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 설화’는 무너지다

입력 2009.01.1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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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가 국경을 넘어 사랑했다는 '서동요' 설화는 무너지는 걸까요. 이번에 발굴된 유물에서 무왕의 부인은 백제 귀족의 딸로 기록돼 있습니다.

계속해서 정홍규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유사는 미륵사를 세운 것은 백제 30대 왕인 무왕과 무왕의 부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다. 부인은 왕에게 말했다. 모름지기 이곳에다 대가람을 창건해야 할 것입니다."

무왕의 부인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로, 무왕이 선화 공주를 부인으로 삼기 위해 부른 노래가 바로 서동요라는 게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은 서동으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고 듣고, 아이들을 꾀어내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하지만 당시 백제와 신라 두 나라는 치열한 전쟁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동안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사돈을 맺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 발굴에서는 이같은 의문을 풀어주는 유물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미륵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금제사리봉안기를 보면 당시 백제 왕후는 선화 공주가 아니라 최고 관직인 좌평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 이건무(문화재청장) : "창건 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더 정확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 년도 넘게 그 비밀을 간직해 온 백제 최고 유물의 발견으로 서동 설화는 이제 역사가 아닌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남게 됐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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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 설화’는 무너지다
    • 입력 2009-01-19 2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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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가 국경을 넘어 사랑했다는 '서동요' 설화는 무너지는 걸까요. 이번에 발굴된 유물에서 무왕의 부인은 백제 귀족의 딸로 기록돼 있습니다. 계속해서 정홍규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유사는 미륵사를 세운 것은 백제 30대 왕인 무왕과 무왕의 부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다. 부인은 왕에게 말했다. 모름지기 이곳에다 대가람을 창건해야 할 것입니다." 무왕의 부인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로, 무왕이 선화 공주를 부인으로 삼기 위해 부른 노래가 바로 서동요라는 게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은 서동으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고 듣고, 아이들을 꾀어내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하지만 당시 백제와 신라 두 나라는 치열한 전쟁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동안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사돈을 맺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 발굴에서는 이같은 의문을 풀어주는 유물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미륵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금제사리봉안기를 보면 당시 백제 왕후는 선화 공주가 아니라 최고 관직인 좌평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 이건무(문화재청장) : "창건 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더 정확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 년도 넘게 그 비밀을 간직해 온 백제 최고 유물의 발견으로 서동 설화는 이제 역사가 아닌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남게 됐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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