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비평]① 좌파? 우파? 색깔 칠하는 언론

입력 2008.09.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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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언론에 ‘좌파’라는 용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좌파 단체, 좌파 언론, 좌파 학자, 쇠고기 좌파 등 마치 유행이라도 하는 분위깁니다.

오늘은 이 좌파라는 용어가 우리 언론에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경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질문 1>

김 기자! 레드 콤플렉스가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극단적 반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좌파라는 말은 뭔가 사상적인 낙인을 찍는 듯한 느낌이 강한데요.

그런데 최근 언론이 특정 대상을 좌파로 지명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거죠?

<답변 1>

누군가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사람들과 이걸 다루는 기사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한 쪽에서 다른 한쪽에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최근에 굵직한 공안사건들이 터지면서 좌파라는 용어는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즉 사노련 소속 인사 8명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조선일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활동 영역을 넓혀온 <좌파단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옥죄기가 시작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아일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이념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방치된 <극렬 좌파 단체>들에 대한 수사가 활발해 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면 서울 한겨레, 경향, 한국 등은 신 공안정국 신호탄, 되살아난 보안법 망령, 신 공안 드라이브에 편승한 코드수사, 경찰의 무리한 수사라며 비판했습니다.

체포 이틀 뒤 사노련 인사 8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습니다.

사노련이라는 단체의 위험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영장 기각을 납득하기 어렵다, 친북이 아닌 <좌파 파괴 활동>에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반응했습니다.

사노련 관계자들이 체포된 다음날 원정희 씨가 간첩혐의로 검거됐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조선 중앙 동아는 한국판 마타하리, 미모 여간첩 성포섭, 성미끼로 군 기밀 수집 등의 자극적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10년 좌파 정권의 적폐다, 친북 용공 풍토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일보도 군 장교들이 여간첩의 성 농락에 놀아난 것은 지난 좌파 정권 때 안보관이 해이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일보도 10년 만의 간첩 검거라며 지난 정권 동안 느슨해진 안보 의식을 개탄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의 “연도별 간첩 검거 실적”을 보면 98년부터 2005년까지 15명의 간첩이 검거됐습니다.

동아일보는 간첩 검거 발표 사흘 뒤 우리 군에 침투한 간첩 용의자가 50명에 이른다는 단독 기사를 1면에 보도했습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실제 간첩 혐의가 포착된 장병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겨레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빨갱이 몰기”가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도 마녀사냥식 좌파 축출, 즉 매카시 공포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문 2>

친북용공, 좌익세력, 극렬 좌파. 과거 냉전 시대에 많이 사용했던 말들인데, 좌파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나요?

<답변 2>

해방 전후기의 이념 갈등 시대에는 좌익, 우익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습니다.

7-80년 대 권위주의 정권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좌경, 용공 등의 단어로 붙였습니다.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이념 갈등이 퇴조하면서 좌파 좌익 등의 용어는 정치권에서 정적을 공격하는 색깔론을 벌일 때 사용이 됐고 공식적으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이념적인 갈등이 증폭되면서 그리고 최근 정권교체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좌파라는 단어 사용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녹취> 홍준표 : "우리 한국 사회는 좌파 10년 동안 좌편향 정책이 많았습니다."

<녹취> 이한구 :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저질러 놓은 여러가지 적폐를 하루 빨리 청산..."

<녹취> 서정갑 : "좌익무장 폭도와 친북 좌익 세력들은 무엇보다도 반역자 김정일을 따르는 민족 반역 집단입니다."

<녹취> 노무현 : "당신 신자유주의자지? 다른 쪽에서는 당신 좌파정부지? 자꾸 물어봅니다. 하도 답답해서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녹취>김진홍 :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나 동막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좌파들이 영화, 저서, 문화 방면에 아주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녹취> 박세직 : "이들 좌파들의 최종 목표는 쇠고기 협상이 아니라 … 김정일을 통일 수령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녹취> 라이트코리아 :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종교단체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 적화전략에 앞장서는 친북좌파단체의 핵심세력으로 간주합니다."

<질문 3>

원래 좌파라는 말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자를 규정하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우리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개념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어떤 기준으로 좌파, 우파가 구별되는 겁니까?

바로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용어를 보면 좌파가 무슨 개념인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확한 좌파라는 용어가 단어 선택에 좀 더 엄밀해야 할 언론에서도 그 사용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겁니다.

언론 재단의 신문 검색 서비스와 각 언론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 봤습니다.

이념 논쟁이 가장 활발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선 기간을 전후한 1년 기간을 92년 대선부터 비교해 봤습니다.

지난 92년 대선 때는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500건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02년 대선 때 급격히 증가해 지난해 대선을 전후한 기간에는 3천 건이 넘습니다.

7배 가량 증가한 수칩니다.

언론사의 주장을 담는 사설과 칼럼을 분석해 봤습니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좌파라는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는 많게는 200건이 넘는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언론사 별로는 동아일보, 조선일보가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좌파’를 가장 많이 사용한 동아일보의 사설과 칼럼을 연도별로 분석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전후한 1년 동안 단 1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2004년을 거치면서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 1년 동안에는 243건의 사설과 칼럼을 썼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이틀에 한 건 이상사설과 칼럼에서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 셈입니다.

<질문 4>

좌파라는 용어 사용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나라에 좌파 세력이 그렇게 급격하게 증가한 겁니까?

<답변 4>

글쎄요. 그건 좌파를 정의하기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전통적 의미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좌파를 보자면 그런 의미의 좌파는 분명히 줄어든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조선이나 동아일보가 정의하는 좌파를 보자면 국민의 상당수가 좌파일 겁니다.

<질문 5>

노무현 정부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좌파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변 5>

노무현 정부 때 들어서 보수언론과 야당이 정부를 본격적으로 좌파 정부라고 칭하면서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논란이 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 계열의 신문들이 좌파 정권이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당시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녹취> 서청원(KBS뉴스2003.1.8) :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김대중 정권은 중도 좌파라고 규정하고 싶고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해묵은 색깔론이라는 반발이 컸지만 비슷한 주장은 계속 반복됐고 보수 신문들은 이후 좌파정권, 좌파정부라는 조어를 당연하게 쓰기 시작합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한국적 상황에 따라 좌파정부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박효종(서울대 교수/교과서포럼상임대표) : "북한에 관한 문제라든지 평가라든지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왔던 역사에 대한 평가라든지 산업화 민주화에 대한 평가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상당히 좌파 우파의 정체성이 갈린다고 하면은…좌파적인 성향을 가지고 사실은 집권을 한 것이고 또 그런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했기 때문에 좌파정부라고 하는 것이 비교적 그래도 객관적인 평가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런 식의 개념 정의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호기(연세대교수) : "보수주의나 우파를 지지하시는 분들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부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 정부라고 하는 그러한 비판을 해 왔었는데요. 이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구체적인 정책들을 우리가 돌아볼 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라크전 파병을 하고요, 한미 FTA를 추진하고 이런 일련의 정책들을 과연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지"

논란과는 관계없이 보수 신문들은 이후 좌파라는 단어를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용법을 넘어서 과거 진보, 개혁으로 불린 단체나 세력을 지칭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적어도 조선과 동아일보에서는 진보언론단체는 좌파언론단체로, 진보매체는 좌파매체로, 진보세력은 좌파세력으로 진보시민단체는 좌파시민단체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현 정부와 갈등을 빚는 경우는 좌파로 칭해지기도 합니다.

촛불 시민은 ‘쇠고기 좌파’로 극렬시위대는 ‘극렬 좌파 시위대’로 KBS와 MBC는 ‘좌파 방송’으로 규정됐습니다.

이처럼 좌파 개념을 자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념적 편향성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히틀러 입장에서 보면 무솔리니도 좌파라고요. 자기보다 무조건 왼쪽에 있으면 다 좌파니까. 그러니까 뒤집어서 얘기하면 얼마만큼 스스로가 극우에 와 있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질문 6>

예전에는 좌파-우파라는 구분 보다는 보-혁라는 구도를 더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요즘에는 보수 신문이 왜 좌파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고 합니까?

<답변 6>

좌파라는 말이 담고 있는 공격성이 많이 탈색됐다고 합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레드 콤플렉스는 이제 상당히 극복됐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파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효종(서울대 교수/교과서포럼상임대표) : "지난 한 10년 동안 어쨌든 좌파 정부가 들어서 가지고 뭐 대북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이제 색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제 좌우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 우리가 건국 시대에 가졌던 그와 같은 암울한 측면은 벗어나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제 낫지 않느냐."

하지만 좌파라는 용어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동아일보도 좌 우 구분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생겨난 지 200년이 넘었다. 당시와 비교해 세상은 엄청나게 복잡해졌는데 모든 사안마다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좌파로 호명되는 순간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의 추억과 결합되면서 적대적 개념으로 변질된다. 우파 극단주의자들에게 좌파의 호명은 여전히 반대세력을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로 작용한다."

이렇게 좌파란 용어 사용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동아일보의 많은 기사에서 좌파란 용어는 공격적으로 사용됩니다.

수구 꼴통 좌파, 얼치기 좌파, 좌파 탈레반, 깡소주 좌파.

조선일보도 비슷합니다.

좌파적 평등주의 도착증, 좌파 천둥벌거숭이, 무능한, 반지성적, 시대착오, 싸구려 불량 좌파 등 수식어들도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좌파를 보수의 대칭 개념으로 사용하는 논리적인 오류도 등장합니다.

좌파에서 보수로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고 개혁적 보수 정권을 원했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그 대척점인 우파가 아니라 보수 정권으로 규정한 기삽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냉전적 보수세력들이 권력을 잃으면서 결국 정책의 슬로건으로, 좌파세력이 집권했다 이런 어떤 국민의 본원적인 좌파 혐오주의 그 다음에 반공 의식을 건드리기 위한 어떤 정파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출발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이걸 과학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범주가 다른 개념들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논리적 규정이나 개념을 무시하고서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용어를 채택하려고 합니다.

용어를 통해서 상대편에게 색깔을 칠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는 일종의 정치 게임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정치 게임에 정치인들과 똑같이 뛰어들게 아니라 조금 더 엄밀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용어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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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비평]① 좌파? 우파? 색깔 칠하는 언론
    • 입력 2008-09-06 2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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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언론에 ‘좌파’라는 용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좌파 단체, 좌파 언론, 좌파 학자, 쇠고기 좌파 등 마치 유행이라도 하는 분위깁니다. 오늘은 이 좌파라는 용어가 우리 언론에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경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질문 1> 김 기자! 레드 콤플렉스가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극단적 반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좌파라는 말은 뭔가 사상적인 낙인을 찍는 듯한 느낌이 강한데요. 그런데 최근 언론이 특정 대상을 좌파로 지명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거죠? <답변 1> 누군가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사람들과 이걸 다루는 기사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한 쪽에서 다른 한쪽에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최근에 굵직한 공안사건들이 터지면서 좌파라는 용어는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즉 사노련 소속 인사 8명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조선일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활동 영역을 넓혀온 <좌파단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옥죄기가 시작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아일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이념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방치된 <극렬 좌파 단체>들에 대한 수사가 활발해 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면 서울 한겨레, 경향, 한국 등은 신 공안정국 신호탄, 되살아난 보안법 망령, 신 공안 드라이브에 편승한 코드수사, 경찰의 무리한 수사라며 비판했습니다. 체포 이틀 뒤 사노련 인사 8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습니다. 사노련이라는 단체의 위험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영장 기각을 납득하기 어렵다, 친북이 아닌 <좌파 파괴 활동>에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반응했습니다. 사노련 관계자들이 체포된 다음날 원정희 씨가 간첩혐의로 검거됐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조선 중앙 동아는 한국판 마타하리, 미모 여간첩 성포섭, 성미끼로 군 기밀 수집 등의 자극적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10년 좌파 정권의 적폐다, 친북 용공 풍토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일보도 군 장교들이 여간첩의 성 농락에 놀아난 것은 지난 좌파 정권 때 안보관이 해이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일보도 10년 만의 간첩 검거라며 지난 정권 동안 느슨해진 안보 의식을 개탄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의 “연도별 간첩 검거 실적”을 보면 98년부터 2005년까지 15명의 간첩이 검거됐습니다. 동아일보는 간첩 검거 발표 사흘 뒤 우리 군에 침투한 간첩 용의자가 50명에 이른다는 단독 기사를 1면에 보도했습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실제 간첩 혐의가 포착된 장병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겨레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빨갱이 몰기”가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도 마녀사냥식 좌파 축출, 즉 매카시 공포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문 2> 친북용공, 좌익세력, 극렬 좌파. 과거 냉전 시대에 많이 사용했던 말들인데, 좌파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나요? <답변 2> 해방 전후기의 이념 갈등 시대에는 좌익, 우익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습니다. 7-80년 대 권위주의 정권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좌경, 용공 등의 단어로 붙였습니다.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이념 갈등이 퇴조하면서 좌파 좌익 등의 용어는 정치권에서 정적을 공격하는 색깔론을 벌일 때 사용이 됐고 공식적으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이념적인 갈등이 증폭되면서 그리고 최근 정권교체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좌파라는 단어 사용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녹취> 홍준표 : "우리 한국 사회는 좌파 10년 동안 좌편향 정책이 많았습니다." <녹취> 이한구 :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저질러 놓은 여러가지 적폐를 하루 빨리 청산..." <녹취> 서정갑 : "좌익무장 폭도와 친북 좌익 세력들은 무엇보다도 반역자 김정일을 따르는 민족 반역 집단입니다." <녹취> 노무현 : "당신 신자유주의자지? 다른 쪽에서는 당신 좌파정부지? 자꾸 물어봅니다. 하도 답답해서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녹취>김진홍 :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나 동막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좌파들이 영화, 저서, 문화 방면에 아주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녹취> 박세직 : "이들 좌파들의 최종 목표는 쇠고기 협상이 아니라 … 김정일을 통일 수령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녹취> 라이트코리아 :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종교단체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 적화전략에 앞장서는 친북좌파단체의 핵심세력으로 간주합니다." <질문 3> 원래 좌파라는 말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자를 규정하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우리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개념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어떤 기준으로 좌파, 우파가 구별되는 겁니까? 바로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용어를 보면 좌파가 무슨 개념인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확한 좌파라는 용어가 단어 선택에 좀 더 엄밀해야 할 언론에서도 그 사용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겁니다. 언론 재단의 신문 검색 서비스와 각 언론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 봤습니다. 이념 논쟁이 가장 활발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선 기간을 전후한 1년 기간을 92년 대선부터 비교해 봤습니다. 지난 92년 대선 때는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500건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02년 대선 때 급격히 증가해 지난해 대선을 전후한 기간에는 3천 건이 넘습니다. 7배 가량 증가한 수칩니다. 언론사의 주장을 담는 사설과 칼럼을 분석해 봤습니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좌파라는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는 많게는 200건이 넘는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언론사 별로는 동아일보, 조선일보가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좌파’를 가장 많이 사용한 동아일보의 사설과 칼럼을 연도별로 분석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전후한 1년 동안 단 1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2004년을 거치면서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 1년 동안에는 243건의 사설과 칼럼을 썼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이틀에 한 건 이상사설과 칼럼에서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 셈입니다. <질문 4> 좌파라는 용어 사용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나라에 좌파 세력이 그렇게 급격하게 증가한 겁니까? <답변 4> 글쎄요. 그건 좌파를 정의하기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전통적 의미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좌파를 보자면 그런 의미의 좌파는 분명히 줄어든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조선이나 동아일보가 정의하는 좌파를 보자면 국민의 상당수가 좌파일 겁니다. <질문 5> 노무현 정부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좌파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변 5> 노무현 정부 때 들어서 보수언론과 야당이 정부를 본격적으로 좌파 정부라고 칭하면서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논란이 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 계열의 신문들이 좌파 정권이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당시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녹취> 서청원(KBS뉴스2003.1.8) :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김대중 정권은 중도 좌파라고 규정하고 싶고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해묵은 색깔론이라는 반발이 컸지만 비슷한 주장은 계속 반복됐고 보수 신문들은 이후 좌파정권, 좌파정부라는 조어를 당연하게 쓰기 시작합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한국적 상황에 따라 좌파정부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박효종(서울대 교수/교과서포럼상임대표) : "북한에 관한 문제라든지 평가라든지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왔던 역사에 대한 평가라든지 산업화 민주화에 대한 평가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상당히 좌파 우파의 정체성이 갈린다고 하면은…좌파적인 성향을 가지고 사실은 집권을 한 것이고 또 그런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했기 때문에 좌파정부라고 하는 것이 비교적 그래도 객관적인 평가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런 식의 개념 정의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호기(연세대교수) : "보수주의나 우파를 지지하시는 분들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부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 정부라고 하는 그러한 비판을 해 왔었는데요. 이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구체적인 정책들을 우리가 돌아볼 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라크전 파병을 하고요, 한미 FTA를 추진하고 이런 일련의 정책들을 과연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지" 논란과는 관계없이 보수 신문들은 이후 좌파라는 단어를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용법을 넘어서 과거 진보, 개혁으로 불린 단체나 세력을 지칭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적어도 조선과 동아일보에서는 진보언론단체는 좌파언론단체로, 진보매체는 좌파매체로, 진보세력은 좌파세력으로 진보시민단체는 좌파시민단체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현 정부와 갈등을 빚는 경우는 좌파로 칭해지기도 합니다. 촛불 시민은 ‘쇠고기 좌파’로 극렬시위대는 ‘극렬 좌파 시위대’로 KBS와 MBC는 ‘좌파 방송’으로 규정됐습니다. 이처럼 좌파 개념을 자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념적 편향성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히틀러 입장에서 보면 무솔리니도 좌파라고요. 자기보다 무조건 왼쪽에 있으면 다 좌파니까. 그러니까 뒤집어서 얘기하면 얼마만큼 스스로가 극우에 와 있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질문 6> 예전에는 좌파-우파라는 구분 보다는 보-혁라는 구도를 더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요즘에는 보수 신문이 왜 좌파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고 합니까? <답변 6> 좌파라는 말이 담고 있는 공격성이 많이 탈색됐다고 합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레드 콤플렉스는 이제 상당히 극복됐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파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효종(서울대 교수/교과서포럼상임대표) : "지난 한 10년 동안 어쨌든 좌파 정부가 들어서 가지고 뭐 대북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이제 색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제 좌우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 우리가 건국 시대에 가졌던 그와 같은 암울한 측면은 벗어나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제 낫지 않느냐." 하지만 좌파라는 용어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동아일보도 좌 우 구분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생겨난 지 200년이 넘었다. 당시와 비교해 세상은 엄청나게 복잡해졌는데 모든 사안마다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좌파로 호명되는 순간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의 추억과 결합되면서 적대적 개념으로 변질된다. 우파 극단주의자들에게 좌파의 호명은 여전히 반대세력을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로 작용한다." 이렇게 좌파란 용어 사용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동아일보의 많은 기사에서 좌파란 용어는 공격적으로 사용됩니다. 수구 꼴통 좌파, 얼치기 좌파, 좌파 탈레반, 깡소주 좌파. 조선일보도 비슷합니다. 좌파적 평등주의 도착증, 좌파 천둥벌거숭이, 무능한, 반지성적, 시대착오, 싸구려 불량 좌파 등 수식어들도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좌파를 보수의 대칭 개념으로 사용하는 논리적인 오류도 등장합니다. 좌파에서 보수로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고 개혁적 보수 정권을 원했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그 대척점인 우파가 아니라 보수 정권으로 규정한 기삽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냉전적 보수세력들이 권력을 잃으면서 결국 정책의 슬로건으로, 좌파세력이 집권했다 이런 어떤 국민의 본원적인 좌파 혐오주의 그 다음에 반공 의식을 건드리기 위한 어떤 정파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출발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이걸 과학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범주가 다른 개념들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논리적 규정이나 개념을 무시하고서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용어를 채택하려고 합니다. 용어를 통해서 상대편에게 색깔을 칠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는 일종의 정치 게임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정치 게임에 정치인들과 똑같이 뛰어들게 아니라 조금 더 엄밀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용어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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