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과거사 청산 ‘급물살’

입력 2006.04.28 (11:18) 수정 2006.04.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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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미의 칠레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1990년 민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17년 동안 이어진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인데요.

특히 군부 독재의 고문으로 부친을 여의고 본인도 투옥된 경험이 있는 바첼렛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서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김철우 순회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산티아고의 한 주택가에 2백 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참석자들이 들고있는 조그만 촛불들이 어두웠던 골목을 환하게 밝힙니다.

<현장화면>"이곳에서 고문하고 죽였다!"

입에 담기에도 살벌한 내용의 대형 낙서가 벽면을 장식합니다. 군부 독재 시절 고문 피해자와 유족들이 비밀 경찰 안가로 사용됐던 집 앞에서 벌이는 시위입니다.

<인터뷰>에우헤니아 로드리게스(고문 피해자) : "우리들을 말살 시키려고 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고문과 굶주림, 강간 등 각종 만행이 자행됐습니다. 고문으로 숨진 피해자들의 사진을 벽면에 붙여놓고 명복을 빕니다."

<인터뷰>베르나르도 카스트로(실종 가족) : "피노체트 이후 정부는 진실을 은폐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않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974년 7월 플로레스씨는 집에 들이닥친 비밀 경찰에 잡혀 안가로 끌려갔습니다."

<인터뷰>호르헤 플로레스(고문 피해자) : "수갑을 차고 눈이 가려진 채 걸어갔는데 발바닥 느낌으로 여기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었어요."

당시 비밀 경찰들은 플로레스씨의 양손을 묶고 눈까지 가린 채 다짜고짜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좌파 단체 조직원이었던 형, 조카들과 함께 잡혀와 갖은 고문을 당했던 플로레스씨... 당시 느꼈던 공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인터뷰>호르헤 플로레스(고문 피해자) :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어 나가는 것을 봤는데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어서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지난 1973년부터 7년 동안 반정부 인사 2만 여명을 고문하고 살해했던 산티아고 외곽의 수용소는 독재의 만행과 인권 침해의 실상을 증언하는 평화 공원으로 조성됐습니다.

각종 조형물과 함께 당시 비밀 경찰이 저질렀던 만행과 수감자들의 비참한 삶이 조그만 그림에 담겨있습니다. 지난 1970년데 쿠데타를 반대했던 인사들을 체포해 수용했던 감방입니다.

1평도 채 안되는 이곳에서 5명이 24시간 동안 먹고 생활했습니다. 이 공원의 관리소장 역시 피노체트 시절 고문 피해자입니다.

<인터뷰>로드리고 델 비야르(공원 관리소장) : "고문 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건너편 방에서 밥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으로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원 한편에는 고문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동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백이 있습니다. 추가로 고문 피해자가 발견되면 이름을 새겨놓기 위한 자리입니다.

인권 기념 박물관 전시를 앞두고 창고에 보관중인 녹슨 철로도 이색적입니다.

두사람이 힘을 모아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무게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뒤 몸에 묶어 바닷속에 빠뜨려 죽일 때 사용됐습니다.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피노체트 독재가 끝난 지난 1990년 문민정부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앨윈 대통령은 불법처형과 실종자 등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여론 분열과 법률적 장애물로 과거사 청산작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인터뷰>이람 비야그라(인권 변호사) : "사면법을 만들어 1973년부터 78년 사이의 범죄 행위를 처벌 못하게 했고, 공소 시효를 악용해 면책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지난 98년 10월 영국 정부가 피노체트를 구금하면서 실종자 행방 파악에 나섰고, 영국에서 피노체트를 송환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재판 회부 문제가 대두되자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해 군부와 우파 야당의 압력을 피하면서 대법원의 피노체트 면책 특권 박탈 결정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피노체트 지지 세력으로부터의 각종 테러 위협으로 경찰 보호까지 받았던 구스만 특별판사는 지난 2004년 결국 피노체트를 납치와 살해 배후 등의 혐의로 기소해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후안 구스만 교수(피노체트 기소 판사) : "피노체트는 과거에 저질렀던 각종 범죄에 대한 책임을 청산하는 차원에서 기소가 된 것입니다."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권 차원의 정치 슬로건으로 내걸고 일거에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조급증이 자칫 과거사 청산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때문입니다.

칠레인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형사 처벌이 진행 중인 상황인 만큼 바첼렛 대통령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공군 장성이었던 바첼렛 대통령의 아버지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항의하다 고문으로 숨졌고, 그녀도 해외 망명생활 등 모진 고초를 겪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첼렛 대통령도 취임 일성으로 강력한 과거사 청산 의지를 밝혔습니다.

<녹취>바첼렛(칠레 대통령) : "우리는 과거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가 없는 내일은 없습니다."

취임 다음날 모든 일정을 뒤로한 채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헌화를 한 것도 과거사 청산의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행보입니다.

매주 목요일 산티아고 도심에서는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실종된 가족들의 사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나 구스만(실종자 가족협회 총무) : "시간이 갈수록 안데스 산맥 산골짜기 등에서 실종자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도 남편의 시신도 발견하고 남편을 둘러싼 과거사 진상이 확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 실종자 가족들은 군부 독재의 최대 피해자인 바첼렛 대통령이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을 마무리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경쟁적으로 과거사 단죄의 목소리를 높였던 중남미 국가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가는 칠레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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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레, 과거사 청산 ‘급물살’
    • 입력 2006-04-28 10:04:57
    • 수정2006-04-28 11:22:2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남미의 칠레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1990년 민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17년 동안 이어진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인데요. 특히 군부 독재의 고문으로 부친을 여의고 본인도 투옥된 경험이 있는 바첼렛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서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김철우 순회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산티아고의 한 주택가에 2백 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참석자들이 들고있는 조그만 촛불들이 어두웠던 골목을 환하게 밝힙니다. <현장화면>"이곳에서 고문하고 죽였다!" 입에 담기에도 살벌한 내용의 대형 낙서가 벽면을 장식합니다. 군부 독재 시절 고문 피해자와 유족들이 비밀 경찰 안가로 사용됐던 집 앞에서 벌이는 시위입니다. <인터뷰>에우헤니아 로드리게스(고문 피해자) : "우리들을 말살 시키려고 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고문과 굶주림, 강간 등 각종 만행이 자행됐습니다. 고문으로 숨진 피해자들의 사진을 벽면에 붙여놓고 명복을 빕니다." <인터뷰>베르나르도 카스트로(실종 가족) : "피노체트 이후 정부는 진실을 은폐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않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974년 7월 플로레스씨는 집에 들이닥친 비밀 경찰에 잡혀 안가로 끌려갔습니다." <인터뷰>호르헤 플로레스(고문 피해자) : "수갑을 차고 눈이 가려진 채 걸어갔는데 발바닥 느낌으로 여기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었어요." 당시 비밀 경찰들은 플로레스씨의 양손을 묶고 눈까지 가린 채 다짜고짜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좌파 단체 조직원이었던 형, 조카들과 함께 잡혀와 갖은 고문을 당했던 플로레스씨... 당시 느꼈던 공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인터뷰>호르헤 플로레스(고문 피해자) :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어 나가는 것을 봤는데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어서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지난 1973년부터 7년 동안 반정부 인사 2만 여명을 고문하고 살해했던 산티아고 외곽의 수용소는 독재의 만행과 인권 침해의 실상을 증언하는 평화 공원으로 조성됐습니다. 각종 조형물과 함께 당시 비밀 경찰이 저질렀던 만행과 수감자들의 비참한 삶이 조그만 그림에 담겨있습니다. 지난 1970년데 쿠데타를 반대했던 인사들을 체포해 수용했던 감방입니다. 1평도 채 안되는 이곳에서 5명이 24시간 동안 먹고 생활했습니다. 이 공원의 관리소장 역시 피노체트 시절 고문 피해자입니다. <인터뷰>로드리고 델 비야르(공원 관리소장) : "고문 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건너편 방에서 밥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으로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원 한편에는 고문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동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백이 있습니다. 추가로 고문 피해자가 발견되면 이름을 새겨놓기 위한 자리입니다. 인권 기념 박물관 전시를 앞두고 창고에 보관중인 녹슨 철로도 이색적입니다. 두사람이 힘을 모아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무게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뒤 몸에 묶어 바닷속에 빠뜨려 죽일 때 사용됐습니다.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피노체트 독재가 끝난 지난 1990년 문민정부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앨윈 대통령은 불법처형과 실종자 등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여론 분열과 법률적 장애물로 과거사 청산작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인터뷰>이람 비야그라(인권 변호사) : "사면법을 만들어 1973년부터 78년 사이의 범죄 행위를 처벌 못하게 했고, 공소 시효를 악용해 면책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지난 98년 10월 영국 정부가 피노체트를 구금하면서 실종자 행방 파악에 나섰고, 영국에서 피노체트를 송환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재판 회부 문제가 대두되자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해 군부와 우파 야당의 압력을 피하면서 대법원의 피노체트 면책 특권 박탈 결정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피노체트 지지 세력으로부터의 각종 테러 위협으로 경찰 보호까지 받았던 구스만 특별판사는 지난 2004년 결국 피노체트를 납치와 살해 배후 등의 혐의로 기소해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후안 구스만 교수(피노체트 기소 판사) : "피노체트는 과거에 저질렀던 각종 범죄에 대한 책임을 청산하는 차원에서 기소가 된 것입니다."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권 차원의 정치 슬로건으로 내걸고 일거에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조급증이 자칫 과거사 청산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때문입니다. 칠레인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형사 처벌이 진행 중인 상황인 만큼 바첼렛 대통령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공군 장성이었던 바첼렛 대통령의 아버지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항의하다 고문으로 숨졌고, 그녀도 해외 망명생활 등 모진 고초를 겪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첼렛 대통령도 취임 일성으로 강력한 과거사 청산 의지를 밝혔습니다. <녹취>바첼렛(칠레 대통령) : "우리는 과거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가 없는 내일은 없습니다." 취임 다음날 모든 일정을 뒤로한 채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헌화를 한 것도 과거사 청산의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행보입니다. 매주 목요일 산티아고 도심에서는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실종된 가족들의 사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나 구스만(실종자 가족협회 총무) : "시간이 갈수록 안데스 산맥 산골짜기 등에서 실종자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도 남편의 시신도 발견하고 남편을 둘러싼 과거사 진상이 확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 실종자 가족들은 군부 독재의 최대 피해자인 바첼렛 대통령이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을 마무리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경쟁적으로 과거사 단죄의 목소리를 높였던 중남미 국가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가는 칠레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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