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콜롬비아 인디오, 도시 난민으로 전락

입력 2007.01.2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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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콜롬비아의 순수 원주민, 인디오들이 40년 넘게 계속되는 내전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적인 삶에 대비가 없던 이들에게 도시 생활 역시 고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는데요. 세계인, 오늘은 콜롬비아 도시 난민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인디오들을 만나봅니다. 정창준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과 함께 공연에 나선 올해 38살의 시스토씨, 아마존이 고향인 익냐 케츄아 부족입니다. 광장을 울리는 반플라우타 선율에선 인디오의 서글픔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부족민 3백여 명이 시스토씨 가족처럼 도시로 나와 공연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시스토 (익냐 케츄아 부족): "가족들이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살기위한 투쟁이죠. 마을엔 부족한 것이 많아요. 저희는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공예품을 들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는 인디오들은 콜롬비아 남부 잉가노 부족입니다.

<인터뷰>호세 차소이 (잉가노 부족):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죠. 5개도 못팔기도 하고 아예 아무것도 못 팔기도 하죠."

문명에 적합한 기술이 없다 보니 도시 인디오들은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 콜롬비아 내전은 40여 년간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불똥은 원주민인 인디오에게 튀고 있습니다. 올해 43살의 프레디씨도 희생양입니다. 부족의 터전이 좌, 우익 무장세력의 전장으로 변하면서 부족 4백여 명이 희생됐고, 결국 생명의 위협을 피해 수도 보고타로 피난온 것입니다.

코카나무 잎을 씹고... 나무열매인 포포로를 문지르며 사색하며.. 사냥을 즐기던 칸카우모 부족 전통은 이제 도심 속에서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프레디 (칸카우모 부족): "교통비가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걸어서라도 가고 싶습니다."

다섯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아내가 만드는 양털 가방입니다. 한 달에 두세 개를 팔아 우리 돈 15만 원 안팎을 벌어 생활합니다. 고단하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인터뷰>디아나 (프레디씨 부인): "여기서는 마치 갇힌 것 같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어요. 고향에서는 자연과 함께하고 강에서 빨래를 하기도하죠."

더 늦어지면 돌아갈 수 있을까? 자연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세 딸의 입맛은 조미료에 익숙해지고 텔레비전은 필수품이 될 정도로 문명과 가까워지면서 프레디 부부의 고민도 깊어갑니다.

프레디씨가 틈틈이 가족과 함께 부족의 리듬을 되살리는 것도 인디오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섭니다.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피난온 인디오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함께 모여 살지 않습니다. 집단거주는 자칫 좌익게릴라와 우익 민병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파올라 아타마씨 가족은 아마존에 사는 우이토토 부족입니다. 내전의 와중에 큰아들은 실종됐고 우익 민병대에 시달리다 도시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인터뷰>파올라 아타마 (우이토토 부족): "민병대는 너무 위험해요. 무섭습니다. 예전에 가족도 죽였다고 들었어요. 제가 인터뷰 한 걸 알면 끝까지 찾아낼 거예요."

아들 15살 레오날드는 우익 민병대에 쫓기다 상처를 얻었습니다. 흉터를 볼 때마다 고향은 두려움으로 되살아납니다.

<인터뷰>레오날드 (파올라씨 아들):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도망가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뛸 수 없었어요. "

풀 속에 숨었는데 사람들이 총을 들고 저를 찾고 있었어요

인디오 단체의 도움으로 임시 거처를 제공받고 적십자사로부터 식료품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생존해야 합니다.

파올라씨가 가정부 일과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한 달 4만 원 벌이도 쉽지 않습니다. 생계가 막막합니다. 이렇듯 내전을 피해 도심으로 쫓겨 온 인디오들만 6만 명에 이릅니다.

휴일 광장에서 만난 인디오. 거리의 악사가 돼 인디오 문화를 팔아 관심을 모아보기도하고.. 공예품들을 챙겨 팔아보기도 하지만 하루 벌이는 신통치 않습니다.

도시로 밀려든 인디오들은 산과 강을 그리며 콘크리트 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삶 속에서는 도시에 안착하지도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결국 인디오들 대부분은 도심 속 난민으로 전락해 구호의 손길 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합니다.

<인터뷰>후안 프란시스코 (콜롬비아 인디오 권리협회): "많은 토착민들이 도시적응에 실패하고 극단적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콜롬비아 정부는 내전을 피해 도시로 피난온 인디오들에 한해 집세와 식료품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기간은 단 6개월에 그칩니다. 내전이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인디오들의 최소한의 생존권 지원마저 반년 뒤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터뷰>루이스 에벨리스 (콜롬비아 인디오협회장): "정부는 인디오들이 영토에 머무르거나 돌아갈 수 있게 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이 것은 인디오들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정신은 잃지 말자"
도심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한 인디오들의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시로 나온 지 15년이 된 잉가부족이 자녀들을 위해 전통악기 교실을 마련했습니다. 인디오 후예들은 서툴지만 불어보고 만져보면서 조상의 숨결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그라다 (잉가 부족): "우리 문화와 제가 누구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좋아요. 저도 원주민이니까요"

전통복장과 전통음악을 즐기며 마음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는 인디오들....

<인터뷰> 도밍가 가브리아 (잉가노 부족): "원주민들은 고유문화와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살던 땅을 떠났어도 정체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콜롬비아 국민 가운데 순수 인디오의 비율은 1%로 줄어들었습니다. 도심 난민으로 사라져가는 인디오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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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콜롬비아 인디오, 도시 난민으로 전락
    • 입력 2007-01-28 07:57:4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콜롬비아의 순수 원주민, 인디오들이 40년 넘게 계속되는 내전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적인 삶에 대비가 없던 이들에게 도시 생활 역시 고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는데요. 세계인, 오늘은 콜롬비아 도시 난민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인디오들을 만나봅니다. 정창준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과 함께 공연에 나선 올해 38살의 시스토씨, 아마존이 고향인 익냐 케츄아 부족입니다. 광장을 울리는 반플라우타 선율에선 인디오의 서글픔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부족민 3백여 명이 시스토씨 가족처럼 도시로 나와 공연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시스토 (익냐 케츄아 부족): "가족들이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살기위한 투쟁이죠. 마을엔 부족한 것이 많아요. 저희는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공예품을 들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는 인디오들은 콜롬비아 남부 잉가노 부족입니다. <인터뷰>호세 차소이 (잉가노 부족):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죠. 5개도 못팔기도 하고 아예 아무것도 못 팔기도 하죠." 문명에 적합한 기술이 없다 보니 도시 인디오들은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 콜롬비아 내전은 40여 년간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불똥은 원주민인 인디오에게 튀고 있습니다. 올해 43살의 프레디씨도 희생양입니다. 부족의 터전이 좌, 우익 무장세력의 전장으로 변하면서 부족 4백여 명이 희생됐고, 결국 생명의 위협을 피해 수도 보고타로 피난온 것입니다. 코카나무 잎을 씹고... 나무열매인 포포로를 문지르며 사색하며.. 사냥을 즐기던 칸카우모 부족 전통은 이제 도심 속에서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프레디 (칸카우모 부족): "교통비가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걸어서라도 가고 싶습니다." 다섯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아내가 만드는 양털 가방입니다. 한 달에 두세 개를 팔아 우리 돈 15만 원 안팎을 벌어 생활합니다. 고단하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인터뷰>디아나 (프레디씨 부인): "여기서는 마치 갇힌 것 같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어요. 고향에서는 자연과 함께하고 강에서 빨래를 하기도하죠." 더 늦어지면 돌아갈 수 있을까? 자연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세 딸의 입맛은 조미료에 익숙해지고 텔레비전은 필수품이 될 정도로 문명과 가까워지면서 프레디 부부의 고민도 깊어갑니다. 프레디씨가 틈틈이 가족과 함께 부족의 리듬을 되살리는 것도 인디오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섭니다.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피난온 인디오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함께 모여 살지 않습니다. 집단거주는 자칫 좌익게릴라와 우익 민병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파올라 아타마씨 가족은 아마존에 사는 우이토토 부족입니다. 내전의 와중에 큰아들은 실종됐고 우익 민병대에 시달리다 도시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인터뷰>파올라 아타마 (우이토토 부족): "민병대는 너무 위험해요. 무섭습니다. 예전에 가족도 죽였다고 들었어요. 제가 인터뷰 한 걸 알면 끝까지 찾아낼 거예요." 아들 15살 레오날드는 우익 민병대에 쫓기다 상처를 얻었습니다. 흉터를 볼 때마다 고향은 두려움으로 되살아납니다. <인터뷰>레오날드 (파올라씨 아들):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도망가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뛸 수 없었어요. " 풀 속에 숨었는데 사람들이 총을 들고 저를 찾고 있었어요 인디오 단체의 도움으로 임시 거처를 제공받고 적십자사로부터 식료품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생존해야 합니다. 파올라씨가 가정부 일과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한 달 4만 원 벌이도 쉽지 않습니다. 생계가 막막합니다. 이렇듯 내전을 피해 도심으로 쫓겨 온 인디오들만 6만 명에 이릅니다. 휴일 광장에서 만난 인디오. 거리의 악사가 돼 인디오 문화를 팔아 관심을 모아보기도하고.. 공예품들을 챙겨 팔아보기도 하지만 하루 벌이는 신통치 않습니다. 도시로 밀려든 인디오들은 산과 강을 그리며 콘크리트 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삶 속에서는 도시에 안착하지도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결국 인디오들 대부분은 도심 속 난민으로 전락해 구호의 손길 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합니다. <인터뷰>후안 프란시스코 (콜롬비아 인디오 권리협회): "많은 토착민들이 도시적응에 실패하고 극단적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콜롬비아 정부는 내전을 피해 도시로 피난온 인디오들에 한해 집세와 식료품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기간은 단 6개월에 그칩니다. 내전이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인디오들의 최소한의 생존권 지원마저 반년 뒤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터뷰>루이스 에벨리스 (콜롬비아 인디오협회장): "정부는 인디오들이 영토에 머무르거나 돌아갈 수 있게 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이 것은 인디오들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정신은 잃지 말자" 도심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한 인디오들의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시로 나온 지 15년이 된 잉가부족이 자녀들을 위해 전통악기 교실을 마련했습니다. 인디오 후예들은 서툴지만 불어보고 만져보면서 조상의 숨결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그라다 (잉가 부족): "우리 문화와 제가 누구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좋아요. 저도 원주민이니까요" 전통복장과 전통음악을 즐기며 마음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는 인디오들.... <인터뷰> 도밍가 가브리아 (잉가노 부족): "원주민들은 고유문화와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살던 땅을 떠났어도 정체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콜롬비아 국민 가운데 순수 인디오의 비율은 1%로 줄어들었습니다. 도심 난민으로 사라져가는 인디오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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