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사막의 주인, 베두인족의 삶
입력 2008.04.13 (09:32)
수정 2008.04.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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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척박하기 그지없는 사막이 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얘기인데요.
문명의 바람은 이들에게도 불어 닥쳐 이제 삶의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베두인들은 쉽게 사막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사막의 주인, 베두인족을 만나봅니다. 정창준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칠흑 같은 사막의 밤에 베두인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베두인족 젊은이들이 같은 동작과 같은 음율 속에 하나가됩니다.
부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노래입니다. 흥이 나자 춤사위도 이어집니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베두인족... 이들에게 사막은 삶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비랄 리자 알카다(베두인): “사막은 우리에게 자유이자 온화함이고 용맹이자 자긍심입니다.”
베두인의 역사가 흐르는 나라 요르단... 이제는 그 남단에 베두인 보호구역이 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울 보다 넓은 사막에서 8천여 명의 베두인족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막 한 켠에서 양과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습니다. 물과 풀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내 사막을 이동하는 베두인 족. 양떼가 뿔뿔히 흩어져도 베테랑 양치기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모하마드 알리(베두인): “베두인은 사막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사막이 익숙하죠. 밤이면 빵을 만들어 먹고 나무아래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유목생활을 하다 보니 거처인 천막은 단순함 그 자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답게 아이들에겐 척박한 사막이 친근한 놀이터이고, 자연스럽게 가축들과 친해집니다. 저녁이 되면 천막은 사랑방이 됩니다.
잘라비야씨 가족은 일주일에 두 세번씩 함께 모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그날의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자립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통입니다.
방금 잡은 양고기를 쌀과 함께 삶아 담아내는 마스나프는 베두인 최고의 전통음식입니다. 가족이 함께 할 때면 전통 시를 낭송하면서 베두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베두인에서 사막은 자유의 상징입니다. 사막에서만큼은 법의 통제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체제와 문명은 베두인의 자유로운 삶을 더 이상 허용치 않습니다. 사막에 사는 베두인들도 이제는 정부에 신분을 등록합니다. 요르단의 경우 3개월간의 의무 군사훈련도 받습니다.
<인터뷰> 타르파 이드(베두인): “신분증은 우리가 요르단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신분증을 제시해 의료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목축을 생계수단 삼아 단순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연과 하나가 돼 살아온 베두인에게 변화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꿋꿋이 사막을 지키던 자발리야씨 부족 천여 명 가운데 10%도 사막을 떠났습니다. 베두인의 삶에도 변화가 불가피해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들이 교육을 받게 되면서 사막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두인 젊은이들에게도 컴퓨터 열풍은 예외가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파티마 하마드(베두인): “인생에서 닥치는 도전이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컴퓨터 이용법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에 자연적인 도전도 베두인을 사막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유목 자체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탄와(베두인): “이제 사막에 풀이 없어지고 있어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면서 풀이 자라지 못하는 거죠. 게다가 가축을 키울 사료는 비쌉니다.”
이렇게 되자 사막 유목민의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정부도 베두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막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베두인들은 보호구역으로 삶을 한정하고 정착 희망자에겐 주택뿐만 아니라 의료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막 근처 네 곳의 정착촌에는 베두인족 3천여 명이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삶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전기와 수도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착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소득지원사업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금속을 깎고 다듬어 공예품을 만듭니다. 베두인 여성의 손에서 전통 문양도 되살아납니다.
<인터뷰> 나왈 알 스와이히(베두인): “일을 하니 자립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니 행복합니다.”
하나둘 베두인의 유목전통은 정착생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막이 안겨준 정서는 평생 없앨 수 없는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사막은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정착촌에 살지만 때때로 가족을 데리고 사막에 가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습니다.”
도시문명의 확산 속에서도 베두인 전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녹취> 압둘라 카잔(요르단 대학 사회학 교수): “사막생활을 경험한 뒤에 도시로 나온 사람은 다시 사막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에 집이 있더라도 때때로 사막에 살 것입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전통 베두인족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문명은 정착민들을 경멸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베두인족을 사막에서 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주는 혼란은 베두인에게 사막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반전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사막이 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얘기인데요.
문명의 바람은 이들에게도 불어 닥쳐 이제 삶의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베두인들은 쉽게 사막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사막의 주인, 베두인족을 만나봅니다. 정창준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칠흑 같은 사막의 밤에 베두인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베두인족 젊은이들이 같은 동작과 같은 음율 속에 하나가됩니다.
부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노래입니다. 흥이 나자 춤사위도 이어집니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베두인족... 이들에게 사막은 삶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비랄 리자 알카다(베두인): “사막은 우리에게 자유이자 온화함이고 용맹이자 자긍심입니다.”
베두인의 역사가 흐르는 나라 요르단... 이제는 그 남단에 베두인 보호구역이 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울 보다 넓은 사막에서 8천여 명의 베두인족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막 한 켠에서 양과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습니다. 물과 풀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내 사막을 이동하는 베두인 족. 양떼가 뿔뿔히 흩어져도 베테랑 양치기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모하마드 알리(베두인): “베두인은 사막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사막이 익숙하죠. 밤이면 빵을 만들어 먹고 나무아래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유목생활을 하다 보니 거처인 천막은 단순함 그 자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답게 아이들에겐 척박한 사막이 친근한 놀이터이고, 자연스럽게 가축들과 친해집니다. 저녁이 되면 천막은 사랑방이 됩니다.
잘라비야씨 가족은 일주일에 두 세번씩 함께 모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그날의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자립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통입니다.
방금 잡은 양고기를 쌀과 함께 삶아 담아내는 마스나프는 베두인 최고의 전통음식입니다. 가족이 함께 할 때면 전통 시를 낭송하면서 베두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베두인에서 사막은 자유의 상징입니다. 사막에서만큼은 법의 통제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체제와 문명은 베두인의 자유로운 삶을 더 이상 허용치 않습니다. 사막에 사는 베두인들도 이제는 정부에 신분을 등록합니다. 요르단의 경우 3개월간의 의무 군사훈련도 받습니다.
<인터뷰> 타르파 이드(베두인): “신분증은 우리가 요르단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신분증을 제시해 의료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목축을 생계수단 삼아 단순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연과 하나가 돼 살아온 베두인에게 변화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꿋꿋이 사막을 지키던 자발리야씨 부족 천여 명 가운데 10%도 사막을 떠났습니다. 베두인의 삶에도 변화가 불가피해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들이 교육을 받게 되면서 사막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두인 젊은이들에게도 컴퓨터 열풍은 예외가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파티마 하마드(베두인): “인생에서 닥치는 도전이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컴퓨터 이용법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에 자연적인 도전도 베두인을 사막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유목 자체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탄와(베두인): “이제 사막에 풀이 없어지고 있어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면서 풀이 자라지 못하는 거죠. 게다가 가축을 키울 사료는 비쌉니다.”
이렇게 되자 사막 유목민의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정부도 베두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막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베두인들은 보호구역으로 삶을 한정하고 정착 희망자에겐 주택뿐만 아니라 의료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막 근처 네 곳의 정착촌에는 베두인족 3천여 명이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삶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전기와 수도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착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소득지원사업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금속을 깎고 다듬어 공예품을 만듭니다. 베두인 여성의 손에서 전통 문양도 되살아납니다.
<인터뷰> 나왈 알 스와이히(베두인): “일을 하니 자립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니 행복합니다.”
하나둘 베두인의 유목전통은 정착생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막이 안겨준 정서는 평생 없앨 수 없는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사막은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정착촌에 살지만 때때로 가족을 데리고 사막에 가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습니다.”
도시문명의 확산 속에서도 베두인 전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녹취> 압둘라 카잔(요르단 대학 사회학 교수): “사막생활을 경험한 뒤에 도시로 나온 사람은 다시 사막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에 집이 있더라도 때때로 사막에 살 것입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전통 베두인족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문명은 정착민들을 경멸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베두인족을 사막에서 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주는 혼란은 베두인에게 사막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반전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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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 사막의 주인, 베두인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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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8-04-13 08:39:32
- 수정2008-04-13 09:39:54

<앵커 멘트>
척박하기 그지없는 사막이 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얘기인데요.
문명의 바람은 이들에게도 불어 닥쳐 이제 삶의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베두인들은 쉽게 사막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사막의 주인, 베두인족을 만나봅니다. 정창준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칠흑 같은 사막의 밤에 베두인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베두인족 젊은이들이 같은 동작과 같은 음율 속에 하나가됩니다.
부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노래입니다. 흥이 나자 춤사위도 이어집니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베두인족... 이들에게 사막은 삶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비랄 리자 알카다(베두인): “사막은 우리에게 자유이자 온화함이고 용맹이자 자긍심입니다.”
베두인의 역사가 흐르는 나라 요르단... 이제는 그 남단에 베두인 보호구역이 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울 보다 넓은 사막에서 8천여 명의 베두인족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막 한 켠에서 양과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습니다. 물과 풀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내 사막을 이동하는 베두인 족. 양떼가 뿔뿔히 흩어져도 베테랑 양치기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모하마드 알리(베두인): “베두인은 사막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사막이 익숙하죠. 밤이면 빵을 만들어 먹고 나무아래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유목생활을 하다 보니 거처인 천막은 단순함 그 자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답게 아이들에겐 척박한 사막이 친근한 놀이터이고, 자연스럽게 가축들과 친해집니다. 저녁이 되면 천막은 사랑방이 됩니다.
잘라비야씨 가족은 일주일에 두 세번씩 함께 모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그날의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자립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통입니다.
방금 잡은 양고기를 쌀과 함께 삶아 담아내는 마스나프는 베두인 최고의 전통음식입니다. 가족이 함께 할 때면 전통 시를 낭송하면서 베두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베두인에서 사막은 자유의 상징입니다. 사막에서만큼은 법의 통제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체제와 문명은 베두인의 자유로운 삶을 더 이상 허용치 않습니다. 사막에 사는 베두인들도 이제는 정부에 신분을 등록합니다. 요르단의 경우 3개월간의 의무 군사훈련도 받습니다.
<인터뷰> 타르파 이드(베두인): “신분증은 우리가 요르단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신분증을 제시해 의료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목축을 생계수단 삼아 단순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연과 하나가 돼 살아온 베두인에게 변화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꿋꿋이 사막을 지키던 자발리야씨 부족 천여 명 가운데 10%도 사막을 떠났습니다. 베두인의 삶에도 변화가 불가피해보입니다. 베두인의 후예들이 교육을 받게 되면서 사막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두인 젊은이들에게도 컴퓨터 열풍은 예외가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파티마 하마드(베두인): “인생에서 닥치는 도전이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컴퓨터 이용법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에 자연적인 도전도 베두인을 사막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유목 자체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탄와(베두인): “이제 사막에 풀이 없어지고 있어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면서 풀이 자라지 못하는 거죠. 게다가 가축을 키울 사료는 비쌉니다.”
이렇게 되자 사막 유목민의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정부도 베두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막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베두인들은 보호구역으로 삶을 한정하고 정착 희망자에겐 주택뿐만 아니라 의료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막 근처 네 곳의 정착촌에는 베두인족 3천여 명이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삶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전기와 수도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착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소득지원사업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금속을 깎고 다듬어 공예품을 만듭니다. 베두인 여성의 손에서 전통 문양도 되살아납니다.
<인터뷰> 나왈 알 스와이히(베두인): “일을 하니 자립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니 행복합니다.”
하나둘 베두인의 유목전통은 정착생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막이 안겨준 정서는 평생 없앨 수 없는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센 알 시미(베두인 부족장): “사막은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정착촌에 살지만 때때로 가족을 데리고 사막에 가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습니다.”
도시문명의 확산 속에서도 베두인 전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녹취> 압둘라 카잔(요르단 대학 사회학 교수): “사막생활을 경험한 뒤에 도시로 나온 사람은 다시 사막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에 집이 있더라도 때때로 사막에 살 것입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전통 베두인족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문명은 정착민들을 경멸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베두인족을 사막에서 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주는 혼란은 베두인에게 사막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반전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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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준 기자 jchj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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