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따라잡기] 세 아빠의 자살 “미안해서, 외로워서”

입력 2010.03.25 (08:53) 수정 2010.03.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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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4,50대의 아버지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민우 기자, 왜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건가요?



이유는 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정 불화에 실직에 질병에. 이유야 어떻든 자살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하죠.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 하나같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가족들에게 짐이 돼서 미안하다" "너무 너무 외롭다"



혹시 아버지들에게 친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눌 ’가족’이라는 친구말이죠.



<리포트>



사흘 전인 지난 22일, 대구광역시 동구.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세 사람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모두 40-50대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숨진 이유도 모두 자살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발견 자체가 그날 다 된 거지요. 하루에. 가족들한테 미안하다고, 짐을 준거 같아서 미안하다. 다음 생에 잘 살고 싶다 이런 내용을 남겼고, 그런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안타깝고 같은 가장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오후 7시, 이 단독주택의 2층 방에서 52살 강 모씨가 누워있는 채 발견됐습니다.



강씨 옆에는 농약병이 발견됐습니다.



가족들이 발견해 강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실직 상태였고 가정생활 환경도 어렵다고 판단되었었고 그 분도 자제들에게 짐을 두고 가서 미안하다. 이런 식의 내용을 이야기를 했었고 그 전에도 몇 번 (자살) 시도를 한 상태였지요."



숨진 강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고, 그래서 아내와 아들의 수입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이런 그를 가족들은 못마땅해 했었고, 강씨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녹취> 이웃 주민 : "술은 처음에는 (여기서) 몇 번 마셨어요. 엄마는 옛날에는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자주 했는데 저하고 (남편하고는) 대화하고 이런 건 없어요."



<녹취> 이웃 주민 : "괴로웠겠지요. 사람이 살다 보니 괴롭지요. 아저씨가 힘이 들었나 봐요. 죽을 힘 가지고 살면 살겠지만..."



과거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었다는 가족들의 말로 미뤄볼 때 경찰은 강씨가 자신의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오후 3시 45분 쯤, 한 단칸방에서는 역시 5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혼자 생활하던 50살 우모씨.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는 연탄 2장이 피워져 있었습니다.



우씨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자 누나가 찾아와 발견했고, 이때는 이미 숨진 지 열흘이 지난 뒤였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 : "누나가 와 가지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도 생전 문을 안 잠가놓고 다니거든요. 꿈자리도 이상하다고 누나가 와 본다고 해서 와서 보니까 전부다 문이 잠겨 있어요. 그래서 열쇠 수리공 불리서 (문을) 여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방 안 탁자 위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달라.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짐을 맡기고 가서 미안하다.’ 며, 외로웠던 심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가족들과) 왕래가 없이 전화 통화만 1-2번씩 하고 일부 자제분하고는 연락이 안됐던 걸로 그렇게 파악이 됐었습니다. 그런 걸로 많이 고민해 온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가족 모임에 나왔을 때 그런 면이 많이 비췄고 그런 이유로 술을 자주 마셔왔다고 합니다."



아내와는 별거 상태였고, 두 딸마저 직장 생활로 따로 나가 살게 되면서 혼자서 생활해왔습니다.



주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오후 6시 25분에도 40대 조모씨가 숨진 채 딸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대화도 많이 없었던 상태였고 내성적인 건 알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애들도 많이 놀랐고 사모님도 많이 놀랐지요.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이 벌어져버리니까 많이 놀랐습니다."



3년 전 허리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 줄곧 집에서만 지냈다는 조모씨.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수술을 받고 나서 실직이 된 거지요. 허리 자체가 안 좋으니까 거동이 불편하니까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혼자 요양을 한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분도 신병하고 경제적인 능력 상실로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로 불렸던 이들 세 사람, 하지만 이 역할이 무너지게 되자 좌절감과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인데요.



자살을 택하는 연령대가 주로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중년 남성의 자살률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제 발표된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35명이 자살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0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어났고, 비관 자살이 가장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명수(센터장 / 서울시 자살예방협회) : "자살을 시도하신 분들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가족 내 갈등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더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 하셔야 되고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잇따른 자살... 좋은 아빠, 좋은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작 아버지여서 고민을 내색할 수 없고, 그래서 가정에서 아버지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족들의 고민도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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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3-25 08:53:11
    • 수정2010-03-25 14: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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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4,50대의 아버지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민우 기자, 왜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건가요?

이유는 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정 불화에 실직에 질병에. 이유야 어떻든 자살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하죠.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 하나같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가족들에게 짐이 돼서 미안하다" "너무 너무 외롭다"

혹시 아버지들에게 친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눌 ’가족’이라는 친구말이죠.

<리포트>

사흘 전인 지난 22일, 대구광역시 동구.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세 사람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모두 40-50대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숨진 이유도 모두 자살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발견 자체가 그날 다 된 거지요. 하루에. 가족들한테 미안하다고, 짐을 준거 같아서 미안하다. 다음 생에 잘 살고 싶다 이런 내용을 남겼고, 그런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안타깝고 같은 가장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오후 7시, 이 단독주택의 2층 방에서 52살 강 모씨가 누워있는 채 발견됐습니다.

강씨 옆에는 농약병이 발견됐습니다.

가족들이 발견해 강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실직 상태였고 가정생활 환경도 어렵다고 판단되었었고 그 분도 자제들에게 짐을 두고 가서 미안하다. 이런 식의 내용을 이야기를 했었고 그 전에도 몇 번 (자살) 시도를 한 상태였지요."

숨진 강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고, 그래서 아내와 아들의 수입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이런 그를 가족들은 못마땅해 했었고, 강씨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녹취> 이웃 주민 : "술은 처음에는 (여기서) 몇 번 마셨어요. 엄마는 옛날에는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자주 했는데 저하고 (남편하고는) 대화하고 이런 건 없어요."

<녹취> 이웃 주민 : "괴로웠겠지요. 사람이 살다 보니 괴롭지요. 아저씨가 힘이 들었나 봐요. 죽을 힘 가지고 살면 살겠지만..."

과거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었다는 가족들의 말로 미뤄볼 때 경찰은 강씨가 자신의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오후 3시 45분 쯤, 한 단칸방에서는 역시 5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혼자 생활하던 50살 우모씨.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는 연탄 2장이 피워져 있었습니다.

우씨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자 누나가 찾아와 발견했고, 이때는 이미 숨진 지 열흘이 지난 뒤였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 : "누나가 와 가지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도 생전 문을 안 잠가놓고 다니거든요. 꿈자리도 이상하다고 누나가 와 본다고 해서 와서 보니까 전부다 문이 잠겨 있어요. 그래서 열쇠 수리공 불리서 (문을) 여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방 안 탁자 위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달라.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짐을 맡기고 가서 미안하다.’ 며, 외로웠던 심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가족들과) 왕래가 없이 전화 통화만 1-2번씩 하고 일부 자제분하고는 연락이 안됐던 걸로 그렇게 파악이 됐었습니다. 그런 걸로 많이 고민해 온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가족 모임에 나왔을 때 그런 면이 많이 비췄고 그런 이유로 술을 자주 마셔왔다고 합니다."

아내와는 별거 상태였고, 두 딸마저 직장 생활로 따로 나가 살게 되면서 혼자서 생활해왔습니다.

주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오후 6시 25분에도 40대 조모씨가 숨진 채 딸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대화도 많이 없었던 상태였고 내성적인 건 알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애들도 많이 놀랐고 사모님도 많이 놀랐지요.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이 벌어져버리니까 많이 놀랐습니다."

3년 전 허리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 줄곧 집에서만 지냈다는 조모씨.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최봉식(형사 /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3팀) : "수술을 받고 나서 실직이 된 거지요. 허리 자체가 안 좋으니까 거동이 불편하니까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혼자 요양을 한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분도 신병하고 경제적인 능력 상실로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로 불렸던 이들 세 사람, 하지만 이 역할이 무너지게 되자 좌절감과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인데요.

자살을 택하는 연령대가 주로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중년 남성의 자살률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제 발표된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35명이 자살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0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어났고, 비관 자살이 가장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명수(센터장 / 서울시 자살예방협회) : "자살을 시도하신 분들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가족 내 갈등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더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 하셔야 되고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잇따른 자살... 좋은 아빠, 좋은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작 아버지여서 고민을 내색할 수 없고, 그래서 가정에서 아버지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족들의 고민도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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