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으로 갈라진 ‘종묘공원’

입력 2010.04.21 (20:28) 수정 2010.04.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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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인 서울 종묘공원에 요즘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장기두기와 친구를 사귀며 시간을 보내던 노인들이 이념 성향에 따라 5개 집단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폭력 다툼까지 일고 있습니다.



노윤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청와대 길목의 한 동사무소 앞에 모인 백발의 노인들.



요즘 각종 시위 현장에서 자주 눈에 띠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입니다.



<현장음> "종묘에 있는 어르신들을 선동했고..."



어르신들이 모인 이유.



종묘공원에 모인 이른바 좌파 노인들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겁니다.



<인터뷰> 안병기(어버이연합 회원) : "(폭행을 당하신 거예요?) 예. (다툰 분들은 어떤 분들이신데요?) 좌파 아냐, 좌파"



도대체 종묘 공원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 17일.



천안함 침몰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노인들에게 갑자기 한 무리의 노인들이 달려들었습니다.



<인터뷰> 한용헌 : "갑자기 죽여라~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뒤돌아 보니까 뒤에서 잡아당기더니..."



공격을 당한 쪽은 진보 성향을 띤 아사달 노인회.



달려든 쪽은 보수 모임인 어버이연합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진수(종묘공원 관리사무소 반장) : "꽤 많이 몰려왔어요. 한 50명 정도? (일방적으로 맞으셨던 건가요?) 거의 일방적이라고 봐야죠."



진보와 보수를 내세운 두 단체는 그동안 종종 갈등을 빚어왔지만 폭력 사건으로까지 번진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추선희(어버이연합 사무총장) : "간첩같은 사람을 경찰에 넘기기 위해서 갔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이지.."



<인터뷰> 오춘일(아사달 노인회) :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거예요, 자꾸.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응어리가 생겨 가지고."



종묘공원엔 이 두 단체 말고도 노인 단체가 세 개나 더 있습니다.



이념 논쟁에 따라 노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결과입니다.



4년 전 공원 주차장 앞에서 발족한 보수 성향의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여기에서 과격 시위에 반대하는 노인들이 독립해 나라사랑 노인회를 만들었고, 이 단체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에 맞서 매점 앞에서 발족한 진보 성향 아사달 노인회는 다시 홍익인간 노인회와 갈라섰습니다.



복잡한 이념에 따라 세력이 형성됐고, 종묘공원에는 이를 구분하는 휴전선 도로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공원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습니다.



<인터뷰> 중도파 노인 : "장기 바둑두는 영감들 모이는 덴데 저렇게 악선전하면 듣기 싫어서 여기 모이는 사람은 저리 가지도 않아요."



소일거리 없는 노인들에게 만남의 장이 돼온 종묘공원.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이념 다툼 속에, 편하게 얘기 나눌 공간마저 잃게 되는 건 아닌지, 노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노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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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으로 갈라진 ‘종묘공원’
    • 입력 2010-04-21 20:28:23
    • 수정2010-04-21 2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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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인 서울 종묘공원에 요즘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장기두기와 친구를 사귀며 시간을 보내던 노인들이 이념 성향에 따라 5개 집단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폭력 다툼까지 일고 있습니다.

노윤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청와대 길목의 한 동사무소 앞에 모인 백발의 노인들.

요즘 각종 시위 현장에서 자주 눈에 띠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입니다.

<현장음> "종묘에 있는 어르신들을 선동했고..."

어르신들이 모인 이유.

종묘공원에 모인 이른바 좌파 노인들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겁니다.

<인터뷰> 안병기(어버이연합 회원) : "(폭행을 당하신 거예요?) 예. (다툰 분들은 어떤 분들이신데요?) 좌파 아냐, 좌파"

도대체 종묘 공원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 17일.

천안함 침몰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노인들에게 갑자기 한 무리의 노인들이 달려들었습니다.

<인터뷰> 한용헌 : "갑자기 죽여라~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뒤돌아 보니까 뒤에서 잡아당기더니..."

공격을 당한 쪽은 진보 성향을 띤 아사달 노인회.

달려든 쪽은 보수 모임인 어버이연합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진수(종묘공원 관리사무소 반장) : "꽤 많이 몰려왔어요. 한 50명 정도? (일방적으로 맞으셨던 건가요?) 거의 일방적이라고 봐야죠."

진보와 보수를 내세운 두 단체는 그동안 종종 갈등을 빚어왔지만 폭력 사건으로까지 번진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추선희(어버이연합 사무총장) : "간첩같은 사람을 경찰에 넘기기 위해서 갔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이지.."

<인터뷰> 오춘일(아사달 노인회) :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거예요, 자꾸.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응어리가 생겨 가지고."

종묘공원엔 이 두 단체 말고도 노인 단체가 세 개나 더 있습니다.

이념 논쟁에 따라 노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결과입니다.

4년 전 공원 주차장 앞에서 발족한 보수 성향의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여기에서 과격 시위에 반대하는 노인들이 독립해 나라사랑 노인회를 만들었고, 이 단체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에 맞서 매점 앞에서 발족한 진보 성향 아사달 노인회는 다시 홍익인간 노인회와 갈라섰습니다.

복잡한 이념에 따라 세력이 형성됐고, 종묘공원에는 이를 구분하는 휴전선 도로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공원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습니다.

<인터뷰> 중도파 노인 : "장기 바둑두는 영감들 모이는 덴데 저렇게 악선전하면 듣기 싫어서 여기 모이는 사람은 저리 가지도 않아요."

소일거리 없는 노인들에게 만남의 장이 돼온 종묘공원.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이념 다툼 속에, 편하게 얘기 나눌 공간마저 잃게 되는 건 아닌지, 노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노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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