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에 부는 女風

입력 2006.04.07 (13:31) 수정 2006.04.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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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만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지도자들의 진출이 지구촌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군부독재의 전통과 종교적 영향 등으로 여성의 설자리가 좁았던 중남미 국가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데요.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바첼렛 대통령의 탄생과 남녀평등내각 구성에 이어서 오는 9일로 예정된 페루 대선에서도 여성 후보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립스틱 리더십', 여풍의 진원지, 중남미 국가들을 김철우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차를 마시는 한 카펩니다. 과감한 노출의 여성들이 차를 제공하고 몸을 밀착한 채 대화도 나눕니다. 칠레 특유의 이른바 '다리 카페'. 짧은 치마를 입어 여성의 다리가 훤히 보인다며 이 같은 이름이 붙은 카페는 수도 산티아고에만 170여 곳에 달합니다. 이렇듯 사회 구석구석에 남성 우월주의가 녹아있는 칠레 사회에 강한 여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칠레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여성들과 여성 단체 관계자 3천 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기념식이 열린 칠레의 대통령 궁입니다.

본격적인 여성 시대의 개막을 자축하는 분위기로 행사장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바첼렛 대통령 당선자. 취임 사흘을 앞두고 공식 행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게 참석자들은 열광적인 환영을 보냅니다.

바첼렛의 등극은 여성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마리아 이네스(인디안 원주민) : "이런 행사에 마뿌체 원주민 여성이 참석할 정도로 여성 인권에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거죠."

행사장을 떠나기에 앞서 바첼렛 당선자는 과감한 여성 등용 정책을 펼칠 것을 약속합니다.

<인터뷰>바첼렛(대통령 당선자) : "임기 중 칠레전역에서 능력있는 여성들을 많이 등용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칠레에 부는 여풍은 바첼렛 대통령의 취임식을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20명의 장관, 34명의 차관 중 반을 여성으로 임명해 이른바 평등 내각을 만든 바첼렛 대통령..

신임 여성 장관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여권 신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합니다. 수도 산티아고 시민들과의 첫 대면에서도 여권 신장과 함께 불우한 계층의 복지 향상을 위해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합니다.

<인터뷰>바첼렛(칠레 대통령) : "국가는 마땅히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제 임기 중에는 그 누구도 망각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약속입니다."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 정권의 상징적인 부처 책임자로 양극화 해소와 사회복지 정책 추진의 한 축을 맡은 클라리사 하디 사회복지부 장관.

지난밤에도 연금 개혁 등 바첼렛 대통령의 공약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하느라 출근길에도 양손이 가득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남녀 동수 내각의 일원으로 사회적 약자 등을 섬세하게 보듬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인터뷰>클라리사 하디(칠레 사회복지부 장관) : "남녀 평등 내각은 남녀가 성적으로 동등할 뿐만 아니라 취업이나 능력 발휘에 있어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민주적 선거를 거쳐 당선된 남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바첼렛의 등장은 인근 중남미 국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는 9일에 있을 이곳 페루의 대선과 총선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출마했습니다.

특히 대선에 앞서 계속된 여론 조사 등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루르데스 플로레스씨는 이른바 칠레를 강타한 바첼렛 열풍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잇달아 등장하는 것을 선거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페드로 올리바레스(페루 리마 시민) : "남성우월주의가 아주 강했던 남아메리카지역에 여성의 정치 참여의 증가는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거죠."

카리브해 섬나라인 자메이카에서도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습니다. 14년간 집권해온 패터슨 총리의 뒤를 이어 심슨 밀러 신임 총리가 범죄와 부패 척결을 다짐하며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처럼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좌파 열풍과 함께 여풍은 근본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인터뷰>비르히니아 구스만(여성문제연구소 부소장) : "여성 운동과 좌파 운동은 모두 사회 변혁을 추구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중남미 정치 무대에 있어 여성 지도자들의 중용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진출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니 : "예전 칠레는 남성우월주의가 아주 강해 여성들이 집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공부도 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나, 기업의 고위 간부 대부분은 여전히 남성들의 차집니다. 칠레 여성부에 따르면 기업 고위간부 가운데 여성은 1% 미만인데다 임금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30%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인터뷰>라우라 알보르노스(칠레 여성부 장관) : "실천 협약을 만들어 모든 정부 기관과 민간 회사에 현재 있는 여성에 대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도록 할 것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통치와 군부 독재 등 질곡의 역사를 경험한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교로 삼고 있는 카톨릭의 보수성까지 더해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했던 이 지역에서 부는 여성 돌풍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후발 민주 국가의 경우 쿼터제 등을 통해 여성의 정치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남성에 비해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여성 정치인의 거센 돌풍은 이곳 남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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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에 부는 女風
    • 입력 2006-04-07 10:14:27
    • 수정2006-04-07 13:34:4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만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지도자들의 진출이 지구촌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군부독재의 전통과 종교적 영향 등으로 여성의 설자리가 좁았던 중남미 국가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데요.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바첼렛 대통령의 탄생과 남녀평등내각 구성에 이어서 오는 9일로 예정된 페루 대선에서도 여성 후보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립스틱 리더십', 여풍의 진원지, 중남미 국가들을 김철우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차를 마시는 한 카펩니다. 과감한 노출의 여성들이 차를 제공하고 몸을 밀착한 채 대화도 나눕니다. 칠레 특유의 이른바 '다리 카페'. 짧은 치마를 입어 여성의 다리가 훤히 보인다며 이 같은 이름이 붙은 카페는 수도 산티아고에만 170여 곳에 달합니다. 이렇듯 사회 구석구석에 남성 우월주의가 녹아있는 칠레 사회에 강한 여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칠레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여성들과 여성 단체 관계자 3천 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기념식이 열린 칠레의 대통령 궁입니다. 본격적인 여성 시대의 개막을 자축하는 분위기로 행사장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바첼렛 대통령 당선자. 취임 사흘을 앞두고 공식 행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게 참석자들은 열광적인 환영을 보냅니다. 바첼렛의 등극은 여성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마리아 이네스(인디안 원주민) : "이런 행사에 마뿌체 원주민 여성이 참석할 정도로 여성 인권에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거죠." 행사장을 떠나기에 앞서 바첼렛 당선자는 과감한 여성 등용 정책을 펼칠 것을 약속합니다. <인터뷰>바첼렛(대통령 당선자) : "임기 중 칠레전역에서 능력있는 여성들을 많이 등용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칠레에 부는 여풍은 바첼렛 대통령의 취임식을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20명의 장관, 34명의 차관 중 반을 여성으로 임명해 이른바 평등 내각을 만든 바첼렛 대통령.. 신임 여성 장관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여권 신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합니다. 수도 산티아고 시민들과의 첫 대면에서도 여권 신장과 함께 불우한 계층의 복지 향상을 위해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합니다. <인터뷰>바첼렛(칠레 대통령) : "국가는 마땅히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제 임기 중에는 그 누구도 망각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약속입니다."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 정권의 상징적인 부처 책임자로 양극화 해소와 사회복지 정책 추진의 한 축을 맡은 클라리사 하디 사회복지부 장관. 지난밤에도 연금 개혁 등 바첼렛 대통령의 공약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하느라 출근길에도 양손이 가득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남녀 동수 내각의 일원으로 사회적 약자 등을 섬세하게 보듬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인터뷰>클라리사 하디(칠레 사회복지부 장관) : "남녀 평등 내각은 남녀가 성적으로 동등할 뿐만 아니라 취업이나 능력 발휘에 있어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민주적 선거를 거쳐 당선된 남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바첼렛의 등장은 인근 중남미 국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는 9일에 있을 이곳 페루의 대선과 총선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출마했습니다. 특히 대선에 앞서 계속된 여론 조사 등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루르데스 플로레스씨는 이른바 칠레를 강타한 바첼렛 열풍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잇달아 등장하는 것을 선거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페드로 올리바레스(페루 리마 시민) : "남성우월주의가 아주 강했던 남아메리카지역에 여성의 정치 참여의 증가는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거죠." 카리브해 섬나라인 자메이카에서도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습니다. 14년간 집권해온 패터슨 총리의 뒤를 이어 심슨 밀러 신임 총리가 범죄와 부패 척결을 다짐하며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처럼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좌파 열풍과 함께 여풍은 근본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인터뷰>비르히니아 구스만(여성문제연구소 부소장) : "여성 운동과 좌파 운동은 모두 사회 변혁을 추구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중남미 정치 무대에 있어 여성 지도자들의 중용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진출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니 : "예전 칠레는 남성우월주의가 아주 강해 여성들이 집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공부도 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나, 기업의 고위 간부 대부분은 여전히 남성들의 차집니다. 칠레 여성부에 따르면 기업 고위간부 가운데 여성은 1% 미만인데다 임금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30%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인터뷰>라우라 알보르노스(칠레 여성부 장관) : "실천 협약을 만들어 모든 정부 기관과 민간 회사에 현재 있는 여성에 대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도록 할 것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통치와 군부 독재 등 질곡의 역사를 경험한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교로 삼고 있는 카톨릭의 보수성까지 더해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했던 이 지역에서 부는 여성 돌풍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후발 민주 국가의 경우 쿼터제 등을 통해 여성의 정치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남성에 비해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여성 정치인의 거센 돌풍은 이곳 남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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