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동기들에게 죄스런 마음뿐”

입력 2010.07.0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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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이게 정말 현실인가 했죠. 정말 생각하기도 싫어요."

지난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우리 군(軍) 사상 최악의 참사인 해군 초계함 천안함(1천200t급)이 침몰한 지 오는 3일로 꼭 100일을 맞는다.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처음으로 2년간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지난 5월 1일 전역한 전준영(23.대학 2학년 휴학)씨에게는 악몽 같았던 당시를 돌아보는 것조차 몸서리쳐지는 아픔이다.

전씨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무는 것 같고, 희망도 살아가는 삶의 길을 찾아보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며 뜻밖의 담담함과 차분함을 보였다.

"꿈만 같죠. 나한테 일어난 일인가 싶습니다. 지하 1층 항해부 침실에 누워 있다가 본능적으로 빠져나왔죠. 침대 옆에 문이 있어 운 좋게 나왔죠. 정강이 양쪽 멍든 거 빼고 허리와 목이 아픈 정도였고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니까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천안함 침몰 순간에 대한 전씨의 회고담이다.

그는 천안함이 침몰하고 100일을 보내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배가 인양되기 전까지"라며 "배에서 전우의 시신이 하나씩 나오면서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고 안장식 그날까지 견딜 수 없이 슬프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전역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생존 장병들과 자주 연락하고 외출 나온 간부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안정을 조금씩 찾고 있다고 했다.

전씨는 "생존 장병들과 1주일에 2~3번 전화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지낸다"며 "특히 최원일 함장님은 자주 전화를 걸어와 몸은 어떤지 물어보며 '도와줄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늘 걱정해주신다"고 했다.

외출이나 휴가를 나온 간부들과 부대 밖에서 만나 근황을 묻는 자리도 가졌다고 전했다.

전씨는 "천안함에 함께 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해상병 542기 입대 동기 4명(이상희 이재민 이용상 이상민(1988년생) 하사)의 부모님에게는 죄스러운 마음에 연락을 못 드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전역 당일 입대 동기 4명이 묻힌 국립 대전현충원에 다녀왔고 이후에도 가끔 묘역을 찾고 있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다.

전씨는 "전역 후 몇 번 (현충원에 묻힌) 동기들을 보고 왔다"며 "미안한 마음밖에 안들어 한마디도 못하고 발길을 돌리곤 한다"고 했다.

그는 전역 후 우울증세로 한 달가량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요즘도 약은 먹고 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다 보니 이젠 잠도 잘 자고 많이 좋아졌어요."

방학 중이라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전씨는 가을 학기에 복학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전씨는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해 "한번 의심하면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된다. 믿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자 견해차는 있으니까 조사 결과를 의심할 수는 있다고 봐요. 군의 초기 대응에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조사결과) 진실이니까 믿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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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오지 못한 동기들에게 죄스런 마음뿐”
    • 입력 2010-07-01 06:36:15
    연합뉴스
"그땐 이게 정말 현실인가 했죠. 정말 생각하기도 싫어요." 지난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우리 군(軍) 사상 최악의 참사인 해군 초계함 천안함(1천200t급)이 침몰한 지 오는 3일로 꼭 100일을 맞는다.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처음으로 2년간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지난 5월 1일 전역한 전준영(23.대학 2학년 휴학)씨에게는 악몽 같았던 당시를 돌아보는 것조차 몸서리쳐지는 아픔이다. 전씨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무는 것 같고, 희망도 살아가는 삶의 길을 찾아보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며 뜻밖의 담담함과 차분함을 보였다. "꿈만 같죠. 나한테 일어난 일인가 싶습니다. 지하 1층 항해부 침실에 누워 있다가 본능적으로 빠져나왔죠. 침대 옆에 문이 있어 운 좋게 나왔죠. 정강이 양쪽 멍든 거 빼고 허리와 목이 아픈 정도였고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니까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천안함 침몰 순간에 대한 전씨의 회고담이다. 그는 천안함이 침몰하고 100일을 보내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배가 인양되기 전까지"라며 "배에서 전우의 시신이 하나씩 나오면서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고 안장식 그날까지 견딜 수 없이 슬프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전역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생존 장병들과 자주 연락하고 외출 나온 간부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안정을 조금씩 찾고 있다고 했다. 전씨는 "생존 장병들과 1주일에 2~3번 전화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지낸다"며 "특히 최원일 함장님은 자주 전화를 걸어와 몸은 어떤지 물어보며 '도와줄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늘 걱정해주신다"고 했다. 외출이나 휴가를 나온 간부들과 부대 밖에서 만나 근황을 묻는 자리도 가졌다고 전했다. 전씨는 "천안함에 함께 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해상병 542기 입대 동기 4명(이상희 이재민 이용상 이상민(1988년생) 하사)의 부모님에게는 죄스러운 마음에 연락을 못 드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전역 당일 입대 동기 4명이 묻힌 국립 대전현충원에 다녀왔고 이후에도 가끔 묘역을 찾고 있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다. 전씨는 "전역 후 몇 번 (현충원에 묻힌) 동기들을 보고 왔다"며 "미안한 마음밖에 안들어 한마디도 못하고 발길을 돌리곤 한다"고 했다. 그는 전역 후 우울증세로 한 달가량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요즘도 약은 먹고 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다 보니 이젠 잠도 잘 자고 많이 좋아졌어요." 방학 중이라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전씨는 가을 학기에 복학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전씨는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해 "한번 의심하면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된다. 믿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자 견해차는 있으니까 조사 결과를 의심할 수는 있다고 봐요. 군의 초기 대응에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조사결과) 진실이니까 믿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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