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추적] 지하 전력구, 곳곳에 화재 위험

입력 2007.01.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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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하 전력구는 고압전선이 흐르는 신경망이지만 화재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이 KBS 취재로 확인됐습니다. 방재 시스템이 허술하고 중구 난방식이어서 항상 대형사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김병용 기자가 현장추적으로 고발합니다.

<리포트>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커먼 화염, 연기와 유독가스로 뒤덮인 지하 전력구.

지난해 12월 경기도 구리 전력구 화재 당시 전력구 내부 모습입니다.

7시간의 화재로 수십만 볼트의 전력선 곳곳이 녹아내리고 콘크리트 곳곳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전력선이 순식간에 타게된 것일까?

지난 94년 서울 혜화동 통신구 화재로 소방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전력 케이블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도료를 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인터뷰> 한전 관계자 : "현재 전력구에 깔려있는 케이블은 모두 난연 케이블입니다."

하지만 이 전력구에는 난연 도료가 칠해진 케이블은 없습니다.

실제 난연 도료에 따라 케이블이 타는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 실험해 봤습니다.

8백 도의 불꽃이 가해진 직후 난연 도료를 칠하지 않은 케이블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입니다.

전력선이 바로 심지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불이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복영(방재시험연구원 전기설비팀장) : "3~4분이면 자연연소 상태로 불이 붙습니다. 난연도료가 도포되면 20분까지도 불이 붙지 않고 견딥니다."

서울 가락동에 있는 또 다른 공동구.

상수도관을 비롯해 전력, 통신 케이블이 꽉 들어차 있는 도시의 신경망입니다.

수십만 볼트의 전기가 흘러가는 전력선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이처럼 난연 도료를 도포하도록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전력선은 전 구간이 아닌 부분 부분 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녹취> 시설관리공단 관계자 : "행자부 고시에 의해 원칙에 맞게 20미터 간격으로 난연도료가 칠해져 있습니다."

현행 행자부 고시에서도 이처럼 부분적으로 도료를 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 부분 도료는 화재에 견딜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여의도 공동구 화재 뒤 서울시 용역보고서!

일정간격으로 칠해진 난연 도료는 화재 지연 효과가 없다고 판명했습니다.

<인터뷰> 이복영(방재시험연구원전기설비팀장) : "연소방지용 건너띄기식 도포는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미,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번 칠한 난연 도료는 시간이 흘러도 다시 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전 측은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한전 관계자 : "한번 칠하면 반영구적입니다. 자체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난연 도료를 칠한 지 오래된 케이블에 불을 붙여 보았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불과 몇 분만에 힘없이 도료가 떨어져 칠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미 설치된 전력 케이블의 안정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전은 지난 2000년 이전에 설치된 전력 케이블에 대해서는 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두 개 업체에서 납품한 몇몇 제품에 대해서만 한 번씩 검사했을 뿐 아예 검사를 하지 않은 것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첨부한 시험 성적 검사서로 안전성 검사를 대신하고 있어 품질을 믿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화재가 난 경기도 구리 전력구에 설치된 열감지선은 공인도 받지 않은 무검정품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력구의 소화 설비도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력구 내부의 소화 설비는 20미터 마다 놓여진 소화기가 전부입니다.

소화기로 불을 끄려면 화염 몇 미터 앞까지 다가가야 하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고온으로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인터뷰> 소방서 관계자 : "살수 설비라도 그 정도라도 해야되는데... 일단 불나버리면 지하에 어떻게 진입을 해요 진입자체가 안되는데."

한번 불이 난 뒤 방치된 구간의 안전성도 큰 문제입니다.

100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 노출된 콘크리트입니다.

곳곳이 균열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화재 뒤 더 큰 피해를 가져오는 이른바 폭열 현상입니다.

<인터뷰> 최승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 : "공동구 화재 특성상 콘크리트가 급격히 약해져 보수가 되지 않으면 붕괴의 위험성까지 가져옵니다."

실제 콘크리트는 600도 이상의 고온에 노출될 경우 그 강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잠금 장치를 한전만 갖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력선 화재는 초동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오히려 화재시 진화 작업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구리 화재도 소방서에서 먼저 출동했지만 한전 직원이 없어 초동 진화가 늦어졌습니다.

<인터뷰> 소방서 관계자 : "한전이 도착해서 조치가 끝날 때까지 대기 상태였어요." (일찍 출발해도 소용이 없는 거네요?) "소용이 없죠. 30~40분 지체했어요."

허술한 안전 관리에 원시적인 방재 대책, 지하 세계가 안전 사각 지대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현장추적 김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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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추적] 지하 전력구, 곳곳에 화재 위험
    • 입력 2007-01-29 21:29:10
    뉴스 9
<앵커 멘트> 지하 전력구는 고압전선이 흐르는 신경망이지만 화재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이 KBS 취재로 확인됐습니다. 방재 시스템이 허술하고 중구 난방식이어서 항상 대형사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김병용 기자가 현장추적으로 고발합니다. <리포트>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커먼 화염, 연기와 유독가스로 뒤덮인 지하 전력구. 지난해 12월 경기도 구리 전력구 화재 당시 전력구 내부 모습입니다. 7시간의 화재로 수십만 볼트의 전력선 곳곳이 녹아내리고 콘크리트 곳곳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전력선이 순식간에 타게된 것일까? 지난 94년 서울 혜화동 통신구 화재로 소방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전력 케이블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도료를 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인터뷰> 한전 관계자 : "현재 전력구에 깔려있는 케이블은 모두 난연 케이블입니다." 하지만 이 전력구에는 난연 도료가 칠해진 케이블은 없습니다. 실제 난연 도료에 따라 케이블이 타는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 실험해 봤습니다. 8백 도의 불꽃이 가해진 직후 난연 도료를 칠하지 않은 케이블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입니다. 전력선이 바로 심지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불이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복영(방재시험연구원 전기설비팀장) : "3~4분이면 자연연소 상태로 불이 붙습니다. 난연도료가 도포되면 20분까지도 불이 붙지 않고 견딥니다." 서울 가락동에 있는 또 다른 공동구. 상수도관을 비롯해 전력, 통신 케이블이 꽉 들어차 있는 도시의 신경망입니다. 수십만 볼트의 전기가 흘러가는 전력선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이처럼 난연 도료를 도포하도록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전력선은 전 구간이 아닌 부분 부분 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녹취> 시설관리공단 관계자 : "행자부 고시에 의해 원칙에 맞게 20미터 간격으로 난연도료가 칠해져 있습니다." 현행 행자부 고시에서도 이처럼 부분적으로 도료를 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 부분 도료는 화재에 견딜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여의도 공동구 화재 뒤 서울시 용역보고서! 일정간격으로 칠해진 난연 도료는 화재 지연 효과가 없다고 판명했습니다. <인터뷰> 이복영(방재시험연구원전기설비팀장) : "연소방지용 건너띄기식 도포는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미,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번 칠한 난연 도료는 시간이 흘러도 다시 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전 측은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한전 관계자 : "한번 칠하면 반영구적입니다. 자체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난연 도료를 칠한 지 오래된 케이블에 불을 붙여 보았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불과 몇 분만에 힘없이 도료가 떨어져 칠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미 설치된 전력 케이블의 안정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전은 지난 2000년 이전에 설치된 전력 케이블에 대해서는 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두 개 업체에서 납품한 몇몇 제품에 대해서만 한 번씩 검사했을 뿐 아예 검사를 하지 않은 것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첨부한 시험 성적 검사서로 안전성 검사를 대신하고 있어 품질을 믿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화재가 난 경기도 구리 전력구에 설치된 열감지선은 공인도 받지 않은 무검정품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력구의 소화 설비도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력구 내부의 소화 설비는 20미터 마다 놓여진 소화기가 전부입니다. 소화기로 불을 끄려면 화염 몇 미터 앞까지 다가가야 하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고온으로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인터뷰> 소방서 관계자 : "살수 설비라도 그 정도라도 해야되는데... 일단 불나버리면 지하에 어떻게 진입을 해요 진입자체가 안되는데." 한번 불이 난 뒤 방치된 구간의 안전성도 큰 문제입니다. 100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 노출된 콘크리트입니다. 곳곳이 균열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화재 뒤 더 큰 피해를 가져오는 이른바 폭열 현상입니다. <인터뷰> 최승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 : "공동구 화재 특성상 콘크리트가 급격히 약해져 보수가 되지 않으면 붕괴의 위험성까지 가져옵니다." 실제 콘크리트는 600도 이상의 고온에 노출될 경우 그 강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잠금 장치를 한전만 갖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력선 화재는 초동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오히려 화재시 진화 작업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구리 화재도 소방서에서 먼저 출동했지만 한전 직원이 없어 초동 진화가 늦어졌습니다. <인터뷰> 소방서 관계자 : "한전이 도착해서 조치가 끝날 때까지 대기 상태였어요." (일찍 출발해도 소용이 없는 거네요?) "소용이 없죠. 30~40분 지체했어요." 허술한 안전 관리에 원시적인 방재 대책, 지하 세계가 안전 사각 지대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현장추적 김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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