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신음하는 비극의 낙원

입력 2007.12.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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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태평양하면 누구나 파라다이스, 지상낙원을 떠올립니다.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남태평양이 더욱 그런 이미지를 각인시켰는데요.

하지만 그것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 주민들에게는 거리가 한 참 먼 얘깁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마다 경제난과 정정 불안, 종족 갈등 등으로 낙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주민들은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웅수 순회 특파원이 남태평양의 현실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수정처럼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다, 작열하는 태양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피지입니다. 이 때문에 피지는 꿈과 환상을 품고 온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 뒤로 조금만 들어가면 지상 낙원 피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피지의 수도 수바 시내 중심가 인근에 빈민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 2백여 가구... 우거진 수풀 사이 빈민촌은 난민촌을 방불케 합니다.

<인터뷰> 에마(빈민촌 주민) : "물이 부족합니다. 상황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식수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이곳에서 파라다이스를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미라마(빈민촌 주민) :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끊겼습니다."

바나나와 딸로 등 주변에 널린 열매들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인터뷰> 빈민촌 주민 : "이것이 딸로입니다. 딸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한가지입니다. (음식을 살 필요가 없겠네요?) 맞아요. 살 필요 없습니다. 이 딸로 먹으면 됩니다."

이 빈민촌에서 차로 5분 거리, 슬럼화 된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10년 넘게 계속되는 빈궁한 생활에 삶의 의욕도 거의 상실했습니다.

<인터뷰> 콜라티(아파트 주민) : "(여기 생활이 좋나요?) 예. (문제는 없습니까?) 없어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죠?) 술입니다."

이런 주민들의 삶은 근본적으로는 정치 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90만 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피지에서는 지난 87년 이후 쿠데타가 벌써 4번이나 발생했습니다.

피지 정정 불안의 주 요인 가운데 하나는 군부에 의한 잦은 정치개입입니다. 지난 해 1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현 정부에 대해서 유럽연합은 2009년 3월까지 민간정부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현 군부는 이에 동의한 상태입니다.

거듭되는 쿠데타의 악순환은 원주민과 150년 전 영국 식민지 시절 이주해온 인도계 피지인들 사이 계속 돼 온 종족 간 양극화가 원인입니다.

두 종족 간 대립과 배척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피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난해 쿠데타와 연이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등으로 50만 명이 넘던 관광객이 6% 가까이 줄면서 주 수입원인 관광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인터뷰> 압둘 샤리프(택시 기사) : "전에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하루에 6,70피지 달러, 많으면 100 피지 달러를 벌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나빠져 25에서 30 피지 달러 벌 때도 있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경기가 아주 나쁘죠."

더구나 쿠데타 이후 외국 원조 감소 등으로 피지 국내 총생산도 2.3% 줄었습니다.

피지 북동쪽,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가면 남태평양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군도인 솔로몬 제도가 나옵니다. 인구 44만 명의 솔로몬 제도 역시 쿠데타와 폭동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수도 니아라의 한 최고급 호텔 지난해 4월 반정부 폭동으로 건물이 불탄 이 호텔은 신축과 보수 공사가 한창입니다. 본관 건물은 허물고 다시 지었지만 다른 건물들에는 불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는 약탈과 폭동으로 파괴된 건물들이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폭동 이후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복구 계획조차 없습니다.

<인터뷰> 존(솔로몬 제도 법무부 관리) : "이 건물은 지난 해 4월 폭동 때 불에 타 무너졌습니다. 그 때 솔로몬 제도는 선거를 통해 기존 정부를 새로운 정부로 바꾸는 과도기였습니다."

특히 당시 중국인들이 돈으로 선거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차이나타운은 90% 이상 파괴됐고 중국인들은 파푸아뉴기니로 피신했습니다.

<인터뷰> 존 : "여기가 모두 중국인 가게들입니다. 차이나타운의 중심부이죠."

이후 일부 중국인들이 돌아왔지만 원주민들과 화교들 사이에 감정의 앙금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 규모 8.1의 강진과 함께 지진 해일이 닥쳐 5천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지난 2000년 쿠데타에 이어 지난해 인종폭동 등 크고 작은 소요사태와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솔로몬제도에 호주와 뉴질랜드는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피지와 솔로몬 제도가 겪는 비극은 파푸아 뉴기니와 키리바시 투발루, 쿡 제도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공통된 현상입니다. 파푸아 뉴기니는 잦은 부족 간 폭동과 군사반란으로 극심한 치안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6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파푸아뉴기니 에이즈 환자는 지금도 한 해 30%씩 증가하면서 재앙이 되고 있다고 유엔보고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투발루와 쿡 제도 등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사람들이 호주나 뉴질랜드로 탈출하면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드넓은 열대 바다에 수많은 아름다운 무인도와 비경을 간직한 남태평양, 이 광활한 바다에 점점이 박혀있는 작은 섬나라들은 식민지배의 후유증과 정치 불안, 여기에 자연재해로까지 신음하며 비극의 낙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주민들은 세계인들에 대해 남태평양의 풍광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자신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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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태평양 섬나라, 신음하는 비극의 낙원
    • 입력 2007-12-09 09:51:2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남태평양하면 누구나 파라다이스, 지상낙원을 떠올립니다.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남태평양이 더욱 그런 이미지를 각인시켰는데요. 하지만 그것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 주민들에게는 거리가 한 참 먼 얘깁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마다 경제난과 정정 불안, 종족 갈등 등으로 낙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주민들은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웅수 순회 특파원이 남태평양의 현실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수정처럼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다, 작열하는 태양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피지입니다. 이 때문에 피지는 꿈과 환상을 품고 온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 뒤로 조금만 들어가면 지상 낙원 피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피지의 수도 수바 시내 중심가 인근에 빈민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 2백여 가구... 우거진 수풀 사이 빈민촌은 난민촌을 방불케 합니다. <인터뷰> 에마(빈민촌 주민) : "물이 부족합니다. 상황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식수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이곳에서 파라다이스를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미라마(빈민촌 주민) :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끊겼습니다." 바나나와 딸로 등 주변에 널린 열매들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인터뷰> 빈민촌 주민 : "이것이 딸로입니다. 딸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한가지입니다. (음식을 살 필요가 없겠네요?) 맞아요. 살 필요 없습니다. 이 딸로 먹으면 됩니다." 이 빈민촌에서 차로 5분 거리, 슬럼화 된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10년 넘게 계속되는 빈궁한 생활에 삶의 의욕도 거의 상실했습니다. <인터뷰> 콜라티(아파트 주민) : "(여기 생활이 좋나요?) 예. (문제는 없습니까?) 없어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죠?) 술입니다." 이런 주민들의 삶은 근본적으로는 정치 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90만 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피지에서는 지난 87년 이후 쿠데타가 벌써 4번이나 발생했습니다. 피지 정정 불안의 주 요인 가운데 하나는 군부에 의한 잦은 정치개입입니다. 지난 해 1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현 정부에 대해서 유럽연합은 2009년 3월까지 민간정부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현 군부는 이에 동의한 상태입니다. 거듭되는 쿠데타의 악순환은 원주민과 150년 전 영국 식민지 시절 이주해온 인도계 피지인들 사이 계속 돼 온 종족 간 양극화가 원인입니다. 두 종족 간 대립과 배척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피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난해 쿠데타와 연이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등으로 50만 명이 넘던 관광객이 6% 가까이 줄면서 주 수입원인 관광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인터뷰> 압둘 샤리프(택시 기사) : "전에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하루에 6,70피지 달러, 많으면 100 피지 달러를 벌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나빠져 25에서 30 피지 달러 벌 때도 있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경기가 아주 나쁘죠." 더구나 쿠데타 이후 외국 원조 감소 등으로 피지 국내 총생산도 2.3% 줄었습니다. 피지 북동쪽,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가면 남태평양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군도인 솔로몬 제도가 나옵니다. 인구 44만 명의 솔로몬 제도 역시 쿠데타와 폭동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수도 니아라의 한 최고급 호텔 지난해 4월 반정부 폭동으로 건물이 불탄 이 호텔은 신축과 보수 공사가 한창입니다. 본관 건물은 허물고 다시 지었지만 다른 건물들에는 불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는 약탈과 폭동으로 파괴된 건물들이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폭동 이후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복구 계획조차 없습니다. <인터뷰> 존(솔로몬 제도 법무부 관리) : "이 건물은 지난 해 4월 폭동 때 불에 타 무너졌습니다. 그 때 솔로몬 제도는 선거를 통해 기존 정부를 새로운 정부로 바꾸는 과도기였습니다." 특히 당시 중국인들이 돈으로 선거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차이나타운은 90% 이상 파괴됐고 중국인들은 파푸아뉴기니로 피신했습니다. <인터뷰> 존 : "여기가 모두 중국인 가게들입니다. 차이나타운의 중심부이죠." 이후 일부 중국인들이 돌아왔지만 원주민들과 화교들 사이에 감정의 앙금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 규모 8.1의 강진과 함께 지진 해일이 닥쳐 5천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지난 2000년 쿠데타에 이어 지난해 인종폭동 등 크고 작은 소요사태와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솔로몬제도에 호주와 뉴질랜드는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피지와 솔로몬 제도가 겪는 비극은 파푸아 뉴기니와 키리바시 투발루, 쿡 제도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공통된 현상입니다. 파푸아 뉴기니는 잦은 부족 간 폭동과 군사반란으로 극심한 치안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6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파푸아뉴기니 에이즈 환자는 지금도 한 해 30%씩 증가하면서 재앙이 되고 있다고 유엔보고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투발루와 쿡 제도 등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사람들이 호주나 뉴질랜드로 탈출하면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드넓은 열대 바다에 수많은 아름다운 무인도와 비경을 간직한 남태평양, 이 광활한 바다에 점점이 박혀있는 작은 섬나라들은 식민지배의 후유증과 정치 불안, 여기에 자연재해로까지 신음하며 비극의 낙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주민들은 세계인들에 대해 남태평양의 풍광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자신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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