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 난민

입력 2006.02.24 (14:56) 수정 2006.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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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에 복속된 티베트의 난민들이 매 년 수 천 명씩 목숨을 건 탈출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의 탄압을 피해, 또 자유를 찾아서 험준한 에베레스트와 중국 공안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인근 네팔과 인도로 넘어오고 있는 것인데요. 티베트 난민들의 처절한 삶을 김철우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발 4천 미터의 티베트 고원에 위치한 세계의 지붕 '티베트'. 청명한 자연 속에서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자라고.. 티베트 불교가 번성했던 신비의 땅입니다. 그러나, 지난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침공해 6천 여 개의 불교 사원을 파괴했고, 전체 인구의 1/6인 12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지 반세기가 넘은 오늘도 티베트인들은 의사 표현과 종교의 자유 등 기본권이 철저히 제한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몸부림. 한해 4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 이윱니다. 네팔 카트만두의 티베트 난민 수용소.

3층 건물인 수용소 난간에는 점심 식사를 마친 티베트 난민들이 촘촘히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탈출하면서 갖고 온 짐들은 미처 풀지도 못한 채 수용소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수용소 앞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식사를 하거나,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합니다. 3백명의 불법 입국자들이 머물고 있는 이곳 티베트 난민 수용소에서는 임시 비자 등을 발급해 주고 있습니다.

취재진의 방문에 경계의 눈길을 감추지 않던 난민들은 결국 수용소 내부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티베트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서슬퍼런 중국 정부의 탄압을 우려한 것입니다.

티베트 난민들의 탈출 경로는 크게 두곳. 네팔 국경선을 통과한 뒤 인도를 목적지로 향하거나, 곧바로 인도 국경선을 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인도 국경 수비가 강화돼 대부분의 티베트 망명자들은 네팔 국경선을 탈출 경로로 이용합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티베트인들은 해발 5200미터 정도되는 에베레스트 오른쪽의 낙마빠쓰 쪽으로 많이 넘어옵니다. 야크 동물에 물건을 싣고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오죠."

네팔 국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네팔인 가이드의 길 안내가 필수... 길 안내에 대한 대가로 40-50만원을 지불하지만, 이 돈이 티베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진 않습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예전엔 난민들이 총을 맞아 많이 죽었어요. 최근엔 단속에 걸리면 투옥되는데 여러해 옥살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감옥에서 많이 죽어요."

티베트 난민들이 제일 많이 탈출하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산악 지역에 눈이 덮이면 중국 군인들이 티베트 난민들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는 티베트 망명객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티베트 난민들을 데려올때는 남녀 노소 상관없이 돈이 있고 걸을 수만 있으면 데려옵니다. 오다가 병에 걸려 쓰러지거나 죽으면 그 시체를 땅에 묻어놓고 나머지 사람들은 넘어옵니다."

티베트 난민들이 탈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 문제 때문입니다. 의학 공부를 위해 티베트 탈출을 결심한 뗌바씨는 보름을 꼬박 걸어 히말라야 국경선을 넘었습니다. 티베트 본토에서는 의학 공부는커녕 티베트 말과 역사마저도 제대로 배울 수 없어 무작정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를 억압하는 중국 공산당의 압제를 피해 영하 30도의 추위를 뚫고 망명한 티베트 승려들도 많습니다.

<인터뷰>씨링 : "이번에 만명 정도가 넘어왔어요. 여권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교육을 받은 뒤 티베트로 다시 돌아가기도 합니다."

티베트 난민수용 센터는 이곳 네팔의 카트만두와 인도의 델리, 그리고 맥클로드 간즈 등 세지역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티베트 난민들은 이곳 네팔 난민수용센터에 도착해 입국 허가를 받고나면 델리를 거쳐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맥클로드 간즈의 수용센터에 수용돼 망명정부에 신고를 합니다.

네팔에 거주하는 티베트 난민들의 수입원은 수공예 카페트 판매입니다. 티베트를 탈출한 뒤 50년 넘게 망명객 생활을 하고있는 직공부터 네팔 땅에서 태어난 이민 2-3세까지 카페트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일손이 바쁜 와중에도 중국 정부에 대한 증오감을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인터뷰>뻐쪄시(티베트 난민) : "중국 사람들이 싫어요. 우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죽이고 우리 땅을 빼앗았어요."

그러나, 이들의 하나같은 소원은 티베트로의 귀향입니다.

<인터뷰>떠시(티베트 난민) : "티베트에 정말 가고 싶은데 비자가 나오지 않네요."

<인터뷰>졸마(티베트 난민) : "(티베트에 돌아가고 싶지않아요?) 내일이 될 지 내년이 될 지 잘 모르지만 꼭 갈겁니다."

티베트를 탈출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도를 최종 목적지로 선택합니다.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고, 교육 여건이나 직장을 구하는 것 모두 인도가 낫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티베트 난민들의 체류 장소는 먼저 밀입국한 이른바 선배들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생활에 대한 편의를 제공받고 인도 정착에 필요한 방법을 전수 받습니다.

지난 1996년 6살 또래의 친구들 스무명과 함께 인도로 넘어온 캘숭군...

<녹취> "저기 있는 물건 좀 가져오고 이 물건은 정리해라!/알겠습니다."

델리의 티베트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학비를 벌기위해 티베트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캘숭(티베트 난민) : "인도에 공부하러 왔어요.영어도 배우고 자류롭게 생활하려고 왔어요.(티베트 난민 수용소가 어디죠?)저쪽 안에 있어요."

델리에 있는 티베트 난민 수용소는 항상 만원입니다. 취재진은 티베트에서 인도 국경선을 직접 넘어온 20여 명의 티베트인들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바가(티베트 난민) : "인도에 넘어오면서 비자도 없고 말도 안통해서 초소를 지날 때마다 돈을 많이 줬어요. 국경 수비대가 오토바이를 타고 자꾸 쫓아와서 돈을 요구했어요. 우리 돈으로 25만원씩 줬어요."

이들 일행에는 일생에 한번 달라이라마를 보고 싶어 70 평생 살았던 티베트 고향 땅을 떠난 님마씨 부부도 포함돼 있습니다.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가득 담아 무게가 3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새롭게 시작한 타향 생활.. 자유와 희망을 찾기위해 선택한 망명 생활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인터뷰>님마(티베트 난민) : "정말 힘들게 국경선을 넘어 왔어요. 있어요? 달라이 라마 법회를 보러왔는데 벌써 마음이 설레요."

티베트인들의 탈출행렬이 매년 이어지면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조직적인 저항도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지난해 12월 한 티베트 청년단체가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델리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습격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현수막과 티베트 깃발을 든 시위대가 급습하기도 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중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티베트는 빠른 속도로 중국화와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한족이 티베트로 이주하고 한자 교육과 역사 왜곡 등으로 중국의 한 자치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중국화 속도와 비례해 자유와 희망, 티베트 고유 문화를 지키려는 티베트 사람들의 탈출 행렬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발 6천미터의 험준한 히말라야 설원과 삼엄한 중국 공안의 경비도 결코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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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 난민
    • 입력 2006-02-24 10:59:43
    • 수정2006-02-27 10:43:2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에 복속된 티베트의 난민들이 매 년 수 천 명씩 목숨을 건 탈출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의 탄압을 피해, 또 자유를 찾아서 험준한 에베레스트와 중국 공안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인근 네팔과 인도로 넘어오고 있는 것인데요. 티베트 난민들의 처절한 삶을 김철우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발 4천 미터의 티베트 고원에 위치한 세계의 지붕 '티베트'. 청명한 자연 속에서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자라고.. 티베트 불교가 번성했던 신비의 땅입니다. 그러나, 지난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침공해 6천 여 개의 불교 사원을 파괴했고, 전체 인구의 1/6인 12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지 반세기가 넘은 오늘도 티베트인들은 의사 표현과 종교의 자유 등 기본권이 철저히 제한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몸부림. 한해 4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 이윱니다. 네팔 카트만두의 티베트 난민 수용소. 3층 건물인 수용소 난간에는 점심 식사를 마친 티베트 난민들이 촘촘히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탈출하면서 갖고 온 짐들은 미처 풀지도 못한 채 수용소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수용소 앞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식사를 하거나,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합니다. 3백명의 불법 입국자들이 머물고 있는 이곳 티베트 난민 수용소에서는 임시 비자 등을 발급해 주고 있습니다. 취재진의 방문에 경계의 눈길을 감추지 않던 난민들은 결국 수용소 내부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티베트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서슬퍼런 중국 정부의 탄압을 우려한 것입니다. 티베트 난민들의 탈출 경로는 크게 두곳. 네팔 국경선을 통과한 뒤 인도를 목적지로 향하거나, 곧바로 인도 국경선을 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인도 국경 수비가 강화돼 대부분의 티베트 망명자들은 네팔 국경선을 탈출 경로로 이용합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티베트인들은 해발 5200미터 정도되는 에베레스트 오른쪽의 낙마빠쓰 쪽으로 많이 넘어옵니다. 야크 동물에 물건을 싣고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오죠." 네팔 국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네팔인 가이드의 길 안내가 필수... 길 안내에 대한 대가로 40-50만원을 지불하지만, 이 돈이 티베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진 않습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예전엔 난민들이 총을 맞아 많이 죽었어요. 최근엔 단속에 걸리면 투옥되는데 여러해 옥살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감옥에서 많이 죽어요." 티베트 난민들이 제일 많이 탈출하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산악 지역에 눈이 덮이면 중국 군인들이 티베트 난민들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는 티베트 망명객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인터뷰>네팔인 가이드 : "티베트 난민들을 데려올때는 남녀 노소 상관없이 돈이 있고 걸을 수만 있으면 데려옵니다. 오다가 병에 걸려 쓰러지거나 죽으면 그 시체를 땅에 묻어놓고 나머지 사람들은 넘어옵니다." 티베트 난민들이 탈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 문제 때문입니다. 의학 공부를 위해 티베트 탈출을 결심한 뗌바씨는 보름을 꼬박 걸어 히말라야 국경선을 넘었습니다. 티베트 본토에서는 의학 공부는커녕 티베트 말과 역사마저도 제대로 배울 수 없어 무작정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를 억압하는 중국 공산당의 압제를 피해 영하 30도의 추위를 뚫고 망명한 티베트 승려들도 많습니다. <인터뷰>씨링 : "이번에 만명 정도가 넘어왔어요. 여권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교육을 받은 뒤 티베트로 다시 돌아가기도 합니다." 티베트 난민수용 센터는 이곳 네팔의 카트만두와 인도의 델리, 그리고 맥클로드 간즈 등 세지역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티베트 난민들은 이곳 네팔 난민수용센터에 도착해 입국 허가를 받고나면 델리를 거쳐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맥클로드 간즈의 수용센터에 수용돼 망명정부에 신고를 합니다. 네팔에 거주하는 티베트 난민들의 수입원은 수공예 카페트 판매입니다. 티베트를 탈출한 뒤 50년 넘게 망명객 생활을 하고있는 직공부터 네팔 땅에서 태어난 이민 2-3세까지 카페트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일손이 바쁜 와중에도 중국 정부에 대한 증오감을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인터뷰>뻐쪄시(티베트 난민) : "중국 사람들이 싫어요. 우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죽이고 우리 땅을 빼앗았어요." 그러나, 이들의 하나같은 소원은 티베트로의 귀향입니다. <인터뷰>떠시(티베트 난민) : "티베트에 정말 가고 싶은데 비자가 나오지 않네요." <인터뷰>졸마(티베트 난민) : "(티베트에 돌아가고 싶지않아요?) 내일이 될 지 내년이 될 지 잘 모르지만 꼭 갈겁니다." 티베트를 탈출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도를 최종 목적지로 선택합니다.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고, 교육 여건이나 직장을 구하는 것 모두 인도가 낫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티베트 난민들의 체류 장소는 먼저 밀입국한 이른바 선배들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생활에 대한 편의를 제공받고 인도 정착에 필요한 방법을 전수 받습니다. 지난 1996년 6살 또래의 친구들 스무명과 함께 인도로 넘어온 캘숭군... <녹취> "저기 있는 물건 좀 가져오고 이 물건은 정리해라!/알겠습니다." 델리의 티베트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학비를 벌기위해 티베트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캘숭(티베트 난민) : "인도에 공부하러 왔어요.영어도 배우고 자류롭게 생활하려고 왔어요.(티베트 난민 수용소가 어디죠?)저쪽 안에 있어요." 델리에 있는 티베트 난민 수용소는 항상 만원입니다. 취재진은 티베트에서 인도 국경선을 직접 넘어온 20여 명의 티베트인들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바가(티베트 난민) : "인도에 넘어오면서 비자도 없고 말도 안통해서 초소를 지날 때마다 돈을 많이 줬어요. 국경 수비대가 오토바이를 타고 자꾸 쫓아와서 돈을 요구했어요. 우리 돈으로 25만원씩 줬어요." 이들 일행에는 일생에 한번 달라이라마를 보고 싶어 70 평생 살았던 티베트 고향 땅을 떠난 님마씨 부부도 포함돼 있습니다.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가득 담아 무게가 3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새롭게 시작한 타향 생활.. 자유와 희망을 찾기위해 선택한 망명 생활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인터뷰>님마(티베트 난민) : "정말 힘들게 국경선을 넘어 왔어요. 있어요? 달라이 라마 법회를 보러왔는데 벌써 마음이 설레요." 티베트인들의 탈출행렬이 매년 이어지면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조직적인 저항도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지난해 12월 한 티베트 청년단체가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델리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습격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현수막과 티베트 깃발을 든 시위대가 급습하기도 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중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티베트는 빠른 속도로 중국화와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한족이 티베트로 이주하고 한자 교육과 역사 왜곡 등으로 중국의 한 자치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중국화 속도와 비례해 자유와 희망, 티베트 고유 문화를 지키려는 티베트 사람들의 탈출 행렬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발 6천미터의 험준한 히말라야 설원과 삼엄한 중국 공안의 경비도 결코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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