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리장, 지진이 준 선물

입력 2006.02.24 (14:56) 수정 2006.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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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지진, 그러나 이런 지진으로 인해 발전을 이룩한 특이한 지역이 있습니다. 중국 남부 윈난성 오지에 자리한 소도시 리장이 바로 그 곳인데요.

10년 전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서 지금은 연간 4백 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장한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해발 5600미터의 옥룡설산(玉龍雪山). 알프스의 풍광을 닮았습니다. 옥룡설산의 만년설 녹은 물이 지하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솟아올라 아름다운 호수 흑룡담이 생겨났습니다.

맑고 시린 흑룡담의 물이 흘러 닿는 곳. 송나라 때부터 형성됐다는 천년 고도 '리장 고성(麗江 古城) '입니다. 거미줄 같은 수로가 사방으로 이어지고, 수로를 따라 카페와 레스토랑이 촘촘히 자리잡았습니다.

<인터뷰>루파(이스라엘 관광객) : "리장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람들도 매우 좋습니다."

<인터뷰>쉬징한(지린성 관광객) :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천국 같습니다.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 건축물들도 독특하고요..."

기품있는 전통 기와집에 천년의 세월이 담겨있는 돌 길, 미로처럼 복잡한 수백 개의 골목. 모든 게 볼거립니다. 리장 고성 내부의 한 작은 골목입니다. 각종 선물가게들이 이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고 세계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캐티 디머리(미국 관광객) : "이곳 사람 자체가 중요한 볼거리이고, 보기 드물게 개성적이고 잘 보존된 고대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소수민족의 삶의 모습과 은제품을 비롯한 전통 공예품, 옛 방식 그대로인 공예품 제조 장면 등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합니다. 리장의 공예품마다 이곳 특유의 역사와 신화가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녠사요강(리장 주민) : "이 둘은 가장 먼저 알에서 부화된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셈이죠. 인류는 모두 이 두 사람이 퍼뜨린 후손이라는 얘깁니다."

해발 2천 4백미터의 고원분지에서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 나시족. 이들은 일찌감치 상공업에 눈을 떠 중국과 인도,동남아를 잇는 교역 루트를 발전시켰습니다. 말을 탄 각지의 대상들이 몰려들면서 리장 사람 모두가 기와집에 살 정도로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렸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화려한 선율... 부유했던 나시족은 마을마다 이 같은 전통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근세 이후 말을 이용한 교역이 쇠퇴하면서 리장은 퇴락했고 잊혀진 도시가 됐습니다.

리장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6년 2월 발생한 규모 7의 초대형 지진 때문입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집안에 있던 저녁 식사시간이어서 피해가 컸습니다.

사망자 293명, 중상 3천 7백명에다 많은 건물이 붕괴돼 재산 피해도 막심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지진은 어제 일처럼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인터뷰>허쿤린(리장 주민) : "아주 무서웠습니다. 순식간에 기와가 부서지고 집이 무너지고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습니다."

지은지 80년 된 자오광시우 노인의 집에서도 강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기둥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주춧돌 중심에서 어긋나 있습니다. 기와가 쏟아지고 흙벽이 무너졌지만 기둥을 비롯한 기본 골조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목조 건축물인 탓에 지진의 강한 충격을 잘 흡수한 것입니다. 특히 기둥과 대들보를 사개맞춤식으로 결합한 전통 건축양식이 내진 설계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인터뷰>자오광시우(리장 주민) : "(목재가)단단히 결합돼 매우 견고합니다. 일단 건물이 완성되면 96년과 같은 7급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목재끼리)상호 버팀 작용을 하기 때문에 붕괴되지 않습니다."

외곽의 신도시 지역이 폐허로 바뀐데 반해 기와집이 밀집한 고성 내부는 피해가 작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쨌든 큰 재앙이었지만 리장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지진이 준 유명세를 발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옛 건축물이 강진에 잘 견딘 점을 강조해 고성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킨 것은 리장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습니다. 산중에 천년 고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자 순식간에 유명 관광지로 부상했습니다.

<인터뷰>장원인(리장시 선전실 주임) : "지진이 발전의 기회가 됐습니다. 나시족 민족정신이 충분히 발휘됐습니다."

지진 발생 10년이 지난 오늘 리장은 밤낮 구분 없이 떠들썩한 관광지로 바뀌었습니다. 강강수월래와 비슷한 나시족의 원형군무는 여행객을 유혹하고...

수만 개의 붉은 등과 맑은 하천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하천변 레스토랑에선 전통 민요가 울려 퍼집니다.

<인터뷰>리후이(관광객) : "물가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식사를 하기는 처음입니다. 음식 맛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인터뷰>리용광(관광객) : "기분이 좋아요.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리장 사람들 정말 열정적입니다."

장이모 감독의 천리주단기를 비롯, 영화와 TV드라마의 무대로 부상한 리장.. 지난해 400여만 명에 이어 올해는 약 5OO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통 기와집들은 객잔, 즉 여관 문패를 달고 관광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천 곳이 넘는 객잔이 성업 중입니다.

<인터뷰>왕이(객잔 종업원) : "방이 15개 있는데 요즘 장사가 잘 됩니다. 보통 하루에 10여 명이 투숙합니다."

지난해 관광수입은 우리 돈 4900억원. 30만 시민 한 사람당 160만원 꼴로 리장은 관광수입만으로도 중국의 평균 GDP를 훌쩍 넘어섭니다. 최근 리장시는 지진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지금의 번영이 지진의 참사를 딛고 일어선 결과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입니다.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 중국 제1의 관광명소로 발전한 리장, 재난마저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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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리장, 지진이 준 선물
    • 입력 2006-02-24 11:08:19
    • 수정2006-02-27 10:43:2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지진, 그러나 이런 지진으로 인해 발전을 이룩한 특이한 지역이 있습니다. 중국 남부 윈난성 오지에 자리한 소도시 리장이 바로 그 곳인데요. 10년 전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서 지금은 연간 4백 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장한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해발 5600미터의 옥룡설산(玉龍雪山). 알프스의 풍광을 닮았습니다. 옥룡설산의 만년설 녹은 물이 지하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솟아올라 아름다운 호수 흑룡담이 생겨났습니다. 맑고 시린 흑룡담의 물이 흘러 닿는 곳. 송나라 때부터 형성됐다는 천년 고도 '리장 고성(麗江 古城) '입니다. 거미줄 같은 수로가 사방으로 이어지고, 수로를 따라 카페와 레스토랑이 촘촘히 자리잡았습니다. <인터뷰>루파(이스라엘 관광객) : "리장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람들도 매우 좋습니다." <인터뷰>쉬징한(지린성 관광객) :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천국 같습니다.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 건축물들도 독특하고요..." 기품있는 전통 기와집에 천년의 세월이 담겨있는 돌 길, 미로처럼 복잡한 수백 개의 골목. 모든 게 볼거립니다. 리장 고성 내부의 한 작은 골목입니다. 각종 선물가게들이 이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고 세계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캐티 디머리(미국 관광객) : "이곳 사람 자체가 중요한 볼거리이고, 보기 드물게 개성적이고 잘 보존된 고대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소수민족의 삶의 모습과 은제품을 비롯한 전통 공예품, 옛 방식 그대로인 공예품 제조 장면 등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합니다. 리장의 공예품마다 이곳 특유의 역사와 신화가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녠사요강(리장 주민) : "이 둘은 가장 먼저 알에서 부화된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셈이죠. 인류는 모두 이 두 사람이 퍼뜨린 후손이라는 얘깁니다." 해발 2천 4백미터의 고원분지에서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 나시족. 이들은 일찌감치 상공업에 눈을 떠 중국과 인도,동남아를 잇는 교역 루트를 발전시켰습니다. 말을 탄 각지의 대상들이 몰려들면서 리장 사람 모두가 기와집에 살 정도로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렸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화려한 선율... 부유했던 나시족은 마을마다 이 같은 전통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근세 이후 말을 이용한 교역이 쇠퇴하면서 리장은 퇴락했고 잊혀진 도시가 됐습니다. 리장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6년 2월 발생한 규모 7의 초대형 지진 때문입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집안에 있던 저녁 식사시간이어서 피해가 컸습니다. 사망자 293명, 중상 3천 7백명에다 많은 건물이 붕괴돼 재산 피해도 막심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지진은 어제 일처럼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인터뷰>허쿤린(리장 주민) : "아주 무서웠습니다. 순식간에 기와가 부서지고 집이 무너지고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습니다." 지은지 80년 된 자오광시우 노인의 집에서도 강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기둥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주춧돌 중심에서 어긋나 있습니다. 기와가 쏟아지고 흙벽이 무너졌지만 기둥을 비롯한 기본 골조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목조 건축물인 탓에 지진의 강한 충격을 잘 흡수한 것입니다. 특히 기둥과 대들보를 사개맞춤식으로 결합한 전통 건축양식이 내진 설계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인터뷰>자오광시우(리장 주민) : "(목재가)단단히 결합돼 매우 견고합니다. 일단 건물이 완성되면 96년과 같은 7급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목재끼리)상호 버팀 작용을 하기 때문에 붕괴되지 않습니다." 외곽의 신도시 지역이 폐허로 바뀐데 반해 기와집이 밀집한 고성 내부는 피해가 작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쨌든 큰 재앙이었지만 리장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지진이 준 유명세를 발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옛 건축물이 강진에 잘 견딘 점을 강조해 고성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킨 것은 리장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습니다. 산중에 천년 고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자 순식간에 유명 관광지로 부상했습니다. <인터뷰>장원인(리장시 선전실 주임) : "지진이 발전의 기회가 됐습니다. 나시족 민족정신이 충분히 발휘됐습니다." 지진 발생 10년이 지난 오늘 리장은 밤낮 구분 없이 떠들썩한 관광지로 바뀌었습니다. 강강수월래와 비슷한 나시족의 원형군무는 여행객을 유혹하고... 수만 개의 붉은 등과 맑은 하천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하천변 레스토랑에선 전통 민요가 울려 퍼집니다. <인터뷰>리후이(관광객) : "물가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식사를 하기는 처음입니다. 음식 맛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인터뷰>리용광(관광객) : "기분이 좋아요.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리장 사람들 정말 열정적입니다." 장이모 감독의 천리주단기를 비롯, 영화와 TV드라마의 무대로 부상한 리장.. 지난해 400여만 명에 이어 올해는 약 5OO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통 기와집들은 객잔, 즉 여관 문패를 달고 관광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천 곳이 넘는 객잔이 성업 중입니다. <인터뷰>왕이(객잔 종업원) : "방이 15개 있는데 요즘 장사가 잘 됩니다. 보통 하루에 10여 명이 투숙합니다." 지난해 관광수입은 우리 돈 4900억원. 30만 시민 한 사람당 160만원 꼴로 리장은 관광수입만으로도 중국의 평균 GDP를 훌쩍 넘어섭니다. 최근 리장시는 지진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지금의 번영이 지진의 참사를 딛고 일어선 결과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입니다.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 중국 제1의 관광명소로 발전한 리장, 재난마저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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