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3.1 운동 전후 日 경찰 2배 늘려

입력 2006.03.01 (22:24)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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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전후해 조선총독부는 경찰 등 공권력을 두 배이상 늘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선총독부 연감에 나타난 당시 우리 사회상을 임승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통계청 도서관 서고 한켠에 있는 일제 강점기 유일한 공식 통계집. 조선 총독부 연봅니다.

<녹취> 송환근(통계청 직원): "그때 당시 통계자료로써 요것이 유일하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자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 우리 인구. 8백6십여만 명입니다. 현재 남북한 인구의 겨우 12% 정돕니다.

그나마 농어가 인구가 3분1 이상인 3백여만 명, 공장이라곤 2천여개뿐이었습니다. 일본에 보내는 쌀이 수출의 거의 전부였던 무역 규모는 겨우 2억엔이었습니다.

3.1운동을 전후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일제 공권력의 급격한 증강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을 전후해 3년 동안 전국의 경찰과 관공서 관리를 2배 이상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독립운동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단 얘기로도 풀이됩니다.

<인터뷰>전신애(통계청 사회통계국장): "우리 국민들의 활동, 만세운동, 독립운동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에, 관리들을 많이 증가시킨 수치가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범죄 건수는 한해전보다 오히려 만건이상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2만명이상 공권력을 증강시킨 일제. 3.1 정신이 얼마나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는지 통계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임승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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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부, 3.1 운동 전후 日 경찰 2배 늘려
    • 입력 2006-03-01 21:22:19
    • 수정2018-08-29 15:00:00
    뉴스 9
<앵커 멘트>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전후해 조선총독부는 경찰 등 공권력을 두 배이상 늘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선총독부 연감에 나타난 당시 우리 사회상을 임승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통계청 도서관 서고 한켠에 있는 일제 강점기 유일한 공식 통계집. 조선 총독부 연봅니다. <녹취> 송환근(통계청 직원): "그때 당시 통계자료로써 요것이 유일하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자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 우리 인구. 8백6십여만 명입니다. 현재 남북한 인구의 겨우 12% 정돕니다. 그나마 농어가 인구가 3분1 이상인 3백여만 명, 공장이라곤 2천여개뿐이었습니다. 일본에 보내는 쌀이 수출의 거의 전부였던 무역 규모는 겨우 2억엔이었습니다. 3.1운동을 전후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일제 공권력의 급격한 증강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을 전후해 3년 동안 전국의 경찰과 관공서 관리를 2배 이상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독립운동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단 얘기로도 풀이됩니다. <인터뷰>전신애(통계청 사회통계국장): "우리 국민들의 활동, 만세운동, 독립운동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에, 관리들을 많이 증가시킨 수치가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범죄 건수는 한해전보다 오히려 만건이상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2만명이상 공권력을 증강시킨 일제. 3.1 정신이 얼마나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는지 통계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임승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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