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납치’ 전통이란 이름의 인권유린

입력 2006.03.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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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마음에 드는 여성을 일방적으로 납치해서 결혼하는 행위, 문명사회에서는 용서받기 힘든 범죄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선조들에게도 과거 '보쌈'이라는 유습이 있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납치혼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소국, 키르기스스탄 얘긴데요.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이런 납치혼의 실태를 박장범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앙아시아 천산산맥 과 알라토산맥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 이 곳 여성들에게 결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옵니다.

알라카츄... '훔쳐서 달아나다'라는 이 말은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을 뜻합니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납치하면 남자쪽 가족들이 모두 동원돼 여성을 집에 남도록 설득하는 방식으로 납치 결혼은 진행됩니다.

올해 27살인 이 여성도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강제로 차에 태워져 낯선 남자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남자 가족들에 의해 감금됐고, 그날 밤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인터뷰> 졸본: " 남자와 나만 한 방에 남겨놓고 갔어요. 힘껏 저항했지만 결국 성폭행 당했어요."

일주일 만에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남자 가족들은 오히려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인터뷰>" 한번 왔던 집에서 나갔으니 너는 평생 불행할 거라고 욕했어요 "

알라카츄, 신부납치가 오랜 전통인 탓에 별다른 죄의식도 없어 친척끼리 납치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여성은 2년 전 먼 친척 남성의 차를 탔다가 갑작스레 납치됐습니다.

<인터뷰> 아니파: "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죠. 5시간 동안 차에서 막 때리고 물고 저항했어요"

납치된지 하루만에 풀려났지만, 한참동안 대인 기피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 1994년부터 신부 납치는 불법으로 규정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납치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특히, 시골지역에서는 신부납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신부납치가 법으로 금지된 범죄라는 생각보다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3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 가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알라카츄를 통해 결혼한 가정들입니다.

<인터뷰>누르잔: " 남편 쪽 할머니들이 남으라고 설득했죠. 친정 아버지도 한번 간데서 나오지 말라고 우리 집안에 그런 여자는 없었다고 말했어요 "

납치되서 결혼한지 30년,, 아들 4 명과 딸 1 명, 5명의 손자를 둔 자신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4 년 전 ,, 지금은 며느리가 된 여자를 아들이 납치해 왔을 때 가장 앞장서서 설득한 사람은 바로 시어머니였습니다.

<인터뷰> " 나도 이 집으로 시집올 때 납치돼서 왔는데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말해줬어요"

<인터뷰> 굴누라: " 내 아들이 커서 여자를 데리고 와도 잘 보살피면서 함께 살거에요 "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가 시작된 것은 지난 12세기로 , 900여 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신부납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했던 유목민의 전통과 남성 우월주의가 베어있는 이슬람 사상이 결합하면서 보편화 됐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일단 납치됐을 경우 그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딸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델런: "자식들은 부모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코란에도 부모 말을 잘 들어야만 신을 기쁘게 한다고 써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전통과 교육의 굴레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납치 결혼의 희생양으로 전락합니다. 17살때 학교에서 오던 길에 납치됐던 이 여성은 납치 결혼 2년 만에 돌이 갓 지난 아들을 안고 집을 나왔습니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 아들과 헤어진 채,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르굴: "결혼 생활 내내 많이 구타당하고 하루도 편하게 살 수 없었어요. 남편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고발했지만 남자는 15일 만에 아무런 처벌없이 풀려나고 말았습니다. 신부 납치로 인한 분쟁은 대부분 법정 대신 마을 회의로 넘겨집니다. 악사칼로 불리는 마을의 최고 원로가 이 회의를 주재합니다. 전통에 따라 남자나 그 가족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악사칼: " 경찰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해결합니다. 여자가 납치된 집에서 나오는 것은 여자 부모가 딸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있는 풍경입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 수록 사랑을 통한 결혼을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 전혀 모르는 남자랑 어떻게 결혼하나요"

<인터뷰> " 사랑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납치되면 무조건 도망칠거에요"

<인터뷰>" 여자를 아무리 좋아해도 납치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라카츄가 생활 깊숙히 뿌리박힌 탓인지 신부납치 전통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젊은이들 역시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 남자가 잘생기고 집안이 좋으면 남을거에요"

<인터뷰> "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납치할겁니다. 여자의 사랑은 결혼과 함께 시작합니다."


키르기스스탄 여성계는 신부 납치 전통을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알라카츄의 완전히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가이샤 (전 교육부차관): " 신부납치는 없어져야 합니다. 모든 여성를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해야합니다. 여성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사랑을 통해 서로를 선택한 여자와 남자의 성스러운 결합... 비로소, 결혼은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남성의 일방적인 선택만이 강요되고 여성의 인권은 무시되는 키르기스스탄의 신부 납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지난 수백년의 세월동안 키르기즈 여인들이 흘렸던 통한의 눈물은 이제 멈춰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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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부납치’ 전통이란 이름의 인권유린
    • 입력 2006-03-17 10:52:2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마음에 드는 여성을 일방적으로 납치해서 결혼하는 행위, 문명사회에서는 용서받기 힘든 범죄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선조들에게도 과거 '보쌈'이라는 유습이 있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납치혼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소국, 키르기스스탄 얘긴데요.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이런 납치혼의 실태를 박장범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앙아시아 천산산맥 과 알라토산맥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 이 곳 여성들에게 결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옵니다. 알라카츄... '훔쳐서 달아나다'라는 이 말은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을 뜻합니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납치하면 남자쪽 가족들이 모두 동원돼 여성을 집에 남도록 설득하는 방식으로 납치 결혼은 진행됩니다. 올해 27살인 이 여성도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강제로 차에 태워져 낯선 남자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남자 가족들에 의해 감금됐고, 그날 밤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인터뷰> 졸본: " 남자와 나만 한 방에 남겨놓고 갔어요. 힘껏 저항했지만 결국 성폭행 당했어요." 일주일 만에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남자 가족들은 오히려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인터뷰>" 한번 왔던 집에서 나갔으니 너는 평생 불행할 거라고 욕했어요 " 알라카츄, 신부납치가 오랜 전통인 탓에 별다른 죄의식도 없어 친척끼리 납치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여성은 2년 전 먼 친척 남성의 차를 탔다가 갑작스레 납치됐습니다. <인터뷰> 아니파: "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죠. 5시간 동안 차에서 막 때리고 물고 저항했어요" 납치된지 하루만에 풀려났지만, 한참동안 대인 기피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 1994년부터 신부 납치는 불법으로 규정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납치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특히, 시골지역에서는 신부납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신부납치가 법으로 금지된 범죄라는 생각보다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3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 가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알라카츄를 통해 결혼한 가정들입니다. <인터뷰>누르잔: " 남편 쪽 할머니들이 남으라고 설득했죠. 친정 아버지도 한번 간데서 나오지 말라고 우리 집안에 그런 여자는 없었다고 말했어요 " 납치되서 결혼한지 30년,, 아들 4 명과 딸 1 명, 5명의 손자를 둔 자신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4 년 전 ,, 지금은 며느리가 된 여자를 아들이 납치해 왔을 때 가장 앞장서서 설득한 사람은 바로 시어머니였습니다. <인터뷰> " 나도 이 집으로 시집올 때 납치돼서 왔는데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말해줬어요" <인터뷰> 굴누라: " 내 아들이 커서 여자를 데리고 와도 잘 보살피면서 함께 살거에요 "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가 시작된 것은 지난 12세기로 , 900여 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신부납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했던 유목민의 전통과 남성 우월주의가 베어있는 이슬람 사상이 결합하면서 보편화 됐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일단 납치됐을 경우 그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딸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델런: "자식들은 부모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코란에도 부모 말을 잘 들어야만 신을 기쁘게 한다고 써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전통과 교육의 굴레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납치 결혼의 희생양으로 전락합니다. 17살때 학교에서 오던 길에 납치됐던 이 여성은 납치 결혼 2년 만에 돌이 갓 지난 아들을 안고 집을 나왔습니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 아들과 헤어진 채,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르굴: "결혼 생활 내내 많이 구타당하고 하루도 편하게 살 수 없었어요. 남편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고발했지만 남자는 15일 만에 아무런 처벌없이 풀려나고 말았습니다. 신부 납치로 인한 분쟁은 대부분 법정 대신 마을 회의로 넘겨집니다. 악사칼로 불리는 마을의 최고 원로가 이 회의를 주재합니다. 전통에 따라 남자나 그 가족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악사칼: " 경찰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해결합니다. 여자가 납치된 집에서 나오는 것은 여자 부모가 딸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있는 풍경입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 수록 사랑을 통한 결혼을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 전혀 모르는 남자랑 어떻게 결혼하나요" <인터뷰> " 사랑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납치되면 무조건 도망칠거에요" <인터뷰>" 여자를 아무리 좋아해도 납치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라카츄가 생활 깊숙히 뿌리박힌 탓인지 신부납치 전통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젊은이들 역시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 남자가 잘생기고 집안이 좋으면 남을거에요" <인터뷰> "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납치할겁니다. 여자의 사랑은 결혼과 함께 시작합니다." 키르기스스탄 여성계는 신부 납치 전통을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알라카츄의 완전히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가이샤 (전 교육부차관): " 신부납치는 없어져야 합니다. 모든 여성를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해야합니다. 여성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사랑을 통해 서로를 선택한 여자와 남자의 성스러운 결합... 비로소, 결혼은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남성의 일방적인 선택만이 강요되고 여성의 인권은 무시되는 키르기스스탄의 신부 납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지난 수백년의 세월동안 키르기즈 여인들이 흘렸던 통한의 눈물은 이제 멈춰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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