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에 걸친 벽안의 참전용사

입력 2010.06.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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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국 전쟁 당시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3만6천 명이나 되는데요.

아버지와 아들이, 2대에 걸쳐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까지 바친 미국인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최선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에도 자원해서 6.25전쟁에 뛰어든 미국인 윌리엄 헤밀턴 쇼 대위.

한국말이 유창했던 그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작전에서 정보장교로 맹활약하다 전사했습니다.

28살의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뒤로하고 참전한 것은, 그에게 한국이 제2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윌 쇼(고 윌리엄 대위 증손자)

이런 결정에는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 목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얼 쇼 목사는 1921년부터 30년 동안 평양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면서 헤밀턴 쇼를 낳았습니다.

또 우리 육군에 군종 제도를 도입해 전쟁의 폐허 속에도 군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됐습니다.

교육에도 열정을 쏟아부어, 그가 세운 목사 교육기관인 목자관은 목원대학교의 기반이 됐습니다.

목원대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을 갖고 60년 만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인터뷰>이군호(얼쇼 목사의 제자/전 목원대 총장):"외국인들까지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이런 일들을 했는데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헌신하면서 더 좋은 나라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게을러야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든다)"

KBS 뉴스 최선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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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대에 걸친 벽안의 참전용사
    • 입력 2010-06-24 06: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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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국 전쟁 당시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3만6천 명이나 되는데요. 아버지와 아들이, 2대에 걸쳐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까지 바친 미국인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최선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에도 자원해서 6.25전쟁에 뛰어든 미국인 윌리엄 헤밀턴 쇼 대위. 한국말이 유창했던 그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작전에서 정보장교로 맹활약하다 전사했습니다. 28살의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뒤로하고 참전한 것은, 그에게 한국이 제2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윌 쇼(고 윌리엄 대위 증손자) 이런 결정에는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 목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얼 쇼 목사는 1921년부터 30년 동안 평양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면서 헤밀턴 쇼를 낳았습니다. 또 우리 육군에 군종 제도를 도입해 전쟁의 폐허 속에도 군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됐습니다. 교육에도 열정을 쏟아부어, 그가 세운 목사 교육기관인 목자관은 목원대학교의 기반이 됐습니다. 목원대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을 갖고 60년 만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인터뷰>이군호(얼쇼 목사의 제자/전 목원대 총장):"외국인들까지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이런 일들을 했는데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헌신하면서 더 좋은 나라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게을러야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든다)" KBS 뉴스 최선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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