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새 단장 임진각…망향의 한 53년

입력 2025.06.21 (08:35) 수정 2025.06.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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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1번 국도, 그리고 경의선 철도가 멈춘 곳에서 50년 넘게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파주 임진각입니다.

철조망 너머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과 분단의 현장을 배우려는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죠.

임진각이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관광객들을 맞기 시작했는데요.

이곳을 50년 동안 지켜온 산증인을 만나 봤습니다.

임진각에 깊게 새겨 있는 분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 정미정 리포터와 함께 살펴보시죠.

[리포트]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길.

길가에 세워진 철조망이 분단의 경계를 말없이 드러냅니다.

임진각은 끊어진 다리 아래,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곁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분단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캐시/미국인 : "지금까지 여행에서 배운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남북이 어떻게 분단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도 인상 깊었어요."]

분단 80년간 응어리진 실향의 아픔이 임진강에 가로막혀 멈춰 서는 곳입니다.

묵묵히 애끓는 현실을 지켜봐 왔던 임진각이 새 단장을 마치고 평화의 상징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곳, 임진각은 어떤 시간을 거쳐왔을까요.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1972년 그동안 대치하던 남북 정부가 대화를 해서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 평화선언이겠죠. 일종의 그걸 했던 그해에."]

그 역사는 남북이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해에 시작됐다고 합니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선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이 처음으로 천명됐습니다.

[이후락/중앙정보부장/1972년 : "쌍방은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이 발표 이후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랠 공간으로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지점에 세운 것이 바로 임진각입니다.

["임진각 다시 평화를 담다, 1972년 이래."]

1985년에는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계기로 망배단이 세워졌고, 지금껏 이북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최근 2년 동안엔 리모델링 공사도 했는데요, 새롭게 단장한 임진각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축소된 판문점 디오라마(모형)가 있고요. DMZ 사진관, 평화 체험시설,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노약자 등이 관광할 수 있도록 그런 시설도 만들어졌고요."]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철책 너머 북녘땅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진짜 잘 보인다.) 왼쪽에는 도라산역까지 가는 철도 길로 새로 만들어진 임진강을 건너가는 (길입니다)."]

한 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약 300만 명.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진각을 찾고 있습니다.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관광 명소, 평화 명소, 대화의 장소,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 또 실향민한테는 마음의 고향, 이런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슬픔은 철조망에만 깃든 것이 아닙니다. 반세기 넘도록 이곳을 지켜온 한 사진가의 기억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1972년부터 한결같이 임진각을 지켜온 한 사람.

명예 지킴이 정성춘 씨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임진각에 오게 되시게 된 거예요?) 저요, 1972년도. 26살 때부터."]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여기서 망향 사진가로 시작했어요. 옛날에 별명이 있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라고 매일 365일 다 나왔어."]

정성춘 지킴이의 안내에 따라 전쟁 전 남북을 잇던 경의선 철교 ‘독개다리’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민통선이죠."]

냉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근대 유산으로 꼽히는 독개다리는 흔히 자유의 다리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저 건너에 독개마을이라고 있었대요. 그러니까 그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이름을 지은 거예요."]

1953년 전쟁 중 포로가 된 1만 2천여 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이 다리를 통해 귀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의선이 지나던 이곳은 한반도 교통의 중심축이었다는데요.

["여기 보면 개성까지 21km, 평양, 신의주, 베이징, 베를린 다 이어져 있다는 거잖아요."]

이곳에 서면 다섯 살 어린 시절, 지척에 둔 고향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합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내가 어렸을 때 자란 고향이 바로 보여요. 저 건너 저게 장단이에요. 나룻배 타고 이리 건너와서 전쟁 때니까 길에서 막 잤어요."]

시시때때로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분단의 역사를 풀어내는 정성춘 지킴이.

[김기한/관광객 :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궁금하시겠지. 저 산등성이 너머가 판문점인데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거기에 있어요. 한번 넘어가면 못 온다."]

알기 쉬운 설명에 관광객들의 궁금증이 쏙쏙 풀립니다.

[문광복/관광객 : "설명을 잘해 주시네, 임진각 지킴이가 말씀을 잘 해주셔서 귀에 쏙쏙 들어와요."]

짧지만 따뜻했던 인연이 냉전의 현장에 온기를 퍼뜨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실향민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로 시작해 지금은 관광객을 안내하고 임진각 곳곳을 정리하며, 묵묵히 실향의 한을 달래고 있습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관광객들이 오면 모르는 거 지금 같이 알려 주고 그리고 또 주변 관리 청소, 실향민 이산가족을 상대로 사진 촬영을 해드리면서 통일이 될 때까지 여기서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거야."]

정성춘 지킴이는 2009년부터는 임진각에서 작은 기념품 가게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한쪽 녹슨 벽에 걸린 사진들이 눈길을 끕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고향을 그리다 그리다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잖아. 그러니까 여기 임진각에 와서 사진으로라도 고향 쪽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가족들이 오는 거야 여기를."]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시 한 편에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앙상한 가지 위에 엄마 잃은 외로운 새, 먼 산만 바라보며 말없이 울고 있네. 어둠은 짙어 오고 찬바람만 불어오네. 우리 엄마 어디 있나 눈물지며 기다리네."]

부서진 증기기관차를 지키는 명예 역장이자 임진각 명예 지킴이로 살아온 53년의 세월.

그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철조망 위 리본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재훈/관광객 : "그래도 이제는 좀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해서 협력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북한도 잘 되고 우리나라도 잘 되고요."]

누군가는 임진각 너머로 발걸음이 향할 날을 기다려보는데요.

[이석인/여행 가이드 :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개성도 가고 싶고, 판문점도 가고 싶고, 그리고 급기야 평양도 가고 싶고."]

이들의 바람 속에 임진각을 지켜온 한 사람 역시 간절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내가 나이가 더 먹기 전에 꼭 이산가족이 서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고 통일이 된다 하는 그런 걸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오늘도 철조망 너머로 손을 맞잡는 순간을 함께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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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새 단장 임진각…망향의 한 53년
    • 입력 2025-06-21 08:35:27
    • 수정2025-06-21 08: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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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1번 국도, 그리고 경의선 철도가 멈춘 곳에서 50년 넘게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파주 임진각입니다.

철조망 너머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과 분단의 현장을 배우려는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죠.

임진각이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관광객들을 맞기 시작했는데요.

이곳을 50년 동안 지켜온 산증인을 만나 봤습니다.

임진각에 깊게 새겨 있는 분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 정미정 리포터와 함께 살펴보시죠.

[리포트]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길.

길가에 세워진 철조망이 분단의 경계를 말없이 드러냅니다.

임진각은 끊어진 다리 아래,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곁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분단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캐시/미국인 : "지금까지 여행에서 배운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남북이 어떻게 분단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도 인상 깊었어요."]

분단 80년간 응어리진 실향의 아픔이 임진강에 가로막혀 멈춰 서는 곳입니다.

묵묵히 애끓는 현실을 지켜봐 왔던 임진각이 새 단장을 마치고 평화의 상징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곳, 임진각은 어떤 시간을 거쳐왔을까요.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1972년 그동안 대치하던 남북 정부가 대화를 해서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 평화선언이겠죠. 일종의 그걸 했던 그해에."]

그 역사는 남북이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해에 시작됐다고 합니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선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이 처음으로 천명됐습니다.

[이후락/중앙정보부장/1972년 : "쌍방은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이 발표 이후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랠 공간으로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지점에 세운 것이 바로 임진각입니다.

["임진각 다시 평화를 담다, 1972년 이래."]

1985년에는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계기로 망배단이 세워졌고, 지금껏 이북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최근 2년 동안엔 리모델링 공사도 했는데요, 새롭게 단장한 임진각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축소된 판문점 디오라마(모형)가 있고요. DMZ 사진관, 평화 체험시설,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노약자 등이 관광할 수 있도록 그런 시설도 만들어졌고요."]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철책 너머 북녘땅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진짜 잘 보인다.) 왼쪽에는 도라산역까지 가는 철도 길로 새로 만들어진 임진강을 건너가는 (길입니다)."]

한 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약 300만 명.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진각을 찾고 있습니다.

[조원용/경기관광공사 사장 : "관광 명소, 평화 명소, 대화의 장소,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 또 실향민한테는 마음의 고향, 이런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슬픔은 철조망에만 깃든 것이 아닙니다. 반세기 넘도록 이곳을 지켜온 한 사진가의 기억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1972년부터 한결같이 임진각을 지켜온 한 사람.

명예 지킴이 정성춘 씨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임진각에 오게 되시게 된 거예요?) 저요, 1972년도. 26살 때부터."]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여기서 망향 사진가로 시작했어요. 옛날에 별명이 있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라고 매일 365일 다 나왔어."]

정성춘 지킴이의 안내에 따라 전쟁 전 남북을 잇던 경의선 철교 ‘독개다리’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민통선이죠."]

냉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근대 유산으로 꼽히는 독개다리는 흔히 자유의 다리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저 건너에 독개마을이라고 있었대요. 그러니까 그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이름을 지은 거예요."]

1953년 전쟁 중 포로가 된 1만 2천여 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이 다리를 통해 귀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의선이 지나던 이곳은 한반도 교통의 중심축이었다는데요.

["여기 보면 개성까지 21km, 평양, 신의주, 베이징, 베를린 다 이어져 있다는 거잖아요."]

이곳에 서면 다섯 살 어린 시절, 지척에 둔 고향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합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내가 어렸을 때 자란 고향이 바로 보여요. 저 건너 저게 장단이에요. 나룻배 타고 이리 건너와서 전쟁 때니까 길에서 막 잤어요."]

시시때때로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분단의 역사를 풀어내는 정성춘 지킴이.

[김기한/관광객 :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궁금하시겠지. 저 산등성이 너머가 판문점인데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거기에 있어요. 한번 넘어가면 못 온다."]

알기 쉬운 설명에 관광객들의 궁금증이 쏙쏙 풀립니다.

[문광복/관광객 : "설명을 잘해 주시네, 임진각 지킴이가 말씀을 잘 해주셔서 귀에 쏙쏙 들어와요."]

짧지만 따뜻했던 인연이 냉전의 현장에 온기를 퍼뜨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실향민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로 시작해 지금은 관광객을 안내하고 임진각 곳곳을 정리하며, 묵묵히 실향의 한을 달래고 있습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관광객들이 오면 모르는 거 지금 같이 알려 주고 그리고 또 주변 관리 청소, 실향민 이산가족을 상대로 사진 촬영을 해드리면서 통일이 될 때까지 여기서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거야."]

정성춘 지킴이는 2009년부터는 임진각에서 작은 기념품 가게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한쪽 녹슨 벽에 걸린 사진들이 눈길을 끕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고향을 그리다 그리다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잖아. 그러니까 여기 임진각에 와서 사진으로라도 고향 쪽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가족들이 오는 거야 여기를."]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시 한 편에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앙상한 가지 위에 엄마 잃은 외로운 새, 먼 산만 바라보며 말없이 울고 있네. 어둠은 짙어 오고 찬바람만 불어오네. 우리 엄마 어디 있나 눈물지며 기다리네."]

부서진 증기기관차를 지키는 명예 역장이자 임진각 명예 지킴이로 살아온 53년의 세월.

그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철조망 위 리본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재훈/관광객 : "그래도 이제는 좀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해서 협력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북한도 잘 되고 우리나라도 잘 되고요."]

누군가는 임진각 너머로 발걸음이 향할 날을 기다려보는데요.

[이석인/여행 가이드 :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개성도 가고 싶고, 판문점도 가고 싶고, 그리고 급기야 평양도 가고 싶고."]

이들의 바람 속에 임진각을 지켜온 한 사람 역시 간절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정성춘/임진각 명예 지킴이 : "내가 나이가 더 먹기 전에 꼭 이산가족이 서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고 통일이 된다 하는 그런 걸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오늘도 철조망 너머로 손을 맞잡는 순간을 함께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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