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침수와의 전쟁

입력 2006.02.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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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수상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백 년 안에 도시가 수몰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공업화와 도시 개발이 이뤄지면서 천년 이상 이어져온 수상 도시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와 이에 따른 바다 생태계 변화가 베네치아에 어떤 재앙을 가져다 주었는지 이충형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탈리아 베네치아만의 물 위에 건설된 아름다운 도시.

운하를 따라 백여 개의 섬들이 다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자연에 도전해서 만든 도시는 그러나, 요즘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듯 도시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부두가에 성난 파도가 밀려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베네치아 중심부, 산마르코 광장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됐습니다.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던 야외 레스토랑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인터뷰> 실비아 : "주민들은 대피할 준비를 해야 하고 장화를 신어야 합니다."

수로를 역류한 바닷물은 폭포수처럼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도시는 빠른 속도로 물에 잠깁니다.

500개에 이르는 이같은 수로가 도시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길이 물에 잠기면서 도시 기능 전체가 마비됐습니다.

<인터뷰> 마텔로 : "베네치아가 마비됩니다. 교통이 정지되고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상점마다 물이 들이닥쳐 물건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양수기로 연신 물을 퍼내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인터뷰> : 차사레 자니니(상인) : "장사를 할수 없습니다. 물이 바깥에 차있으니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합니다."

때아닌 물난리가 관광객들에게는 신기해 보이지만 주민들에겐 고통 그 자체입니다.

<인터뷰> 실비아(주민) :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집에서 침대, 카페 같은게 부서집니다."

대여섯 시간뒤 물은 모두 빠져나가지만 도시는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수로와 맞닿은 건물 곳곳에 뻥뻥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위는 수시로 오르내립니다.

바닷물이 범람해 도시에 스며들면 지반이 약해지고 결국엔 제방에 균열이 생기면서 지반이 붕괴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지반의 석조 구조물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현관 계단이 완전히 물에 잠겨 출입이 폐쇄된 건물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스테파노(곤돌라 운전사) : "바닷물의 염분이 가장 큰 피해를 줍니다. 건물 밑은 물론이고 건물 바깥에도 2,3년마다 한번씩 밖아주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유서깊은 문화 유적들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도심 성당의 종탑.

종탑을 받치는 지반이 약해지면서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염분으로 인한 건물 부식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레스토랑에는 어른 허리 높이만큼 염분이 올라왔습니다.

<녹취> 엘리자(레스토랑 주인) : " 짜요. 소금입니다. 맛보세요. 바다소금입니다."

벽마다 허옇게 결정체로 굳어진 소금이 손을 대면 툭툭 떨어져 나갑니다.

베네치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은 지금부터 천 5백년 전부터.

외적의 침입에 쫓긴 피란민들이 바다 위에 세운 도시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묘사된 것 처럼 한때 해상 무역으로 지중해를 제패한 유럽 최강의 공화국이었습니다.

이런 베네치아 주변에 1950년 대부터 공업 지대가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습지에 토대를 올려 공장을 만들면서 도시 주변의 지반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수십대씩 드나드는 대형 유조선들은 바닥을 침식해 유속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마르첼로(베네치아 연합회장) : "유조선이 들어올 때마다 생태계가 변화합니다. 조개들까지도 해안쪽으로 딸려들어오게 됩니다. 근처에 있는 식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공장과 유조선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 오염 물질은 수중 식물들을 고사시켰습니다.

베네치아 주변의 드넓은 갯벌.

갈대숲으로 이뤄진 늪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주변 갯벌 면적이 백년전보다 반 이상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높아진 바닷물에 토사가 쓸려나가면서 주변 섬들의 면적도 점점 줄어들고 아예 사라진 섬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아쿠아 알타'

'높은 물'이란 뜻의 해수면 상승 현상은 지난 1966년부터 본격화됐습니다.

3년전부터는 물에 잠기는 날이 한해에 백 일을 넘어섰습니다.

아쿠아 알타는 베네치아 주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단지 생활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 시내의 식료품점과 빵집, 이발소 등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이 20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20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이제 6만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베네치아 주민) : "살기가 힘들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곳으로 나갑니다. 생활비도 비싸고 물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광객은 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 사이 관광객은 열배가 늘어나 한해 천 5백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습니다.

<인터뷰> 모니카(베네치아 연합회) : ㄴ"최근 15년동안 베네치아는 많은 주민이 줄었습니다. 이젠 경제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오직 관광객을 위한 경제만 존재합니다."

사정이 이렇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를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베네치아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입구는 3곳.

모두 45억 유로를 투입해 바닷물을 막는 대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방파제를 쌓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곳이 바로 베니스로 바닷물이 흘러들어가는 길목입니다. 이 길목을 사이에 두고 바다 양쪽 끝에서 해저 지반을 다지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모세 프로젝트.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본딴 이 프로젝트는 2011년 완공됩니다.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질때마다 70여개에 이르는 이동식 장벽을 세워 도시를 보호한다는 야심찬 계획.

이동식 장벽은 평소 바닷속에 누워 있습니다.

바닷물의 수위가 1미터 이상 높아지면 장벽이 올라가고 수위가 낮아지면 내려 갑니다.

<인터뷰> 암브로지니(공사 책임자) : "성공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난 20년동안 이 장애물을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부사상이 정의됐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는 거셉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고작 일시적인 미봉책을 마련할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인터뷰> 리니오 브 루로메소(수상연구소장) : "최근들어 우리에게 많은 잘못이 있습니다. 물과 근접한 지역에는 여러가지 건축물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천년 이상 사람이 살아온 베네치아는 인류가 보존해야할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백년 뒤 관광객들은 곤돌라가 아니라 잠수함을 타고 도시를 둘러볼지도 모릅니다.

환경을 파괴한 인간이 부른 자연의 재앙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지금 인간에게 준엄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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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침수와의 전쟁
    • 입력 2006-02-17 11:13:4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수상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백 년 안에 도시가 수몰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공업화와 도시 개발이 이뤄지면서 천년 이상 이어져온 수상 도시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와 이에 따른 바다 생태계 변화가 베네치아에 어떤 재앙을 가져다 주었는지 이충형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탈리아 베네치아만의 물 위에 건설된 아름다운 도시. 운하를 따라 백여 개의 섬들이 다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자연에 도전해서 만든 도시는 그러나, 요즘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듯 도시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부두가에 성난 파도가 밀려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베네치아 중심부, 산마르코 광장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됐습니다.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던 야외 레스토랑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인터뷰> 실비아 : "주민들은 대피할 준비를 해야 하고 장화를 신어야 합니다." 수로를 역류한 바닷물은 폭포수처럼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바닷물이 범람하면서 도시는 빠른 속도로 물에 잠깁니다. 500개에 이르는 이같은 수로가 도시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길이 물에 잠기면서 도시 기능 전체가 마비됐습니다. <인터뷰> 마텔로 : "베네치아가 마비됩니다. 교통이 정지되고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상점마다 물이 들이닥쳐 물건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양수기로 연신 물을 퍼내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인터뷰> : 차사레 자니니(상인) : "장사를 할수 없습니다. 물이 바깥에 차있으니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합니다." 때아닌 물난리가 관광객들에게는 신기해 보이지만 주민들에겐 고통 그 자체입니다. <인터뷰> 실비아(주민) :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집에서 침대, 카페 같은게 부서집니다." 대여섯 시간뒤 물은 모두 빠져나가지만 도시는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수로와 맞닿은 건물 곳곳에 뻥뻥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위는 수시로 오르내립니다. 바닷물이 범람해 도시에 스며들면 지반이 약해지고 결국엔 제방에 균열이 생기면서 지반이 붕괴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지반의 석조 구조물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현관 계단이 완전히 물에 잠겨 출입이 폐쇄된 건물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스테파노(곤돌라 운전사) : "바닷물의 염분이 가장 큰 피해를 줍니다. 건물 밑은 물론이고 건물 바깥에도 2,3년마다 한번씩 밖아주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유서깊은 문화 유적들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도심 성당의 종탑. 종탑을 받치는 지반이 약해지면서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염분으로 인한 건물 부식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레스토랑에는 어른 허리 높이만큼 염분이 올라왔습니다. <녹취> 엘리자(레스토랑 주인) : " 짜요. 소금입니다. 맛보세요. 바다소금입니다." 벽마다 허옇게 결정체로 굳어진 소금이 손을 대면 툭툭 떨어져 나갑니다. 베네치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은 지금부터 천 5백년 전부터. 외적의 침입에 쫓긴 피란민들이 바다 위에 세운 도시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묘사된 것 처럼 한때 해상 무역으로 지중해를 제패한 유럽 최강의 공화국이었습니다. 이런 베네치아 주변에 1950년 대부터 공업 지대가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습지에 토대를 올려 공장을 만들면서 도시 주변의 지반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수십대씩 드나드는 대형 유조선들은 바닥을 침식해 유속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마르첼로(베네치아 연합회장) : "유조선이 들어올 때마다 생태계가 변화합니다. 조개들까지도 해안쪽으로 딸려들어오게 됩니다. 근처에 있는 식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공장과 유조선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 오염 물질은 수중 식물들을 고사시켰습니다. 베네치아 주변의 드넓은 갯벌. 갈대숲으로 이뤄진 늪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주변 갯벌 면적이 백년전보다 반 이상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높아진 바닷물에 토사가 쓸려나가면서 주변 섬들의 면적도 점점 줄어들고 아예 사라진 섬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아쿠아 알타' '높은 물'이란 뜻의 해수면 상승 현상은 지난 1966년부터 본격화됐습니다. 3년전부터는 물에 잠기는 날이 한해에 백 일을 넘어섰습니다. 아쿠아 알타는 베네치아 주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단지 생활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 시내의 식료품점과 빵집, 이발소 등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이 20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20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이제 6만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베네치아 주민) : "살기가 힘들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곳으로 나갑니다. 생활비도 비싸고 물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광객은 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 사이 관광객은 열배가 늘어나 한해 천 5백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습니다. <인터뷰> 모니카(베네치아 연합회) : ㄴ"최근 15년동안 베네치아는 많은 주민이 줄었습니다. 이젠 경제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오직 관광객을 위한 경제만 존재합니다." 사정이 이렇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를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베네치아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입구는 3곳. 모두 45억 유로를 투입해 바닷물을 막는 대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방파제를 쌓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곳이 바로 베니스로 바닷물이 흘러들어가는 길목입니다. 이 길목을 사이에 두고 바다 양쪽 끝에서 해저 지반을 다지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모세 프로젝트.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본딴 이 프로젝트는 2011년 완공됩니다.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질때마다 70여개에 이르는 이동식 장벽을 세워 도시를 보호한다는 야심찬 계획. 이동식 장벽은 평소 바닷속에 누워 있습니다. 바닷물의 수위가 1미터 이상 높아지면 장벽이 올라가고 수위가 낮아지면 내려 갑니다. <인터뷰> 암브로지니(공사 책임자) : "성공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난 20년동안 이 장애물을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부사상이 정의됐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는 거셉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고작 일시적인 미봉책을 마련할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인터뷰> 리니오 브 루로메소(수상연구소장) : "최근들어 우리에게 많은 잘못이 있습니다. 물과 근접한 지역에는 여러가지 건축물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천년 이상 사람이 살아온 베네치아는 인류가 보존해야할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백년 뒤 관광객들은 곤돌라가 아니라 잠수함을 타고 도시를 둘러볼지도 모릅니다. 환경을 파괴한 인간이 부른 자연의 재앙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지금 인간에게 준엄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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