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수술 7번의 악몽

입력 2010.03.08 (11:43) 수정 2010.03.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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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방금 보신 사진에는 어느 30대 주부의 손가락 수술 경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면서 두 마디를 절단하고, 7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과연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87일간의 기록을 들여다 봤습니다.

<리포트>

직장에서 돌아온 권창현 씨가 부인 오 모 씨의 손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오 씨는 지난 해 여름 한 대학병원에서 왼손 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살 때 입은 화상으로 30여 년간 굽어 있던 손가락을 펴는, 고난도의 수술이었습니다.

손바닥 전체와 손가락 일부에는 신체 다른 부위의 피부가 이식됐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이게 자기의 살이 아니다 보니까 감각도 없고 혈액 순환이 잘 안되나 봐요. 날씨가 조금이라도 춥거나 하면 통증이 오는 거에요."

87일간의 입원 기간 동안 7번의 수술,그리고 지난 해 말엔 지체장애 3급 판정까지...

<녹취> 오00(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 "수술 전에는 그냥 제 손의 상태 정도가 누구나 자기 신체에 콤플렉스 한 군데 있잖아요.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못한 게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부터 시작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두 손이 필요한 집안 일은 이제 모두 남편 몫이 됐습니다.

남편을 옆에서 거들어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녹취> 오00(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 "김치통이랑 음식 꺼내면서 엎을 때도 많고 깨진 그릇도 많고, 특히 걸레질은 아예 못하겠어요. 청소기로만 거의 청소하다시피 하고 먼지가 수북해지면 물티슈로 뽑아서 훔쳐내고 그 정도에요."

오 씨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집 근처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일입니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세 번째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합니다.

추가 성형까지 해야할 마당에 재활치료가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습니다.

<녹취> 박제상(재활의학과 전문의) : "증상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관절 자체가 처음에는 많이 안 구부려졌는데 지금 상태로 이 정도 구부러지고 있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냐가 문제인데 지금 상태에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 씨의 악몽은 지난 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술 3일 만에 촬영한 오 씨의 왼손 사진입니다.

핀을 박아놓은 네 번째 손가락 끝부분에 혈액이 고이는 혈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차례 무균 치료를 받았지만, 혈종 부위는 점점 검게 변해갔습니다.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돼 손가락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교수님께서 전공의들이 찍은 사진을 처음으로 보시고 전공의들한테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뭘 했냐, 넌 1년차보다 못한 놈이다, 이렇게 병실에서 호통을 치셨고..."

괴사 부위가 점점 확대되면서 의료진은 재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오 씨의 집도의는 남편 권 씨가 요청한 면담에서 수술 이후 처치 과정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남편 권 씨는 취재진에게 면담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녹취> 남편-집도의 면담 : "(이게 수술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처치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솔직히 수술에서보다는 처치에서 좀 문제가 있었던 거죠. 솔직한 얘기로. 처치를 하는 거가 조금 늦지 않았나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그래서 내가 요즘 00선생한테도 뭐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 어찌됐든 간에 책임에 관한 문제는 내가 책임을 지는 거니까..."

오 씨는 그러나 집도의의 해외 세미나 일정 때문에 첫 수술 이후 20일이 지나서야 2차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손가락의 첫째 마디를 절단하고 남은 부분을 복부에 심는 피판술이었습니다.

수술 직전 실시한 세균검사에선 수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습니다.

그러나 2차 수술 엿새 뒤 부분적으로 실밥을 떼어내자 수술 부위에 노랗게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의 괴사 조직을 추가 절단하는 3차 수술을 받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3차 수술 4일째 되는 날 벌써 염증이 생기고 손가락이 찢어지면서 실밥이 너덜너덜하게 되어서 5일째 되는 날은 뱃살하고 손가락 피부는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됐죠."

뱃속에 썩은 손가락 뼈가 남아 있던 게 화근이었다고, 권 씨는 주장했습니다.

4차 수술에선 손가락의 둘째 마디까지 추가 절단하고 복부에 다시 봉합했습니다.

보름 쯤 지난 뒤 손가락을 복부에서 분리하는 5차 수술이 시도됐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5차 수술한 그 날 저녁에 병실로 돌아왔는데 주치의가 와서 덮어놓았던 거즈를 제거하고 드레싱을 하려고 했는데 여기 배에서 절개한 부분에서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증세가 다시 안정되자 의료진은 일주일 뒤 다시 분리를 시도했습니다.

6차 수술이었습니다.

손가락을 배에서 분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복부에서 떼어낸 피부를 완전히 봉합하지 못했습니다.

오 씨의 의료기록에는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 씨는 결국 엉덩이 피부를 추가로 떼어내 상처 부위에 이식하는 7차 수술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오 씨의 집도의는 석 달 동안의 수술비를 상당 부분 감면해 줬고, 병원 측도 2천만 원에 가까운 진료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촉구한다..촉구한다..

그러나 남편 권창현 씨는 지난 달초부터 직장 동료 등 지인들과 함께 병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먼저 보상 얘기까지 꺼냈던 병원 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미납된 진료비를 전부 납부하라고 통보하고, 채권 추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취재진이 집회 현장을 찾은 지난 달 24일,

어찌된 일인 지 권 씨의 직장 동료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이 권 씨의 회사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직원들의 집회 참석이 계속될 경우 관리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권 씨 부부에겐 갖가지 법률적인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합법적으로 집회를 했는데도 경찰서에 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형사고소를 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민사로 병원비 청구소송을 했고, 영업방해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습니다."

취재진은 3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오 씨의 의료기록 감정을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측에 의뢰했습니다.

이 시민단체는 매년 4천여 건의 의료사고 상담을 처리하고 있고, 이 가운데 3백여 건에 대해서는 비공개 자문 의료진의 정밀 감정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감정 결과 보고서는 첫 번째 수술 이후 의료진의 처치가 소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맥부전 상태는 드레싱만으로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5월 19일 수술 후 동맥부전을 발견한 시점에서 조기에 재수술이 진행됐어야 하나 이를 소홀히 하여 결국 절단의 범위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또, 수술 부위의 염증 치료 과정도 문제삼았습니다.

수술후 혈종이 생기고 피부색이 점점 변해갈 때 원인균 확인을 하고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나, 위 병원은 이러한 배양검사 없이 계속 같은 항생제를 투여하였고, 6월 8일 MRSA균(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된 후에도 이 균에 감수성이 있는 반코마이신 등을 투여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취재진은 지난 주 병원 측에 집도의와의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음성 녹취만 허락되는 조건으로 집도의와의 면담이 성사됐습니다.

먼저 집도의가 환자 가족과의 면담에서 첫 수술 후 처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녹취> 오 씨(집도의) : "그러니까 조치를 잘못했다는 얘기는 그래도 나한테 빨리 얘기를 했더라면... (누가요?) 우리 전공의들이. (괴사에 대한 얘기인가요?) 얘기를 했으면 살릴 수 있는 것보다도 그래도 어떻게 하면 기회라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감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죠."

수술비는 왜 감면해 줬냐고 묻자 이렇게 답변합니다.

<녹취> 오 씨(집도의) : "일이 어찌됐든 간에 원하지 않은 결과 때문에 입원을 오래했으니 여러 가지로 그렇잖아요. 내가 감면을 해줄 수 있는 대로 감면해 주는 것에 대해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야지. 그걸 내가 잘못했으니까 수술비를 (감면해 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집도의는 또, 항생제는 개인적으로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며 감정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결국 오 씨 가족과 병원사이에 의료분쟁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경우 현행법에 따라 의사의 과실 유무는 오 씨 가족 측이 입증해야 합니다.

환자와 의사 가운데 의료사고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지난 10여년 동안 논란이 됐던 의료소송의 핵심 쟁점입니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대안에 의사에게 과실 입증 책임을 돌리는 내용이 제외되자 논란은 재점화됐습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해 분쟁을 신속, 공정하게 해결하고, 그 안에 의료사고감정단을 설치한다는 게 법안의 주된 내용입니다.

또,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 국가 예산 범위 안에서 보상하도록 하고, 상대방과 합의가 이뤄지면 의사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조항까지 포함됐습니다.

시민단체 쪽에선 의사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녹취> 강태언(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하고 의사들이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을 들게 해서 결국 보험에 대한 유도장치로 해서 형사특례 일정 부분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 법이 꾸려져야 된다고 주장을 했었는데 결국 환자들이 피해 보상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입증책임 전환은 배제됐죠."

입증 책임은 의사에게 부여해선 안되며, 조정 중재기구가 신속히 설치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입니다.

<녹취> 좌훈정(대한의사협회 대변인) : "처음부터 모든 의료 결과에 대해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손가락 절단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가 번복한 병원 언제 끝날지 모를 재활치료 정신과 상담 결과 환자는 지금 우울증의 기로에 서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의료분쟁 당사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료분쟁 당사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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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 수술 7번의 악몽
    • 입력 2010-03-08 11:43:10
    • 수정2010-03-09 10:15:10
    취재파일K
<앵커 멘트> 방금 보신 사진에는 어느 30대 주부의 손가락 수술 경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면서 두 마디를 절단하고, 7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과연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87일간의 기록을 들여다 봤습니다. <리포트> 직장에서 돌아온 권창현 씨가 부인 오 모 씨의 손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오 씨는 지난 해 여름 한 대학병원에서 왼손 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살 때 입은 화상으로 30여 년간 굽어 있던 손가락을 펴는, 고난도의 수술이었습니다. 손바닥 전체와 손가락 일부에는 신체 다른 부위의 피부가 이식됐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이게 자기의 살이 아니다 보니까 감각도 없고 혈액 순환이 잘 안되나 봐요. 날씨가 조금이라도 춥거나 하면 통증이 오는 거에요." 87일간의 입원 기간 동안 7번의 수술,그리고 지난 해 말엔 지체장애 3급 판정까지... <녹취> 오00(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 "수술 전에는 그냥 제 손의 상태 정도가 누구나 자기 신체에 콤플렉스 한 군데 있잖아요.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못한 게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부터 시작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두 손이 필요한 집안 일은 이제 모두 남편 몫이 됐습니다. 남편을 옆에서 거들어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녹취> 오00(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 "김치통이랑 음식 꺼내면서 엎을 때도 많고 깨진 그릇도 많고, 특히 걸레질은 아예 못하겠어요. 청소기로만 거의 청소하다시피 하고 먼지가 수북해지면 물티슈로 뽑아서 훔쳐내고 그 정도에요." 오 씨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집 근처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일입니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세 번째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합니다. 추가 성형까지 해야할 마당에 재활치료가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습니다. <녹취> 박제상(재활의학과 전문의) : "증상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관절 자체가 처음에는 많이 안 구부려졌는데 지금 상태로 이 정도 구부러지고 있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냐가 문제인데 지금 상태에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 씨의 악몽은 지난 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술 3일 만에 촬영한 오 씨의 왼손 사진입니다. 핀을 박아놓은 네 번째 손가락 끝부분에 혈액이 고이는 혈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차례 무균 치료를 받았지만, 혈종 부위는 점점 검게 변해갔습니다.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돼 손가락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교수님께서 전공의들이 찍은 사진을 처음으로 보시고 전공의들한테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뭘 했냐, 넌 1년차보다 못한 놈이다, 이렇게 병실에서 호통을 치셨고..." 괴사 부위가 점점 확대되면서 의료진은 재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오 씨의 집도의는 남편 권 씨가 요청한 면담에서 수술 이후 처치 과정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남편 권 씨는 취재진에게 면담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녹취> 남편-집도의 면담 : "(이게 수술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처치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솔직히 수술에서보다는 처치에서 좀 문제가 있었던 거죠. 솔직한 얘기로. 처치를 하는 거가 조금 늦지 않았나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그래서 내가 요즘 00선생한테도 뭐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 어찌됐든 간에 책임에 관한 문제는 내가 책임을 지는 거니까..." 오 씨는 그러나 집도의의 해외 세미나 일정 때문에 첫 수술 이후 20일이 지나서야 2차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손가락의 첫째 마디를 절단하고 남은 부분을 복부에 심는 피판술이었습니다. 수술 직전 실시한 세균검사에선 수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습니다. 그러나 2차 수술 엿새 뒤 부분적으로 실밥을 떼어내자 수술 부위에 노랗게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의 괴사 조직을 추가 절단하는 3차 수술을 받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3차 수술 4일째 되는 날 벌써 염증이 생기고 손가락이 찢어지면서 실밥이 너덜너덜하게 되어서 5일째 되는 날은 뱃살하고 손가락 피부는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됐죠." 뱃속에 썩은 손가락 뼈가 남아 있던 게 화근이었다고, 권 씨는 주장했습니다. 4차 수술에선 손가락의 둘째 마디까지 추가 절단하고 복부에 다시 봉합했습니다. 보름 쯤 지난 뒤 손가락을 복부에서 분리하는 5차 수술이 시도됐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5차 수술한 그 날 저녁에 병실로 돌아왔는데 주치의가 와서 덮어놓았던 거즈를 제거하고 드레싱을 하려고 했는데 여기 배에서 절개한 부분에서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증세가 다시 안정되자 의료진은 일주일 뒤 다시 분리를 시도했습니다. 6차 수술이었습니다. 손가락을 배에서 분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복부에서 떼어낸 피부를 완전히 봉합하지 못했습니다. 오 씨의 의료기록에는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 씨는 결국 엉덩이 피부를 추가로 떼어내 상처 부위에 이식하는 7차 수술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오 씨의 집도의는 석 달 동안의 수술비를 상당 부분 감면해 줬고, 병원 측도 2천만 원에 가까운 진료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촉구한다..촉구한다.. 그러나 남편 권창현 씨는 지난 달초부터 직장 동료 등 지인들과 함께 병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먼저 보상 얘기까지 꺼냈던 병원 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미납된 진료비를 전부 납부하라고 통보하고, 채권 추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취재진이 집회 현장을 찾은 지난 달 24일, 어찌된 일인 지 권 씨의 직장 동료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이 권 씨의 회사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직원들의 집회 참석이 계속될 경우 관리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권 씨 부부에겐 갖가지 법률적인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녹취> 권창현(손가락 수술 7번 경험자 남편) : "합법적으로 집회를 했는데도 경찰서에 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형사고소를 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민사로 병원비 청구소송을 했고, 영업방해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습니다." 취재진은 3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오 씨의 의료기록 감정을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측에 의뢰했습니다. 이 시민단체는 매년 4천여 건의 의료사고 상담을 처리하고 있고, 이 가운데 3백여 건에 대해서는 비공개 자문 의료진의 정밀 감정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감정 결과 보고서는 첫 번째 수술 이후 의료진의 처치가 소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맥부전 상태는 드레싱만으로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5월 19일 수술 후 동맥부전을 발견한 시점에서 조기에 재수술이 진행됐어야 하나 이를 소홀히 하여 결국 절단의 범위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또, 수술 부위의 염증 치료 과정도 문제삼았습니다. 수술후 혈종이 생기고 피부색이 점점 변해갈 때 원인균 확인을 하고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나, 위 병원은 이러한 배양검사 없이 계속 같은 항생제를 투여하였고, 6월 8일 MRSA균(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된 후에도 이 균에 감수성이 있는 반코마이신 등을 투여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취재진은 지난 주 병원 측에 집도의와의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음성 녹취만 허락되는 조건으로 집도의와의 면담이 성사됐습니다. 먼저 집도의가 환자 가족과의 면담에서 첫 수술 후 처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녹취> 오 씨(집도의) : "그러니까 조치를 잘못했다는 얘기는 그래도 나한테 빨리 얘기를 했더라면... (누가요?) 우리 전공의들이. (괴사에 대한 얘기인가요?) 얘기를 했으면 살릴 수 있는 것보다도 그래도 어떻게 하면 기회라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감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죠." 수술비는 왜 감면해 줬냐고 묻자 이렇게 답변합니다. <녹취> 오 씨(집도의) : "일이 어찌됐든 간에 원하지 않은 결과 때문에 입원을 오래했으니 여러 가지로 그렇잖아요. 내가 감면을 해줄 수 있는 대로 감면해 주는 것에 대해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야지. 그걸 내가 잘못했으니까 수술비를 (감면해 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집도의는 또, 항생제는 개인적으로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며 감정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결국 오 씨 가족과 병원사이에 의료분쟁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경우 현행법에 따라 의사의 과실 유무는 오 씨 가족 측이 입증해야 합니다. 환자와 의사 가운데 의료사고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지난 10여년 동안 논란이 됐던 의료소송의 핵심 쟁점입니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대안에 의사에게 과실 입증 책임을 돌리는 내용이 제외되자 논란은 재점화됐습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해 분쟁을 신속, 공정하게 해결하고, 그 안에 의료사고감정단을 설치한다는 게 법안의 주된 내용입니다. 또,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 국가 예산 범위 안에서 보상하도록 하고, 상대방과 합의가 이뤄지면 의사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조항까지 포함됐습니다. 시민단체 쪽에선 의사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녹취> 강태언(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하고 의사들이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을 들게 해서 결국 보험에 대한 유도장치로 해서 형사특례 일정 부분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 법이 꾸려져야 된다고 주장을 했었는데 결국 환자들이 피해 보상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입증책임 전환은 배제됐죠." 입증 책임은 의사에게 부여해선 안되며, 조정 중재기구가 신속히 설치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입니다. <녹취> 좌훈정(대한의사협회 대변인) : "처음부터 모든 의료 결과에 대해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손가락 절단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가 번복한 병원 언제 끝날지 모를 재활치료 정신과 상담 결과 환자는 지금 우울증의 기로에 서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의료분쟁 당사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료분쟁 당사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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