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녹는다

입력 2006.02.24 (14:56) 수정 2006.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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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앞에서 전해드린 필리핀 산사태, 지구 온난화와 산림 남벌이 가져온 재앙이었습니다만 지구촌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산, 킬리만자로의 경우가 특히 상징적인데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뒤덮고 있던 그야말로 만년설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면서 인류에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용태영 특파원이 해발 5895미터의 킬리만자로를 등정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눈 덮인 산, 빛나는 산이란 뜻을 가진 킬리만자로는 적도에서 볼 수 있는 만년설로 유명합니다. 해마다 2만여 명의 등반객이 아프리카 최고봉에 도전합니다.

산자락 아래에는 열대의 울창한 숲이 펼쳐집니다. 빽빽한 나무들로 가려진 하늘 아래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해발 2800미터 부근에서 울창한 숲은 키가 작은 관목지대로 바뀝니다.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독특한 식물 군락을 볼 수 있는 것도 킬리만자로의 매력입니다.

<인터뷰>클라크(등반객) : "여기는 내가 오른 곳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구름 높이까지 왔죠. 정말 멋있어요."

등산로를 따라 킬리만자로에만 서식하는 아름다운 화초들이 피어있습니다.

<인터뷰>등반객 : "이 꽃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여기에만 있는 독특한 꽃들이죠. 대부분 꽃이 여기서만 자라죠."

등반에 필요한 음식과 장비는 포터들이 운반합니다. 20킬로그램에 이르는 짐을 머리에 이고 산을 오릅니다.

<녹취>"(괜찮아요?) 예 (무겁지 않아요?) 괜찮아요."

정상까지 등반은 통상 5박6일의 긴 여정입니다.

<녹취>클로베리(등반객) : "산의 빙하가 녹는다는 걸 들었지요. 지금까지 이미 많이 녹았는데 20년 안에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빙하를 보고 싶었어요."

황량한 갈색 벌판 위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가 장관을 이룹니다. 해발 4천 미터부터는 고산 사막지대가 펼쳐집니다. 한 때 정상 전체를 둘러쌌던 빙하, 그러나 이제는 일부만 남았습니다.

<인터뷰>로가드(등반 안내인) : "15년 전에는 빙하가 산의 1/4을 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빙하가 녹아서 단지 두 곳에만 남아 있습니다. (느낌이 어떤가요?) 매우 슬프지요. 15년쯤 뒤면 아마 빙하가 모두 사라질 겁니다. 산을 보러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죠."

빙하가 급속하게 녹으면서 산의 지형도 변하고 있습니다. 한 때 등산로였던 곳이 지금은 계곡이 됐습니다.

<인터뷰>로가드(등반 안내인) : "10년 전에는 여기가 마웬지 산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단단한 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예 물길이 돼버렸어요."

정상 바로 옆, 마웬지 봉의 빙하는 이제 모두 녹아 사라졌고 간간이 내리는 눈만 한 때 쌓였다가 녹을 뿐입니다.

해발 4천 미터부터는 부족한 산소 때문에 고산증이 나타납니다. '폴레 폴레'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올라갑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기온도 영하로 떨어집니다.

정상을 향한 등반은 새벽 0시부터 시작됩니다. 3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로, 고산증과 피로 때문에 통상 등반객의 절반가량이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구름 위로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일출은 킬리만자로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새벽 햇살을 받은 정상의 빙하가 붉은색으로 물듭니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은 직경 2.5킬로미터의 분화구입니다. 과거에는 분화구 전체가 빙하로 덮였지만 지금은 검은색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빙하 바로 옆에서는 미국 오하이오대학 톰슨 박사팀의 연구가 한창입니다. 톰슨 박사는 5년 전 킬리만자로 빙하의 운명에 대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 오하이오대학) : "2000년 2월에 당시 빙벽 바로 앞 여기에 이 표지를 심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빙벽이 있었죠. 그러니까 2000년부터 지금까지 빙벽이 얼마나 뒤로 후퇴했는지 알 수 있죠. 가장자리가 1년에 1미터 가량 축소하고 있습니다."

50미터에 이르는 빙벽도 해마다 0.5미터씩 높이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국 오하이오대학) : "첫 번째 빙하지도는 191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에 우리가 두 번째 지도를 만들었고 올해 새 지도를 만들 겁니다. 이 지도들에 근거해 보면 1912년 이후로 빙하의 82%가 녹았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 전에 빙하가 모두 사라질 겁니다."

킬리만자로 빙하의 역사는 만 2천 년, 만년 넘게 쌓인 눈이 불과 백 년 사이에 모두 사라지는 셈입니다. 지난 93년과 2000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통해 얼마나 빨리 빙하가 사라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빙벽 가장자리 곳곳에는 금이 가 있고 수시로 얼음 덩어리가 깨져 내립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닙니다.

빙하에는 지구 기후의 역사가 그대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쪽 검은 띠는 8천년 전, 위에 있는 검은 띠는 4천 년 전 지구 대 가뭄 때 쌓인 먼지층입니다. 톰슨박사팀은 5년 전 킬리만자로의 빙하를 채굴해 얼음 속에 기록된 기후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국 오하이오대학) : "4200년 전 대 가뭄 때도 여기 빙하는 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녹고 있습니다. 그게 다른 점이죠. 지금은 가뭄뿐만 아니라 온난화까지 겹쳤습니다. 그런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서 빙하를 녹게 하고 있죠"

빙하가 사라지면 그 속에 담긴 지구의 역사 기록도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산에서 빙하가 녹는 동안 아래서는 계속된 가뭄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때 농지였던 들판에 이제는 거센 먼지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수년째 강수량이 줄어들어 가축들이 먹을 풀조차 사라져갑니다.

<인터뷰>농부 : "우리는 농작물에 의존하고 삽니다. 그런데 비가 전혀 오지 않아요. 이젠 생활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인터뷰>농부 : "전능한 신밖에 없습니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농토를 잃은 사람들은 산의 나무를 베어 팔거나 화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브라이언(탄자니아 관광업) : "사람들은 장작 말고는 취사 수단이 없어요. 가스도, 기름도 없지요. 그래서 계속 나무를 베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습니다. 비가 안 오지요."

숲이 줄어들수록 사막화도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킬리만자로 한쪽에서는 조용히 눈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적도의 만년설,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게 보내는 자연의 말 없는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만 2천 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굽어보면서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로 다음 세대는 지금 저렇게 조금 남아 있는 빙하마저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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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녹는다
    • 입력 2006-02-24 11:03:51
    • 수정2006-02-27 10:43:2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앞에서 전해드린 필리핀 산사태, 지구 온난화와 산림 남벌이 가져온 재앙이었습니다만 지구촌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산, 킬리만자로의 경우가 특히 상징적인데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뒤덮고 있던 그야말로 만년설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면서 인류에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용태영 특파원이 해발 5895미터의 킬리만자로를 등정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눈 덮인 산, 빛나는 산이란 뜻을 가진 킬리만자로는 적도에서 볼 수 있는 만년설로 유명합니다. 해마다 2만여 명의 등반객이 아프리카 최고봉에 도전합니다. 산자락 아래에는 열대의 울창한 숲이 펼쳐집니다. 빽빽한 나무들로 가려진 하늘 아래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해발 2800미터 부근에서 울창한 숲은 키가 작은 관목지대로 바뀝니다.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독특한 식물 군락을 볼 수 있는 것도 킬리만자로의 매력입니다. <인터뷰>클라크(등반객) : "여기는 내가 오른 곳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구름 높이까지 왔죠. 정말 멋있어요." 등산로를 따라 킬리만자로에만 서식하는 아름다운 화초들이 피어있습니다. <인터뷰>등반객 : "이 꽃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여기에만 있는 독특한 꽃들이죠. 대부분 꽃이 여기서만 자라죠." 등반에 필요한 음식과 장비는 포터들이 운반합니다. 20킬로그램에 이르는 짐을 머리에 이고 산을 오릅니다. <녹취>"(괜찮아요?) 예 (무겁지 않아요?) 괜찮아요." 정상까지 등반은 통상 5박6일의 긴 여정입니다. <녹취>클로베리(등반객) : "산의 빙하가 녹는다는 걸 들었지요. 지금까지 이미 많이 녹았는데 20년 안에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빙하를 보고 싶었어요." 황량한 갈색 벌판 위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가 장관을 이룹니다. 해발 4천 미터부터는 고산 사막지대가 펼쳐집니다. 한 때 정상 전체를 둘러쌌던 빙하, 그러나 이제는 일부만 남았습니다. <인터뷰>로가드(등반 안내인) : "15년 전에는 빙하가 산의 1/4을 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빙하가 녹아서 단지 두 곳에만 남아 있습니다. (느낌이 어떤가요?) 매우 슬프지요. 15년쯤 뒤면 아마 빙하가 모두 사라질 겁니다. 산을 보러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죠." 빙하가 급속하게 녹으면서 산의 지형도 변하고 있습니다. 한 때 등산로였던 곳이 지금은 계곡이 됐습니다. <인터뷰>로가드(등반 안내인) : "10년 전에는 여기가 마웬지 산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단단한 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예 물길이 돼버렸어요." 정상 바로 옆, 마웬지 봉의 빙하는 이제 모두 녹아 사라졌고 간간이 내리는 눈만 한 때 쌓였다가 녹을 뿐입니다. 해발 4천 미터부터는 부족한 산소 때문에 고산증이 나타납니다. '폴레 폴레'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올라갑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기온도 영하로 떨어집니다. 정상을 향한 등반은 새벽 0시부터 시작됩니다. 3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로, 고산증과 피로 때문에 통상 등반객의 절반가량이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구름 위로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일출은 킬리만자로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새벽 햇살을 받은 정상의 빙하가 붉은색으로 물듭니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은 직경 2.5킬로미터의 분화구입니다. 과거에는 분화구 전체가 빙하로 덮였지만 지금은 검은색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빙하 바로 옆에서는 미국 오하이오대학 톰슨 박사팀의 연구가 한창입니다. 톰슨 박사는 5년 전 킬리만자로 빙하의 운명에 대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 오하이오대학) : "2000년 2월에 당시 빙벽 바로 앞 여기에 이 표지를 심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빙벽이 있었죠. 그러니까 2000년부터 지금까지 빙벽이 얼마나 뒤로 후퇴했는지 알 수 있죠. 가장자리가 1년에 1미터 가량 축소하고 있습니다." 50미터에 이르는 빙벽도 해마다 0.5미터씩 높이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국 오하이오대학) : "첫 번째 빙하지도는 191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에 우리가 두 번째 지도를 만들었고 올해 새 지도를 만들 겁니다. 이 지도들에 근거해 보면 1912년 이후로 빙하의 82%가 녹았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 전에 빙하가 모두 사라질 겁니다." 킬리만자로 빙하의 역사는 만 2천 년, 만년 넘게 쌓인 눈이 불과 백 년 사이에 모두 사라지는 셈입니다. 지난 93년과 2000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통해 얼마나 빨리 빙하가 사라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빙벽 가장자리 곳곳에는 금이 가 있고 수시로 얼음 덩어리가 깨져 내립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닙니다. 빙하에는 지구 기후의 역사가 그대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쪽 검은 띠는 8천년 전, 위에 있는 검은 띠는 4천 년 전 지구 대 가뭄 때 쌓인 먼지층입니다. 톰슨박사팀은 5년 전 킬리만자로의 빙하를 채굴해 얼음 속에 기록된 기후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인터뷰>톰슨박사(미국 오하이오대학) : "4200년 전 대 가뭄 때도 여기 빙하는 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녹고 있습니다. 그게 다른 점이죠. 지금은 가뭄뿐만 아니라 온난화까지 겹쳤습니다. 그런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서 빙하를 녹게 하고 있죠" 빙하가 사라지면 그 속에 담긴 지구의 역사 기록도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산에서 빙하가 녹는 동안 아래서는 계속된 가뭄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때 농지였던 들판에 이제는 거센 먼지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수년째 강수량이 줄어들어 가축들이 먹을 풀조차 사라져갑니다. <인터뷰>농부 : "우리는 농작물에 의존하고 삽니다. 그런데 비가 전혀 오지 않아요. 이젠 생활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인터뷰>농부 : "전능한 신밖에 없습니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농토를 잃은 사람들은 산의 나무를 베어 팔거나 화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브라이언(탄자니아 관광업) : "사람들은 장작 말고는 취사 수단이 없어요. 가스도, 기름도 없지요. 그래서 계속 나무를 베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습니다. 비가 안 오지요." 숲이 줄어들수록 사막화도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킬리만자로 한쪽에서는 조용히 눈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적도의 만년설,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게 보내는 자연의 말 없는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만 2천 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굽어보면서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로 다음 세대는 지금 저렇게 조금 남아 있는 빙하마저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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