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 교민들도 ‘대~한민국’ 外

입력 2010.06.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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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광경을 해외 교민들도 지켜보며 뜨거운 고국 사랑으로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특히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현지시각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수 천 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모여 거리 응원에 함께 했습니다.



LA에서 이동채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손꼽아 기다리던 동점골을 터트린 순간. 지구 반대쪽에서 지켜보던 교민들도 함께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현장음> “너무 너무 좋아요!”



<현장음> “8강까지 갈겁니다.”



사상 첫 해외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엔 멀리 타국에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입니다.



여름 방학 낮 시간 때 열린 3차전이라 고국을 잘 몰랐던 이민 2세들에게는 할아버지 나라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미국인 직장 동료와 2시간 내내 대한 민국을 외쳤습니다.



<녹취> 가브리엘(LA 고교생) : “한국이 골을 넣었을 때 미친 듯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붉은 물결로 뒤덮인 이색적인 거리응원은 현지 언론의 주목을 끌기도 충분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은 물론 런던과 파리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도 교민들의 조국 사랑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인터뷰> “대한민국 너무 수고했어요. 정말 파이팅...사랑해요...”



태극 전사들의 불꽃 투혼은 이곳 LA를 비롯해 전 세계에 뻗어나간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냈습니다.



KBS 뉴스 이동채입니다.



중공군, 6·25 전쟁 위장 참전



<앵커 멘트>



6.25전쟁에 당시 옛 소련 공군이 참전한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실제로 중공군복과 표지를 하고 전쟁을 치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스탈린은 패색이 짙은 북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힘을 빼려고 전쟁을 장기화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김명섭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당시 소련 전투기 정비사로 참전했던 아나톨리씨.



참전을 위한 필수 작업은 당시 중공군으로 위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아나톨리(한국전 참전) : “소련 군복 대신 중공군복을 입었습니다.”



소련 전투기에도 중공군 마크를 붙였습니다.



철권 통치자였던 스탈린이 소련군의 개입 증거를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고 종전 후에는 참전사실을 비밀에 붙여야했습니다.



<인터뷰> 아나톨리(6.25전쟁 참전) : “일종의 숨겨진 전쟁이었죠. 소련군이 6.25전쟁에 갔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숨겼죠.”



스탈린은 패색이 짙어진 김일성의 종전 호소도 거부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중국을 부추겨 전쟁을 지속하도록 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을 소진시키는 등 전략적 의도에서 였습니다.



<인터뷰> 바자노프(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 : “미국의 힘을 약하게 하고 북한이 상대할 만큼 약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어 했습니다.”



소련 정부는 결국 스탈린 사후에 휴전을 하라는 지침을 북한에게 전달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김명섭입니다.



국제 유가 등락 끝 소폭 하락




국제유가가 등락 끝에 막판 소폭 하락하면서 마감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76센트 내린 배럴당 77.85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8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64센트 떨어진 배럴당 78.18달러에 거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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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교민들도 ‘대~한민국’ 外
    • 입력 2010-06-23 14:01:50
    지구촌뉴스
<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광경을 해외 교민들도 지켜보며 뜨거운 고국 사랑으로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특히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현지시각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수 천 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모여 거리 응원에 함께 했습니다.

LA에서 이동채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손꼽아 기다리던 동점골을 터트린 순간. 지구 반대쪽에서 지켜보던 교민들도 함께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현장음> “너무 너무 좋아요!”

<현장음> “8강까지 갈겁니다.”

사상 첫 해외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엔 멀리 타국에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입니다.

여름 방학 낮 시간 때 열린 3차전이라 고국을 잘 몰랐던 이민 2세들에게는 할아버지 나라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미국인 직장 동료와 2시간 내내 대한 민국을 외쳤습니다.

<녹취> 가브리엘(LA 고교생) : “한국이 골을 넣었을 때 미친 듯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붉은 물결로 뒤덮인 이색적인 거리응원은 현지 언론의 주목을 끌기도 충분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은 물론 런던과 파리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도 교민들의 조국 사랑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인터뷰> “대한민국 너무 수고했어요. 정말 파이팅...사랑해요...”

태극 전사들의 불꽃 투혼은 이곳 LA를 비롯해 전 세계에 뻗어나간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냈습니다.

KBS 뉴스 이동채입니다.

중공군, 6·25 전쟁 위장 참전

<앵커 멘트>

6.25전쟁에 당시 옛 소련 공군이 참전한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실제로 중공군복과 표지를 하고 전쟁을 치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스탈린은 패색이 짙은 북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힘을 빼려고 전쟁을 장기화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김명섭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당시 소련 전투기 정비사로 참전했던 아나톨리씨.

참전을 위한 필수 작업은 당시 중공군으로 위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아나톨리(한국전 참전) : “소련 군복 대신 중공군복을 입었습니다.”

소련 전투기에도 중공군 마크를 붙였습니다.

철권 통치자였던 스탈린이 소련군의 개입 증거를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고 종전 후에는 참전사실을 비밀에 붙여야했습니다.

<인터뷰> 아나톨리(6.25전쟁 참전) : “일종의 숨겨진 전쟁이었죠. 소련군이 6.25전쟁에 갔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숨겼죠.”

스탈린은 패색이 짙어진 김일성의 종전 호소도 거부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중국을 부추겨 전쟁을 지속하도록 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을 소진시키는 등 전략적 의도에서 였습니다.

<인터뷰> 바자노프(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 : “미국의 힘을 약하게 하고 북한이 상대할 만큼 약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어 했습니다.”

소련 정부는 결국 스탈린 사후에 휴전을 하라는 지침을 북한에게 전달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김명섭입니다.

국제 유가 등락 끝 소폭 하락


국제유가가 등락 끝에 막판 소폭 하락하면서 마감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76센트 내린 배럴당 77.85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8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64센트 떨어진 배럴당 78.18달러에 거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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