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국정원 직원 사칭’…가족도 속아

입력 2007.02.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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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0대 가정주부가 무려 9년 동안이나 국정원 비밀요원을 행세해오다 덜미가 잡히는 마치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정원 정치비자금을 담당하는 요원이라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수억 원을 가로챘는데, 부모는 물론 남편까지도 감쪽같이 속아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거짓말이 수년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윤영란 기자, 어떻게 된 일인가요?

<리포트>

네, 피의자 이모 여인은 지난 99년부터 국정원 직원 행세를 해왔습니다.

부모는 물론 결혼할 때도 남편에게까지 자신이 비밀요원이라고 속여 왔는데요, 국정원의 보안적 특성을 교묘히 이용해 일가친척들에게 자신과의 비밀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그 덕분에 수년간 가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두 아이의 엄마 이기도한 이 주부의 황당한 사기사건.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해 7월 박 모 씨는 고교 동창생 31살 이 모 여인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국정원에서 일한다는 이 씨, 정치자금으로 들어온 기업어음을 싼값에 투자하고, 비싼 이자까지 챙겨준다는 말이었는데요,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이 씨가)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데, 그것을 어음으로 받는다. 사채시장에서 (현금으로) 할인을 하던 것을 직원 몇몇이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할인을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 돈도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볼래?’ 이런 식으로......”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 씨의 든든한 신분을 믿었던 박 씨는 남편과 의논해 돈을 투자했는데요, 그 후, 급한 사정이 생겨 투자한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웬일인지 이 씨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투자 당시) 20일 뒤에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원금회수가 안 되더라고요. 그때 저희가 급한 돈이었기 때문에 계속 재촉을 했죠. 그 이후로도 계속 원금을 요구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된다고, 안된다고......”

점점 이 씨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진 박씨. 조심스럽게 국정원 직원인지 신분확인을 요청했는데요, 이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게 된 이씨. 하지만 조사를 받을 때조차 이 씨는 자신의 신분상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황당한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당시도 아직까지도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처럼 보안사항의 어려움 때문에 이야기를 잘 못한다고 말했고......”

처음 경찰조사를 받은 후, 이 씨는 박 씨에게 달려가 국정원 보안규정을 어겼다며, 따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이런 (보안내용)을 보여주면서 ‘너는 이런 법을 어겼다고, 이런 수칙들이 있는데, 너는 왜 어겼냐고.’하면서 보여주더라고요. 저희 집에 와서. 평소에도 그런 얘기는 많이 했어요. 절대로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 발설하면 안 되는 이야기라고......”

경찰조사 결과, 이 씨는 가짜로 밝혀졌습니다. 이 씨가 국정원 직원행세를 시작한 건 지난 99년부터. 친부모까지 속였다고 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리로 일하던 이 씨는 학원에서 속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중 ‘안기부에 속기사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시작했습니다.

이 씨의 거짓말은 이어 ‘국정원 자금담당 요원’으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청와대 파견 비자금 담당 비밀요원으로 거짓말이 더 대담해졌습니다. 가족은 물론 2001년에 결혼한 남편과 시댁 가족들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 갔습니다.

비밀요원 행세를 하다 보니 씀씀이도 커진 이씨, 5천여만 원의 카드빚을 지게 되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모두 7억여 원을 빌려 가로채기까지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법도 치밀했습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피의자가 자기 생일이나 (아기) 돌 때, 국정원 명의로 꽃바구니를 (자기가) 보내가지고 주변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처럼 인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또 투자자들에게는 국정원 홈페이지에서 뽑은 법률서류를 보여주며, 자신과의 거래를 누설하면, 국정원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며, 보안교육까지 시켰습니다.

이 씨의 그럴듯한 입단속 때문인지, 돈을 입금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이 씨가 국정원 직원이 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주변사람들한테 국정원 로고하고, 보안 규정을 보여주면서 ‘보안 때문에 더 이상 묻지 말라,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고, 아직까지 조사되지 않은 피해자 일부 중에는 현재도 (이씨가)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취재진은 이 씨의 가족과 만남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며칠째 집을 비운 듯, 우편물도 그대로였습니다.

<인터뷰> 아파트 관리인 (음성변조) : “그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던데?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택배가 하나 와 있는데 안 가지고 갔어요.”

인근 부동산에서 며칠 전 피의자의 남편이 집을 서둘러 팔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부동산 중개인 (음성변조) : “매매됐는데요, 매매했어요. 며칠 전에 매매됐어요.”

아내가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집까지 처분했다는 것입니다. 이사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보금자리였는데요, 아내 신분 때문인지 이웃과의 왕래도 거의 없어보였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 (음성변조) : “여름에 집 뜯어고치고 (이사 왔는데) 그런 정도로 밖에는 저희는 모르고 있어요.”

결혼 후 7년 동안 함께 가정을 꾸려왔지만, 그 동안 이 씨의 남편도 아내의 거짓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의자 남편 (음성변조) : “저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7년 동안 저는 아무것도 안 사실이 없고... (아내가) 사치생활이라도 했다면, 당연히 의심했겠죠.”

이 씨를 믿었던 친척들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 친지는 상처받은 가족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가족 (음성변조) : “터놓고 생각을 해 보시라고요. 집안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무슨 할 얘기가 있어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까 그냥 가 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라고요.”

두 아이와 함께 남겨진 남편. 한순간 사랑하는 아내와 재산을 잃었지만, 자신을 속인 아내에 대한 원망보다는 선처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피의자 남편 (음성변조) : “다른 사람들은 나쁘다고 하겠죠. 사기 친 건 잘못하긴 했는데, 평소 애들한테, 식구들한테 못했던 사람이면, 나도 정말 ‘아내가 독한 여자구나’ 하고 안 살겠는데,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국정원 비밀요원으로 위장해 수 년 동안 가짜 인생을 산 여인. 그녀가 꿈꾼 영화 같은 삶은 한순간의 물거품이 됐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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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국정원 직원 사칭’…가족도 속아
    • 입력 2007-02-07 08: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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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0대 가정주부가 무려 9년 동안이나 국정원 비밀요원을 행세해오다 덜미가 잡히는 마치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정원 정치비자금을 담당하는 요원이라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수억 원을 가로챘는데, 부모는 물론 남편까지도 감쪽같이 속아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거짓말이 수년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윤영란 기자, 어떻게 된 일인가요? <리포트> 네, 피의자 이모 여인은 지난 99년부터 국정원 직원 행세를 해왔습니다. 부모는 물론 결혼할 때도 남편에게까지 자신이 비밀요원이라고 속여 왔는데요, 국정원의 보안적 특성을 교묘히 이용해 일가친척들에게 자신과의 비밀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그 덕분에 수년간 가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두 아이의 엄마 이기도한 이 주부의 황당한 사기사건.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해 7월 박 모 씨는 고교 동창생 31살 이 모 여인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국정원에서 일한다는 이 씨, 정치자금으로 들어온 기업어음을 싼값에 투자하고, 비싼 이자까지 챙겨준다는 말이었는데요,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이 씨가)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데, 그것을 어음으로 받는다. 사채시장에서 (현금으로) 할인을 하던 것을 직원 몇몇이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할인을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 돈도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볼래?’ 이런 식으로......”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 씨의 든든한 신분을 믿었던 박 씨는 남편과 의논해 돈을 투자했는데요, 그 후, 급한 사정이 생겨 투자한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웬일인지 이 씨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투자 당시) 20일 뒤에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원금회수가 안 되더라고요. 그때 저희가 급한 돈이었기 때문에 계속 재촉을 했죠. 그 이후로도 계속 원금을 요구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된다고, 안된다고......” 점점 이 씨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진 박씨. 조심스럽게 국정원 직원인지 신분확인을 요청했는데요, 이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게 된 이씨. 하지만 조사를 받을 때조차 이 씨는 자신의 신분상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황당한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당시도 아직까지도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처럼 보안사항의 어려움 때문에 이야기를 잘 못한다고 말했고......” 처음 경찰조사를 받은 후, 이 씨는 박 씨에게 달려가 국정원 보안규정을 어겼다며, 따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00 (피해자, 음성변조) : “이런 (보안내용)을 보여주면서 ‘너는 이런 법을 어겼다고, 이런 수칙들이 있는데, 너는 왜 어겼냐고.’하면서 보여주더라고요. 저희 집에 와서. 평소에도 그런 얘기는 많이 했어요. 절대로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 발설하면 안 되는 이야기라고......” 경찰조사 결과, 이 씨는 가짜로 밝혀졌습니다. 이 씨가 국정원 직원행세를 시작한 건 지난 99년부터. 친부모까지 속였다고 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리로 일하던 이 씨는 학원에서 속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중 ‘안기부에 속기사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시작했습니다. 이 씨의 거짓말은 이어 ‘국정원 자금담당 요원’으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청와대 파견 비자금 담당 비밀요원으로 거짓말이 더 대담해졌습니다. 가족은 물론 2001년에 결혼한 남편과 시댁 가족들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 갔습니다. 비밀요원 행세를 하다 보니 씀씀이도 커진 이씨, 5천여만 원의 카드빚을 지게 되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모두 7억여 원을 빌려 가로채기까지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법도 치밀했습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피의자가 자기 생일이나 (아기) 돌 때, 국정원 명의로 꽃바구니를 (자기가) 보내가지고 주변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처럼 인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또 투자자들에게는 국정원 홈페이지에서 뽑은 법률서류를 보여주며, 자신과의 거래를 누설하면, 국정원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며, 보안교육까지 시켰습니다. 이 씨의 그럴듯한 입단속 때문인지, 돈을 입금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이 씨가 국정원 직원이 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한기수 경위 (경찰청) : “주변사람들한테 국정원 로고하고, 보안 규정을 보여주면서 ‘보안 때문에 더 이상 묻지 말라,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고, 아직까지 조사되지 않은 피해자 일부 중에는 현재도 (이씨가)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취재진은 이 씨의 가족과 만남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며칠째 집을 비운 듯, 우편물도 그대로였습니다. <인터뷰> 아파트 관리인 (음성변조) : “그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던데?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택배가 하나 와 있는데 안 가지고 갔어요.” 인근 부동산에서 며칠 전 피의자의 남편이 집을 서둘러 팔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부동산 중개인 (음성변조) : “매매됐는데요, 매매했어요. 며칠 전에 매매됐어요.” 아내가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집까지 처분했다는 것입니다. 이사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보금자리였는데요, 아내 신분 때문인지 이웃과의 왕래도 거의 없어보였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 (음성변조) : “여름에 집 뜯어고치고 (이사 왔는데) 그런 정도로 밖에는 저희는 모르고 있어요.” 결혼 후 7년 동안 함께 가정을 꾸려왔지만, 그 동안 이 씨의 남편도 아내의 거짓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의자 남편 (음성변조) : “저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7년 동안 저는 아무것도 안 사실이 없고... (아내가) 사치생활이라도 했다면, 당연히 의심했겠죠.” 이 씨를 믿었던 친척들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 친지는 상처받은 가족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가족 (음성변조) : “터놓고 생각을 해 보시라고요. 집안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무슨 할 얘기가 있어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까 그냥 가 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라고요.” 두 아이와 함께 남겨진 남편. 한순간 사랑하는 아내와 재산을 잃었지만, 자신을 속인 아내에 대한 원망보다는 선처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피의자 남편 (음성변조) : “다른 사람들은 나쁘다고 하겠죠. 사기 친 건 잘못하긴 했는데, 평소 애들한테, 식구들한테 못했던 사람이면, 나도 정말 ‘아내가 독한 여자구나’ 하고 안 살겠는데,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국정원 비밀요원으로 위장해 수 년 동안 가짜 인생을 산 여인. 그녀가 꿈꾼 영화 같은 삶은 한순간의 물거품이 됐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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