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 못 풀고 떠나는 위안부 할머니
입력 2006.02.22 (08:32)
수정 2006.02.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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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두리 할머니가 며칠전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증인들은 하나둘씩 사망해 이제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보도에 선재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두리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추모객들이 몰렸습니다.
박 할머니는 17살이던 1940년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타이완으로 끌려간 뒤 5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잦은 폭력과 구타로 생긴 척추 질환과 난청으로 평생 고통을 겪다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 일본 대사관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던 박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의 싸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98년 시모노세키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비록 2심에선 패소했지만 시모노세키 판결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전무후무한 판결입니다.
<인터뷰>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의 사죄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 7,80대로 지난해에만 1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윤순녀 : "할머니들이 일생 동안 바라고 염원하시던 게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채 눈감아 죄송스럽고..."
불행한 역사에 휩쓸려 비참한 생애를 보낸 이들이 끝내 한을 풀지 못한 채 꽃처럼 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두리 할머니가 며칠전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증인들은 하나둘씩 사망해 이제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보도에 선재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두리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추모객들이 몰렸습니다.
박 할머니는 17살이던 1940년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타이완으로 끌려간 뒤 5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잦은 폭력과 구타로 생긴 척추 질환과 난청으로 평생 고통을 겪다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 일본 대사관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던 박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의 싸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98년 시모노세키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비록 2심에선 패소했지만 시모노세키 판결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전무후무한 판결입니다.
<인터뷰>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의 사죄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 7,80대로 지난해에만 1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윤순녀 : "할머니들이 일생 동안 바라고 염원하시던 게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채 눈감아 죄송스럽고..."
불행한 역사에 휩쓸려 비참한 생애를 보낸 이들이 끝내 한을 풀지 못한 채 꽃처럼 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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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06-02-22 09: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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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두리 할머니가 며칠전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증인들은 하나둘씩 사망해 이제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보도에 선재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두리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추모객들이 몰렸습니다.
박 할머니는 17살이던 1940년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타이완으로 끌려간 뒤 5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잦은 폭력과 구타로 생긴 척추 질환과 난청으로 평생 고통을 겪다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 일본 대사관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던 박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의 싸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98년 시모노세키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비록 2심에선 패소했지만 시모노세키 판결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전무후무한 판결입니다.
<인터뷰> 하나후사 에미코 : "일본의 사죄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부분 7,80대로 지난해에만 1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생존자는 110여 명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윤순녀 : "할머니들이 일생 동안 바라고 염원하시던 게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채 눈감아 죄송스럽고..."
불행한 역사에 휩쓸려 비참한 생애를 보낸 이들이 끝내 한을 풀지 못한 채 꽃처럼 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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