국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한국에서 재배되는 밀 품종들을 가져가면 북한이 진짜 땅 짚고 헤엄친다고 볼 수 있거든요. 밀 농사에서. 이미 한국의 전문가들이 상당한 정도로 노력해서 우리 풍토에 맞는 밀 종자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걸 그냥 가져다가 심으면 되는데 이것을 잘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요."]

‘옥수수 대신 밀’이라는 정책이 현실화된 지 어느덧 5년차.

실제로 재배 면적은 늘었고, 가공식품부터 장류까지 밀 중심의 소비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종의 한계, 농자재 부족 등 과제도 적지 않은데요.

보다 실질적인 정책 실행은 물론, 남북 간 기술 교류 협력이 절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