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판 무기여 잘 있거라

입력 2007.12.16 (11:1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발칸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던 보스니아에서 내전 당시 주민들이 숨겨뒀던 무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추악한 인종청소로 25만 명 이상이 희생됐던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전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아서 45만 정의 무기는 민간 소유로 남아있는 상태였는데요.

종교와 인종 간 화해를 이루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나타내면서 주민들의 무기 반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안세득 특파원이 보스니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소총은 60톤짜리 탱크로 깔아 뭉갭니다. 로켓포와 박격포, 중화기들은 용접불꽃으로 발사장치를 녹여냅니다.

뇌관을 빼내기 힘든 지뢰와 수류탄, 포탄은 한데 모아 폭파해버립니다.

1992년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은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꼽힙니다.

보스니아 인구 430만 명 가운데 25만 명이 피살됐습니다. 아기와 부녀자, 노인들까지 이른바 인종청소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17,000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실종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 가까운 200만 명이 3년간 난민으로 떠돌았습니다.

내전 당시, 이슬람교도 정부군과 세르비아 민병대, 크로아티아계 가톨릭 무장세력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는 50만 정에 이릅니다.

주민들은 최근 이 가운데 5만 정을 자진 신고하고 무기를 버렸습니다.

<인터뷰> 사비나(사라예보 거주 AFP통신 기자): “주민들은 하수구나 나무 밑에 무기를 숨겨두고 있었지만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고 있죠. 혹시 또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도심에는 반경 200미터 안에 4개 종교의 예배당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 그리스 정교회 본당, 유대교 성당이 서로 처마를 부딪칠 맞닿아 있습니다.

도심 공터는 내전 때 조성된 공동묘지들이 덮고 있습니다. 사라예보는 동양과 서양, 중동문화가 만나 종교와 인종이 뒤섞이는 접점입니다.

세계 1차 대전을 촉발시켰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 도시입니다.

그래서 발칸반도 화약고의 뇌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블라디미르 미예비치(신문 '오슬로보제니에' 편집국장): “최근 2백 년간 모두가 인종과 종교 간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보스니아는 1992년 2월 인구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교도와 17%의 소수민족 크로아티아계 가톨릭교도가 힘을 합쳐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인구의 30%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슬라브민족이 유고 연방의 존속을 요구하면서 독립 추진 세력을 공격했습니다.

유고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 민병대는 개전초 사라예보를 제외한 국토의 70%를 점령하고 이른바 인종청소를 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미국과 NATO가 공습을 단행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3년 반 동안의 내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NATO 평화유지군은 내전이 끝나자마자, 돈을 주고 무기를 사들이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추고 총기 사고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내전이 끝난 뒤에도 개인적인 보복과 살인, 자살을 비롯한 총기 사고로 10,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NATO 군은 무기 종류에 따라 최고 30만 원의 현금을 줬지만 주민들은 선뜻 무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필더(EU평화유지군 대변인): “95년 종전 후 평화정착을 바라는 열망이 높아져 옛 민병대원들이 많은 무기를 자진 반납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무기가 회수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지난 12년간 5조 원의 개발원조를 쏟아부어 재건과 안정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특히, 유럽연합은 EU 가입이라는 당근을 흔들면서 민족과 종파 간 화해와 협력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밀로세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전범 재판 도중 숨지고 세르비아에 온건파 정부가 들어서자, 보스니아인들은 이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슈테판 프리스너(UNDP보스니아담당관): “지난해 착수한 탄약 해체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4년 안에 마무리 것으로 봅니다. 인구 1인당 10Kg 씩 무장 시킬 수 있는 탄약 35,000톤을 재활용하는 작업입니다.”

NATO군과 UNDP, 보스니아 정부가 지금까지 회수한 무기는 소총 5만 정, 지뢰 3만 8천 개, 수류탄 22만 개, 실탄 1500만 발, 탄약 35,000톤입니다.

탄약과 포탄은 뇌관을 제거하고 증기로 화약을 녹여내 산업용 다이너마이트로 재처리되고 있습니다. 소총과 지뢰, 수류탄은 회수되는 대로 현장에서 해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보스니아에는 아직도 45만 정의 무기가 회수되지 않은채 민간 소유로 남아 있습니다.

보스니아정부와 UNDP는 지금까지 전체 불법무기의 20%만을 회수했습니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작업이 이렇게 더디고 힘든 것은 아직 내전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라예보 도심에는 총탄 자국으로 벌집이 된 아파트들과 무너진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내전 당시 실개천을 경계로 3년간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팔레 지역에서는 가족을 잃지 않은 집이 없습니다.

<인터뷰> 체헤르라비치(팔레 주민): “길을 잃어 시냇가로 나온 어린 애까지 총을 난사당해 처참하게 죽었어요. 그때는 무서워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지요.”

공동묘지에 가족을 묻어둔 주민들은 복수의 감정을 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유사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은 총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 5명 가운데 1명은 여전히 총기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내전 때 파괴됐던 모스타르의 다리는 6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됐습니다.

그러나 내전이 할퀴고 간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스니아는 지금도 평화와 공동번영이냐? 분리독립과 혼란이냐?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사라예보 공동묘지에는 지난 93년 드리나 강가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총에 맞아 함께 숨진 보스니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슬람교 터키계 여성과 그리스 정교회의 세르비아계 청년입니다. 두 남녀는 보스니아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없이 가리키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보스니아판 무기여 잘 있거라
    • 입력 2007-12-16 10:58:1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발칸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던 보스니아에서 내전 당시 주민들이 숨겨뒀던 무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추악한 인종청소로 25만 명 이상이 희생됐던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전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아서 45만 정의 무기는 민간 소유로 남아있는 상태였는데요. 종교와 인종 간 화해를 이루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나타내면서 주민들의 무기 반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안세득 특파원이 보스니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소총은 60톤짜리 탱크로 깔아 뭉갭니다. 로켓포와 박격포, 중화기들은 용접불꽃으로 발사장치를 녹여냅니다. 뇌관을 빼내기 힘든 지뢰와 수류탄, 포탄은 한데 모아 폭파해버립니다. 1992년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은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꼽힙니다. 보스니아 인구 430만 명 가운데 25만 명이 피살됐습니다. 아기와 부녀자, 노인들까지 이른바 인종청소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17,000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실종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 가까운 200만 명이 3년간 난민으로 떠돌았습니다. 내전 당시, 이슬람교도 정부군과 세르비아 민병대, 크로아티아계 가톨릭 무장세력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는 50만 정에 이릅니다. 주민들은 최근 이 가운데 5만 정을 자진 신고하고 무기를 버렸습니다. <인터뷰> 사비나(사라예보 거주 AFP통신 기자): “주민들은 하수구나 나무 밑에 무기를 숨겨두고 있었지만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고 있죠. 혹시 또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도심에는 반경 200미터 안에 4개 종교의 예배당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 그리스 정교회 본당, 유대교 성당이 서로 처마를 부딪칠 맞닿아 있습니다. 도심 공터는 내전 때 조성된 공동묘지들이 덮고 있습니다. 사라예보는 동양과 서양, 중동문화가 만나 종교와 인종이 뒤섞이는 접점입니다. 세계 1차 대전을 촉발시켰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 도시입니다. 그래서 발칸반도 화약고의 뇌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블라디미르 미예비치(신문 '오슬로보제니에' 편집국장): “최근 2백 년간 모두가 인종과 종교 간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보스니아는 1992년 2월 인구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교도와 17%의 소수민족 크로아티아계 가톨릭교도가 힘을 합쳐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인구의 30%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슬라브민족이 유고 연방의 존속을 요구하면서 독립 추진 세력을 공격했습니다. 유고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 민병대는 개전초 사라예보를 제외한 국토의 70%를 점령하고 이른바 인종청소를 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미국과 NATO가 공습을 단행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3년 반 동안의 내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NATO 평화유지군은 내전이 끝나자마자, 돈을 주고 무기를 사들이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추고 총기 사고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내전이 끝난 뒤에도 개인적인 보복과 살인, 자살을 비롯한 총기 사고로 10,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NATO 군은 무기 종류에 따라 최고 30만 원의 현금을 줬지만 주민들은 선뜻 무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필더(EU평화유지군 대변인): “95년 종전 후 평화정착을 바라는 열망이 높아져 옛 민병대원들이 많은 무기를 자진 반납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무기가 회수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지난 12년간 5조 원의 개발원조를 쏟아부어 재건과 안정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특히, 유럽연합은 EU 가입이라는 당근을 흔들면서 민족과 종파 간 화해와 협력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밀로세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전범 재판 도중 숨지고 세르비아에 온건파 정부가 들어서자, 보스니아인들은 이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슈테판 프리스너(UNDP보스니아담당관): “지난해 착수한 탄약 해체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4년 안에 마무리 것으로 봅니다. 인구 1인당 10Kg 씩 무장 시킬 수 있는 탄약 35,000톤을 재활용하는 작업입니다.” NATO군과 UNDP, 보스니아 정부가 지금까지 회수한 무기는 소총 5만 정, 지뢰 3만 8천 개, 수류탄 22만 개, 실탄 1500만 발, 탄약 35,000톤입니다. 탄약과 포탄은 뇌관을 제거하고 증기로 화약을 녹여내 산업용 다이너마이트로 재처리되고 있습니다. 소총과 지뢰, 수류탄은 회수되는 대로 현장에서 해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보스니아에는 아직도 45만 정의 무기가 회수되지 않은채 민간 소유로 남아 있습니다. 보스니아정부와 UNDP는 지금까지 전체 불법무기의 20%만을 회수했습니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작업이 이렇게 더디고 힘든 것은 아직 내전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라예보 도심에는 총탄 자국으로 벌집이 된 아파트들과 무너진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내전 당시 실개천을 경계로 3년간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팔레 지역에서는 가족을 잃지 않은 집이 없습니다. <인터뷰> 체헤르라비치(팔레 주민): “길을 잃어 시냇가로 나온 어린 애까지 총을 난사당해 처참하게 죽었어요. 그때는 무서워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지요.” 공동묘지에 가족을 묻어둔 주민들은 복수의 감정을 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유사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은 총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 5명 가운데 1명은 여전히 총기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내전 때 파괴됐던 모스타르의 다리는 6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됐습니다. 그러나 내전이 할퀴고 간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스니아는 지금도 평화와 공동번영이냐? 분리독립과 혼란이냐?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사라예보 공동묘지에는 지난 93년 드리나 강가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총에 맞아 함께 숨진 보스니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슬람교 터키계 여성과 그리스 정교회의 세르비아계 청년입니다. 두 남녀는 보스니아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없이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