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가촉 천민’ 짓밟히는 인권

입력 2006.03.10 (11:30) 수정 2006.03.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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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과 함께 친디아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세계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나라가 있죠? 바로 인도인데요, 최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거듭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인도도 국제사회의 폭넓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숙제가 있습니다.

1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계급제도, '카스트'. 나아가 이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에 대한 인권 유린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철우 순회특파원이 그 현장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 제도인 카스트... 승려인 브라만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그리고 상인인 바이샤와 노예나 천민 계급인 수드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이 있습니다.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의 몸에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영어로 언터쳐블(Untouchable)로 불립니다.

이들은 카스트를 부여받지 못하고 천년 넘게 오물 수거와 시체 처리 등 불결한 일을 강요 당해왔습니다. 지난 1950년대 카스트 제도는 폐지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신분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수카데오 토래(네루대 경제학과 교수): "불가촉 천민들은 카스트 제도 안에서 상류계층 사람들로부터 많은 차별을 받아왔어요. 불가촉 천민들은 사유 재산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 시민권을 박탈 당해왔죠."

용맹한 전사 출신들이 많고 가부장적 색채가 강한 인도 자이푸르 지역. 아직도 옛 풍습이 많이 남아있어 카스트 제도에 따른 계급간 마찰과 폐해도 많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특히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충격적인 만행이 버젓이 벌어집니다.

자이푸르 시내에서 차로 5시간 거리..

<녹취> "(나리 마을이 어디죠..)조금 더 직진한 뒤 우측으로 가세요."

취재진은 한 브라만 계급의 횡포로 가장이 참혹하게 숨진 불가촉 천민 가족을 찾았습니다. 일가족 14명이 벽돌 공장에서 일을 하던 비르디 짠드씨 가족... 지난해 말 함께 출근하다 길 반대편에서 오던 자동차와 부딪혀 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습니다.

<인터뷰>마기라트 바이(목격자): "커브 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자동차와 부딪혀서 교통 사고가 났어요."

사고를 낸 브라만 계급의 자동차 주인을 찾아가 보상을 요구한 짠드씨는, 차 주인에게서 370만원 어치의 보석을 받았습니다. 사흘 뒤 2명의 동료들과 함께 짠드씨를 찾아간 자동차 주인은 보석을 훔쳐갔다며 짠드씨를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인터뷰> 갸니 데비(짠드씨 어머니): "그 사람들이 보석같은 것을 주고서는 도둑질한 것처럼 누명을 씌웠어요. 마을 전체가 도둑놈으로 결정한 뒤 아들을 죽였죠."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동안 실어증까지 보였던 산또쉬씨는 남편 사진을 보자 슬픔이 복받쳐 오릅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이미 제 남편은 죽었는데.. 아빠의 죽음도 모른 채 사진을 보며 마냥 좋아하는 딸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인터뷰> "(아빠 보고 싶어요?)너무 보고 싶어요."


비르디 짠드씨를 태워죽인 3명은 현재 경찰에 구금 중입니다. 그러나 정당방위로 곧 석방될 예정이어서 결국 짠드씨 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짠드씨의 어머니는 보관하고 있는 아들 시신의 재를 갖고 매일 사고현장을 찾아가 기도를 하며 아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욱이 불가촉 천민의 여성일 경우 태반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브라만 계급의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했던 띠자 데비씨는 집 주인의 은밀하면서도 집요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데비씨가 계속 거부하자 집 주인이 염산을 데비씨와 그녀의 아들에게 뿌렸습니다.

<인터뷰>띠자 데비씨(불가촉 천민 피해자): "한손에 있던 염산을 먼저 뿌리고, 다른 병에 있는 염산도 꺼내서 뿌렸어요. 그래서 얼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궜죠."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데비씨 모자는 염산으로 온 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데비씨 모자는 경찰에 잡혀 있는 가해자로부터 보상금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불가능한 형편입니다.

<인터뷰>띠자 데비씨: "제 온 몸 전체에 난 상처를 보세요. 제 아들도 이렇게 됐고요. 이것 보세요. 이렇게 심하게 다쳤어요. 이제 이 아이 인생은 끝난 거 아닙니까."


인권 단체들은 인도 인구의 25%인 3억 5천만여명의 불가촉 천민들이 불평등에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사띠쉬 꾸마르(인권 운동가): "지배 계급 사람들은 여전히 불가촉 천민들에게 의료 등 공공서비스이용을 허용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 전체에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등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죠."


사진작가 수다락 올웨씨는 10년 넘게 불가촉 천민의 비극적인 삶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인터뷰>수다락 올웨(사진 작가): "천민들의 모습을 봤을때 충격을 받았죠. 창피함을 느꼈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천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불가촉 천민 인권 단체엔 한해 평균 2만여건의 가혹행위가 접수됩니다. 더 큰 문제는 법적으로는 신분제도가 철폐됐지만 대다수 인도인이 믿는 힌두교 안에는 여전히 천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우마칸트 박사(달릿 인권단체 대표): "법으로 금지됐지만 종교나 관행상 신분 차별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관행이 법 위에 있는거죠. "


최근 불가촉 천민들은 힌두교에서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힌두교를 버리는 것만이 자신들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자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도 곳곳에서 불가촉 천민에 대한 인권 유린은 계속되고 있지만, 대도시나 대학가에서는 카스트의 색깔이 옅어보입니다. 심지어 카스트 제도를 언급하는 것이 실례일 정도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뿌리 깊은 차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나번(불가촉 천민 출신 대학생): "불가촉 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있어요. 모든 기회는 상류층에 집중되고 우리에겐 어떤 기회도 주지않아요. 그래서 화가 나요."


매년 7-8%의 높은 경제 성장률과 IT 산업의 발달 등으로 개발 도상국의 모델인 인도.. 통신 위성에다 핵 폭탄까지 만든 나랍니다. 그러나, 사회 한편에선 3억 5천만명의 불가촉 천민들의 가축만도 못한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경제 발전 속에 불가촉 천민들의 박탈감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인권 회복은 세계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인도가 넘어야할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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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불가촉 천민’ 짓밟히는 인권
    • 입력 2006-03-10 10:45:24
    • 수정2006-03-10 15:04:1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과 함께 친디아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세계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나라가 있죠? 바로 인도인데요, 최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거듭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인도도 국제사회의 폭넓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숙제가 있습니다. 1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계급제도, '카스트'. 나아가 이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에 대한 인권 유린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철우 순회특파원이 그 현장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 제도인 카스트... 승려인 브라만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그리고 상인인 바이샤와 노예나 천민 계급인 수드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이 있습니다.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의 몸에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영어로 언터쳐블(Untouchable)로 불립니다. 이들은 카스트를 부여받지 못하고 천년 넘게 오물 수거와 시체 처리 등 불결한 일을 강요 당해왔습니다. 지난 1950년대 카스트 제도는 폐지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신분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수카데오 토래(네루대 경제학과 교수): "불가촉 천민들은 카스트 제도 안에서 상류계층 사람들로부터 많은 차별을 받아왔어요. 불가촉 천민들은 사유 재산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 시민권을 박탈 당해왔죠." 용맹한 전사 출신들이 많고 가부장적 색채가 강한 인도 자이푸르 지역. 아직도 옛 풍습이 많이 남아있어 카스트 제도에 따른 계급간 마찰과 폐해도 많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특히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충격적인 만행이 버젓이 벌어집니다. 자이푸르 시내에서 차로 5시간 거리.. <녹취> "(나리 마을이 어디죠..)조금 더 직진한 뒤 우측으로 가세요." 취재진은 한 브라만 계급의 횡포로 가장이 참혹하게 숨진 불가촉 천민 가족을 찾았습니다. 일가족 14명이 벽돌 공장에서 일을 하던 비르디 짠드씨 가족... 지난해 말 함께 출근하다 길 반대편에서 오던 자동차와 부딪혀 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습니다. <인터뷰>마기라트 바이(목격자): "커브 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자동차와 부딪혀서 교통 사고가 났어요." 사고를 낸 브라만 계급의 자동차 주인을 찾아가 보상을 요구한 짠드씨는, 차 주인에게서 370만원 어치의 보석을 받았습니다. 사흘 뒤 2명의 동료들과 함께 짠드씨를 찾아간 자동차 주인은 보석을 훔쳐갔다며 짠드씨를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인터뷰> 갸니 데비(짠드씨 어머니): "그 사람들이 보석같은 것을 주고서는 도둑질한 것처럼 누명을 씌웠어요. 마을 전체가 도둑놈으로 결정한 뒤 아들을 죽였죠."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동안 실어증까지 보였던 산또쉬씨는 남편 사진을 보자 슬픔이 복받쳐 오릅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이미 제 남편은 죽었는데.. 아빠의 죽음도 모른 채 사진을 보며 마냥 좋아하는 딸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인터뷰> "(아빠 보고 싶어요?)너무 보고 싶어요." 비르디 짠드씨를 태워죽인 3명은 현재 경찰에 구금 중입니다. 그러나 정당방위로 곧 석방될 예정이어서 결국 짠드씨 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짠드씨의 어머니는 보관하고 있는 아들 시신의 재를 갖고 매일 사고현장을 찾아가 기도를 하며 아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욱이 불가촉 천민의 여성일 경우 태반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브라만 계급의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했던 띠자 데비씨는 집 주인의 은밀하면서도 집요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데비씨가 계속 거부하자 집 주인이 염산을 데비씨와 그녀의 아들에게 뿌렸습니다. <인터뷰>띠자 데비씨(불가촉 천민 피해자): "한손에 있던 염산을 먼저 뿌리고, 다른 병에 있는 염산도 꺼내서 뿌렸어요. 그래서 얼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궜죠."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데비씨 모자는 염산으로 온 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데비씨 모자는 경찰에 잡혀 있는 가해자로부터 보상금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불가능한 형편입니다. <인터뷰>띠자 데비씨: "제 온 몸 전체에 난 상처를 보세요. 제 아들도 이렇게 됐고요. 이것 보세요. 이렇게 심하게 다쳤어요. 이제 이 아이 인생은 끝난 거 아닙니까." 인권 단체들은 인도 인구의 25%인 3억 5천만여명의 불가촉 천민들이 불평등에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사띠쉬 꾸마르(인권 운동가): "지배 계급 사람들은 여전히 불가촉 천민들에게 의료 등 공공서비스이용을 허용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 전체에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등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죠." 사진작가 수다락 올웨씨는 10년 넘게 불가촉 천민의 비극적인 삶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인터뷰>수다락 올웨(사진 작가): "천민들의 모습을 봤을때 충격을 받았죠. 창피함을 느꼈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천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불가촉 천민 인권 단체엔 한해 평균 2만여건의 가혹행위가 접수됩니다. 더 큰 문제는 법적으로는 신분제도가 철폐됐지만 대다수 인도인이 믿는 힌두교 안에는 여전히 천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우마칸트 박사(달릿 인권단체 대표): "법으로 금지됐지만 종교나 관행상 신분 차별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관행이 법 위에 있는거죠. " 최근 불가촉 천민들은 힌두교에서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힌두교를 버리는 것만이 자신들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자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도 곳곳에서 불가촉 천민에 대한 인권 유린은 계속되고 있지만, 대도시나 대학가에서는 카스트의 색깔이 옅어보입니다. 심지어 카스트 제도를 언급하는 것이 실례일 정도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뿌리 깊은 차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나번(불가촉 천민 출신 대학생): "불가촉 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있어요. 모든 기회는 상류층에 집중되고 우리에겐 어떤 기회도 주지않아요. 그래서 화가 나요." 매년 7-8%의 높은 경제 성장률과 IT 산업의 발달 등으로 개발 도상국의 모델인 인도.. 통신 위성에다 핵 폭탄까지 만든 나랍니다. 그러나, 사회 한편에선 3억 5천만명의 불가촉 천민들의 가축만도 못한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경제 발전 속에 불가촉 천민들의 박탈감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인권 회복은 세계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인도가 넘어야할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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