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 기로에 선 기회의 땅, 세르비아

입력 2008.05.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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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 뿐 아니라 최근 발칸의 화약고, 세르비아에서도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친 서방경향의 연립정부가 해산되면서 과거 인종청소의 비극을 불러왔던 강경 민족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그동안 공기업 민영화와 외자유치 등 친 서방 정책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럽연합 가입을 눈앞에 뒀던 세르비아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이냐, 민족주의냐 기로에 선 세르비아를 윤양균 순회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월 세르비아의 최대 국영기업인 우정공사가 민영화 일정을 발표했습니다. 우정공사는 유,무선 통신사업과 체신사업에 택배 등 물류, 그리고 예금기능까지 갖춘 그야말로 알짜기업입니다.

공개되는 규모는 7천3백만달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아직 익숙치 않은 세르비아 국민들에게는 낯선 경험입니다.

<인터뷰> 치리치(세르비아 우정공사CEO): "US스틸이나 필립모리스 외에 많은 외국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는 지난 2004년부터 2천개나 되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이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 1억6천만달러 수준이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5년 만에 27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EU등 친서방정책을 표방하는 타디치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세르비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티치9세르비아 경제개발부 차관): "작년에는 외국인 투자가 줄었는데, 아마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작년보다 외국인 투자가 많아질 것 같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세르비아는 최근 몇년 사이 기록적인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르비아는 지난 2006년 5.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티토 시대에 조성된 뒤 40년째 텅 빈 땅으로 남아있던 베오그라드 신시가지는 요즘 건물을 새로 올리는 공사로 비어있는 땅을 찾기가 힘듭니다.

특히 내년에 있을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앞두고 경기장과 선수촌을 짓는 공사까지 진행되면서 건설 경기는 정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 국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대형 할인매장들도 앞 다퉈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라(쇼핑객):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아요" (살 수 있는 물건이 부족하지 않나요?) "전혀 문제없어요."


유엔의 경제제재가 풀린 지 10년도 되지 않아 경제체제가 완전히 복구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지난 99년까지 유고 내전을 끝내도록 압박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경제제재를 가했습니다.

세르비아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채 7년을 버티다 끝내 백기를 들었습니다. 한때 옛 동유럽 국가가운데 선두를 달리던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들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국가가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돈들은 지난 1993년 유고연방이 발행한 화폐입니다. 금액은 0이 무려 11개나 붙은 5천억디나르. 상상을 초월하는 큰 금액이지만 화폐가치는 우리 돈으로 1원이 채 안 되는 휴지조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통용되지 않은 채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 고통의 쓰라린 기억은 세르비아인들을 바꿔놓았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과거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유고 연방 국가들과도 기꺼이 협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스포츠 의류를 만드는 이 공장은 매출의 60%를 과거 유고연방 국가인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종 가공은 세르비아에서 하지만 원단이나 1차 가공은 인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국가로 묶여있던 시절 생산과 판매방식을 그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인터뷰> 츠베도예비츠(의류생산업체 사장): "(산업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과거 생산구조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찾은 세르비아는 이제 EU가입을 당면한 최대의 과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과거 세르비아에 한참 뒤쳐졌던 루마니아나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한 뒤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데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세르비아 정부의 여론조사결과 국민의 77%가 EU가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르비아는 EU가 요구하는 가입조건을 거의 충족한 상태입니다.

<인터뷰> 미쉐비츠(EU가입 준비위원장): "2012년까지 EU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최종 점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EU에서 언제 받아줄 것인지를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문제이죠."

문제는 코소보입니다. 지난 2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과 EU등 서방국가들은 곧바로 이를 승인했습니다. 영토를 뺏겼다고 여긴 세르비아는 서방국가들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국과 EU회원국 대사관을 공격했습니다.

서방 기업의 상징인 맥도널드 상점도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되살아날 것처럼 보이던 세르비아 경제가 정치적 문제에 발목을 잡힌 순간입니다.

<인터뷰> 카카야(발칸지역 경제분석가): "세르비아 국민들은 EU에 가입할 것인지, 아니면 고립될 것인지 혹은 러시아와 가까워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코소보 독립 이후 친 서방 성향을 보이던 세르비아의 연립정부는 해산됐습니다. 오는 5월11일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선택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현재 코소보 독립에 자극받은 세르비아의 민심은 EU가입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자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세르비아가 EU가입을 선택할 지 아니면 자존심 지키기에 나설 것인 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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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 기로에 선 기회의 땅, 세르비아
    • 입력 2008-05-04 10:10:5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 뿐 아니라 최근 발칸의 화약고, 세르비아에서도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친 서방경향의 연립정부가 해산되면서 과거 인종청소의 비극을 불러왔던 강경 민족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그동안 공기업 민영화와 외자유치 등 친 서방 정책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럽연합 가입을 눈앞에 뒀던 세르비아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이냐, 민족주의냐 기로에 선 세르비아를 윤양균 순회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월 세르비아의 최대 국영기업인 우정공사가 민영화 일정을 발표했습니다. 우정공사는 유,무선 통신사업과 체신사업에 택배 등 물류, 그리고 예금기능까지 갖춘 그야말로 알짜기업입니다. 공개되는 규모는 7천3백만달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아직 익숙치 않은 세르비아 국민들에게는 낯선 경험입니다. <인터뷰> 치리치(세르비아 우정공사CEO): "US스틸이나 필립모리스 외에 많은 외국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는 지난 2004년부터 2천개나 되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이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 1억6천만달러 수준이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5년 만에 27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EU등 친서방정책을 표방하는 타디치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세르비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티치9세르비아 경제개발부 차관): "작년에는 외국인 투자가 줄었는데, 아마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작년보다 외국인 투자가 많아질 것 같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세르비아는 최근 몇년 사이 기록적인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르비아는 지난 2006년 5.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티토 시대에 조성된 뒤 40년째 텅 빈 땅으로 남아있던 베오그라드 신시가지는 요즘 건물을 새로 올리는 공사로 비어있는 땅을 찾기가 힘듭니다. 특히 내년에 있을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앞두고 경기장과 선수촌을 짓는 공사까지 진행되면서 건설 경기는 정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 국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대형 할인매장들도 앞 다퉈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라(쇼핑객):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아요" (살 수 있는 물건이 부족하지 않나요?) "전혀 문제없어요." 유엔의 경제제재가 풀린 지 10년도 되지 않아 경제체제가 완전히 복구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지난 99년까지 유고 내전을 끝내도록 압박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경제제재를 가했습니다. 세르비아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채 7년을 버티다 끝내 백기를 들었습니다. 한때 옛 동유럽 국가가운데 선두를 달리던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들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국가가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돈들은 지난 1993년 유고연방이 발행한 화폐입니다. 금액은 0이 무려 11개나 붙은 5천억디나르. 상상을 초월하는 큰 금액이지만 화폐가치는 우리 돈으로 1원이 채 안 되는 휴지조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통용되지 않은 채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 고통의 쓰라린 기억은 세르비아인들을 바꿔놓았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과거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유고 연방 국가들과도 기꺼이 협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스포츠 의류를 만드는 이 공장은 매출의 60%를 과거 유고연방 국가인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종 가공은 세르비아에서 하지만 원단이나 1차 가공은 인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국가로 묶여있던 시절 생산과 판매방식을 그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인터뷰> 츠베도예비츠(의류생산업체 사장): "(산업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과거 생산구조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찾은 세르비아는 이제 EU가입을 당면한 최대의 과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과거 세르비아에 한참 뒤쳐졌던 루마니아나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한 뒤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데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세르비아 정부의 여론조사결과 국민의 77%가 EU가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르비아는 EU가 요구하는 가입조건을 거의 충족한 상태입니다. <인터뷰> 미쉐비츠(EU가입 준비위원장): "2012년까지 EU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최종 점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EU에서 언제 받아줄 것인지를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문제이죠." 문제는 코소보입니다. 지난 2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과 EU등 서방국가들은 곧바로 이를 승인했습니다. 영토를 뺏겼다고 여긴 세르비아는 서방국가들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국과 EU회원국 대사관을 공격했습니다. 서방 기업의 상징인 맥도널드 상점도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되살아날 것처럼 보이던 세르비아 경제가 정치적 문제에 발목을 잡힌 순간입니다. <인터뷰> 카카야(발칸지역 경제분석가): "세르비아 국민들은 EU에 가입할 것인지, 아니면 고립될 것인지 혹은 러시아와 가까워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코소보 독립 이후 친 서방 성향을 보이던 세르비아의 연립정부는 해산됐습니다. 오는 5월11일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선택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현재 코소보 독립에 자극받은 세르비아의 민심은 EU가입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자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세르비아가 EU가입을 선택할 지 아니면 자존심 지키기에 나설 것인 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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