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외줄타기 고수들

입력 2008.10.03 (08:58) 수정 2008.10.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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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영화 ‘왕의 남자’아직도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특히 까마득한 높이의 줄 위에서 주인공 장생이 연산군의 화살을 피해 높이 뛰어오르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죠.

보는 사람을 더 가슴 졸이게 하는 이런 줄타기 공연... 영화 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주 보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리포트>

장터나 잔치집 등을 돌며 재주를 펼치던 줄광대들의 모습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 전통 문화인데요 모질고 힘든 길이지만 꿋꿋이 줄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2년 줄타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이 있는가 하면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신세대 줄꾼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줄타기 문화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요 어제부터 전 세계 줄타기 고수들이 한데 모여 기량을 겨루는 축제가 한강에서 열렸습니다.

지름 3센티미터 줄 위에서 삶을 펼쳐보일 줄타기꾼들을 만나보시죠.

지상 2m, 허공에 걸린 외줄 하나에 의지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공중에서 180도 몸을 비틀기도 합니다.

한발짝 걸음조차 옮기기 힘든 줄 위를 제집 안방인 양 사뿐사뿐 내달리기도 합니다.

줄 위의 아슬아슬한 재주에 보는 관객들은 절로 입이 떡 벌어집니다.

<인터뷰>이강희(관객): "즐겁고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아슬아슬해서 마음 졸였습니다."

<인터뷰>김희수(관객): "줄 타고 도는 게 참 재미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지름 3cm의 줄 위를 마음껏 노니며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이는 올해로 32년째 줄을 타온, 천생 줄꾼 권원태 씨입니다.

<인터뷰>권원태(남사당 줄꾼): "줄은 땅에서 발을 딛고 몸이 떠 있잖아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날아가는 새 같은 날짐승들은 절대 안 건드려요"

장터나 잔치 집 등을 돌며 재주를 펼치는 남사당패 공연 중 하나인 줄타기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있는 우리네 전통문화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광대’라 부르며 천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편견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요.

권씨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대역을 맡으며 유명해지긴 했지만 춥고 배고픈 굴곡진 삶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터뷰>권원태(남사당 줄꾼): "지금 하고 있는 남사당놀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은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인정을 받아야지 외래문화를 좀 한다고 하면 그것을 고급스럽게 여기고 그게 멋있다.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너무 힘들어 줄꾼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적도 있지만 꿋꿋이 한길을 걷다보니 줄 위에서 가장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권 씨.

그러나 이제 권씨 곁에도 든든한 후계자가 생겼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줄꾼의 명맥을 이어갈 신세대 줄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권씨의 공연이 있을 때면 옆에서 모자며 부채며 하나하나를 챙기는 민중이.

<녹취>"오늘은 몇 시, 몇 시 (공연이야?)" "오늘은 3시 30분에 하고요……."

고등학교 2학년생인 민중이는 권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며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제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줄타기 공연을 본 후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 그 길로 줄꾼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데요.

동이 막 트기 시작한 이른 아침.

집 근처 허름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늘도 민중이가 줄 연습에 나섰습니다.

40여 가지의 기술 중 민중이가 할 수 있는 기술은 쌍홍잽이, 황새 두렁넘기 등 모두 13가지. 어린 나이치고는 제법 많은 기술을 구사하는 편입니다.

때로는 줄에 스쳐 상처를 입기도 하고, 그대로 떨어져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여전히 민중이에게 줄타기는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인터뷰>김민중(고등학교 2학년 줄꾼): "발바닥도 아프고 몸 전체가 다 아픈 거예요. 항상 부채로 중심 잡아야 하니까 팔에 마비 올 때까지 해야 돼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재미있고 멋있는 것 같아요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줄꾼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님은 행여 몸이 다칠까 염려도 되고, 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반대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인터뷰>심정숙(김민중 군 어머니): "똑바로 보지는 못하고 눈 감고 기도하다가 박수소리 나면 끝났구나..그 다음 박수소리 나면 시작 하는구나 ……. 어차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까 욕심은 줄타기라는 것을 많이 알렸으면 ……"

그런데 10월 2일, 어제부터죠.

세계의 줄타기 고수들이 한강에 모여 기량을 겨루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미국, 중국, 독일 등 전 세계 14개국, 27명의 줄타기 명인들이 참가해 한강 양화지구와 망원지구 사이에 설치된 지상 22m, 세계 최장 길이인 1km의 외줄을 가장 빠르게 횡단하는 사람을 가려내게 되는데요.

<인터뷰>티노 왈렌다(미국): "참가하게 돼서 기쁘고요, 이 대회를 정말 학수고대 했습니다."

작년에 열린 1회 대회에서는 중국의 제1회 세계 한강 줄타기 대회 우지 압둘라 선수가 11분 22초의 기록으로 지난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세계 최장거리를 횡단하다보니 한강에 추락하며 완주에 실패한 헝가리 선수도 있었는데요,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가운데 대회 첫날, 앞서 보셨던 국내 최고의 줄타기 고수인 권원태 씨가 조직위원장 겸 국가대표로 출전해 참가 선수 중 가장 먼저 경기를 펼쳤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등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 대회가 끝까지 진행되진 못했지만 우리 전통공연에 외국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만 봐도 가슴 뿌듯했습니다

<인터뷰>예카데리나 막시모바(러시아): "저의 목표는 안전하게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줄타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훌륭한 전통 문화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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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외줄타기 고수들
    • 입력 2008-10-03 08:24:50
    • 수정2008-10-03 15: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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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영화 ‘왕의 남자’아직도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특히 까마득한 높이의 줄 위에서 주인공 장생이 연산군의 화살을 피해 높이 뛰어오르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죠. 보는 사람을 더 가슴 졸이게 하는 이런 줄타기 공연... 영화 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주 보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리포트> 장터나 잔치집 등을 돌며 재주를 펼치던 줄광대들의 모습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 전통 문화인데요 모질고 힘든 길이지만 꿋꿋이 줄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2년 줄타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이 있는가 하면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신세대 줄꾼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줄타기 문화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요 어제부터 전 세계 줄타기 고수들이 한데 모여 기량을 겨루는 축제가 한강에서 열렸습니다. 지름 3센티미터 줄 위에서 삶을 펼쳐보일 줄타기꾼들을 만나보시죠. 지상 2m, 허공에 걸린 외줄 하나에 의지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공중에서 180도 몸을 비틀기도 합니다. 한발짝 걸음조차 옮기기 힘든 줄 위를 제집 안방인 양 사뿐사뿐 내달리기도 합니다. 줄 위의 아슬아슬한 재주에 보는 관객들은 절로 입이 떡 벌어집니다. <인터뷰>이강희(관객): "즐겁고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아슬아슬해서 마음 졸였습니다." <인터뷰>김희수(관객): "줄 타고 도는 게 참 재미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지름 3cm의 줄 위를 마음껏 노니며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이는 올해로 32년째 줄을 타온, 천생 줄꾼 권원태 씨입니다. <인터뷰>권원태(남사당 줄꾼): "줄은 땅에서 발을 딛고 몸이 떠 있잖아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날아가는 새 같은 날짐승들은 절대 안 건드려요" 장터나 잔치 집 등을 돌며 재주를 펼치는 남사당패 공연 중 하나인 줄타기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있는 우리네 전통문화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광대’라 부르며 천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편견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요. 권씨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대역을 맡으며 유명해지긴 했지만 춥고 배고픈 굴곡진 삶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터뷰>권원태(남사당 줄꾼): "지금 하고 있는 남사당놀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은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인정을 받아야지 외래문화를 좀 한다고 하면 그것을 고급스럽게 여기고 그게 멋있다.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너무 힘들어 줄꾼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적도 있지만 꿋꿋이 한길을 걷다보니 줄 위에서 가장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권 씨. 그러나 이제 권씨 곁에도 든든한 후계자가 생겼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줄꾼의 명맥을 이어갈 신세대 줄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권씨의 공연이 있을 때면 옆에서 모자며 부채며 하나하나를 챙기는 민중이. <녹취>"오늘은 몇 시, 몇 시 (공연이야?)" "오늘은 3시 30분에 하고요……." 고등학교 2학년생인 민중이는 권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며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제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줄타기 공연을 본 후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 그 길로 줄꾼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데요. 동이 막 트기 시작한 이른 아침. 집 근처 허름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늘도 민중이가 줄 연습에 나섰습니다. 40여 가지의 기술 중 민중이가 할 수 있는 기술은 쌍홍잽이, 황새 두렁넘기 등 모두 13가지. 어린 나이치고는 제법 많은 기술을 구사하는 편입니다. 때로는 줄에 스쳐 상처를 입기도 하고, 그대로 떨어져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여전히 민중이에게 줄타기는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인터뷰>김민중(고등학교 2학년 줄꾼): "발바닥도 아프고 몸 전체가 다 아픈 거예요. 항상 부채로 중심 잡아야 하니까 팔에 마비 올 때까지 해야 돼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재미있고 멋있는 것 같아요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줄꾼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님은 행여 몸이 다칠까 염려도 되고, 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반대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인터뷰>심정숙(김민중 군 어머니): "똑바로 보지는 못하고 눈 감고 기도하다가 박수소리 나면 끝났구나..그 다음 박수소리 나면 시작 하는구나 ……. 어차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까 욕심은 줄타기라는 것을 많이 알렸으면 ……" 그런데 10월 2일, 어제부터죠. 세계의 줄타기 고수들이 한강에 모여 기량을 겨루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미국, 중국, 독일 등 전 세계 14개국, 27명의 줄타기 명인들이 참가해 한강 양화지구와 망원지구 사이에 설치된 지상 22m, 세계 최장 길이인 1km의 외줄을 가장 빠르게 횡단하는 사람을 가려내게 되는데요. <인터뷰>티노 왈렌다(미국): "참가하게 돼서 기쁘고요, 이 대회를 정말 학수고대 했습니다." 작년에 열린 1회 대회에서는 중국의 제1회 세계 한강 줄타기 대회 우지 압둘라 선수가 11분 22초의 기록으로 지난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세계 최장거리를 횡단하다보니 한강에 추락하며 완주에 실패한 헝가리 선수도 있었는데요,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가운데 대회 첫날, 앞서 보셨던 국내 최고의 줄타기 고수인 권원태 씨가 조직위원장 겸 국가대표로 출전해 참가 선수 중 가장 먼저 경기를 펼쳤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등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 대회가 끝까지 진행되진 못했지만 우리 전통공연에 외국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만 봐도 가슴 뿌듯했습니다 <인터뷰>예카데리나 막시모바(러시아): "저의 목표는 안전하게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줄타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훌륭한 전통 문화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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