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이후에도 김일성은 거물급 밀사를 보내, 박정희 의장의 진의 파악을 시도하는데요,
급기야 밀사는 사형당하고, 남북관계는 빙하기로 접어듭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반공을 국가이념으로 내걸었습니다.
<녹취>대한뉴스 혁명공약 :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반면 김일성 수상은 박정희 의장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박 의장의 형 박상희의 고향 친구인 황태성 무역성 부상을 내려보내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박상희 부인의 신고로 황태성은 체포돼 수감됐습니다.
이 사실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공화당이 간첩 황태성의 자금으로 조직됐다"고 주장하면서 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박 의장의 사상적 배경을 의심하던 미국도 황태성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태가 악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 판결 직후 황태성을 사형시켰고, 김일성 수상도 박 정권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녹취>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이건 도저히 안되겠구나라고 단념하고 남한에 공세를 취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됐습니다."
황태성 사건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는 향후 10년 동안 극도의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이후에도 김일성은 거물급 밀사를 보내, 박정희 의장의 진의 파악을 시도하는데요,
급기야 밀사는 사형당하고, 남북관계는 빙하기로 접어듭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반공을 국가이념으로 내걸었습니다.
<녹취>대한뉴스 혁명공약 :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반면 김일성 수상은 박정희 의장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박 의장의 형 박상희의 고향 친구인 황태성 무역성 부상을 내려보내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박상희 부인의 신고로 황태성은 체포돼 수감됐습니다.
이 사실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공화당이 간첩 황태성의 자금으로 조직됐다"고 주장하면서 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박 의장의 사상적 배경을 의심하던 미국도 황태성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태가 악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 판결 직후 황태성을 사형시켰고, 김일성 수상도 박 정권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녹취>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이건 도저히 안되겠구나라고 단념하고 남한에 공세를 취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됐습니다."
황태성 사건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는 향후 10년 동안 극도의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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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진의 파악 위해 거물급 밀사 파견”
-
- 입력 2009-10-15 21:01:34
![](/newsimage2/200910/20091015/1865996.jpg)
<앵커 멘트>
이후에도 김일성은 거물급 밀사를 보내, 박정희 의장의 진의 파악을 시도하는데요,
급기야 밀사는 사형당하고, 남북관계는 빙하기로 접어듭니다. 정인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반공을 국가이념으로 내걸었습니다.
<녹취>대한뉴스 혁명공약 :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반면 김일성 수상은 박정희 의장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박 의장의 형 박상희의 고향 친구인 황태성 무역성 부상을 내려보내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박상희 부인의 신고로 황태성은 체포돼 수감됐습니다.
이 사실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공화당이 간첩 황태성의 자금으로 조직됐다"고 주장하면서 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박 의장의 사상적 배경을 의심하던 미국도 황태성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태가 악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 판결 직후 황태성을 사형시켰고, 김일성 수상도 박 정권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녹취>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이건 도저히 안되겠구나라고 단념하고 남한에 공세를 취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됐습니다."
황태성 사건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는 향후 10년 동안 극도의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KBS 뉴스 정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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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기자 chungi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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