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항일 독립운동의 선봉…애국지사 문양목의 귀환
입력 2025.08.06 (19:30)
수정 2025.08.0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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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씨앗을 틔운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의 행적을 짚어보겠습니다.
광복을 맞기 전에 생을 마감한 선생의 유해가, 광복절을 즈음해 12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보도에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양이를 품에 앉은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성.
미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입니다.
태안 출신인 문양목 지사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뒤 동학군이 패전하고 을사늑약까지 체결되자 1905년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한인 사회가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은 뒤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한인 기관지인 대동공보 발행인을 맡았습니다.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 한 발언을 신문에 기고하자, 시정 요구를 했고,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벌이자 재판 후원회를 결성해 구명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수연/문양목기념사업회 상임이사 : "두 의사의 석방 운동을 위해서 재판(후원) 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여러모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석방 운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선생이 후원한 스티븐스 처단사건은 국내 의병전쟁의 활성화와 독립 의열투쟁을 고취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후에도 국어학교를 세우고 군인을 양성하는 등 1940년 서거할 때까지 오직 애국충정으로 재미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이끄는 데 헌신했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에 남긴 선생의 족적은 20여 년 전부터 고향 땅 태안에서 매년 추모제를 통해 기려지고 있습니다.
1995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지만, 해방된 조국땅에 묻어달라는 선생의 간절한 유언은 이제야 겨우 빛을 보게 됐습니다.
[임해환/문양목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돌아가시면서 꼭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많은 한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고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문양목기념사업회와 정부는 유해 봉환을 위해 수년간 유족과 미국 주 정부를 설득했고, 광복 80주년, 뜻깊은 해를 맞아 해방된 조국 땅으로 120년 만에 돌아와 영면에 들게 됩니다.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씨앗을 틔운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의 행적을 짚어보겠습니다.
광복을 맞기 전에 생을 마감한 선생의 유해가, 광복절을 즈음해 12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보도에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양이를 품에 앉은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성.
미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입니다.
태안 출신인 문양목 지사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뒤 동학군이 패전하고 을사늑약까지 체결되자 1905년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한인 사회가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은 뒤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한인 기관지인 대동공보 발행인을 맡았습니다.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 한 발언을 신문에 기고하자, 시정 요구를 했고,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벌이자 재판 후원회를 결성해 구명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수연/문양목기념사업회 상임이사 : "두 의사의 석방 운동을 위해서 재판(후원) 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여러모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석방 운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선생이 후원한 스티븐스 처단사건은 국내 의병전쟁의 활성화와 독립 의열투쟁을 고취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후에도 국어학교를 세우고 군인을 양성하는 등 1940년 서거할 때까지 오직 애국충정으로 재미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이끄는 데 헌신했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에 남긴 선생의 족적은 20여 년 전부터 고향 땅 태안에서 매년 추모제를 통해 기려지고 있습니다.
1995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지만, 해방된 조국땅에 묻어달라는 선생의 간절한 유언은 이제야 겨우 빛을 보게 됐습니다.
[임해환/문양목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돌아가시면서 꼭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많은 한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고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문양목기념사업회와 정부는 유해 봉환을 위해 수년간 유족과 미국 주 정부를 설득했고, 광복 80주년, 뜻깊은 해를 맞아 해방된 조국 땅으로 120년 만에 돌아와 영면에 들게 됩니다.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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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06 19: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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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씨앗을 틔운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의 행적을 짚어보겠습니다.
광복을 맞기 전에 생을 마감한 선생의 유해가, 광복절을 즈음해 12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보도에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양이를 품에 앉은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성.
미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입니다.
태안 출신인 문양목 지사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뒤 동학군이 패전하고 을사늑약까지 체결되자 1905년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한인 사회가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은 뒤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한인 기관지인 대동공보 발행인을 맡았습니다.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 한 발언을 신문에 기고하자, 시정 요구를 했고,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벌이자 재판 후원회를 결성해 구명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수연/문양목기념사업회 상임이사 : "두 의사의 석방 운동을 위해서 재판(후원) 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여러모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석방 운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선생이 후원한 스티븐스 처단사건은 국내 의병전쟁의 활성화와 독립 의열투쟁을 고취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후에도 국어학교를 세우고 군인을 양성하는 등 1940년 서거할 때까지 오직 애국충정으로 재미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이끄는 데 헌신했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에 남긴 선생의 족적은 20여 년 전부터 고향 땅 태안에서 매년 추모제를 통해 기려지고 있습니다.
1995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지만, 해방된 조국땅에 묻어달라는 선생의 간절한 유언은 이제야 겨우 빛을 보게 됐습니다.
[임해환/문양목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돌아가시면서 꼭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많은 한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고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문양목기념사업회와 정부는 유해 봉환을 위해 수년간 유족과 미국 주 정부를 설득했고, 광복 80주년, 뜻깊은 해를 맞아 해방된 조국 땅으로 120년 만에 돌아와 영면에 들게 됩니다.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씨앗을 틔운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의 행적을 짚어보겠습니다.
광복을 맞기 전에 생을 마감한 선생의 유해가, 광복절을 즈음해 12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보도에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양이를 품에 앉은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성.
미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문양목 선생입니다.
태안 출신인 문양목 지사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뒤 동학군이 패전하고 을사늑약까지 체결되자 1905년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한인 사회가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은 뒤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한인 기관지인 대동공보 발행인을 맡았습니다.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 한 발언을 신문에 기고하자, 시정 요구를 했고,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벌이자 재판 후원회를 결성해 구명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수연/문양목기념사업회 상임이사 : "두 의사의 석방 운동을 위해서 재판(후원) 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여러모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석방 운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선생이 후원한 스티븐스 처단사건은 국내 의병전쟁의 활성화와 독립 의열투쟁을 고취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후에도 국어학교를 세우고 군인을 양성하는 등 1940년 서거할 때까지 오직 애국충정으로 재미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이끄는 데 헌신했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에 남긴 선생의 족적은 20여 년 전부터 고향 땅 태안에서 매년 추모제를 통해 기려지고 있습니다.
1995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지만, 해방된 조국땅에 묻어달라는 선생의 간절한 유언은 이제야 겨우 빛을 보게 됐습니다.
[임해환/문양목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돌아가시면서 꼭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많은 한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고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문양목기념사업회와 정부는 유해 봉환을 위해 수년간 유족과 미국 주 정부를 설득했고, 광복 80주년, 뜻깊은 해를 맞아 해방된 조국 땅으로 120년 만에 돌아와 영면에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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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강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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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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