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고통받는 떠돌이 집시

입력 2006.04.07 (13:31) 수정 2006.04.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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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럽에도 나라를 갖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민족이 있습니다. 무려 천만 명에 달하는 '집시' 얘긴데요. 자유와 방랑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잘못 여겨지기도 했던 집시.

하지만 실상은 유럽 각국에서 최하층 취급을 받으면서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EU 확대와 함께 통합사회로 가는 유럽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집시들의 고통 받는 삶을 이충형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민족.. 천년 이상 유럽 곳곳을 전전하며 유랑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도시의 외곽에 집시 마을이 있습니다.

경찰차가 진입하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철거반원이 들이닥치자 여인들과 아이들은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철거는 막무가내로 진행됩니다.

<인터뷰>주민 : "이 집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손자까지 태어났는데 부수면 어떡합니까?"

어렵사리 정착에 성공했던 집시들은 또다시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습니다. 집시들이 이곳에 살아온 것은 50년 전부터입니다. 하지만 사전통고도 없이 철거가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인터뷰>주민 : "겨울에 이렇게 집 밖으로 쫓아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독일 나치들도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습니다."

<녹취>주민 : "집을 부수려면 아이들도 데려가세요. 당신들도 집에 아이들이 있을 거 아녜요?"

법원의 명령으로 당국의 불법 강제 철거는 하루만에 중단됐지만 마을 주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녹취>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좁은 집안에는 세 가족, 16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녹취> "남편이 동상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는 바람에 일을 못합니다."

동유럽 루마니아 남부의 키틸라 지역.. 마을 옆 빈 들판은 집시 마을이 있던 곳입니다. 철거된 뒤 콘크리트 잔해만 남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이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돔무모나 : "여기에 방이 있었고 저기엔 부엌이 있었습니다. 가재도구도 가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1월,영하 30도의 엄동설한에 이뤄진 철거도 불법이었습니다.

<인터뷰>바실레이(집시 인권단체 법률담당) : "거주 허가를 받기 위한 소송이 진행중인데 멋대로 철거를 했습니다. 철거 영장을 발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철거가 불법입니다."

게다가 같은 무허가 건물인데도 다른 주민들의 집은 건드리지도 않고 집시들의 집만 철거했습니다.

<인터뷰>이반바시(이웃 주민) : "집시들이 물건을 훔쳐간다면서 경찰과 시청 사람들이 집시들의 집만 철거했습니다."

집시에 대한 차별은 학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마니아 중부의 설라니 지역. 새로 지은 큰 건물에서는 일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집시 학생들은 창고 같은 낡은 건물에서 책상, 의자도 없이 수업을 받습니다.

<인터뷰>집시 학생 : "집시들을 다른 학생들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교실을 다른 곳에 배정했습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집시들이 유럽에 등장한 것은 10세기쯤입니다. 인도 북부 펀잡 지방에 살던 민족이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유럽 전역으로 흩어진 집시들은 한동안 노예로 살았고 2차 대전 때는 나치에게 50만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떠돌이 생활에 따른 애환 때문에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길거리에서 방랑하는 슬픔을 담은 집시의 선율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집시들의 정열이 춤으로 승화되기도 했습니다.

체코와 헝가리 등 동유럽 레스토랑에 등장하는 악단은 대부분 집시들입니다. 화려한 치장, 원색의 옷차림이 집시들의 전통입니다. 춤과 노래를 즐기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등 공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옛날부터 사는 게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때립니다. 가진 재산도 다 빼앗아 갑니다."

도시로 나오면 집시들의 사정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외곽의 집시 집단 거주지역.. 허름한 집시 아파트 주변엔 언제부턴지 철조망이 생겼습 니다.

집시들은 도시에서도 한군데 모여 삽니다. 다른 주민들이 함께 사는 것을 꺼 리기 때문에 이렇게 지저분한 집단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복도를 따라 벌집 같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좁은 단칸방에 평균 10여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삽니다.

<인터뷰> 도니치카포 : "사람들이 집시라는 걸 먼저 생각합니다. 집시는 이력서를 아무리 많이 내도 직장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집시라는 이유만으로 공공 건물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 제지당하기 일쑤입니다. 도둑질과 구걸 등 부정적인 면만 연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코스텔(부쿠레슈티 시민) : "집시는 일하는 걸 싫어하고 남의 것을 훔칩니다. 자기네끼리만 모여서 더럽게 살면서 생활환경을 바꿀 생각도 안 합니다."

유럽연합의 정책으로 법적인 차별은 금지됐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파치에다(루마니아 집시 인권단체 간사) :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소수에게도 똑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준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차별이 생깁니다."

집시들이 유럽에서 유랑을 시작한 것은 천 여년 전부터.. 가난은 끝없이 대물림되고 그나마 정착한 곳에서도 쫓겨나고 있어 유랑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집시에 대한 차별 해소와 인권 회복은 통합 사회로 가는 유럽의 난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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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에 고통받는 떠돌이 집시
    • 입력 2006-04-07 10:07:41
    • 수정2006-04-07 13:34:4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유럽에도 나라를 갖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민족이 있습니다. 무려 천만 명에 달하는 '집시' 얘긴데요. 자유와 방랑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잘못 여겨지기도 했던 집시. 하지만 실상은 유럽 각국에서 최하층 취급을 받으면서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EU 확대와 함께 통합사회로 가는 유럽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집시들의 고통 받는 삶을 이충형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민족.. 천년 이상 유럽 곳곳을 전전하며 유랑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도시의 외곽에 집시 마을이 있습니다. 경찰차가 진입하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철거반원이 들이닥치자 여인들과 아이들은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철거는 막무가내로 진행됩니다. <인터뷰>주민 : "이 집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손자까지 태어났는데 부수면 어떡합니까?" 어렵사리 정착에 성공했던 집시들은 또다시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습니다. 집시들이 이곳에 살아온 것은 50년 전부터입니다. 하지만 사전통고도 없이 철거가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인터뷰>주민 : "겨울에 이렇게 집 밖으로 쫓아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독일 나치들도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습니다." <녹취>주민 : "집을 부수려면 아이들도 데려가세요. 당신들도 집에 아이들이 있을 거 아녜요?" 법원의 명령으로 당국의 불법 강제 철거는 하루만에 중단됐지만 마을 주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녹취>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좁은 집안에는 세 가족, 16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녹취> "남편이 동상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는 바람에 일을 못합니다." 동유럽 루마니아 남부의 키틸라 지역.. 마을 옆 빈 들판은 집시 마을이 있던 곳입니다. 철거된 뒤 콘크리트 잔해만 남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이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돔무모나 : "여기에 방이 있었고 저기엔 부엌이 있었습니다. 가재도구도 가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1월,영하 30도의 엄동설한에 이뤄진 철거도 불법이었습니다. <인터뷰>바실레이(집시 인권단체 법률담당) : "거주 허가를 받기 위한 소송이 진행중인데 멋대로 철거를 했습니다. 철거 영장을 발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철거가 불법입니다." 게다가 같은 무허가 건물인데도 다른 주민들의 집은 건드리지도 않고 집시들의 집만 철거했습니다. <인터뷰>이반바시(이웃 주민) : "집시들이 물건을 훔쳐간다면서 경찰과 시청 사람들이 집시들의 집만 철거했습니다." 집시에 대한 차별은 학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마니아 중부의 설라니 지역. 새로 지은 큰 건물에서는 일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집시 학생들은 창고 같은 낡은 건물에서 책상, 의자도 없이 수업을 받습니다. <인터뷰>집시 학생 : "집시들을 다른 학생들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교실을 다른 곳에 배정했습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집시들이 유럽에 등장한 것은 10세기쯤입니다. 인도 북부 펀잡 지방에 살던 민족이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유럽 전역으로 흩어진 집시들은 한동안 노예로 살았고 2차 대전 때는 나치에게 50만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떠돌이 생활에 따른 애환 때문에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길거리에서 방랑하는 슬픔을 담은 집시의 선율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집시들의 정열이 춤으로 승화되기도 했습니다. 체코와 헝가리 등 동유럽 레스토랑에 등장하는 악단은 대부분 집시들입니다. 화려한 치장, 원색의 옷차림이 집시들의 전통입니다. 춤과 노래를 즐기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등 공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옛날부터 사는 게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때립니다. 가진 재산도 다 빼앗아 갑니다." 도시로 나오면 집시들의 사정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외곽의 집시 집단 거주지역.. 허름한 집시 아파트 주변엔 언제부턴지 철조망이 생겼습 니다. 집시들은 도시에서도 한군데 모여 삽니다. 다른 주민들이 함께 사는 것을 꺼 리기 때문에 이렇게 지저분한 집단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복도를 따라 벌집 같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좁은 단칸방에 평균 10여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삽니다. <인터뷰> 도니치카포 : "사람들이 집시라는 걸 먼저 생각합니다. 집시는 이력서를 아무리 많이 내도 직장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집시라는 이유만으로 공공 건물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 제지당하기 일쑤입니다. 도둑질과 구걸 등 부정적인 면만 연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코스텔(부쿠레슈티 시민) : "집시는 일하는 걸 싫어하고 남의 것을 훔칩니다. 자기네끼리만 모여서 더럽게 살면서 생활환경을 바꿀 생각도 안 합니다." 유럽연합의 정책으로 법적인 차별은 금지됐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파치에다(루마니아 집시 인권단체 간사) :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소수에게도 똑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준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차별이 생깁니다." 집시들이 유럽에서 유랑을 시작한 것은 천 여년 전부터.. 가난은 끝없이 대물림되고 그나마 정착한 곳에서도 쫓겨나고 있어 유랑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집시에 대한 차별 해소와 인권 회복은 통합 사회로 가는 유럽의 난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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